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력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지식인들 : 애국적인 수의학자 김종희

주체107(2018)년 5월 20일 로동신문

 

김일성상계관인이며 원사, 교수, 박사인 김종희선생은 나라의 수의방역사업을 강화하고 수의생물약품공업의 주체화, 과학화를 실현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관록있는 수의학자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 기간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당과 혁명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분투함으로써 과학연구사업에서 빛나는 성과를 이룩하였으며 나라의 과학기술과 인민경제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 망국민의 설음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갔던 그는 고학으로 수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조국땅에서 수의약품을 연구할 결심을 품고 부산에 있는 가축위생연구소를 찾아갔지만 조선사람이라는 하나의 리유로 하여 림시로력으로나 채용되였으며 목적했던 연구사업을 할수가 없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한가닥의 희망을 안고 연구소에서 수의예방약을 연구하던 그는 미제의 식민지통치가 계속되는 남조선땅에서는 조국과 인민을 위한 진정한 과학연구사업을 할수 없다는것을 통절히 느끼였다.

참된 과학의 길을 모색하던 그는 평양에서 찾아온 한 일군으로부터 공화국북반부의 소식을 알게 되였다.

당시 공화국북반부에서는 력사상 처음으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성취하여주는 토지개혁이 준비되고있었다.

해방후 첫 봄갈이를 성과적으로 진행하자면 우역예방약을 시급히 해결하여야 하였다.

이를 위해 어버이수령님께서 자기에게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는것을 알게 된 김종희선생은 짧은 기간에 많은 량의 우역예방약을 만들어 공화국북반부로 보냈다.

제 나라 땅인 공화국북반부에 우역예방약을 보내주었다는 죄 아닌 죄로 하여 그는 류치장에 갇혀 무서운 고초를 겪게 되였다.

그후 그는 온 가족과 함께 저주로운 남조선땅을 떠나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기였다.

바로 이때부터 김종희선생의 과학자로서의 진정한 삶이 시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종희선생을 만나주시고 그의 애국적소행을 높이 평가하여주시였다.그러시고는 선생이 할 일은 매우 많다고 하시며 대학에서 교육사업도 하고 수의기술자도 양성하며 가축위생연구소도 꾸릴데 대한 문제 등 중요한 과업들을 맡겨주시였다.

선생은 갓 창립된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원으로, 가축위생연구소 소장으로 사업하면서 새 조국건설에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치였다.김종희선생은 주체37(1948)년 7월 7일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존함이 새겨진 첫 학위증서를 수여받은 과학자들중의 한사람이 되였다.

김종희선생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원쑤들의 야수적인 폭격속에서도 수의예방약생산을 위한 균그루들을 그대로 보존하여 전시수의약품생산에 이바지하였으며 미제의 세균전만행을 짓부셔버리는데도 공헌하였다.

많은 수의예방약과 전염병진단약을 새로 연구하여 나라의 수의생물약품공업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김종희선생은 80고령에 조선지식인대회의 높은 연단에 올라 삶의 끝없는 긍지와 영광을 온 세상에 떨치였다.

공화국력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한 수의학자의 삶은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조선의 과학자들에게는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 있다는것을 다시금 심장깊이 절감하게 하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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