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은덕을 한생토록 가슴에 안고 사는 참된 인간 -북창군 회안로동자구에 사는 홍영환로인에 대한 이야기-
북창군 회안로동자구에는 누구나 존경하는 명예당원이 있다.그는 76살의 홍영환로인이다.벌써 수십년전에 사회보장을 받았어야 할 몸이였지만 그는 년로보장조차도 몇차례나 미루면서 일흔살이 되도록 막장길을 걸었으며 탄전에 첫걸음을 내짚은 날부터 오늘까지 50여년세월 석탄산을 받들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애국의 자욱을 수놓아가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근로자들은 당과 혁명,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량심적으로 성실히 일해나감으로써 당의 은덕과 국가의 고마움에 실천으로 보답하는 고결한 풍모가 우리 인민의 혁명적륜리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
그는 갱장도 지배인도 아니다.착암기와 함께 울고웃으며 살아온 평범한 탄부이다.하지만 그의 삶이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과 여운은 크다.
바친것보다 받아안은 은혜를 한생토록 생각하면서 생의 순간순간을 순결한 충성과 량심으로 빛내여온 그의 한생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당과 국가와 함께 고심하며 분투할 때만이 가장 값높고 아름다운 삶을 누릴수 있다는것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끝나지 않는 출근길
일흔나이가 되도록 늘 남먼저 출근하여 일손을 잡군 하던 정든 일터를 떠나는 홍영환로인의 귀전에 탄광일군들의 목소리가 다시금 새삼스럽게 울려왔다.
《편치도 않은 몸으로 이날까지 탄광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습니까.이젠 여생이나마 편히 쉬십시오.》
년로보장이라, 입속으로 조용히 뇌여보는 그의 마음은 왜서인지 허전해졌다.여기서 나의 출근길이 끝나는가.
마을의 한 동갑로인은 그에게 이렇게 권고했었다.
《이제부터 함께 염소나 끌고 다니세.가정에 보탬이 적지 않아.》
깊은 생각에 잠겨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그의 발길에 채워 조약돌 하나가 멀리로 나딩굴어졌다.
길가의 조약돌, 정녕 무심치 않았다.만일 고마운 이 땅에서 태여나지 못했더라면 그는 이미 그 조약돌처럼 이 발길에 채우고 저 발길에 짓밟혀 생을 끊기우고말았을것이다.
일찌기 부모를 잃은 그를 남먼저 품어안아준것은 고향마을사람들이였다.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은 머지않아 인민학교(당시) 학생이 될 그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약속했다.
《매일 이 큰아버지에게 와서 그날 숙제는 그날로 꼭꼭 검열맞혀야 한다.》
그날부터 그는 은률군의 어느 한 농업협동조합 일군들과 조합원들의 관심과 보살핌속에 자라났다.말그대로 그는 조합의 아들이였다.
모든것이 어려운 때였지만 그의 옷차림은 어느때나 부모있는 집 아이들보다 더 번듯하고 깨끗했다.조합사람들은 그에게 무엇이든 한가지라도 더 들려주고싶어 마음썼고 마을에서 제일 식솔많은 가정에서도 별식을 만들었을 때에는 어김없이 그를 찾군 했다.
사실 그의 부모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희생된 렬사도 아니였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사람도 아니였다.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부모는 그저 고지식하고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고 산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였다.하지만 부모잃은 아이는 있을지언정 고아의 설음이란 있을수 없는 고마운 조국의 품에서 해방동이인 그에게는 날마다 새 식솔, 새 희망이 늘어났다.그는 차츰 고아라는 말을 잊어버렸다.그가 년년이 최우등의 성적증과 함께 받은 표창장들은 관리위원장의 사무실에 벽보처럼 나붙었다.
조합사무실을 찾는 일군들이 《관리위원장사무실에 무슨 학생의 표창장이 다 붙어있소?》 하고 놀라와할 때면 관리위원장은 그 물음을 기다리기라도 한듯이 자랑스럽게 말하군 했다.
