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광신자의 범죄적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조선전쟁

2026년 6월 29일《로동신문》

 

이 땅에서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도 어언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국가와 인민에게 남긴 력사의 상처는 아무리 산천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진다고 하여도 절대로 아물수도 잊혀질수도 없다.

지난 세기 50년대 미제가 도발한 조선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민주주의진영과 제국주의진영으로 대립된 두 극간의 처음으로 되는 격렬한 대결전인 동시에 비핵국가와 핵보유국간에 벌어진 사상초유의 전쟁이였다.

지구상에 핵무기가 출현한 때로부터 오늘까지 세계의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는 크고작은 전쟁이 수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조선전쟁과 같이 사전에 치밀하게 작성된 핵전쟁각본에 따라 도발되고 단계마다 실제적인 핵무기사용위협이 동반된 실례는 찾아볼수 없다.

신성한 우리 조국강토를 핵먼지에 잠그고 인류에게 핵참화를 들씌우려고 발광한 미제의 천인공노할 죄악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절대로 지워질수 없다.

1950년대의 조선전쟁은 미제가 원자탄사용을 전제로 한 전쟁각본을 작성하고 실천에 옮기려 한 전쟁이였다.

지난 세기 50년대에 미제에 의하여 작성된 조선전쟁각본은 핵무기의 사용을 예견한 사실상의 핵전쟁각본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후 제국주의의 괴수로 등장한 미제는 핵무기를 독점한 유리한 세력구도에 기초하여 세계제패를 위한 침략과 전쟁의 길에 나섰다.

당시 세계적범위에서 사회주의력량이 급격히 장성하고 민족해방투쟁이 전례없이 강화되는것을 막기 위해 미제는 견제전략이라는것을 들고나왔다.그것은 핵무기에 의거하여 또 한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킴으로써 전세계를 힘으로 거머쥐려는 핵전쟁전략이였다.이 전략이 《핵무기가 리용되는 제2차 세계대전형의 련합전쟁》 또는 《전면전쟁》을 목표로 하였다는 사실이 그것을 뚜렷이 실증하고있다.

견제전략에 토대하여 미국방성과 미합동참모본부는 1945년부터 1949년기간에 7개의 핵전쟁계획을 작성하였다.특히 1949년에 미합동참모본부가 작성한 극비전쟁계획인 《드로프쇼트》에서는 전체 사회주의나라들을 반대하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될 4단계의 전면핵전쟁을 예견하였었다.

미제는 제3차 세계대전을 도발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킬것을 작정하고 그 실행과 관련한 구체적인 전쟁계획을 작성하였다.그것이 바로 핵무기로 우리 국가를 압살할것을 획책한 범죄적인 핵전쟁각본이였다.

당시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1949년 4월과 1950년 5월 두차례에 걸쳐 《미국의 안전보장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원자폭탄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겠다.》라고 떠벌이면서 조선전쟁에서 원자탄을 사용하는 계획을 작성할데 대한 지시를 하달하였다.그에 따라 작성된 전쟁계획에는 우리 나라 북부국경일대에 원자탄들을 투하하여 방사성오염지대를 조성해놓은 다음 미1해병사단과 장개석군대로 편성된 2개의 상륙집단을 조선서북부해안과 동북부해안에 상륙시키고 남쪽에서는 미8군을 진격시키는것으로 되여있었다.그것은 단지 종이장우의 계획이 아니였다.

미호전광들은 핵전쟁각본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전쟁도발전까지 원자탄 수백발과 그 운반수단인 전략폭격기 수백대를 보유하였다.

미제는 1940년대에 비키니섬을 비롯한 여러곳에서 수차에 걸쳐 원자탄폭발시험을 진행하였다.그후 1950년까지 매해 3~4차씩 핵폭발시험을 감행하였다.10여년전 한 핵문제전문가가 폭로한데 의하면 미국은 1950년대초에 벌써 원자폭탄을 공군과 해군, 해병대의 전술비행기들에도 탑재할수 있게 개조하였으며 그 생산량을 대폭 늘였다.

미전략공군사령부를 새로 내오고 여기에 각종 폭격기들을 배치하였다.1949년에 이르러 미전략공군의 폭격기대수는 500대로 증가하였다.또한 미국본토에 있는 전략폭격기부대들을 임의의 시각에 조선반도에 투입할수 있도록 일본본토와 오끼나와 등 조선반도와 가까운 여러 지역에 공군기지들을 신설, 확장하였다.그와 함께 전략폭격기비행사들에게 원자탄적재 및 투하훈련을 주었으며 미전략공군사령관을 비롯하여 원자탄사용에 관여하는자들을 핵광신자들로 꾸려놓았다.

이처럼 면밀한 사전계획과 만단의 준비를 갖춘데 기초하여 미제는 1950년 6월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전쟁도발의 포문을 열었던것이다.그로써 아시아와 세계를 핵참화에 몰아넣을수 있는 위험한 전쟁의 도화선이 타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미제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원자탄을 반입하고 그 사용을 시도함으로써 세계의 면전에서 핵전쟁광신자, 인류의 원쑤로서의 흉악한 본색을 낱낱이 드러내놓았다.

침략적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렬한 수단과 반인륜적인 수법도 가리지 않는 횡포무도한 날강도가 바로 미제이다.

미제는 어떻게 하나 우리 인민의 강의한 조국수호정신과 견결한 투쟁의지를 말살하고 저들의 범죄적야망을 실현해보려고 조선전쟁 전 기간 핵무기사용을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조선전쟁시기 미제가 처음으로 원자탄을 사용하려고 시도한것은 1950년 7~8월이였다.

