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사진] : 온 겨레가 조국해방의 은인을 기다렸다
주체34(1945)년 8월의 조선은 해방의 열기로 끓어번졌다.
삼천리를 뒤흔드는 감격의 열풍속에서 우리 인민은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개선을 일일천추로 고대하고있었다.
일제의 발굽밑에 신음하는 겨레의 운명을 구원하시려 20성상 항일의 불바다, 피바다를 헤쳐오신 전설적영웅, 끝끝내 삼천리강토에 해방의 새봄을 안아오신 절세의 애국자 김일성장군님을 기다리는 인민의 간절한 마음은 한결같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사실 우리는 요란스러운 환영군중대회형식을 통해 인민들과 상봉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내인사들과 나의 전우들이 한사코 그런 큰 규모의 행사를 주장하고 고집하였습니다.》
그것은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였다. 김일성장군님의 조국개선을 전례없는 민족적경사로 맞이하려는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는 민심이였다.
평양은 김일성장군님의 입성을 기다리느라고 밤에도 잠들줄 몰랐다. 평양시와 평안남도의 각계층 대표들이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를 뭇고 위대한 수령님을 영광의 단상에 높이 모시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으며 대동군인민들은 수령님께서 나서자라신 만경대에서 그이를 제일먼저 맞이하게 되리라는 크나큰 기대와 긍지를 안고 《김일성장군환영향토준비위원회》를 따로 조직하였다. 서울에서도 려운형, 허헌, 홍명희를 비롯한 명망높은 인사들이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를 뭇고 민족의 영웅 김일성장군님을 환영하기 위한 여러가지 성대한 준비사업을 벌렸다.
서울역전은 매일같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울에 입성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손에손에 축하의 꽃묶음과 프랑카드를 들고 달려나온 사람들이 역전광장으로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전체 조선인민의 심장은 김일성장군님께서 개선하실 그 순간을 향해 숨가쁘게 고동치고있었다.
드디여 온 민족이 기다려온 영광의 시각이 박두해왔다.
김일성장군님께서 평양에 입성하시였으며 10월 14일 공설운동장에서 인민들과 상봉하신다는 글발이 나붙은 곳마다에서 사람들의 환성이 터져올랐다.
주체34(1945)년 10월 14일 평양시환영군중대회가 열리는 당시의 평양공설운동장은 사람바다를 이루었다. 운동장밖의 나무꼭대기들에도 사람들이 올라가있었고 최승대와 을밀대쪽에도 사람들이 하얗게 덮여있었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연단에 나서시자 《조선독립 만세!》를 부르는 군중들의 함성과 환호성은 고조에 달하였다.
당시의 《평양민보》는 그날의 정경에 대하여 이렇게 전하였다.
《평양의 력사가 깊어 4천년, 인구가 적지 않아 40만이라 하나니 일찌기 이와 같이도 많은 사람이 모인 일이 있었던가? 이와 같이도 뜻깊은 모임을 가져본 일이 있었던가?…
…특히 대회를 력사적으로 뜻깊게 하고 회중을 감동케 한것은 조선의 위대한 애국자, 평양이 낳은 영웅 김일성장군이 여기에 참석하여 민중에게 반갑고도 열렬한 인사와 격려를 보낸것이다. …조선동포가 가장 숭모하고 고대하던 영웅 김일성장군께서 그 름름한 용자를 한번 나타내이니 장내는 열광적환호로 숨막힐듯 되고 거의 전부가 너무 큰 감동때문에 소리없는 울음을 울었다.
…군중에게 준 감동은 강철과 같은것이여서 산야가 떠나갈듯 한 환호성가운데 〈이 사람과 같이 싸우고 같이 죽으리라.〉는 사람들의 결의는 눈에 보일듯이 고조되였다.》
이것은 조국해방의 은인이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온 겨레의 다함없는 감사의 분출이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