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고향땅에 황금산, 보물산을 안아올리는 성실한 인간 -회령시 궁심농장 조림분조 분조장 정영석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1(2022)년 9월 23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자기가 나서자란 고향산천과 자기 일터, 조국의 한뙈기의 땅과 한그루의 나무도 자기 살붙이처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며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해 자기의 온넋을 바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 땅 그 어디 가나 푸른 숲 설레이는 곳에서는 례외없이 부강할 조국의 래일을 위해 헌신의 땀과 량심을 나무마다에 밑거름마냥 묻어가는 애국자들을 만날수 있다.그처럼 훌륭한 사람들가운데는 회령시 궁심농장에서 조림분조 분조장으로 일하고있는 정영석동무도 있다.

그는 지난 27년간 잡관목만 자라던 수백정보의 산림을 푸른 숲 설레이는 보배산으로 전변시켜 농장에 필요한 영농자재와 건설자재 그리고 농장원들의 땔나무를 원만히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수십년세월 누가 알아주건말건 자기의 온갖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 고향땅에 황금산, 보물산을 펼쳐놓은 정영석동무의 모습은 이 땅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며 당과 조국이 값높이 내세우는 애국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우리들의 가슴속에 다시금 깊이 새겨주고있다.

 

농장림의 참된 주인

 

지금으로부터 27년전인 1995년 2월 어느날이였다.

궁심농장을 활등처럼 둘러싼 산들을 가슴아프게 바라보며 서있는 사람이 있었다.농장의 과수작업반(당시) 당세포비서로 사업하고있던 정영석동무였다.

변변한 서까래감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잡관목만 무성한데다 올망졸망한 밭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어 볼품없이 되여버린 농장림의 정상이 그의 눈에 아프게 안겨왔다.방금전에 조림분조장이 하던 말도 그냥 귀전에 맴돌았다.

《남을 탓하기야 쉽지.하지만 산이 벌거벗었다고 말들은 하면서도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은 없단 말일세.》

농장림의 한심한 실태를 두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조림분조장은 이렇게 안타까운 심정을 터놓았었다.

그 말을 되새겨보는 정영석동무의 가슴속에서는 불덩이같은 생각이 끓어번지였다.

저 산이 어떤 산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농장들에서 자체로 나무를 심어 쓸수 있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여 마련된 농장의 재부가 아닌가.그런 산이 벌거벗었다고 가슴아파하면서도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우리모두가 주인이 되여 지켜야 할 산을 두고 책임한계만 따지지 않았던가.나부터 앞장서 저 산의 주인이 되자.

이렇게 결심한 정영석동무는 그길로 농장초급당일군을 찾아가 조림분조로 보내줄것을 제기했다.농장림을 두고 생각이 많던 초급당일군이였지만 선뜻 대답을 줄수 없었다.한쪽눈을 상한 그가 불편한 몸으로 험한 일을 꽤 해내겠는가 하는 걱정이 앞섰던것이다.하지만 그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내 꼭 저 산을 푸른 숲으로 뒤덮고야말겠습니다.》

초급당조직에서는 제대군인인 정영석동무를 믿고 조림분조를 맡기기로 결정하였다.하여 그는 조림분조 분조장이 되였다.

결심을 단단히 하고 떠난 걸음이였지만 조림분조의 실태는 생각밖이였다.양묘장은 형체조차 없었고 분조원들이란 년로보장나이가 지난 몇명의 로인들이 전부였다.

정영석동무는 우선 분조인원을 보강하기 위해 농장에 제기하여 과수작업반에서 함께 일하던 안해와 동생을 데려왔다.낮에는 산들을 돌아보며 머리속으로 전망계획을 세웠고 저녁이면 년로보장을 받은 로당원들을 찾아가 산림조성과 관련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군 하였다.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이제야 농장림의 진짜주인이 나타났다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던 로당원들까지 합세하여 분조인원은 훨씬 늘어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것은 아니였다.당장 산에 심을 나무모가 없기때문이였다.나무모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곳을 다녀보던 그는 수백리 떨어진 연사군에 가면 창성이깔나무모를 구할수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정영석동무는 동생과 함께 서둘러 길을 떠났다.

나라가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하던 때여서 가지고떠난 길량식이란 닦은 강냉이가 전부였다.그것마저도 한알두알 세여먹으며 먼길을 걸어 연사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행색은 말이 아니였다.

나무모를 얻기 위해 수백리를 걸어왔다는것을 알게 된 그곳 산림경영소의 일군들은 그들을 진심으로 도와나섰다.그리고는 도중식사까지 준비하여 나무모배낭에 넣어주었다.

허나 정영석동무는 그들의 성의어린 도중식사꾸레미를 도로 꺼내놓으며 이렇게 절절히 말하였다.

《고맙습니다.그런데 이것 대신 나무모를 더 줄수 없겠습니까.나무모만 더 가져갈수 있다면 우린 몇끼를 굶어도 일없습니다.》

정영석동무에게는 나무모가 그 무엇보다 귀했다.농장림을 푸르게 할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생도 달게 받아들일수 있다는것이 그의 진심이였던것이다.

