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백옥같이 순결한 량심의 인간 -고원탄광 상차중대 중대장 김태봉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1(2022)년 12월 19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정일애국주의는 내 나라, 내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까지도 다 자기 가슴에 품어안고 자기의 더운 피로 뜨겁게 덥혀주는 참다운 애국주의입니다.》

우리를 태운 차가 고원군을 지나 수동군에 들어선지도 한참이나 되였다.그러나 아무리 가도 《고원탄광》이라고 쓴 안내표식판은 보이지 않았다.

차를 세우고 한 청년에게 길을 물었더니 그는 자기도 탄광으로 간다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사람들은 흔히 고원탄광 하면 고원군에 위치한것으로 알고있는데 사실 우리 탄광은 외진 산골군인 수동군에서도 그중 먼곳에 자리잡고있습니다.그러니 아직 한시간가량은 더 가야 할겁니다.》

갈래많은 산골길에서 그것도 아직 한시간은 더 가야 한다는 말에 놀랍기 그지없던 우리는 먼길을 가는 길손의 수고도 덜어주고 길안내도 받을겸 탄광에서 일한다는 그 청년과 동행하기로 하였다.가고가도 끝이 없을듯 차창가로 흘러가는 련면한 산봉우리들을 보며 우리는 생각하였다.

그렇듯 외진 산골에서 근 40년을 하루와 같이 근로의 성실한 땀과 량심을 바쳐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지닌 고원탄광 상차중대 중대장 김태봉동무,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것인가.

 

한g의 석탄도 허실할수 없다

 

청년은 무척 쾌활하였다.

우리가 김태봉중대장을 아는가고 물으니 그 청년은 대뜸 반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중대장동지를 취재하러 옵니까?》

알고보니 그는 상차중대에서 일하고있었다.그렇게 되여 김태봉동무에 대한 취재는 고원탄광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되게 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중대장동진 석탄같은 사람입니다.겉으로 보기엔 무뚝뚝해보여도 속은 얼마나 뜨거운지 모른답니다.일욕심도 많고 인정도 많지요.기계속내엔 또 얼마나 밝다구요.몇년전엔 유압식삽차의 연유공급계통을 우리 식으로 멋들어지게 개조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래웠습니다.이건 죄다 사실입니다.》

그의 마지막말에 취재차안에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그러거나말거나 그는 더욱 성수가 나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마 우리 중대장동지처럼 석탄 한g도 제 살점처럼, 피방울처럼 아까와하는 사람은 드물겁니다.어떤 사람들은 석탄산을 불도젤로 푹푹 밀어내는 사람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성미라고 생각할수 있는데 사실 그런 마음이 없이야 우리 일을 할수 없지요.

사실 이건 내가 중대에 들어오기 전에 있은 일인데…》

그러면서 그는 중대의 오랜 기능공들에게서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김태봉동무가 고원탄광의 상차중대에 배치되여온것은 지금으로부터 39년전인 1983년이였다.

불도젤운전수로 사회생활의 첫 자욱을 내짚는 그에게 오랜 채탄공이였던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캐낸 석탄이 흥남으로 간다는걸 모르지 않겠지.명심하거라.석탄 한줌이 비료 한줌이라는걸.》

그날 김태봉동무는 아버지의 그 당부를 생의 좌우명처럼 새겨안았다.아무리 바빠도 상차작업을 한 날이면 불도젤의 여기저기에 쌓인 석탄까지 말끔히 털어내고서야 일손을 놓군 하였다.