조선인민군의 즉시적인 반공격으로 하여 전장에서 패전을 거듭하게 되자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는 1950년 7월 7일 대통령 트루맨에게 조선전쟁에서의 원자탄사용문제를 제의하였다.7월중순 대통령의 특사들을 만나 《나는 적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방법을 구상하였다.만주와 울라지보스또크로부터 조선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는 수많은 차굴과 다리로 이루어져있다.여기에 원자탄을 하나만 떨구면 그것을 복구하는데 6개월은 걸릴것이다.》라고 떠벌이면서 원자탄사용을 강력히 주장하였다.미극동공군사령부의 오돈넬리와 미국회 상원 의원 린든 죤슨, 아이젠하워도 조선전쟁에서 원자탄을 사용할데 대하여 제창하였다.

1950년안으로 《조선전쟁을 종식시킨다.》고 떠벌이며 5개 군단의 병력을 동원하여 벌린 《크리스마스총공세》가 시작부터 파탄의 운명에 직면하게 되자 미당국자들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고 원자탄사용문제를 집중적으로 론의하였다.회의가 끝난 후 트루맨은 조선전쟁에서 《원자탄을 사용할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그것은 위협적인 수사에 그치는것이 아니였다.

실지로 이 시기에 이르러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에는 적지 않은 원자탄이 반입되였다.

자료에 의하면 원자탄을 실은 전략폭격기 《B-47》이 오끼나와미공군기지에 이동전개되였으며 조선반도주변에 대기하고있던 미항공모함에 원자폭탄이 배비되였다.1951년에 괴뢰한국에 반입, 저장된 원자탄은 무려 30~40발에 달하였다.일본잡지 《군사연구》 1995년 10월호는 《미군은 핵무기투입을 진지하게 검토하였다.조선전쟁에 준비된 핵무기 120발》이라는 표제를 달고 1950년 9월부터 1951년 8월까지의 기간에 미제가 원자탄의 전술적사용을 계획한 내용을 소개하였다.그에 의하면 미제는 당시 평강부근에 원자탄을 투하할것을 계획하고있었다.이 계획에는 미극동군사령관이 원자탄사용을 결심할 때까지의 행동순차를 제출하도록 되여있었다.

단 두발의 원자탄이 일본의 도시들을 순식간에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불모지로 만들었다는것을 념두에 둘 때 조선전선에 무려 100여발의 원자탄을 투하할 계획을 추진하였다는 사실은 미제의 잔인성과 악랄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하고있다.

1951년 4월 원자탄으로 《보복공격》을 가할데 대한 미합동참모본부의 명령에 따라 미공군의 전략폭격기들은 평양상공에서의 원자탄투하를 위한 시험비행에 광분하였다.미련방수사국의 1951년 4월20일보고서 《방사능전》에 의하면 미국은 전쟁시기 조선반도를 가로지르는 지역에 플루토니움과 핵페기물을 비롯한 대량의 방사능물질을 살포하여 누구도 접근할수 없는 《비인간지대》를 형성하려고 획책하였다.미국은 이 계획을 세운데 이어 미국원자력위원회를 동원하여 그 가능성을 검토확인하고 유타주의 핵시험장에서 1952년까지 무려 65차례나 그와 관련한 야전실험을 진행하였다.

1951년에 포로된 미군비행사가 《나는 처음으로 원자전쟁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이 강의는 중요하며 또 기밀에 속한것이였다.일본에서 온 클라크교관이 지상학교의 큰 건물안에서 강의하였다.강의내용은 각종 대소원자탄과 그의 상이한 폭발방법 즉 지상에서, 공중에서, 수중에서 폭발하는 방법들에 관한것이였다.그는 우리에게 각종 광선 더우기 γ선(감마선)과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들을 강의하였다.…》라고 실토한것은 1951년 5월 트루맨이 승인한 작전계획 《NSC-48/5》에 조선전쟁에서 원자탄사용이 반영되여있었다는것을 실증해주었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조선전쟁에서 군사적교착상태를 뚫고나가기 위한 역전전략》으로서 원자탄을 사용할것을 주장하였다.1953년 2월 국정연설에서 《신공세》때 핵폭탄을 사용할것을 제기하였으며 국가안보회의 131차회의에서는 개성지구에 전술핵폭탄을 투하하여 《압도적승리》를 달성할데 대한 안을 내놓았다.아이젠하워의 각본에 따라 원자탄을 사용할데 대한 계책이 꾸며졌다.이처럼 미제는 조선전쟁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핵무기사용을 기도하였으나 그것은 조선인민의 영웅적투쟁으로 하여 저지파탄되였다.

지난 세기 50년대 미제와의 판가리결전에서 우리 인민이 위대한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조선전쟁을 시발로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려던 미제의 흉계는 여지없이 파탄되였으며 인류는 무서운 핵참화로부터 구원될수 있었다.

오늘 우리 공화국의 국력은 원자탄을 휘두르는 횡포무도한 침략자에게 보병총으로밖에 대항할수 없었던 1950년대의 전쟁때와는 대비조차 할수 없는 아득한 높이에 올라섰다.

우리 국가는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무진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침략세력이 일방적으로 핵위협을 가해오던 시대를 영영 끝장냈다.

그 어떤 원쑤도 일격에 격멸소탕할수 있는 억척의 핵억제력을 끊임없이 강화하여 안전을 수호하고 무궁번영의 미래를 열어나가려는 우리 국가와 인민의 의지는 확고부동하다.(전문 보기)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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