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조국을 목숨바쳐 지켜야 한다 -보통강구역 신원동 29인민반에서 사는 한명화할머니의 해방전 생활에서-

주체109(2020)년 12월 19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청년들과 소년들에게 가장 적은 임금을 주고 그들을 마소와 같이 밤낮으로 부렸으며 그들로 하여금 헐벗고 굶주리고 무지와 질병에 시달리여 쓰러지게 하거나 또는 불구자로 되여 절망의 길에서 헤매게 하였습니다.》

보통강구역 신원동 29인민반에서 살고있는 한명화할머니에게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로 잊을수 없는것이 있다.그것은 자기가 해방전에 겪은 피눈물나는 노예살이이다.

아흔살을 가까이하는 할머니의 가슴아픈 추억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새겨주고있는가.

 

노예의 설음

 

1931년 한명화할머니는 6남매중의 둘째로 태여났다.당시로 말하면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파쑈통치가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던 때였다.

그가 8살 나던 해였다.그가 나서자란 중화군 풍동면 릉성리(오늘의 상원군 릉성리)에 전해의 흉년으로 극심한 기아가 휩쓸었다.

어느날 해종일 굶은 명화는 어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날이 어두워져서야 어머니는 쑥을 한보따리 이고 돌아왔다.이윽고 저녁상에는 쑥버무리가 올랐다.

낟알이 섞이지 않은 그것은 써서 먹기가 역했다.

그래도 배가 고팠던 명화는 억지로라도 쓰거운 쑥버무리를 삼켜야 하였다.

날이 갈수록 살림에 쪼들린 명화의 부모는 하는수없이 그를 지주집아이보개로 보내기로 하였다.지주집에 들어가면 명화가 찬밥덩어리라도 좀 얻어먹을수 있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에서였다.

지주녀편네는 집을 찾아온 연약해보이는 명화를 마뜩잖게 훑어보더니 깨진 소반에다 밥과 찌개를 조금 가져다주었다.명화가 밥술을 놓기가 바쁘게 지주녀편네는 손바닥만 한 그의 잔등에 자기의 아이를 올려놓았다.

《이년아, 밥 한그릇이 공짜인줄 알아.》

이렇게 시작된 그의 노예살이는 그야말로 고된것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지주녀편네는 명화에게 이제부터 자기 아이를 한시도 등에서 떼놓지 말고 업어재우라고 떠벌이였다.하여 그는 지주년놈들이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잘 때에도 밤깊도록 아이를 업은채 마당가를 오락가락해야 하였다.하지만 몰려오는 피곤은 끝끝내 명화를 쓰러뜨렸다.

이것을 보게 된 지주녀편네는 빌어먹을 년이 남의 집 귀동자에게 찬이슬을 맞혔다고 고아대면서 그를 마구 때리였다.

참을길 없었던 명화는 지주놈의 집에서 뛰쳐나왔다.

집에 돌아온 명화는 어머니가 주는 쑥버무리를 먹으며 말하였다.

《엄마, 쑥버무리가 참 맛있어요.지주집밥은 살로 안가요.》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는 명화의 상처투성이얼굴을 쓸어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 착취자들의 억압과 학대는 쓰디쓴 쑥버무리를 먹기보다 몇갑절 참기 어렵다는것을 사무치게 깨달았습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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