하기에 많은 나무모가 든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파고들었지만 날개라도 돋친듯 그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였다.로상에서 나무모가 마를가봐 자주 물을 뿌려주다나니 짐은 훨씬 무거워지고 땀은 비오듯하였지만 그는 힘든줄 모르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힘들게 구해온 나무모를 심던 날 그는 얼마나 기뻐하였던가.지금은 기껏해서 연필대굵기만하지만 10년, 20년후면 소소리높이 자라 산판을 뒤덮을 생각을 하니 밤에도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허나 그 기쁨도 한때뿐이였다.언제까지 그렇게 다른 곳에서 나무모를 날라다 심겠는가 하는 생각이 또다시 그를 괴롭혔던것이다.

그는 우선 자기 집터밭을 갈아엎고 나무씨앗을 뿌리였다.그리고는 분조원들과 함께 양지바른 밋밋한 산중턱에 양묘장적지를 정하고 부지런히 돌을 춰냈다.허나 좀처럼 일자리가 나지 않았다.어떤 날에는 점심시간마저 아까와 허리춤에 차고나간 삶은 강냉이를 선자리에서 씹으며 돌을 춰냈건만 온종일 얻어낸 땅이 한평 되나마나한적도 있었다.

그렇게 애써 꾸린 양묘장에 거름을 날라다 펴고 씨를 뿌리니 얼마후에는 나무모들이 뾰족한 잎새들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 나무모들을 허실없이 키우자면 결정적으로 양묘장가까이에서 물원천을 찾아야 하였다.분조원들과 함께 온 산을 다 뚜지다싶이 했지만 샘줄기는 선뜻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다.이 산에는 샘이 없는것같다고 하면서 맥을 놓고 주저앉는 분조원들에게 정영석동무는 힘주어 말하였다.

《백번 파서 안나오면 천번을 뚜져서라도 기어이 샘줄기를 찾아내야 합니다.그래야 이 산에 푸른 숲을 펼쳐놓을수 있습니다.》

이 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처럼 그 어떤 난관앞에서도 동요함이 없이 완강히 나아갈수 있는 법이다.

드디여 그렇게 찾던 샘줄기를 찾았을 때 분조원들은 환성을 터치였다.그리고 더욱 깊이 절감하였다.정영석동무처럼 자기 힘, 자기 손으로 이 땅에 푸른 숲을 펼쳐놓겠다는 각오가 굳건할 때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하기에 그들은 몇달후에는 샘줄기에서 양묘장까지 물길을 파고 관수체계를 형성하였으며 물을 잡아둘수 있는 저류지도 만들어놓을수 있었다.

3년이 지나 그처럼 진한 땀을 아낌없이 뿌린 양묘장에 창성이깔나무모들이 키를 솟구게 되였을 때 그들은 그 애어린 나무모들에 볼을 부비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도 제 한몸이나 가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농장을 위해, 고향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던 그 모든 일들이 눈물겹게 되새겨졌던것이다.

하지만 더 어려운 시련이 앞에 놓여있었으니 그것은 고향마을사람들에게도 엄한 요구성을 제기하며 나무를 심어야 하는 그것이였다.

정영석동무가 산에 널려져있는 부대밭을 정리하여 나무를 심으려고 할 때였다.일부 사람들은 어려운 사정을 알아주려 하지 않는다고 하며 그를 인간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나무랐다.지어 피를 나눈 형제들까지도 그를 섭섭하게 여기였다.그 나날 그가 겪은 마음속고충을 무엇으로 헤아릴수 있으랴.그래도 정영석동무는 강심을 먹고 나무심기를 중단없이 내밀었다.

그렇게 한해두해 세월이 흘렀다.점차 농장림이 몰라보게 변모되기 시작하자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물론 오해했던 사람들에게서도 때없이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이제야 우리 농장림이 진짜주인을 만났구만.》

푸른 숲의 참된 주인, 정녕 그것은 정영석동무와 같이 자기의 땀과 열정을 밑거름으로 묻어 기어이 고향땅에 황금산, 보물산을 안아올리려는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우는 사람들만이 지닐수 있는 고귀한 부름인것이다.

 

순결한 량심은 거목의 자양분

 

정영석동무에게 있어서 농장림은 생의 전부와도 같은것이였다.

하기에 그는 농장림에 뿌리내린 나무 한그루도 무심히 여기지 않았으며 온갖 정을 다해 보살폈다.먼발치에서 나무를 척 보기만 해도 무슨 병에 걸렸고 무엇이 부족한가를 대뜸 짐작하였다.

한그루 나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의 량심과 인간됨을 알수 있고 조국에 대한 사랑의 열도를 가늠해볼수 있다.

어느해 봄 나무심기를 진행할 때였다.

있을수 있는 비바람에 상하지 않도록 분조원들과 함께 버팀대를 세워주던 정영석동무는 몇그루의 이깔나무가 줄맞추어 심어지지 않은것을 발견하였다.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런 나무들을 찾아다니며 정성껏 다시 심어나갔다.

줄을 띄워놓고 심은 나무인데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는가고 하는 분조원들에게 정영석동무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제 집을 지을 때 대충 눈짐작으로 짓는 사람이 있습니까.그 집에서 자자손손 살아갈 자식들을 생각하며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얹어도 온갖 품을 다 들이지 않습니까.나무를 심는것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제대로 심지 못해 쓸모없이 자란 나무가 우리 후대들에게 차례지게 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는 늘 이런 티없이 깨끗한 량심으로 숲을 가꾸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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