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를 이어 울려퍼지는 격정의 메아리 -72년전 뜻깊은 2월 8일 직후에 꽃펴난 이야기들을 돌이켜보며-
영웅적조선인민군은 내 조국의 크나큰 자랑
뜻깊은 건군절의 아침이 밝아왔다.
영웅적조선인민군의 성스러운 행로를 감회깊이 돌이켜보는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절세위인들의 슬하에서 그 어떤 강적도 단매에 때려부실수 있는 불패의 전투대오로 자라난 최정예혁명강군을 가지고있는 긍지와 자부심이 끝없이 물결치고있다.
돌이켜보면 변변한 군대가 없어 망국노의 비참한 운명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자기의 강한 민족군대를 가지는것은 일일천추 바라던 간절한 소망이였다.
우리는 이제 영웅적조선인민군이 창건된 72년전 2월 8일 직후에 꽃펴났던 감동깊은 이야기들을 깊은 감회속에 다시금 전하려고 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의 령도에 끝없이 충실한 조선인민군이 있는 한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끝없이 강대하고 륭성번영할것입니다.》
조선인민군의 창건을 선포하는 첫 열병식이 진행된 그날부터 우리 인민은 끝없는 감격과 환희에 넘쳐 낮과 밤을 지새우며 인민군대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열병대오에서 씩씩하게 행진해가는 손자의 모습을 본 한 할머니는 《내 손자가 우리 나라 인민군대…》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몇해전만 하여도 일제놈들에게 강제로 끌려 전쟁터에 나갔던 손자였다.왜놈들의 총알받이가 되여 개죽음을 당하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하면 할머니의 가슴은 터질것만 같았다.차라리 손자가 없는편이 더 나았을걸 하는 생각까지 하며 피눈물을 흘리였었다.
하지만 그날에 할머니는 처음으로 손자를 가진 기쁨과 자랑을 금할수 없었다.위풍당당히 행진해오는 인민군대의 대렬속에 자기의 손자도 있다고 크게 소리쳐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싶었다.
평양4녀중(당시)의 한 학생은 2월 8일 저녁 어머니와 함께 열병식에 참가하였던 오빠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하였다.
《오빠는 어머니와 나의 손목을 꼭 쥐고 한참동안 흔들고난 다음 우리 조선사람도 이제는 자기의 군대를 가진 민족으로 되였다, 조선의 인민군대는 세계 그 어느 나라 군대에도 못지 않게 총과 대포를 잘 쏘며 용감하고 규률이 강하며 인민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는 아주 훌륭한 군대가 될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것이였다.
돌아오는 길에 벙긋벙긋 웃는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어머니는 〈네 오빠가 아주 제법이로구나.훌륭한 병사가 되겠다고 그랬지.〉 하고 자주 말하군 하였다.》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건하여주신 우리 인민군대에 대한 인민들의 뜨거운 신뢰는 전국각지에서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온 수많은 경축품과 경축기, 경축문으로 표시되였다.
황해도(당시)의 농민들은 많은 쌀과 돼지, 사과를 보내왔으며 승호리세멘트공장의 로동자들은 가지가지의 생활용품을 넣은 건국주머니를 보내왔다.순천군(당시)의 학생들은 자기들이 그린 그림과 경축문들을 보내왔다.
전국의 인민위원회들에서도 수많은 경축기들을 보내여왔다.
그때의 화폭에 대해 주체37(1948)년 2월 13일 《로동신문》은 이렇게 소개하였다.
《…
이리하여 로동자는 자기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보내여 직접 물질적으로 축하와 방조를 주며 시인은 정열 끓어넘치는 한편의 시를 보내여 조국의 아들, 인민의 옹호자들에게 3천만 인민의 넘치는 신뢰와 애정을 노래하였으며 화가는 한폭의 그림으로, 녀성들은 자기들의 심정을 그대로 5색실로 수놓아 오늘의 민족적환희와 감격을 아로새겨 보냈다.
…》(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