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장군님, 유서깊은 고향 백두성지에 인민의 기쁨 넘쳐납니다》 -천지개벽의 새 모습이 눈부신 설경속에 더욱 황홀하게 어려오는 삼지연시를 찾아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혁명업적을 고귀한 밑천으로, 만년토대로 하여 혁명과 건설을 더욱 힘있게 추진함으로써 우리 인민의 자주적인 리상과 꿈을 전면적으로 실현해나가야 합니다.》
백두광명성 솟아오른 혁명의 성지 삼지연시에 2월이 왔다.
천지개벽의 새 모습이 눈부신 설경속에 더욱 황홀하게 어려오는 백두산기슭의 새 거리, 새 마을들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80돐을 맞이하게 될 삼지연시인민들의 감회는 류다르다.
백두산지구를 인민들의 행복의 웃음꽃 만발하는 사회주의지상락원으로 꾸려주시려 그처럼 마음써오신 위대한 장군님,
장군님의 절절한 념원을 꽃피우시려 봄에도 여름에도, 찬바람이 부는 마가을과 눈내리는 겨울에도 삼지연시를 지척인듯 찾고 또 찾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우리는 인민의 아름다운 리상과 꿈이 현실로 펼쳐지는 백두산기슭의 사연많은 거리와 마을들을 찾아 기행길에 올랐다.
우리 장군님께서 보시였으면
삼지연시에 대한 우리의 기행은 허항령기슭에 높이 모신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앞에서부터 시작되였다.
백두산바람에 야전복자락을 날리시며 온 세상이 밝아지도록 태양의 미소를 지으시는 우리 장군님,
자애로운 그 영상을 삼가 우러르느라니 천지개벽한 오늘의 삼지연시를 우리 장군님께서 보시였으면 얼마나 기뻐하시랴 하는 생각이 가슴저리게 솟구쳐올랐다.
스치는 한줄기 바람결도, 흐르는 내물도 우리 장군님에 대한 뜨거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삼지연시.
우리의 발걸음은 옛 모습 그대로 서있는 삼토공귀틀집에 이르렀다.지금으로부터 60여년전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오를 이끄시고 삼지연마을에 오시였을 때 하루밤 쉬여가신 잊지 못할 사연을 안고있는 력사의 귀틀집이였다.
껍질을 벗긴 이깔나무로 사개를 맞추고 이끼와 흙으로 틈을 메운 너무도 수수한 귀틀집, 바로 여기서 우리 장군님께서는 삼지연인민들에게 뜻깊은 약속을 남기시였다.
앞으로 삼지연은 혁명전통교양의 대로천박물관으로 전변되게 되는데 그때에는 이런 귀틀집대신에 훌륭한 문화주택이 즐비하게 늘어설것이라고…
수십년전 이름없는 림산마을사람들과 하신 약속이 눈부신 현실로 펼쳐지였으니 그 만단사연을 하나하나 가슴속에 안아보는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이어 우리는 백두산밀영고향집이 자리잡고있는 백두산밀영동지구로 향하였다.
우리 인민 누구나 마음의 고향으로 간직하고 사는 백두산밀영고향집을 또다시 찾게 된다고 생각하니 저으기 흥분되였다.
절세의 위인께서 탄생하신 고향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소박한 귀틀집이였다.
열려진 뙤창너머로 항일의 초연슴배인 두개의 배낭이 나란히 걸려있는 모습이며 못잊을 추억을 불러일으켜주는 사적물들…
우리는 이곳에서 강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20여년전 백두산밀영을 찾으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여기는 내 고향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신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백두산밀영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강렬하시였으면 이처럼 자신의 심정을 열렬히 터놓으시였으랴.
하기에 온 나라 인민의 마음속에는 백두산밀영고향집이 위대한 장군님의 숭엄한 영상으로 안겨오는것이다.
우리는 백두산밀영고향집과 더불어 그 이름도 정다운 백두산밀영동의 현대적인 살림집들과 공공건물들도 돌아보았다.
민족성과 현대성, 북부고산지대의 특성이 훌륭히 결합되여 사람들 누구나 경탄을 금할수 없게 하는 백두산밀영동, 행복이 커갈수록 이곳 인민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고있다.
항일대전의 총포성속에서 백두산의 아들로 탄생하시여 한평생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한몸을 깡그리 불태우신 위대한 장군님의 그 헌신과 로고가 인민의 행복으로 꽃펴난것이라고.
우리의 기행은 리명수동으로 이어졌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하많은 추억을 안고있는 리명수동은 림산마을맛이 나면서도 명승지맛이 나게 훌륭히 건설되여있었다.희한한 단층, 소층살림집들과 조화를 이루며 아담한 3층짜리 교사에 덩실한 체육관까지 갖춘 삼지연시 청봉고급중학교며 리명수원을 비롯한 각종 공공건물들이 들어앉은 그림같은 마을…
청봉혁명전적지관리소 일군의 말에 의하면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길을 처음으로 개척하시던 나날에 하루밤 묵어가신 60여년전의 리명수마을은 어설핀 귀틀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은 자그마한 림산마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장군님께서 몰라보게 달라진 오늘의 리명수동을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청봉혁명전적지관리소 강사들이 저마다 터놓는 이야기는 얼마나 뜨거운것인가.