그는 늘 사람들의 래왕이 많은 큰길로 다니지 않고 철길을 따라 집으로 오가군 했는데 그것은 비단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였다.길을 가다가도 석탄 한줌이라도 흘린것이 있으면 손으로 정히 쓸어모으군 하는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깐진 살림군》이라고 정답게 불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가 소대장이 되였을 때였다.하루는 그가 량손에 헌천들을 가득 들고 휴계실에 들어서는것이였다.의아해하는 소대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제 상차작업을 하면서 보니 화차의 짬으로 석탄이 흘러내리더군.그 량이 보잘것없다고 해도 티끌모아 큰 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그래서 상차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화차짬막이대책을 세우자는거요.》

매일같이 불도젤로 석탄을 밀어내는 불도젤운전수들에게 있어서 석탄 한줌은 너무도 보잘것없는것이라고 할수 있다.하지만 김태봉동무는 어느 한순간도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그는 늘 소대원들에게 석탄 한줌에 조국을 대하는 탄부의 량심이 그대로 비낀다고 말하군 했다.

그렇듯 뜨거운 애국의 마음을 지닌 그였기에 중대장으로 임명되여 제일먼저 관심을 돌린것도 종합저탄장주변에 침전못을 파는 문제였다.

종합저탄장뒤쪽 산경사면에 벨트콘베아를 비롯한 여러 설비가 전개되여있는데 그 설비들의 가동과정에 석탄이 조금씩 산비탈에 떨어져 쌓이군 하였다.그러다가 비만 오면 물에 씻겨 종합저탄장주변으로 흘러내렸다.비가 올 때면 어느 탄광을 막론하고 탄가루가 풀린 시꺼먼 물이 흘러가기마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지라 누구도 그것을 보고 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김태봉동무는 그것을 볼 때마다 자기 몸의 피가 방울방울 흘러내리는듯 몹시 괴로와하였다.눈을 펀히 뜨고 그것을 허용하는것처럼 나라앞에 큰 죄악은 없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다.

하여 그는 쏟아지는 폭우에 온몸을 화락 적시며 비물이 흘러내리는 위치를 측정하기도 하였고 산기슭에 얼마만한 샘줄기가 있으며 또 거기에서 나오는 물량은 얼마인가 하는것까지 구체적으로 조사하였다.그에 기초하여 침전못의 위치와 크기, 개수를 확정한 그는 자신이 먼저 곡괭이를 쥐고 나섰다.그의 뒤를 중대원들도 따라나섰다.

얼마후 저탄장에는 여러개의 침전못이 생겨났다.해마다 거기에서만도 많은 량의 석탄이 류실되는것을 막을수 있게 되였다.…

《이건 내가 직접 목격한 일인데 한번은 중대장동지가 석탄을 우리 저탄장에 부리우는 벨트콘베아쪽을 오래도록 바라보는것이 아니겠습니까.제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하루동안에 바람에 날려가는 석탄가루를 모두 쌓아놓으면 얼마만한 량이 되겠는지 생각해보았는가고 물어보는것이였습니다.말이 났으니 말이지 산골치고는 우리 탄광에 바람이 얼마 불지 않습니다.그런데도 중대장동지는 한줄기 바람에 날려가는 석탄먼지를 두고도 제 살점을 베여가는것처럼 가슴아파했습니다.》

청년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김태봉동무는 중대원들에게 벨트콘베아에 물뿌림장치를 도입할것을 제기했다.누군가가 그런 일이야 벨트콘베아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닌가고 그리고 공사를 하자면 로력과 자재도 많이 필요할텐데 그 모든것을 어디서 보장받겠는가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김태봉동무는 나라의 재부를 단 한g도 잃지 말자고 하는 일인데 네일내일을 가리겠는가고 하면서 중대원들을 불러일으켜 끝내 완벽한 물뿌림장치를 만들어내고야말았다.이런 그였기에 어느해 여름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에 종합저탄장옹벽이 무너져내렸을 때에도 우에 손을 내밀지 않고 그 아름찬 복구과제를 중대자체의 힘으로 빠른 시일안에 해제낌으로써 많은 량의 석탄이 류실될수 있는 위험을 제때에 방지할수 있었다.

