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세월의 갈피속에 새겨진 충성과 헌신의 값높은 자욱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봉화화학공장 직장장 김영선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와 집단의 존경속에서 살기를 바란다.하지만 그것은 바라거나 요구한다고 하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사회와 집단 나아가서 조국과 인민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 시대와 혁명앞에 무엇을 해놓았으며 어떤 자욱을 남겼는가에 따라 보람차고 긍지높은 생으로 빛날수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지난 45년세월 당이 맡겨준 영예로운 초소를 불같은 충성과 열정, 뜨거운 사랑과 정으로 굳건히 지켜온 봉화화학공장 직장장 김영선동무,
우리는 그가 걸어온 인생길을 통하여 만사람이 공감하고 찬양하는 값높은 삶이란 어떤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심장깊이 새겨보게 된다.
일편단심으로 걷는 길
리상도 컸고 꿈도 많았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중학교졸업을 앞두고있던 김영선동무의 가슴은 앞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올랐다.배움의 전당에서 과학탐구의 나래를 한껏 펼친 름름한 대학생, 과학기술로 조국을 받드는 어엿한 과학자…
그러던 어느날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가 사는 고장을 몸소 찾아주신 소식에 접하였다.그날 꿈결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을 멀리에서나마 뵈옵게 된 그의 심장은 터질듯 한 격정으로 세차게 높뛰였다.
《영선아,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고장에 규모가 큰 화학공업기지를 일떠세우도록 하여주시고 건설전투의 앞장에 너희들, 새 세대 청년들을 불러주시였다.
보답이란게 뭐겠니.우리 수령님께서 바라시는대로 살고 당에 기쁨을 드리는게 바로 보답이 아니겠냐.》
전쟁로병이며 오랜 당일군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새겨들을수록 김영선동무는 가슴속에 무엇인가 크고도 묵직한것이 자리잡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새 세대로서, 피끓는 청춘으로서 내가 해야 할바는 무엇인가.)
그는 결심했다.당이 부르는 보람찬 초소에서 청춘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치리라!
이렇게 되여 김영선동무는 인민경제발전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게 될 화학공업기지건설장에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게 되였다.
보람찬 로동생활을 시작하는 날 들끓는 건설장의 한복판에 선 그의 가슴은 저도모르게 뻐근해졌다.난생처음 보는 우람찬 강철구조물이며 시작과 끝을 모르게 뻗어간 무수한 도관들…
그 모든것이 무엇을 위한것이고 어디에 필요한것인지는 다 알수 없었지만 흥미있고 신묘한 화학의 세계를 남먼저 파헤칠 야심만만한 포부와 결심이 그의 가슴속에 바위처럼 들어앉았다.
공장을 건설하던 나날은 물론 완공된 공장의 첫 세대로서 당당한 기대공이 되였을 때에도 김영선동무는 하루를 분과 초로 쪼개며 줄달음쳐살았다.신입기대공들을 위해 조직한 실습기간 자기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노력한 결과 어떤 어려운 설비운영도 능히 맡아할수 있는 기능을 남먼저 소유하게 되였고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공부하는 나날에도 휴식참이나 잠자리에서조차 늘 참고서속에 파묻혀살다싶이 하여 복잡한 화학반응공정을 손금보듯 파악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것이 해결된것은 아니였다.아직 로동계급의 첫발을 뗀데 불과한 그가 기술기능에 앞서 심장속깊이 간직해야 하는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언제인가 김영선동무는 무슨 일인가에 열중하고있는 나이많은 기대공을 띄여보게 되였다.가까이 다가가보니 방금 자기가 돌아본 설비를 다시 조작하고있는것이였다.설비운영에서는 막힘이 없다고 자부하고있던터인지라 그는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아바이, 이 공정에서 0.01정도의 편차는 허용될수 있지 않습니까.》
한동안 김영선동무를 유심히 바라보던 오랜 기능공의 입가에 미소가 비꼈다.
《공정상에서는 일없을지 몰라도 우리 량심엔 0.01이 아니라 0.001의 편차도 있을수 없어.》
그날 기대공아바이는 김영선동무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가는 로동계급의 량심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 뜻밖의 정황에서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설비를 구원한 아바이의 영웅적인 모습을 통하여 김영선동무는 심장으로 깨달았다.그 어떤 기술이나 기능에 앞서 수령에 대한 깨끗한 충성심과 로동계급적량심을 간직하는것이야말로 자기가 지녀야 할 첫째가는 본분이라는것을.
언제나 수령의 사상과 의도를 심장에 아로새기고 그에 끝까지 충실하려는 높은 자각, 이것은 그가 평범한 기대공으로부터 작업반장, 책임기사를 거쳐 직장장으로 사업하는 전기간 어느 한순간도 드틴적이 없는 삶의 신조였다.지난 수십년세월 김영선동무는 당의 뜻을 받들어 더 많은 화학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투쟁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우리는 여기에 그 모든 과정과 이야기를 다 담지는 못한다.그러나 위급한 순간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여 공장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는 일터의 숨결을 지키고 20살의 애젊은 나이에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닌 사실앞에서, 지난 기간 우리의 힘과 기술로 우리 식의 생산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 수령의 유훈을 빛나게 관철하고 어떤 어려운 조건과 환경속에서도 생산을 정상화할수 있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한 성과속에서 화학공업기지에 새겨진 김영선동무의 뚜렷한 삶의 자욱을 어렵지 않게 더듬어볼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어느날 공장의 어느 한 회의실에서는 긴장한 침묵이 흐르고있었다.생산과정에 나오는 원료의 부산물로 여러가지 쓸모있는 화학제품을 만들기 위한 공정도입문제를 토의하는 자리였다.열띤 토론끝에 깃든 정숙을 깨치며 한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김영선동무였다.
《새로운 생산체계에 반드시 새로운 촉매제를 써야 한다는 리론에 찬성할수 없습니다.그러자면 많은 량의 촉매제를 계속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가지고서는 화학제품생산을 늘일데 대한 당의 방침을 관철할수 없습니다.》(전문 보기)
김영선동무(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