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숭고한 동포애의 정화
백화만발하는 화창한 4월에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또다시 받아안은 재일동포사회가 격정으로 세차게 설레이고있다.
대를 이어 끝없이 흘러드는 사랑의 생명수에 몸과 마음을 적시며 재일동포들 누구나 뜨거운것을 삼키고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후대관을 받드시여 이역만리에 있는 아들딸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부어주고계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며.
추억의 물결은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던 63년전의 그 기슭으로 파도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력사에는 총련을 전체 재일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대표하는 주체적해외공민단체로 강화발전시켜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심혈과 로고가 깃들어있습니다.》
주체46(1957)년 4월 19일, 바로 이날로부터 해외동포들의 운명과 미래에 대해서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없이 뜨거운 민족애와 동포애, 어머니조국의 은혜로움을 온 세상에 소리높이 구가하며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력사가 흘러왔다.
예로부터 교육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한 성스러운 사업이라고 일러왔다.하지만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 집요하고 악랄한 동화책동이 국책으로 감행되고있는 일본땅에서 살고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말그대로 존망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였다.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시기 이역땅에 끌려가 민족적멸시와 학대, 가난과 무권리속에서 살아온 재일동포들이였다.일제의 조선민족우민화정책의 혹심한 피해자들도 바로 그들이였다.자기들이 겪은 무지와 몽매의 설음을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려고 재일동포들은 조국이 해방된 후 어려운 형편에서도 한푼두푼 돈을 모아 일본각지에 학교들을 세웠다.
하지만 그 토대는 너무나도 빈약하였다.재정난이 가장 큰 문제였다.원래 교육사업자체가 많은 자금이 드는 사업인데다가 일본반동들의 극심한 민족차별정책으로 하여 끼니도 에우기 어려운 동포가정들이 많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게다가 일본반동들은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에 대한 지원은 고사하고 그것을 말살하기 위해 총칼탄압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엄혹한 실정을 헤아려보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
주체46(1957)년 1월말 평양에서는 국가예산초안을 토의하는 내각회의가 열리였다.전쟁의 상처가 아직 채 가셔지지 않았던 때여서 해야 할 일은 방대하였지만 재정실태는 엄혹하였다.한푼두푼 쪼개가며 세운 예산초안의 세부항목까지 일일이 따지는 이 회의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였다.
회의가 끝날무렵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어느 부분에 넣었는가고 물으시였다.나라의 재정형편이 너무 긴장하여 국가예산에는 반영하지 않고 별도로 림시외화계획에 넣으려 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아닙니다.보내주어야 합니다.당장 보내주어야 합니다.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장학금은 한두번 보내주고 그만두어서는 안되며 일본에 우리 동포가 있고 배워야 할 어린이가 있는 이상 계속 보내주어야 한다는것이 어버이수령님의 뜻이였다.
이렇게 되여 세상에 없는 예산항목이 태여나게 되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