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우리 당의 대건설구상을 충직하게 받들어가는 전초병대오의 기수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기사장 윤성철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나라의 굴지의 건재공업기지인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가 부글부글 끓어번진다.절세위인들을 대를 이어 명예지배인으로 높이 모신 영광의 일터에서 세멘트증산성과로 우리 당을 억척같이 받들어온 상원의 로동계급이 오늘의 80일전투에서도 전초병의 위력을 남김없이 떨쳐갈 충성의 열의드높이 생산돌격전을 힘있게 벌리고있다.그 자랑스러운 진군대오의 앞장에 우리 당이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준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기사장 윤성철동무도 서있다.
우리 당의 대건설구상을 충직하게 받들어갈 일념을 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에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짚은 그날부터 지난 수십년간 윤성철동무는 생산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였으며 자체의 기술개발력량을 튼튼히 꾸리고 생산조직과 지휘를 짜고들어 련합기업소가 해마다 세멘트생산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 끝없이 충직하였던 전세대들처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주신 과업을 높은 실력과 완강한 실천으로 한치의 드팀도 없이 결사관철해가는 그의 모습은 우리의 가슴속에 충실성의 전통을 혈맥처럼 이어가는 영웅적 김일성–
김정일로동계급의 참된 인생관을 감동깊이 새겨주고있다.
아버지의 당원증번호
지금으로부터 24년전 명당지구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망대에 그린듯이 서있는 사람이 있었다.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에 배치된 윤성철동무였다.
웅장한 부유가소탑과 싸이로들, 해빛을 받아 눈부시게 번쩍이는 생산설비들, 과일나무를 심은 야산아래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살림집들과 봉사시설들, 기업소와 주택지구사이로 푸른 물 넘실거리며 유유히 흘러가는 상원천…
지금껏 례사롭게만 보아오던 명당지구의 전경이 그날따라 새로운 의미로 안겨오는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속삭이는 윤성철동무의 눈앞에 아버지의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각별한 사랑과 믿음속에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의 초대지배인으로 사업하였던 그의 아버지는 심장의 고동을 멈추는 마지막순간까지 자기의 혁명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모든것을 다하였다.
불치의 병으로 생명이 각일각 꺼져가던 아버지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여 혁명전사의 삶에 영생의 빛을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하늘같은 그 사랑과 믿음에 미처 보답하지 못하고 가는 죄스러움을 안고 아버지는 림종을 앞둔 시각에 영웅메달을 쓸어보며 눈물속에 말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끝까지 관철하지 못하고 가는것이 한스럽구나.내 몫까지 합쳐 위대한 장군님을 더 잘 받들어다오.너를… 믿는다.》
그것은 아버지의 유언이기 전에 혁명의 전세대가 새 세대에게 하는 간곡한 당부였다.대를 이어서라도 끝까지 수행해야 할 혁명임무였다.하기에 윤성철동무는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로 달려왔던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본때있게 일해보리라 결심도 컸지만 실천하는 길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련합기업소의 석회석광산 파쇄1직장 로동자로 배치되였을 때 그는 고까운 감정이 앞섰다.자동화공학을 전공한 대학졸업생이 돌이나 깨는 곳에서 일한다는게 어쩐지 부끄럽게만 여겨졌던것이다.그가 이런 속내를 비쳤을 때 어머니는 호되게 꾸짖었다.
《너의 아버지는 당에서 주는 과업앞에서 저울질하는 법을 몰랐다.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잇자고 온 네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윤성철동무는 피줄은 유전되지만 충실성은 저절로 유전되지 않는다고 하던 어머니의 말을 가슴깊이 새기며 자기가 애용하는 수첩의 첫장에 전세대 당원들의 넋을 참답게 이어갈 굳은 의지를 담아 자기의 당원증번호가 아니라 아버지의 당원증번호를 새겨넣었다.
당시 석회석광산에서는 고압전동기에 쓰이는 전동기솔때문에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하던 때여서 모든것이 부족했고 그만큼 보장도 제대로 따라서지 못했다.전동기솔을 자체로 해결해볼 결심을 품은 윤성철동무는 낮에는 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기술자료들을 연구하면서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이였다.그는 끝내 전동기솔을 자체로 만들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여 고압전동기의 정상가동을 원만히 보장할수 있게 하였으며 첫 발명권을 받았다.윤성철동무는 아버지의 당원증번호를 새긴 수첩에 자기의 첫 사업성과를 긍지높이 기록하였다.
몇년후에 윤성철동무는 파쇄1직장 부직장장을 거쳐 갓 조직된 동력직장의 직장장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직장의 전반적인 사업체계를 세워나가던 어느날 그는 굴착기가 고장났다는 소식을 받고 종업원들과 함께 달려갔다.밤을 밝히며 굴착기를 수리하는 과정에 종업원들의 기술기능수준이 높지 못하다는것을 간파한 그는 다음날부터 종업원들에 대한 기술학습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직장의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도 동시에 밀고나갔다.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종업원들의 기술기능수준은 현저히 높아졌고 직장은 무슨 일이나 척척 해제끼는 전투력있는 집단으로, 3대혁명붉은기단위로 되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