《내 아들의 상장이지요.》
그에게 아버지이기도 하고 다심한 스승이기도 한 관리위원장은 늘 이렇게 당부하군 했다.
《영환아, 이렇게 곤난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너를 따뜻이 품에 안아 키워주시는 우리 수령님의 은덕과 고향마을사람들의 뜨거운 마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이다음에 크거들랑 꼭 은혜에 보답할줄 아는 사람이 되거라.…》
한생의 추억이 많이도 깃든 정든 일터를 점도록 바라보는 홍영환로인의 귀전에 잊지 못할 관리위원장의 목소리가 다시금 산울림되여 메아리쳐왔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거라.》
내 과연 애지중지 키워준 나라의 은덕에 다 보답했던가.
그는 여생이라는 두 글자앞에 자신을 세워보았다.
여생, 그것은 당과 국가의 혜택속에 부양을 받으며 사는 생이다.여생을 누리는것은 나라에서 공민에게 준 권리이다.하지만 그것마저 나라를 위해 바치고싶은것이 홍영환로인의 량심이였다.그는 일기장과도 같은 자기의 로동일지에 이렇게 썼다.
《2015년 2월 7일
입당한 때로부터 꼭 27년만에 년로보장을 받았다.
이제는 입당하면서 다진 맹세, 당의 신임과 사랑을 받아안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다진 맹세를 지키지 못한단 말인가.
사람이 태여나 당과 국가의 은덕을 받아안고 그저 좋구나 하며 행복만을 누리고 그 은혜에 따르는 보답이 없다면 어찌 의리를 아는 인간이라 하랴.나는 이런 마음을 안고, 그 길에서 순직할 맹세를 안고 매일, 매 순간 일해왔다.그런데 오늘 년로보장을 받고보니 보람찬 삶의 대오에서 밀려난것만 같은 생각에 서운함을 금할수 없다.하지만 보답의 맹세만은 절대로 저버리지 말자.
이 몸을 움직일수 있는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국가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하여 버럭 한삽이라도 더 뜨고 정대 한개라도 더 벼리자.》
탄광에 진출한 때로부터 어느덧 근 50년,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이며 위대한 장군님의 표창장,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와 더불어 빛나는 훈장들…
그 모든것을 하나하나 소중히 안아볼수록 그의 생각은 깊어졌다.
(조합의 아들이 되여 받아안은 복받은 생을 나라를 위해 깡그리 바치는 조국의 아들이 되리라.)
그날 그는 당원증번호가 또렷이 새겨져있는 당생활총화수첩에 이렇게 스스로 새 분공을 적어넣었다.
《명예당원 홍영환 100% 출근을 보장할것.》
다음날 아침 그는 서둘러 안전모를 쓰고 집을 나섰다.
《아침일찌기 어딜 가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안해에게 홍영환로인은 단마디로 대답했다.
《출근해야지.》
몇년전부터 새로 개발하는 청년갱의 고문으로 일해온 홍영환로인은 이렇게 더 많은 일감을 맡아안았다.사갱굴진으로부터 천공배치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가르쳐주고 갱에 필요한 소공구들을 제손으로 벼려주는것을 더없는 기쁨으로 여기는 그에게 또 다른 즐거움은 압축기도 관리하면서 탄부들을 위해 목욕탕의 열관리까지 맡아하는것이였다.그것은 그가 스스로 찾아 걸머진 일감이였다.
그렇게 날과 달이 흘렀다.오늘은 레루못 몇개, 래일은 꺾쇠 몇개 이렇게 매일같이 자기가 한 일을 로동일지에 새겨넣으며 그는 묵묵히 출근길을 이어나갔다.새해를 맞을 때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상초상화앞에서 이해에도 변함없이 당에 보탬을 주는 당원으로 살리라 마음다지며 출근길에 올랐고 생일날에도 나라앞에 헛살지 않았구나 하는 긍지를 안고 하루를 총화지었다.
