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사회주의전야에는 이렇듯 충직하고 애국적인 농업근로자들이 있다 -남포시농촌경리위원회 양곡협동농장 작업반장 김기영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추위는 아직 풀리지 않았건만 전야에서는 그물그물 더운 김이 피여오르고있었다.논과 밭 그 어디나 질좋은 거름더미들이 쌓여있는것이다.
《거름더미를 보면 가을날의 쌀더미를 알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와 동행한 일군이 나지막한 언덕우에 올라 하는 말이였다.그 말을 새겨보느라니 멀리로 내려다보이는 작업반마을의 정경이 무심히 안겨오지 않았다.규모있게 일떠선 산뜻하고 아담한 문화주택들과 공공건물들…
우리는 부푸는 기대를 안고 언덕을 내리였다.끊임없는 사색과 열정, 완강한 실천과 뜨거운 인정미로 농업생산과 농장원들의 생활향상에서 실질적인 전진을 안아온 남포시농촌경리위원회 양곡협동농장 작업반장 김기영동무에 대한 취재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사상의식, 여기에 전변의 동력이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훈훈한 방으로 우리를 안내한 작업반기술원은 뿌옇게 흐려진 재빛하늘을 연신 올려다보았다.
작업반장 김기영동무를 두고 하는 말이였다.땅을 걸구는데 좋은 재를 실으러 이른아침 먼길을 떠났던것이다.
작업반장이 늘 그렇게 바쁜가고 묻자 기술원은 빙그레 미소를 띠우며 우리 반장동무에겐 바쁜 때와 덜 바쁜 때가 따로 없다고, 지난 기간 늘 그렇게 살아왔다고 하는것이였다.아득히 흘러온 세월의 자취를 더듬는듯 그의 눈가에 추억의 빛이 비껴흘렀다.
김기영동무가 이곳 작업반장으로 임명되여왔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근 20년전이였다.그때 리당일군은 이렇게 당부했다.
《〈버섯동네〉를 동무에게 맡기오.믿겠소.》
《버섯동네》,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아름답게 느껴질지도 모를 부름이였다.하지만 류다른 그 부름을 새겨보는 김기영동무의 가슴에는 돌덩이처럼 무거운것이 맺혔다.고난의 시기 집집마다 물매급한 지붕을 해씌운 모양이 마치 버섯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작업반마을의 부름이였던것이다.
실지 작업반에 도착하여 보니 생각했던것보다 더 어려운 형편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이 작업반에서 모내기와 가을걷이가 끝나야 농장의 모내기와 가을걷이실적이 종합된다고 하던 말이 결코 과장된것이 아니였다.
그날 밤 김기영동무는 작업반실의 책상앞에 마주앉아 한장의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것은 작업반이 다른 단위에서 돌려쓰고 미처 상환하지 못한 알곡수량이 적혀진 종이장이였다.
그의 생각은 착잡했다.고난의 흔적을 채 털어버리지 못한 작업반이 제발로 걸어나갈수 있는 방도는 무엇인가.활성화의 첫시작을 과연 어떻게 떼야 하는가.
이윽고 김기영동무는 품속에서 도서 한권을 꺼내들었다.리당일군이 그를 바래워주며 들려준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였다.그 갈피에서 회상실기 《하자고 결심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를 읽고 또 읽으며 그는 한밤을 꼬박 새웠다.손에 쥔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천고의 밀림에서 무기를 수리하고 재봉기바늘을 만들어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결사관철한 항일혁명투사들에 대한 이야기, 어릴 때부터 늘 보고 들은지라 이제는 뜬금으로도 외울수 있는것이였지만 그밤에는 왜서인지 처음 대하는 이야기인듯 그의 심중을 파고들었다.
(그렇다.모든 일은 마음먹기탓이다.농장원들의 사상의식부터 개변시켜 그들모두가 자기 손으로 능히 행복을 창조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하자.)
다음날 아침 첫 작업반모임이 진행되였다.그 자리에서 김기영동무는 누구에게라없이 작업반이 일어설 방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본적이 있는가고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잠시후 여기저기서 이런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땅자체가 못쓸 땅이라는것, 논밭이 모두 산탁에 붙어있거나 침수지여서 농사짓기에 불리하다는것, 거름원천도 별로 없다는것…
농장원들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난 김기영동무는 두개의 강냉이이삭을 그들앞에 내놓았다.
