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얼토당토않은 궤변이고 억지
독도는 그 누가 《령유권》을 주장한다고 하여 가질수 있는 주인없는 땅이 아니다.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누구도 건드릴수 없는 우리 민족의 신성한 령토가 바로 독도이다.
무인도가 어느 나라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데서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시되는것은 그 섬을 어느 나라가 제일 먼저 발견하였는가 하는 《발견의 원리》와 어느 나라가 제일 먼저 차지하였는가 하는 《선점의 원칙》이다. 독도는 바로 이러한 《발견의 원리》와 《선점의 원칙》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령토이다.
《삼국사기》와 《고려사》, 《리조실록》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증보문헌비고》 등에는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의 섬으로 명기되여있으며 18세기 《동국대지도》에도 울릉도와 함께 우리 민족의 령토로 표기되여있다.
일본이 《독도령유권》을 처음으로 주장한 1905년 《시마네현고시》 제40호보다 5년전에 벌써 조선봉건정부는 칙령 제41호를 공포하여 수천년전부터 내려오는 독도의 령유권을 다시금 내외에 명백히 선언하고 재확인하였다.
이밖에도 우리 민족에 의해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불리워온 독도의 지명유래를 통해서도 독도가 일본의 섬이 아니라는것을 똑똑히 알수 있다.
독도가 조선고유의 땅이라는것을 증명해주는 자료들은 일본에서도 적지 않게 나왔다.
1690년대에 일본의 에도막부와 쯔시마도주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령토라는것을 인정하고 그 섬으로의 일본인진출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였으며 《명치유신》후에도 일본은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조선의것이라는것을 다시금 명백히 하였다. 1877년 일본의 최고행정기관인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것을 명심할것》이라고 하면서 독도가 일본의 령토가 아님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일본인들이 만든 지도를 들추어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16세기말에 일본에서 편찬된 《조선국지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식 명칭으로 표기되여있다. 18세기 일본의 지도제작대가로 알려져있는 하야시 시헤이가 1785년에 그린 《삼국통람도설》에는 조선과 일본 및 중국동북지방을 그린 부록지도가 있는데 여기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본토와 같이 노란색으로 표시되고 《조선의것》으로 명백히 기록되여있다. 1870년대부터 1890년대사이에 일본의 각이한 기관들에서 제작된 《대일본전도》, 《일본제국전도》 등 여러 지도들 역시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것을 일본도 인정하고있음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1936년에 일본륙군참모본부 륙지측량부에서 제작한 《지도구역일람표》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본토소속으로 표기되여있다.
또한 1710년대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프랑스신부 레지의 지도와 1731년 프랑스사람인 당빌이 그린 《조선왕국도》 등에는 독도가 조선의 령토로 명백히 기록되여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의 령토처리를 규정한 국제협약들인 까히라선언, 포츠담선언 등에서도 일본의 독도편입이 비법이며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략취된것》이라는 국제적공인에 따라 독도를 일본령토가 아니라 조선령토로 규정하고 처리하였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일본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독도를 조선령토로 인정하고있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그런데도 일본반동들이 독도에 대한 그 무슨 《령유권》을 주장하며 생떼를 쓰고있는것이야말로 얼토당토않은 궤변이고 억지가 아닐수 없다.
일본반동들이 독도에 대한 《령유권》주장을 집요하고도 파렴치하게 들고나오는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독도가 《빼앗긴 일본의 령토》라는 인식을 자국민들속에 끈질기게 주입시킴으로써 그들을 침략의 돌격대로 써먹을수 있는 복수주의, 군국주의광신자들로 키우며 령토분쟁을 도발할수 있는 구실과 대외적명분을 마련하자는것이다.
력사적사실과 자료들은 일본정부가 떠드는 《독도령유권》주장의 부당성과 함께 일본사무라이족속들의 파렴치함과 조선반도재침야망만을 더욱 똑똑히 부각시켜주고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