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을 통해 본 일제의 극악한 국권유린범죄

주체109(2020)년 10월 8일 로동신문

 

피로 얼룩진 일본군국주의의 조선침략사에는 세상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전대미문의 야수적만행들이 수많이 기록되여있다.그가운데는 1895년(을미년) 에 명성황후를 살해한 추악한 범죄행위도 기록되여있다.

을미사변은 강도 일제야말로 다른 나라를 침략함에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의 무리들이라는것을 낱낱이 드러낸 력사적사건이다.

강도적침략무력을 발동하여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은 19세기말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다.

당시 일본은 식민지획득을 노린 유미렬강의 각축전장으로 되여있던 조선을 남먼저 타고앉으려는 야망에 불타있었으나 렬강들과 정면으로 맞설만 한 힘이 부족하였다.청일전쟁이후 적극 추진시켜오던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예속화책동은 조선봉건정부의 친로정책으로 하여 커다란 난관에 부딪치게 되였다.결정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수 없게 될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일본반동정부는 출로를 명성황후에 대한 살해에서 찾았다.일본군국주의자들은 당시 친로파의 우두머리였던 명성황후를 살해함으로써 조선봉건정부의 친로정책을 친일정책으로 돌려세우려고 꾀하였다.

명성황후로 말하면 조선의 국권을 한손아귀에 거머쥐고 국왕(고종)을 대변하여 나라를 다스리고있던 국가권력의 대표자였다.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렬강들의 날로 강화되는 침략책동과 봉건지배층의 부패무능한 통치로 하여 비록 쇠퇴몰락의 길을 걷고있었지만 여전히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자주권을 행사하고있었다.그때 명성황후는 짜리로씨야에 의존하는것이 저들의 안전과 향락을 유지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타산하였다.

명성황후는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고 식민지예속화를 급속도로 다그치려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에 커다란 장애물로 되였다.

마침내 명성황후를 살해할 음모를 꾸민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그 적임자로 륙군중장 미우라 고로를 내정하여 조선봉건국가에 주재하는 일본공사로 임명하였다.그는 외교에서는 그야말로 문외한이고 오직 칼부림밖에 모르는 무지하면서도 극악한 군사깡패였다.

명성황후살해음모의 실행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받고 1895년 7월(양력 9월) 한성에 기여든 미우라는 황후살해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비밀리에 추진시켰다.

8월 20일 (양력 10월 8일) 새벽 일본침략군 살인집단은 시위대 련대장을 살해하고 국왕의 거처지인 건청궁에 침입하여 국왕과 왕태자를 감금한 다음 명성황후의 침전인 곤녕전에 뛰여들어 그를 색출하기 위해 피에 주린 이리떼처럼 돌아쳤다.살인악당들은 이미 초상을 통해 명성황후의 모색을 눈에 익혔지만 숱한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는 혼잡속에서 그를 쉽게 찾을수 없었으므로 궁녀들을 닥치는대로 칼로 치고 찔러죽였다.살인악당들은 궁녀들을 모조리 죽이면 그가운데 명성황후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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