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숭고한 혁명생애를 추억하여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탄생 90돐을 맞으며 당, 군대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주체96(2007)년 12월 24일-
오늘은 김정숙어머님의 탄생 90돐이 되는 뜻깊은 날입니다.
어머님의 탄생기념일을 맞고보니 어머님이 더욱 그리워지고 어머님의 숭고한 한생이 가슴뜨겁게 추억됩니다.
우리 어머님은 일찌기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한평생 총을 잡으시고 위대한 수령님을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위하시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싸우신 걸출한 녀성혁명가, 항일의 녀성영웅이시고 위대한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님의 한생은 길지 않았지만 어머님은 조국과 인민, 시대와 력사앞에 불멸의 업적을 쌓으시고 혁명가로서, 인간으로서 한생을 어떻게 살며 투쟁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빛나는 모범을 보여주신것으로 하여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어머님의 혁명생애를 추억할 때면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어머님의 무한한 충실성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수령님께 바치신 어머님의 충실성은 절대적인 신념이였고 숭고한 도덕이였고 일상적인 생활이였으며 어머님의 한생은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으로 일관된 가장 값높은 한생이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벌써 항일혁명투쟁시기에《김일성장군님은 우리 민족의 태양이십니다. 우리모두는 김일성장군님의 해발이 됩시다.》라고 하시였는데 이 뜻깊은 말씀에는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시려는 어머님의 불같은 충성심과 한생을 수령님의 혁명전사로 살며 싸우려는 철석같은 신념이 그대로 담겨져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을 보위하는것이 조선혁명을 지키는 길이라는것은 우리 어머님의 절대불변의 신조였습니다. 하기에 어머님은 수령님의 신변호위사업을 첫째가는 임무로, 신성한 의무로 여기시고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목숨으로 지키시였습니다.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무송현성전투와 홍기하전투, 대사하치기전투를 비롯하여 여러 전투들에서 수령님의 신변에 위험이 조성되였지만 그때마다 어머님께서는 한몸이 그대로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시여 수령님을 보위하시였습니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산에서 싸울 때 김정숙동무에 의하여 사선의 고비에서 여러번 기적적으로 살아날수 있었다고 자주 말씀하시였습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보장하시여 조선혁명의 명맥을 지키신것은 어머님의 불멸의 력사적공적입니다.
해방후 나라의 정세는 매우 복잡하고 긴장하였으며 도처에서 반동들이 악랄하게 준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은 새 조국건설시기에도 항일혁명투쟁시기와 다름없는 자세로 수령님의 신변안전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고 솔선 호위병의 임무를 수행하시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집무실로 나가실 때나 집에 돌아오실 때가 되면 의례히 밖에 나오시여 주변을 살피시였으며 수령님께서 저택에서 밤늦도록 일하실 때에는 집주변을 순찰하군 하시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수령님을 호위하는 경위대에도 자주 나가시여 호위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토론해주시며 경위대가 자기의 사명을 다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를 받들어나가는 길에서는 한치의 드팀도 없으시였습니다.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의 나날 어머님께서는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서라면 그 어떤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고 걸으시였으며 수령님의 사상과 어긋나는 현상과는 추호의 타협도 없이 날카로운 투쟁을 벌리시였습니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나라가 해방되였으나 정세가 복잡하고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자리를 뜨겠는가고 하시면서 그처럼 그리워하던 고향에도 가보지 못하시고 일가친척을 찾는것도 미루시며 수령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는데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수령님의 새 민주조선건설로선을 받드시고 수령님과 함께 전국각지의 공장과 농촌, 어촌, 학교에로 쉼없이 발걸음을 옮기시였으며 때로는 수령님께서 현지지도하실 단위들에 먼저 나가시여 그곳 실태를 료해하기도 하시였습니다.
어머님은 언제 한번 편히 지내지 못하시고 수령님을 받드는 사업에 한생을 고스란히 바치시였습니다. 어머님의 한생은 혁명가가 자기 수령을 어떻게 받들어모셔야 하는가 하는 모범을 보여준 한생이였습니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우리가 어머님을 더욱 잊지 못하는것은 어머님의 한생이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모신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충실성의 귀감이기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님은 나를 키우는데서 매우 엄격하시였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머니의 치마자락이 자식들을 감싸준다고 하지만 우리 어머님은 한없이 자애로우면서도 원칙적이고 엄격한 교양으로 나를 대바르게 키우시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나에게 수령님을 잘 받들고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몸바쳐 일해야 한다고 자주 간곡하게 당부하시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돌아가시기 3시간전에도 이런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시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어머님의 당부를 잊지 않고 어머님의 뜻을 이어 수령님을 잘 받들어모셔야 하겠다고 굳게 다짐하군 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한생을 총대와 같이 살아오시였습니다. 어머님은 뛰여난 백발백중의 명사수이시였습니다. 어머님께서 수많은 사선의 고비들에서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믿음직하게 지켜내신것도, 항일의 혈전장들에서 용맹을 떨치시며 적들을 전률케 하신것도 어머님의 그 신비한 사격술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나는 어릴 때 우리 어머님께서 사격하시는것을 자주 보았는데 어떤 목표이든 총을 들어 쏘시면 영낙없이 단방에 명중하군 하시였습니다. 어머님의 신비한 사격술과 관련하여 수많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오늘도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전해지고있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총대를 끝없이 사랑하시였기에 혁명무력을 강화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수령님의 군건설로선을 관철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다 바치시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평양학원과 군사학교들에 자주 나가시여 혁명무력핵심골간양성기지로서의 사명과 임무를 다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으며 갓 조직된 인민군부대들이 하루빨리 정규군의 면모를 갖추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습니다. 우리 혁명무력의 성장발전을 놓고 제일 기뻐하신분은 우리 어머님이시였으며 건군력사에 남기신 어머님의 공적은 참으로 큽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