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기슭에 울려퍼지는 로동당만세소리, 사회주의만세소리 -새집을 받아안은 삼지연시인민들의 가슴마다에 다함없는 고마움의 정 차넘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당에 모든것을 의탁하고 당과 함께 온갖 시련과 난관을 헤쳐온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세상에 부럼없는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로동당시대의 문명을 대표하는 산간문화도시로 천지개벽한 백두대지의 삼지연시에 또다시 희한한 새 살림집들이 일떠서고 인민의 행복한 생활이 꽃펴나고있다.
삼지연시인민들에게 온갖 사랑을 다 안겨주고계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은정에 의해 꿈만같이 새집을 받아안은 삼지연시의 10개 동, 리인민들의 고마움에 넘친 목소리가 백두대지에 메아리친다.
《백두산아래에 우리 집이 있다》
백두산아래 첫 동네로 불리우는 삼지연시 신무성동에서 보면 새로 일떠선 살림집들과 어울려 백두산이 더욱 숭엄하게 보인다.우리 인민이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에 소중히 안고 사는 백두산이 바라보이는 마을에서 산다는것은 이 고장 사람들의 가장 큰 긍지이며 자랑이다.
어려서부터 신무성동에서 살아온 최광숙녀성은 자기가 이곳에서 살면서 다섯번째로 새집들이를 하였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처음 이 고장에 림산마을이 생겨났을 때 림산로동자였던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새집에 들어서며 좋아라 뛰여다니던 일이 지금도 그의 기억속에 생생하다.
세월이 흘러 그가 가정을 이루었을 때 마을에 새 살림집이 또 일떠섰다.그런데 새집을 받아안은지 얼마 안되여 그의 가정은 또다시 새집들이경사를 맞이하게 되였다.그 집에서 그는 아들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그후 그는 나라에서 새집처럼 보수해준 살림집에 입사를 하게 되였다.그런데 오늘은 당의 사랑속에 만사람이 부러워하는 새집의 주인이 되였던것이다.
벌써 몇번이나 도시에서 사는 딸이 함께 살자고 하였지만 그는 매번 거절했다. 위대한 장군님의 고향땅, 백두산이 솟아있는 고장에서 산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더없이 소중해서였다.
그날 그는 가족과 함께 백두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수 있게 꾸려진 마을의 사진찍는 장소로 향했다.어머니당의 사랑속에 새집을 받아안은 날을 영원히 기억해두고싶었던것이다.
그들뿐이 아니라 신무성동의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향했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밑에서 기쁨에 울고웃으며 찍은 사진, 그것은 절세위인들의 사랑이 얼마나 따사로우며 대대로 당의 사랑속에 행복만을 누리는 삼지연시인민들은 얼마나 복받은 사람들인가를 전하는 산 화폭이였다.
새집을 받아안은 삼지연시 신무성유치원 원장 김영실동무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일터로 나갔다가 집으로 향할 때면 그는 백두산을 바라보며 할아버지와 마음속대화를 나누군 하였다.그의 할아버지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조국해방을 위한 투쟁에 모든것을 바친 반일애국렬사였다.할아버지세대의 선혈이 슴배여있는 백두대지에 세세년년 행복이 꽃펴난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은 뜨겁기만 하였다.
새집들이하는 날 아침도 그는 저 멀리 흰눈을 떠인 백두산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백두산절세위인들께서 오늘의 이 경사를 다 보시는것같았고 삼지연시인민들의 행복한 앞날을 축복해주시는것같았다.
《백두산아래에 우리 집이 있다.》
삼지연시인민들이 터치는 이 목소리에는 온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속에 천만복을 받아안으며 사는 긍지와 자랑이 한껏 어려있었다.
《따뜻합니다!》
삼지연시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추운 고장으로 알려져있다.오랜 세월 모진 추위로 하여 이 고장 사람들이 겪는 생활상애로는 어쩔수 없는것으로 되여왔다.그러나 삼지연시에 천지개벽의 새 력사가 펼쳐지면서 그것은 아득한 옛일로 되였다.
새 보금자리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 있다.
《따뜻합니다!》
새집에 주인들이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방마다 구들이 따뜻이 덥혀져있었던것이다.
하기에 새집의 주인들은 말한다.
《흔히 새집에서 나는 첫해 겨울은 춥기가 일쑤라고 말하군 합니다.그러나 어머니당의 사랑속에 새집들이를 한 우리는 따뜻한 방에서 추운줄 모르고 살고있습니다.》
새집들이를 한지도 벌써 여러날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곳 사람들은 이처럼 훌륭한 곳이 자기 집이라는것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있다.
삼지연시 포태동에서 새집을 받은 김성만로인도 그러했다.새집들이후 첫 밤을 뜨뜻하게 보낸 그는 이 고장에서 살아온 한생이 불현듯 돌이켜졌다.
그가 이곳을 개간한 첫 개척자들중의 한 사람인 아버지를 따라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몇채의 살림집밖에 없었다.그런데 오늘은 온 나라가 다 아는 삼지연감자가루생산공장이 일떠서고 현대적인 살림집들이 눈뿌리 아득히 펼쳐졌으니 그 모든 전변을 자기의 눈으로 보아온 로인의 심정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포태동이 고향인 서명철, 권련화제대군인부부도 꼭 꿈을 꾸는것만같았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