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이 한몸 다 바쳐 부강조국의 숨결을 더해주리라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 대상설비제관직장 작업반장 조호성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이 땅에 무수히 일떠서는 발전소의 완공과 조업을 위해 아마도 대안로동계급처럼 심혼을 바치는 사람들은 드물것이다.
우리 나라 기계공업의 심장이며 대대손손 물려줄수 있는 귀중한 재부인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 나라의 자랑인 이 기업소에서 또 한명의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가 배출되였다.
수십년세월 발전기의 타빈효률을 높이는데서 결정적역할을 하는 회리실을 제작하며 나라의 전력생산을 위해 묵묵히 큰일을 한 대상설비제관직장 작업반장 조호성동무, 부강조국건설의 진격로를 열어나가는 투쟁에서 언제나 돌격전의 기수가 되여 달려온 그의 애국적인 삶은 당의 믿음을 어떻게 지키고 빛내여야 하는가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으로 된다.
타빈회리실은 땅속에 묻혀도
저도모르게 아찔해졌다.
두터운 철판들이 순간에 휘여드는가 하면 머리우에서 집채같은 제품을 물고 오락가락하는 천정기중기를 바라보니 가슴이 막 두근거렸다.
(내 체격에 꽤 저런 일을 감당해낼수 있을가?…)
금방 기능공학교를 졸업한 조호성동무에게 있어서 제관이라는 분야는 생각했던것보다 더 아름찬것이였다.
시종일관 중량물을 다루어야 하는 제관작업, 그것은 땀만 바치면 할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제 머리로 모든것을 상상하고 계산해보며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제관작업을 잘하자면 도면도 잘 봐야 했지만 무엇보다먼저 수자를 중시해야 하였다.
교정의 선생님에게서 배웠던 많은 수학공식들을 작업반장의 방조속에 현장에서 하나하나 적용해보며 기능을 익혀나가던 그무렵 제관직장에서는 태천발전소에 보내줄 타빈회리실생산이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달팽이처럼 생긴 타빈회리실은 그 크기가 보통이 아니였다.타빈회리실입구의 둘레만 하여도 수십m나 되였다.
하지만 그 진짜의의는 크기나 무게에 있지 않았다.바로 대안의 로동계급이 우리 나라 공업력사에서 처음으로 만든다는데 있었다.
온 공장이 불도가니처럼 끓어번지던 어느날 그는 타빈회리실조립현장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어제 밤 제가 깜빡 졸면서 용접한 부분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물론 다른 일은 없겠지만 량심이 허락치 않습니다.용접을 다시 하겠습니다.》
그것은 조호성동무가 남달리 따르는 젊은 용접공의 목소리였다.
그날 용접공에게 남긴 직장장의 목소리는 얼마나 그의 가슴을 세차게 울렸던가.
《우리가 만든 타빈회리실은 발전소언제밑에 묻혀 누구도 보지 못할거요.하지만 후대들은 먼 후날 그 발전소에서 우리 대안로동계급의 량심과 애국심을 보게 될거요.》
그런데 글쎄 그 타빈회리실을 보아주시려 우리 수령님께서 몸소 대안땅을 찾으실줄 어이 알았으랴.
대안로동계급이 태천에 보내는 발전설비들을 거의다 만들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평양에서 진행중이던 회의도 뒤로 미루시고 기업소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타빈회리실을 보아주시며 정말 굉장하다고, 자신께서 오늘 대안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멋진것을 보지 못할번 했다고 하시면서 이제 이것이 태천에 가면 콩크리트언제속에 묻혀 사람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게 되겠는데 발전소에 보내기 전에 널리 소개하도록 뜻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못 잊을 그날 조호성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아주신 타빈회리실을 오래도록 쓸어보며 격정의 눈물로 두볼을 적시였다.
오늘은 자신께서 발편잠을 잘수 있겠다고, 자신께서 올라올 때 대안의 로동계급에게 미처 인사를 전하지 못하고 왔는데 꼭 자신의 인사를 전해달라는 분에 넘치는 사랑까지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
우리 수령님께서 중히 여기시는 발전기를 만드는 제관공이라는 긍지, 앞으로 꼭 자기 손으로 타빈회리실을 만들어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리라는 맹세로 그의 가슴은 용암마냥 끓어올랐다.
두해후 그는 20살 꽃나이에 공로메달을 수여받았다.
공민이 되여 처음으로 받아안은 그 메달에는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가 전국의 앞장에서 나가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제관공으로 인생의 첫걸음을 뗀 그의 성실한 땀과 애국의 열정이 진하게 스며있었다.그 공로메달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며 그는 가정보다 나라를 먼저 위했다.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조이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그는 당원의 영예를 지니였고 작업반장이 되였다.
대용식품마저 부족했던 그때 그의 가슴을 무엇보다 아프게 한것은 어린 두 자식의 작은 밥그릇에 멀건 풀죽조차 변변히 채워줄수 없었던 괴로움이 아니였다.비여있는 기대였다.공백이 드문한 작업반의 출근부였다.
그는 당세포비서(당시)와 함께 작업반사람들을 찾아 집집의 문을 두드렸다.가정에 남은 얼마 안되는 식량을 똑같이 몫몫으로 갈라안고.
그는 긴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대안사람들까지 주저앉으면 우리 장군님께서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이겨냅시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