사실 그는 남과 같이 몸이 성한 사람이 아니였다.하지만 어렵고 위험한 모퉁이에는 남먼저 한몸 내대며 앞장선 척후병이였기에 붕락된 갱안에 갇혔던적도 그 몇번이였다.그는 이렇게 일흔살까지 막장길을 걸었다.한창나이에 뜻밖의 일로 사경에 처한 그를 위해 피를 바치겠다고 몸을 내대던 탄광마을사람들의 진정이, 두번다시 생명을 준 어머니당의 사랑이 언제나 그의 가슴에 꽉 차있었던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출근길에는 지름길이 생겼다.
그의 집에서 청년갱까지 큰길로 가면 한시간나마 걸렸지만 질러가면 절반을 단축할수 있었다.그 시간이면 레루못 한개라도 더 벼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는 무작정 험한 지름길을 택했다.뙤약볕을 맞으며, 눈바람을 헤치며 가파로운 비탈길을 따라 산고개를 톺아오를 때면 숨이 턱에 닿고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 주저앉고싶은 때도 있었다.그때마다 그는 나약해지는 자신을 이렇게 다잡군 했다.
(쓰러지면 안된다! 그러면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 수령의 전사로서, 인간으로서 의리가 없는 놈이 되고만다.심장의 붉은 피 마지막 한방울까지 다 바쳐 충성, 충성 또 충성하리라!)
마음속으로 쉬임없이 자기자신에게 《앞으로! 앞으로!》 구령을 내리며 출근길을 이어가는 그에겐 국가가 정해준 로동시간도 로동정량도 없었다.하지만 그는 마음속출근부를 늘 가슴에 안고 궂은일, 마른일 가림이 없이 남들의 몇곱으로 일하기 위해 끝없이 땀을 바쳤다.
그가 얼마나 조국에 바치는 하루하루를 무겁게 대했는가.그의 로동일지에는 이런 글도 있다.
《2020년 8월 6일
어제부터 아프기 시작한 옆구리가 너무나 결려서 지팽이를 짚고야 문밖을 나섰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물이 이렇게 많이 나보기는 처음인것 같다.무섭게 사품쳐흐르는 물때문에 도저히 개울을 건늘수 없었다.반나절이 지나도록 길을 찾아보았지만 갱에는 끝내 올라갈수 없었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나의 출근길이 아닌가.나의 인생에서 오늘은 공백으로 남았다.》
힘들 때마다 그는 오랜 세월 간직해오는 《로동신문》들을 정히 펼쳐보군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했던 김책동지, 신념과 의지의 화신 리인모동지, 무재봉의 영웅전사들…
보풀이 일도록 밑줄을 그어가며 심장에 새긴 주인공들의 모습이여서 이제는 머리속에 글줄까지 훤하건만 홍영환로인은 매번 새 마음가짐으로 기사들을 읽군 한다.그들앞에 부끄럼없이 살고있는가 돌이켜보면서, 그들처럼 당과 조국앞에 충신으로 살리라 마음다지면서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한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당과 국가의 은혜에 대하여 많이 말한다.하지만 자기의 한생을 총화지으면서 그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힘껏 일했다고 떳떳이 말하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하기에 한여름에도 잔등에 소금버캐가 내돋도록 레루못을 벼리는 그에게 잠시라도 쉴것을 부탁할 때면 홍영환로인은 이렇게 말하군 한다.
《내게 천만금이 있어 돈으로 나라에 보탬을 주겠소, 젊은이들처럼 일을 꽝꽝 해서 나라를 떠받들겠소.오직 깨끗한 량심을 바쳐 숨지는 마지막날까지 석탄생산에 보탬을 주고싶은것이 내 소원이요.》
출근길, 한마디로 그것은 나라일을 하기 위해 가는 길이다.
홍영환로인에게 있어서 출근길은 당과 국가의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싶어 걷는 길이다.보답의 길이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애국의 출근길이 끝나지 않는 법이다.(전문 보기)
홍영환로인 (오른쪽에서 두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