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추켜드시고 -조선국민회결성기념일에 즈음하여-
자력갱생을 번영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사회주의건설의 전 전선에서 혁명적앙양을 일으켜나가는 격동적인 시기에 우리는 조선국민회결성 102돐을 뜻깊게 기념하고있다.
망국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민족수난의 시기에 지원의 높은 뜻을 안으시고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길에 고귀한 한생을 바치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
김형직선생님께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사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에서 특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고 그 활동을 현명하게 이끄신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국민회는 전체 조선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참다운 문명국가를 세울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로서 3.1인민봉기를 전후한 시기 조선의 애국자들이 무은 국내외의 조직들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의 하나였다.》
조선민족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는것을 사명으로 하는 혁명조직을 내오는것은 1910년대 후반기 급변하는 정세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발전의 필연적요구로 제기되였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전국도처에서 몸서리치는 무단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을 야수적으로 탄압학살하였으며 강도적략탈과 민족말살책동으로 나라의 귀중한 재부와 민족의 넋을 통채로 빼앗으려고 미쳐날뛰였다.
우리 인민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반대하여 투쟁에 떨쳐나섰다.
그러나 투쟁은 자체의 본질적약점으로 하여 일제침략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고 실패만을 거듭하였다.
한때 《애국자》, 《우국지사》로 자처하던 사람들중에는 《우리 민족의 힘으로는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해외로 망명하거나 《외세의존》과 《청원》의 방법으로 독립을 달성하려는 사람들도 있었고 개인테로의 방법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해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복잡한 국내외정세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실태를 깊이 통찰하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혁명조직의 결성을 더는 미룰수 없는 성숙된 문제로 보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정력적으로 벌려오신 치밀한 준비사업에 기초하여 반일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하는 모임을 가지기로 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6(1917)년 2월에 지하혁명조직결성을 위한 예비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에서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지하혁명조직을 내오기 위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벌려온 동지규합과 민중계몽을 위한 활동정형을 총화하시고 지하혁명조직결성문제를 제기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국내외의 여러 지역에서 대중적지반을 축성하고 수많은 핵심력량을 육성하여 지하혁명조직을 무을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마련되였다고 하시면서 시급히 지하혁명조직을 뭇고 결정적시기에 우리 민족의 숙원인 조선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준비사업에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예비회의에서는 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회의를 가질데 대한 문제, 회의에 참가할 대상자문제와 그들에 대한 련락방법 그리고 조직의 명칭문제가 토의되였다.(전문 보기)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뜨겁게 새겨보는 학당골혁명사적지 참관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