하나는 쭉정이이고 다른 하나는 알찬 이삭이였다.
순간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묻지 않고도 그것이 작업반포전과 어느 개인세대의 터밭에서 거둔 강냉이임을 누구나 대뜸 짐작했던것이다.
김기영동무는 아무말없이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펼쳐들었다.한밤을 새우며 읽고 또 읽은 회상기였다.그것을 또박또박 다 읽고나서 모임을 이런 말로 끝맺었다.
《머지않아 우리 작업반도 남보란듯이 어깨를 쭉 펴게 될것입니다.》
농장원들이 앞날에 대한 확신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첫 사업으로 작업반구내를 꾸리는 사업이 시작되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속에서 작업반을 꾸린다고 달라질것이 무엇인가, 농사철에 공연한 일거리를 만들어놓아 맥만 뽑는다는 의견이 제기되였다.하지만 김기영동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일터의 정규화적면모는 곧 사람들의 정신상태의 반영이기때문이였다.
그는 자기가 솔선 앞장에 서서 두어깨에 피멍이 지도록 막돌을 져날랐고 세멘트와 모래를 마련하기 위해 수십리 밤길도 주저없이 걸었다.얼마후 작업반의 면모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작업반원들의 반영은 짐작했던바그대로였다.산뜻한 울타리를 두르니 작업반이 새로와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침시간에 멀리서부터 작업반정문이 바라보이면 저도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고 얘기하는 축들도 있었다.
얼마전까지 사방으로 나있는 골목길로 울타리도 없는 작업반구내를 제 집 안방 드나들듯 하면서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고있었던것이다.
김기영동무는 작업반앞에 보다 높은 목표를 제기했다.
자체의 힘으로 탈곡기를 만드는것이였다.
처음 농장원들은 작업반장이 아마 웃단위의 도움을 받아 탈곡기를 만들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그러나 순수 작업반자체의 힘으로 기계를 제작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는 그들에게 김기영동무가 한 말은 길지 않았다.
《투사들은 맨주먹으로도 재봉기바늘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농장원들은 작업반장이 이웃리와 린접한 깊은 골짜기에 쓸모없이 묻혀있는 철관과 어느한 양수장의 멎어있는 전동기를 찾아내여 탈곡기제작에 리용하기 위해 어떤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였는지 다는 알수 없었다.
삽과 곡괭이를 둘러메고 그 골짜기로 향하는 그의 뒤를 작업반원모두가 따라섰다.그날 골짜기에서는 온 하루 《하나둘-영차, 영차!》 하는 먹임소리와 화답소리가 그칠줄 몰랐다.며칠후에는 고장난 전동기를 살리기 위한 기술혁신조가 무어졌다.
한달이 지난 어느날 몇해어간에 처음 보는 광경이 작업반구내에 펼쳐졌다.그들자신의 손으로 만든 탈곡기가 힘찬 동음을 울리며 씽씽 돌아가기 시작했던것이다.그 모습을 보며 모두가 기쁨에 겨워 어쩔줄 몰라했다.
달라진 작업반건물과 제힘으로 만든 탈곡기, 그것은 비록 요란하거나 번쩍거리지는 않아도 자기의 손으로 얼마든지 행복한 래일을 앞당겨올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더없이 귀중한 창조물들이였다.…
《탈곡장의 지붕이 세멘트기와로 바뀌고 멎어있던 뜨락또르가 발동소리높이 전야로 달려나갔습니다.일터의 휴식참마다 당정책과 주체농법해설모임이 격식없이 진행되군 했지요.
농장원들이 농사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그러던중 작업반에 경사가 났습니다.반장동무가 전국농업대회에 참가하게 됐던것입니다.》
기술원은 잠시 말끝을 가무렸다.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하늘이 활짝 열리고 문화주택의 산뜻한 지붕마다에 해빛이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어제날의 《버섯동네》와 몰라보게 전변된 오늘의 작업반마을, 대중의 정신력분출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웅변으로 보여주는 참으로 뚜렷한 대조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