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나의 운명은 하나이다  우리 나라의 첫 녀성공화국영웅인 조옥희동지의 생애를 돌이켜보며

2026년 7월 3일《로동신문》

 

전쟁의 포화가 멎은 때로부터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은 세상만물에 이끼를 덮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더욱 소중히 간직하여야 할 사상정신적유산이 있다.그것은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조국을 지킨 전승세대가 간직하였던 숭고한 조국관이다.공화국의 첫 녀성영웅인 조옥희동지의 생애를 돌이켜보느라면 그에 대해 다시금 가슴깊이 새겨안을수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정세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신념으로 간직하고 우리 식으로 사회주의경제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며 세대를 이어 지켜온 소중한 사회주의 우리 집을 우리 손으로 세상에 보란듯이 훌륭하게 꾸려나갈 애국의 열망을 안고 성실한 피와 땀으로 조국의 위대한 력사를 써나가야 합니다.》

체험을 통해 새긴 진리만큼 값지고 귀중한것은 없다.전승세대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조옥희동지에게도 조국해방을 전후하여 가슴깊이 새겨안은 극적인 인생체험이 있고 그로부터 얻은 인생의 귀중한 진리가 있었다.

조옥희동지는 1923년 9월 가난한 소작농의 가정에서 9남매의 맏딸로 태여났다.

해방전 조옥희동지에게 있어서 가난과 굶주림보다 더욱 가슴을 아프게 찌른 쓰라린 체험은 나라가 없는탓에 받아야 했던 온갖 천대와 멸시였다.병져누웠던 아버지가 대대로 진 빚값을 물지 못해 휘청거리는 몸을 끌고 지주집머슴살이를 강요당해야 했고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었다는 죄 아닌 죄로 그는 억울한 매도 맞아야 했다.광산로동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기둥처럼 의지하던 남편을 뜻밖에 잃고 의지가지할데 없는 막돌같은 신세로 살아온것이 조옥희동지의 해방전생활이였다.정말이지 조옥희동지는 너무도 일찌기 나라를 빼앗긴 백성에게는 상가집개만도 못한 운명이 차례진다는것을 사무치게 깨달았다.

그러던 그는 조국해방과 함께 운명전환의 길에 들어설수 있었다.

나라에서는 그처럼 갈망하던 땅의 주인이 되여 건국사업에 헌신하는 평범한 농민의 딸인 조옥희동지를 조선로동당원으로 키워주었고 중앙당학교(당시)에까지 불러 공부시켜주었으며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녀성일군으로 내세워주었다.

이처럼 길가의 조약돌처럼 버림받던 조옥희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조국의 품속에서 가장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받아안았고 인간으로서 누릴수 있는 참된 행복을 찾을수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조국앞에 준엄한 시각이 닥쳐왔을 때 군내 녀성들을 전선원호사업에 궐기시키였으며 전진하는 인민군대오를 따라 식사보장사업을 도맡아하면서 여러 전투에도 참가하였다.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였을 때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선참으로 지남산인민유격대에 탄원하였다.

조옥희동지는 늘 어려운 임무를 자진하여 맡아나섰고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을 무자비하게 족치는데서 적지 않은 위훈을 세웠다.

그러던 조옥희동지는 지남산인민유격대를 《소멸》하겠다고 달려든 적《토벌대》와의 치렬한 전투에서 적들을 유인하다가 부상을 당하여 체포되게 되였다.

적들은 유격대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그에게 10여일간이나 별의별 악착한 고문을 다 들이댔으나 그의 혁명적지조를 꺾을수 없었다.

적의 총구가 도사리고있는 사형장에서 조옥희동지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불러 적들을 전률케 했고 《저는 조선로동당원으로 죽습니다. 당이 있는한 우린 이깁니다.》,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로동당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며 27살 꽃나이에 생을 마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옥희동지가 당원의 지조를 끝까지 고수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는 비보를 받으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였으며 1951년 3월 7일 우리 나라 녀성들가운데서 처음으로 그에게 공민의 최고영예인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였다.

하다면 평범한 녀성인 그가 어떻게 되여 그렇듯 영웅적이며 애국적인 삶을 살수 있었겠는가.

조옥희영웅이 공화국의 품속에서 산 날은 불과 몇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 나날 그의 가슴속에 억척같이 자리잡은것이 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조국과 나는 하나의 운명이라는 숭고한 인생관이였다.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고 가정도 없으며 후대들의 미래도 없다는 자각, 자신의 희망과 행복, 오늘과 미래, 그 모든것과 운명적으로 결합되여있는 조국을 떠나 순간도 살수 없으며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쳐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였다.

하기에 그는 준엄한 전쟁의 나날 늘 조국의 운명을 걱정했고 조국을 지키기 위함이라면 목숨도 아낌없이 바칠 각오를 안고 그렇듯 용감히 싸울수 있었다.

조옥희동지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 찾아주신 조국은 곧 자신의 삶의 전부였고 행복이였으며 미래였다.그가 지니였던 이런 숭고한 조국관이 새 나라의 주인, 새 생활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지키려는 강렬한 의지,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는 확고한 신념을 낳았고 무비의 영웅성과 희생성도 발휘하게 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전체 인민들은 전승세대처럼 일신상의 모든 고락을 조국의 운명과 결부시키고 애국의 길에 충정을 다 바치는 정신으로 전진도상에 가로놓인 난관앞에 과감히 나서야 하며 불요불굴하는 의지로 사회주의건설에 분투하여야 할것이라고, 세월은 흐르고 강산은 변모되여도 영웅적인 투쟁정신으로 하여 세대와 세대가 한피줄로 굳건히 이어지고 진함을 모르는 하나의 생명으로 일체를 이루는 바로 여기에 우리 국가, 우리 인민특유의 불가항력이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국력이 강해질수록, 부강번영의 래일이 가까와올수록 누구나 조옥희동지와 같은 전세대 영웅들이 지니였던 숭고한 조국관을 더욱 가슴깊이 새기고 변함없이 계승해나가야 한다.

조국은 나의 운명이고 조국과 나는 하나의 생명체이라는 자각, 조국이 없으면 너와 나, 우리모두의 행복이 꽃펴나는 삶의 터전도 없으며 후대들의 밝은 미래도 없다는 철리를 전승세대의 생의 메아리로, 절절한 당부로 간직하고 어디서 살든, 무슨 일을 하든 누구나 조국과 숨결을 같이하고 생의 자욱자욱이 이 땅의 번영에 깃들게 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초석이 되고 대들보가 되여 어머니조국을 굳건히 지키고 높이 떠받들어야 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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