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의 력사가 보여주는것은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72년 7월 4일 평양과 서울에서는 전체 조선민족의 크나큰 기대와 관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였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4남북공동성명의 정신은 한마디로 말하여 나라의 통일문제를 민족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민족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것이다.
남북공동성명의 발표로 우리 민족은 공동의 원칙과 견해를 가지고 통일을 위한 길에서 전민족적인 공동보조를 맞추어나갈수 있는 조국통일의 초석, 거족적인 통일대강을 가지게 되였다.
분렬 27년만에 처음으로 북과 남이 합의한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4남북공동성명의 발표는 온 겨레를 감격과 환희로 끓어번지게 하였고 세계를 충격과 경탄의 도가니에 잠기게 하였다.
이때의 광경에 대하여 남조선의 한 통신은 《온 민중들의 표정은 남북분단의 장벽이 한꺼번에 무너지는것을 보는듯 경악과 흥분속에 휩싸여있었으며 온 거리가 술렁이고 일터마다에서 모든 업무가 중단될 정도였고 곳곳에서 〈와!〉 하는 함성과 놀라움이 겹친 환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고 전하였으며 신문들도 이날의 감격을 8.15해방에 비길만큼 컸다고 하면서 《7.4성명은 새 민족사의 서장》, 《자주통일의 거보》라고 대서특필하였다.
세계의 통신, 방송, 신문들도 북과 남에서 울려퍼진 공동성명의 내용을 앞을 다투어 전하였다.
미국신문 《뉴욕 타임스》는 《미국무성 당국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공동성명문안의 어구는 남북조선안의 상반되는 립장을 타협한것으로서 합의된 3대통일원칙이 북조선측 주장을 반영한것 같다.》라고 썼으며 일본잡지 《세까이》는 《큰 민족적환희의 정을 가지고 맞이한 남북공동성명의 내용에서 류달리 중시되고있는것은 자주적통일에로의 방향을 명확히 찍은것이다.》라고 평하였다.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후 5일동안에만도 40여개의 국제기구가 그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였으며 1973년에 진행된 유엔총회 제28차회의에서는 조국통일3대원칙을 지지하고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을 즉시 해체할데 대한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였다.
7월 4일, 정녕 이날은 오래동안 대결과 페쇄의 일로를 걸어온 북남관계에 첫 파렬구를 낸 력사의 날이며 조국통일3대원칙을 북과 남의 공동의 통일강령으로 겨레의 가슴에 깊이 새겨준 뜻깊은 날이였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되는 오늘까지도 조국통일을 바라는 민족의 숙망은 실현되지 못하고있으며 조선반도에서는 대결과 긴장격화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있다.
그 원인은 력대남조선당국이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외면하고 북남합의들을 성실히 리행하지 않은데 있다.
7.4남북공동성명발표이후에도 여러 북남합의들과 선언들이 채택되였지만 남조선의 력대 집권세력은 《정권》의 자리에 들어앉기 바쁘게 민족자주가 아니라 《한》미동맹강화만을 념불처럼 외워댔으며 동족을 주적으로 선정하고 《흡수통일》의 망상에서 깨여나지 못한채 반목과 대결을 선동하는 불순한 언행들을 거리낌없이 늘어놓았다.
지나온 50년의 력사는 온 겨레가 환호하는 공명정대한 통일방안이 마련되여있다고 해도 그 리행이 담보되지 않는 한 조선반도의 긴장격화는 언제가도 해소될수 없으며 남조선당국의 외세추종과 뿌리깊은 동족대결의식, 사대적근성을 뿌리뽑지 않고서는 민족문제에서 해결될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외세추종, 외세공조가 아니라 민족자주의 립장에서 북남선언들을 무겁게 대하고 성실히 리행해나가야 한다는것이 우리 공화국이 일관하게 내세우고있는 원칙적립장이다.
민족의 신성한 합의는 안중에도 없이 외세에 추종하여 동족대결책동에만 매여달리는 자들은 온 겨레가, 력사와 후대들이 준엄히 심판할것이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