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건국과 그 력사적의의

주체107(2018)년 6월 29일 로동신문

 

올해는 우리 민족의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건국 1 100돐이 되는 해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려는 우리 나라의 통일국가였습니다.》

고려는 10세기초에 고구려와 같은 강대한 나라를 재건하고 국토통일을 지향하며 봉건통치배들의 폭정을 하루빨리 끝장내려는 인민들의 열망을 반영하여 세워졌다.

901년 왕으로 된 궁예가 나라이름을 《후고구려》(후에 마진, 태봉국이라고 함)라고 한것은 당시 인민들속에서 고구려와 같은 강대한 나라를 세우려는 지향이 강렬해졌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 시기 통일에 대한 열망도 매우 높았다.

이미 통일에 대한 민족의 지향과 요구를 반영하여 고구려는 삼국통일을 거의 완성단계에 올려세웠으며 그 열기는 고려시기에 더욱 고조되였다.태봉국말년에 궁예의 반대파들이 왕건이 앞으로 국토를 통일할 인물이라고 암시하는 《도참설》들을 널리 퍼뜨린 사실은 그 일단을 보여준다.

태봉국안에서 궁예의 폭정은 극도에 달하였다.궁예의 강권과 전횡, 권모술수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탄압과 학살은 인민들의 분노와 반항심을 분출시켰으며 이와 같은 현상은 지배층에까지 퍼져갔다.

이러한 사회력사적배경속에서 918년 왕건은 측근자들과 함께 정변을 일으켰다.왕건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왕궁으로 쳐들어갔는데 수도와 그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합세하였으며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다.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궁예는 《왕건이 벌써 승리를 얻었는데 내 일은 다 글렀다.》고 하면서 왕궁을 버리고 도망쳤다.

왕건은 왕위에 오른 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하고 수도를 개경(개성)으로 정하였다.

고려는 1392년까지 수백년동안 존재하였다.

고려의 건국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커다란 사변적의의를 가진다.

우선 고려의 건국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민족의 정통국가가 출현하게 되였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계승국으로서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천년강국으로 자랑높았던 나라였다.고구려는 민족의 지향인 삼국통일을 다그쳐 5세기말~6세기초에 방대한 령토를 차지함으로써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결정적역할을 놀았다.

고구려이후 우리 민족의 정통국가는 발해로 이어졌으며 그 정통성은 10세기초에 세워진 고려에 의해 확고히 계승되게 되였다.

왕건이 고구려의 옛 남부지방에서 고구려유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속에 나라를 세웠으며 국호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고려라고 한것은 그 계승국으로서의 면모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였다는것은 고려장군 서희와 외래침략군의 우두머리와의 담판내용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그때 서희는 고려야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며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한것은 그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 적들의 부당한 요구를 일축해버렸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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