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봉의 렬사묘가 새겨주는 진리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반제계급교양의 도수를 높여 그들이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침략적, 략탈적본성에 대하여 똑똑히 알도록 하여야 합니다.》
안주시 송학리의 청산봉은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나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되고있다.
지금도 명절과 휴식일은 물론 보통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청산봉에 오르군 한다.그러나 단순히 자연경개를 감상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청산봉기슭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과 계급적원쑤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한 렬사의 묘가 있다.렬사가 우리곁을 떠나고 전쟁의 포화가 멎은지도 이제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렬사묘를 찾는 사람들의 물결은 오늘도 변함없이 이어지고있다.
하다면 이처럼 아름다운 청산봉기슭에는 어떤 피맺힌 원한이 깃들어있으며 렬사묘는 우리에게 무엇을 새겨주는것인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미제원쑤놈들이 강점한 이 고장은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하였다.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으로 기쁨과 행복만이 넘치던 화목한 마을이 삽시에 검은 연기에 휩싸이고 원쑤들의 피묻은 군화자욱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찍혀졌다.
옛꿈을 꾸면서 기회만 노리던 계급적원쑤들도 때를 만난듯이 사람잡이에 미쳐돌아갔다.
당시 리녀맹위원장이였던 리선옥동지는 전선원호물자들과 식량을 어느한 장소에 안전하게 묻어놓고 뒤늦게 후퇴의 길에 올랐다가 그만 놈들에게 체포되였다.
놈들은 악질빨갱이년을 잡았다고 너털웃음을 치면서 물자들과 식량을 감춘 곳을 대라고 갖은 고문을 들이대였다.하지만 원쑤놈들은 절대로 그의 신념과 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해방전 온갖 천대와 멸시속에 피눈물을 삼키며 살아야만 했던 나날이 지울수 없는 아픈 상처로 남아있었으며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지으며 사람답게 살아온 해방후 5년간의 꿈같은 세월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다.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이 땅, 행복하고 존엄높은 새 삶을 안겨준 조국은 목숨보다 귀중했던것이다.
육체적고통을 주는 고문으로써는 리선옥동지의 신념을 꺾을수 없다고 생각한 놈들은 회유의 방법으로 그의 마음을 돌려세워보려고 꾀하였다.
놈들은 공화국이 이제는 망했으니 저들의 말대로만 하면 만사가 다 풀리고 부귀를 누릴수 있다고 지껄이였다.그러나 그의 입은 철문처럼 꽉 닫겨있을뿐이였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끝끝내 그를 굴복시킬수 없게 되자 놈들은 피투성이가 된 리선옥동지를 청산봉으로 끌고갔다.
산기슭에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리선옥동지에게 총구를 들이댄 놈들은 이제라도 공화국이 나쁘다고 한마디만 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이것이 마지막기회라고 지껄였다.최후를 예감한 리선옥동지는 모여든 마을사람들을 정겹게 바라보며 말하였다.
《여러분,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한 인민군대는 꼭 다시 돌아올것이며 공화국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로동당 만세!》를 목청껏 웨쳤다.
당황한 놈들은 총알도 아깝다고 하면서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그를 총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를 휘둘러 때려죽이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그러고도 모자라 마을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보초를 세웠다.
며칠이 지나서야 마을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몰래 가져다 안장할수 있었다.
그때로부터 어언 수십년세월이 흘렀으나 오늘도 청산봉기슭에 메아리치던 렬사의 최후의 웨침은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원쑤들과는 어떻게 싸워야 하고 보람찬 삶을 안겨주는 한없이 귀중한 사회주의조국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가슴깊이 새겨주고있다.
지난 3월말 리선옥동지의 렬사묘앞에서는 인민군대입대를 탄원한 청년학생들의 복수결의모임이 있었다.
모임에 참가하여 렬사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들으며 새세대들은 사랑하는 고향땅을 피바다에 잠기게 하고 오늘도 호시탐탐 우리의 행복을 노리고있는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을 천백배로 복수하고야말 철석의 의지를 가다듬었다.
그렇다.
지난날 우리 인민을 야수적으로 학살하였으며 오늘도 침략의 기회만 엿보는 제국주의자들이 지구상에 남아있는한 계급의식을 더욱 만장약하고 계급의 칼날을 더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는 진리를 청산봉의 렬사묘는 깊이 새겨주고있다.(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