절세위인의 숭고한 민족애
한강반에 새겨진 《설악산의 전설》
주체39(1950)년 8월 내각청사에서는 긴급회의가 소집되였다.
당시 서울시민들의 땔나무문제를 회의의정으로 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제의에 회의참가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그도그럴것이 전쟁이 한창인 때 그것도 삼복더위속에서 서울시민들의 겨울철땔나무문제가 상정되는것은 누구에게나 천만뜻밖이였던것이다.
사실 그때 서울시민들의 생활에서 제일가는 고충이 땔나무문제였다.겨울에는 땔것이 없어 농짝이며 빨래방치, 지어는 밥상까지 다 패때고도 얼어죽는 일이 빈번하였다.
이를 가슴아파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이 공화국의 품속에 안긴 오늘까지 이전과 같이 고통을 당하게 할수는 없다고, 땔나무문제도 예견성있게 풀어주어야 한다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그러시고는 나무가 많고 서울에서 가까운 태백산에서 땔나무를 하면 헐할수는 있겠지만 지지리 고생하다가 공화국의 품에 안긴 남녘동포들을 또 고생시킬수 없다, 힘들더라도 북반부인민들의 손으로 나무를 해보내주어야 한다시며 친히 한강상류와 잇닿은 설악산을 나무베기전투장으로 지정해주시였다.뿐만아니라 인민군대에 탄원한 수백명의 청장년들까지 동원시켜주시고 전시환경에 맞게 나무를 강물에 띄워 인민들이 건져쓰도록 그 방법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하여 한강으로는 수십만㎥의 땔나무가 떠내려왔고 서울지역 인민들은 민족의 어버이의 따뜻한 사랑속에 엄혹했던 그해 겨울을 후덥게 지낼수 있었다.
한강반에 새겨진 《설악산의 전설》은 이렇게 태여나 남녘인민들의 마음을 오늘도 뜨겁게 달구어주고있다.
남녘겨레들을 잊지 못하시며
주체55(1966)년 여름에 있은 일이다.
당대표자회에서 하실 보고를 준비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밤 자정이 가까와올무렵 회의준비사업을 하는 일군들의 숙소를 찾아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애에 넘치신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시며 하루에 몇시간씩 자는가, 생활에서 불편한것이 없는가를 알아보시였다.그러시고는 창문밖을 바라보시며 나는 밤이 되면 남조선인민들생각이 더 난다고, 아마도 밤에는 생각이 더 깊어지는 모양이라고, 어쩐지 남조선인민들생각만 떠오르면 가슴이 아프다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전쟁때 서울에 나가보았는데 참 감회가 깊었소, 전쟁이니만치 나는 그때 서울동포들에게 인사의 말도 한번 못했소라고 추억깊은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해방직후 서울사람들은 역전광장에 모여 김일성장군님께서 서울에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밤을 지새웠다고 말씀드렸다.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 말을 자신께서도 들었다고, 자신께서는 아직 조국개선의 인사도 남녘동포들에게 하지 못했다고, 조국통일의 인사를 겸해서 해야겠는데 분렬의 력사만이 깊어가고있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분렬의 력사를 끝장내고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