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기치따라 승리와 번영의 70년 : 황북땅의 눈부신 전변은 수령복을 노래한다 -로동당시대에 천지개벽의 새 력사를 펼친 황해북도를 돌아보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은 단순히 태를 묻고 나서자란 고향산천이 아니라 인민들의 참된 삶이 있고 후손만대의 행복이 영원히 담보되는 곳이며 그것은 수령에 의하여 마련됩니다.》
동쪽의 아호비령산줄기와 그옆으로 뻗어내린 언진산줄기, 멸악산줄기의 굽이굽이를 지나고 황주긴등벌과 미루벌, 미곡벌 등의 논과 밭을 따라 달리는 황해북도기행길에서 시종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것은 출발에 앞서 만난 도혁명사적관일군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우리 황해북도가 어디 가나 사회주의선경을 펼친 자랑많은 도로 되였지만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에는 나라적으로 제일 못사는 고장의 하나로 새겨져있었습니다.》
그 옛날 사람 못살 고장이였던 황북땅의 천지개벽을 이르는 곳마다에서 현실로 절감한 우리였다.
기행의 나날 우리는 장장 70년간 인민을 품어안고 인민의 념원을 빛나게 실현해온 우리 공화국의 세기적변혁의 력사가 어디에서 시작되였고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다시금 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생명수 출렁이니 《풍년가》 울린다
위대한 우리 조국의 70년력사의 전변상을 전하기 위해 뜻깊은 기행길에 나선 우리에게 황해북도인민들이 제일 많이 들려준것은 물에 대한 이야기였다.바다 멀고 강이 적은 내륙지대여서 어느 고장에서나 물과 관련한 가슴아픈 전설들이 전해지고있는 황북땅에서 지난날 물에 대한 농민들의 갈망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황해북도는 수많은 인공호수와 저수지들이 생겨나 생명수 흐르는 땅, 관개면적이 많은 도의 하나로 되였다.하여 우리의 기행은 우리 나라 굴지의 관개체계인 서흥호관개의 기본수원지가 있는 곳으로 향해졌다.
동터오는 아침 봉산군의 구산에 이르니 화창한 봄날의 푸른 숲을 한폭의 그림처럼 품어안고 쉬임없이 출렁이는 산중의 호수가 나타났다.지난 수십년간 황해북도농업의 비약적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서흥호였다.봉산군, 서흥군, 린산군, 은파군과 접하고 눈뿌리 아득하게 펼쳐진 대인공호수는 황해북도의 《바다》라고 할만큼 과시 장관이였다.
아름다운 대자연에 그만 넋을 빼앗기였는데 그곳을 지나가던 한 길손이 하는 말이 서흥호의 넓은 수역과 물길을 다 돌아보자면 하루에 100리나마 걷는다고 해도 한달은 실히 걸린다는것이였다.수천개의 구조물들을 거쳐 끝없이 뻗어간 수천리에 달하는 물길로 이어진 서흥호관개체계는 지난 수십년간 봉산군, 은파군의 벌들과 미곡벌, 황주긴등벌, 연탄칠봉벌을 비롯한 도의 주요벌들에 실로 막대한 량의 생명수를 보내주어 알곡증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느라니 가렬한 전화의 나날 최고사령부에서 작전지도를 펼치시고 황북땅의 젖줄기가 될 서흥호자리를 잡아주시였고 전후에는 현지에 나오시여 언제위치를 다시 확정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우렷이 안겨왔다.재더미밖에 남지 않은 어려운 시기여서 일군들이 경제적타산을 앞세우며 어지돈관개공사를 뒤로 미루려고 할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루빨리 공사를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지난날에는 그 누구도 농민들에게 물을 줄수 없었습니다.그러나 우리 시대, 로동당시대에는 농민들에게 물을 주어야 합니다.》
하늘도 주지 못한 물을 로동당이 반드시 주어야 한다는 우리 수령님의 의지에 의해 태여난 내륙지대의 《바다》, 황북의 생명수 서흥호!
마를줄 모르는 그 달디단 젖줄기는 깊은 땅속도 꿰지르고 높은 등판도 치달아오르면서 황해북도의 협동벌들로 만풍년의 서곡을 울리며 찾아가지 않았던가.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에서 해마다 정보당 10t이상의 풍만한 결실을 이룩하는 비결도, 해방전에는 왕가물과 큰물로 농민들의 원망소리 그칠새없던 여러 벌들이 도의 손꼽히는 곡창으로 전변된것도 사시절 출렁이는 서흥호를 떠나 생각할수 없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