우리는 그들에게서 없어졌던 리명수마을이 다시 생겨나게 된 감동깊은 이야기도 들을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1월 리명수물동가를 찾으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변을 둘러보시다가 동행한 도의 책임일군에게 여기에 있던 집들은 다 어떻게 하였는가고 물으시였다.일군은 살림집들을 웃지구에 옮기였다고 대답을 올리였다.
그때 그곳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오를 이끄시고 오시였을 때 들리시였던 집을 비롯한 사적건물들을 내놓고 살림집들은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적지가 공원화되였다고 지적하시며 혁명사적지는 인민들이 사는 마을속에 있어야 한다고, 혁명사적지가 인민들이 사는 마을과 동떨어져있으면 절대로 안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그러시면서 자신께서 1956년에 왔을 때에는 여기에 집이 많았다고 하시며 도의 책임일군에게 림산주택을 지을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이렇게 되여 영영 없어질번 하였던 리명수마을이 다시 생겨나게 되였고 오늘은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산간문화도시로 훌륭히 꾸려지게 되였던것이다.
오늘도 리명수동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전설처럼 전해가며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속에 소중히 자리잡고있은 마을에서 사는 긍지를 가슴뿌듯이 느끼고있었다.
우리는 맑은 물이 뽀얀 안개를 피워올리며 엄동설한에도 쉬임없이 흐르는 리명수폭포앞에도 서보았다.리명수폭포도 그날의 사연을 전하며 끝없이 흐르고흐르는것만같았다.
이윽하여 우리가 시소재지로 향하는데 하많은 사연을 전해주는듯 흰눈이 소리없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민족성과 현대성, 북부고산지대의 특성이 훌륭히 구현된 독특한 모양의 살림집들과 현대적인 공장들, 사회주의문명이 응축된 상업봉사시설들과 체육문화시설들이 꽉 뒤덮은 시소재지에 은빛설경을 펼치며 흰눈이 내리고내렸다.
거리에서 우리와 만난 시당일군은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이면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우리 인민에게 행복만을 주시려 한평생 찬눈비를 맞으신 장군님생각으로 가슴이 젖어든다고 뜨겁게 말하였다.
그의 말을 듣느라니 또다시 못잊을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수십년전 3월 새로 꾸린 읍지구(당시)에는 인민들의 새집들이기쁨이 넘치고있었다.봄이라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곳을 찾으시였던 그날도 아침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있었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삼지연이 천지개벽을 하였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머나먼 눈길을 헤쳐오신 그이를 또다시 눈내리는 길에 모시게 된 죄송스러움을 안고 동행한 한 일군이 눈이 오는데 좀 쉬였다가 거리를 돌아보셨으면 하는 청을 드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눈이 오면 뭐라는가고, 이런 눈은 종일 맞아도 좋다고 하시며 어서 거리를 돌아보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진정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인민을 위해 이렇게 맞고맞으신 찬눈비는 그 얼마이던가.
그렇게 자신의 온 열과 정을 다해 보살펴주시던 삼지연시인민들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품속에서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을 노래하는 모습을 보시였으면 우리 장군님 그 얼마나 기뻐하시였으랴.
삼지연의 흰눈은 이렇게 속삭이며 끝없이 내리고있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은덕입니다》
우리는 중흥등판을 향해 취재차를 달렸다.
뽀얀 눈가루를 일으키며 한동안 달리고나니 농장원들이 거름을 실은 눈썰매들을 끌고 줄을 지어 벌판으로 향하는 모습들이 보이는 속에 중흥리 소재지마을이 한폭의 그림처럼 안겨왔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찾아오시였던 그날 한폭의 그림같은 농촌진흥의 표준단위라고 높이 평가해주신 중흥리,
특색있게 건설된 농촌문화주택들과 리문화회관을 비롯한 공공건물들에서는 사람들의 기쁨넘친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오고 새해 농사차비로 들끓는 포전들에서는 뜨락또르들의 발동소리가 흐뭇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몸가까이 만나뵈온 리의 한 일군과 함께 먼저 리문화회관을 돌아보았다.300석능력의 리문화회관은 무대로부터 관람석, 소조실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것이나 나무랄데 없이 잘 꾸려져있었다.
눈부신 조명이 비쳐지는 화려한 무대에서는 농장예술소조원들이 2월의 명절을 맞으며 예술소품공연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문화회관을 찾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관람석의자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무대와 객석을 몇번이고 둘러보시며 못내 만족해하시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일군의 목소리는 감격에 젖어있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