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곧바로, 여기에 값높은 위훈이 있다 -예술영화 《길》의 원형인 로력영웅 윤경률동지의 생을 돌이켜보며-
우리 세대의 삶의 거울, 귀중한 본보기
참된 인생길에 대한 철학적해명을 주고있는 예술영화 《길》,
당의 품을 떠난 우리 인민의 운명이란 순간도 생각할수 없으며 오직 당을 믿고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할 때 참된 삶을 누릴수 있다는 진리를 깊이 새겨주고있는 예술영화의 주인공원형은 로력영웅 윤경률동지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어머니당으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나감으로써 우리 인민들은 당의 품을 진정한 어머니품으로 여기고 자기들의 운명과 미래를 전적으로 의탁하고있으며 당의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충정을 바쳐가고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참으로 준엄한 시련이였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모든것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전투적구호를 심장으로 받들고 원쑤들과의 판가리싸움에 떨쳐나섰다.윤경률동지도 전쟁이 일어나자 선참으로 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
어려서 민며느리로 된 그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일찌기 남편을 잃고 그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살아오던 그가 생사를 판가리하는 준엄한 싸움길에 용약 나선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그것은 조국이 없이는 자신의 행복도, 아들의 미래도 없다는것을 실체험을 통하여 뼈에 새기였기때문이다.
해방전 가난한 광부의 딸로 태여난 윤경률동지는 인간이하의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왔다.그는 어려서 남의 집아이보개로 끌려가 눈물겨운 고생살이를 하였다.그후 왜놈이 경영하는 철공소의 로동자가 되여서는 남자들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힘겨운 로동을 강요당하며 갖은 억압과 수모를 다 받았다.…
윤경률동지는 이 비참한 노예생활을 다시는 되풀이할수 없었다.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글을 배우고 자동차운전기술까지 소유하게 된 그는 자신의 한목숨을 바쳐서라도 조국이 준 새 생활을 지키기 위해 용약 군복을 입고 포연자욱한 전선길을 달리며 수송임무를 수행하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그의 부대에는 채 옮기지 못한 군수물자를 수송해야 할 어려운 임무가 제기되였다.윤경률동지는 그 위험한 임무를 자진하여 맡아나서며 힘주어 말했다.
《나는 당원입니다.내가 가는 길이 당과 조국이 겪는 시련을 조금이라도 덜수 있는 길이라면 이런 길을 열백번이라도 가겠습니다.》
윤경률동지는 수많은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며 차를 몰고 달리였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물자를 싣고 집결장소로 왔을 때 이미 부대는 그곳에 없었다.윤경률동지는 주저하지 않고 북쪽으로 자동차를 몰아갔다.그 길에서 적항공륙전대와 불시에 맞다들기도 했고 적기의 끊임없는 폭격도 겪었다.그러나 그는 순간도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자강도의 어느한 령에서 적기의 폭격에 자동차가 고장났을 때에도 그는 며칠밤을 령길에서 지새우며 자동차를 수리했다.그렇게 간고한 길을 달려 그는 끝내 부대를 찾아갔으며 맡겨진 전투임무를 영예롭게 수행하였다.
적들의 폭격으로 불길에 휩싸인 위생차에서 구원해낸 부상병들을 살리기 위해 여러 차례나 자기의 피를 뽑아 그들의 몸에 넣어주고 적후에서 중요문건을 실어내오는 어려운 전투임무도 훌륭히 수행하면서 윤경률동지는 전화의 나날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성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가렬했던 조국해방전쟁이 우리 인민의 빛나는 승리로 끝난 다음 군대에서 제대된 윤경률동지는 복구건설에서도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실천으로 받들어나갔다.
그가 수도의 어느한 건설기업소에 배치되였을 때 기업소에는 파철로밖에 쓸수 없다고 하던 자동차가 있었다.윤경률동지는 그것이 비록 형체밖에 남지 않았으나 파철로 보지 않았다.
벽돌 한장, 강재 한t이 그처럼 귀한 이때 형체라도 남아있는 이 차를 어떻게 파철로 버릴수 있겠는가.이 차를 되살려 복구건설에 이바지하게 한다면 나라에 얼마나 보탬이 되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며 윤경률동지는 그 차를 파철로 치부하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차를 수리하여 복구건설에 한몫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이 자동차를 내가 맡아 기어이 살려내겠습니다.》
그는 자동차부속품 하나하나를 자기 손으로 깎고 구해들였으며 밤을 새우면서 그것을 조립하였다.이악한 노력끝에 드디여 자동차에 첫 발동이 걸렸을 때 그의 기쁨은 얼마나 컸던가.
오늘은 새 살림집건설장으로, 래일은 또 극장건설장으로, 이렇게 끊임없이 내달리며 두몫, 세몫씩 해제끼는 그의 자동차를 가리켜 건설자들은 《장수차》라고 불렀다.
윤경률동지는 수송전사들이 한차라도 더 많은 짐을 실어나를 때 당의 구상이 더 활짝 꽃펴나고 나라의 번영도 더 빨리 이룩된다는 생각을 안고 분초를 아끼면서 더 힘차게, 더 빨리 내달렸다.하여 윤경률동지의 자동차에는 위훈의 별이 하나둘 늘어갔다.
그가 전화의 포연서린 군복을 벗은지 수십년세월이 흐른 어느날 기업소의 일군들은 오랜 신병으로 치료를 받고있는 그를 걱정하여 쉬염쉬염 일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윤경률동지는 그것을 허용할수 없었다.그는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절절히 토로하였다.
《로병의 영예는 명절마다 한가슴 달고 나서는 훈장에 있는것이 아니라 당의 뜻을 받들고 대오의 앞장에서 기발을 들고 나가는데 있습니다.고마운 어머니당을 위해 마지막까지 로병의 본분을 다할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런 고결한 지향을 안고 당과 조국을 받드는 충성의 운행길에 뚜렷한 삶의 자욱을 아로새겼기에 윤경률동지는 공훈자동차운전사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로력영웅으로 값높은 인생의 최절정에 올라설수 있었다.
인간의 삶은 이처럼 가장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안겨준 어머니당을 위해, 자신과 후대들의 참된 존엄과 행복이 담보되여있는 귀중한 조국을 위해 한생토록 변함없이 이어가는 불같은 충성과 애국의 길에서만 빛날수 있다.그 어떤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오직 당과 조국을 위한 충성과 애국의 한길만을 꿋꿋이 이어가는데 우리 시대 인간들의 참된 삶이 있다.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발전을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는 오늘의 현실은 우리모두가 윤경률동지와 같은 혁명의 전세대들처럼 일편단심 당을 따라 변함없는 한길만을 줄달음쳐갈것을 기대하고있다.
누구나 전세대들처럼 가는 앞길에 그 어떤 천만산악이 막아선다 해도 운명의 태양을 따르는 한길만을 곧바로 이어가는 참된 애국충신, 당의 참된 아들딸로 준비해갈 때 이 세상에 우리가 못넘을 준령이란 없을것이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