언제인가 자동차에 석탄을 실어주는 어느한 저탄장을 개건할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달라진 설계의 요구대로 공사를 하자면 어차피 낡은 저탄장의 지붕을 벗겨내야만 하였다.그러나 김태봉동무는 낡은 지붕우에 새 지붕을 씌운 다음 낡은 지붕을 들어내자는 놀라운 방안을 제기하였다.개건이란 어차피 낡은것을 들어내고 새로 일떠세우는것인데 왜서 그런 어려운 작업방안을 내놓는지 리해할수 없어 어안이 벙벙해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만약 공사과정에 단 한번이라도 비가 온다면 채탄공들이 힘들게 캐낸 석탄이 비물에 씻겨내릴게 아닌가고, 그러나 기둥을 높이 올리고 지붕을 먼저 씌운 다음 공사를 하면 단 한줌의 석탄도 잃지 않을수 있다고 하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은 장마철이 아닙니다.그렇다고 하여 지붕부터 벗겼다가 무방비상태에서 비를 맞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물론 고생은 좀 할수 있지만 그렇게 해야만이 우리는 가슴이 후련하구 마음이 떳떳해질수 있습니다.탄광에 흔하디흔한게 석탄이라고 하지만 허술히 다루게 되면 날과 달이 흘러 우리가 류실한 석탄이 아마 차판을 이루고 산을 이루게 될것입니다.》

그렇게 부디 어려운 길을 택한 사람,

그는 늘 그렇게 살았다.석탄가루가 바람에 조금 날려가는것만 보아도 제 살점이나 피방울을 잃는것처럼 아파했고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함이라면 그 어떤 고생길이라 해도 마다하지 않았다.

누구나 석탄을 두고 우리에게 빛과 열, 동력을 주는 나라의 귀중한 재부라고 말한다.허나 과연 어느 누가 그처럼 단 한g도 허실하지 않기 위해 선뜻 어려운 길을 택할수 있겠는가.그렇듯 순결한 량심으로 수십년을 오로지 나라위해 살며 일해온 사람을 우리 어찌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찾아내고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친 애국자들과 나란히 놓고 생각해보지 않을수 있으랴.

여기까지 말하는 사이에 어느덧 차는 탄광에 도착하였다.차에서 내린 청년은 산기슭의 어느한 곳을 가리켜보이며 말했다.

《저기가 바로 우리가 일하는 종합저탄장입니다.》

마침 그곳에서는 기관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서서히 움직이고있었다.화차들에 무드기 쌓여있는 석탄, 이제 머지않아 흥남에서 비료가 되여 쏟아질 그 석탄더미마다에 단 한줌, 단 한g도 살점처럼 아끼고 사랑한 김태봉동무의 남모르는 애국심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럴수록 한시바삐 그를 만나고싶은 심정이 간절해졌다.

 

진심을 바치라

 

종합저탄장맞은켠에 자리잡고있는 상차중대건물은 보기에도 무척 아담하였다.우리와 동행한 탄광일군은 그렇게 문화적으로 꾸려진 건물에도 김태봉동무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있다고 하면서 우리를 그의 사무실로 안내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무실에는 김태봉동무가 없었다.알아보니 방금전에 어느한 갱에서 전차수리가 제기되여 급히 나갔다고 하는것이였다.

(상차중대장이 막장들의 설비수리까지 맡아주는가?)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일군은 원래부터 김태봉동무는 탄광일이라면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십년전 탄광에서 해발 수백m의 산중턱에 새갱을 개발할 때였다.개발공사에 필요한 물동량을 실어나르자면 수십리구간에 대한 길닦기부터 선행해야 하였는데 그 일을 선뜻 맡길 사람이 없었다.그만큼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서의 불도젤작업은 위험하였던것이다.바로 그때 김태봉동무가 자진하여 길닦기작업에 나섰다.많은 사람들이 놀라와했다.그의 불도젤운전수년한이 불과 4년밖에 안되였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주일은 실히 걸려야 한다던 작업과제를 불과 하루만에 끝냄으로써 또다시 사람들을 깜짝 놀래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구나 그 사실을 두고 한때의 젊은 혈기라고 생각했지요.그런데 지내보니 그것이 그의 진짜모습이더군요.말그대로 그는 석탄처럼 자기를 깡그리 태우는 사람이였습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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