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슴배인 피의 원한을 잊지 말라

2025년 5월 23일《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수안군계급교양관 강사들의 이동강의를 보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반제계급교양의 도수를 높여 그들이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침략적, 략탈적본성에 대하여 똑똑히 알도록 하여야 합니다.》

얼마전 수안군계급교양관을 찾았던 우리는 이동강의를 떠나는 강사들을 만나게 되였다.

들끓는 현실에 달려나가 군안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계급의 전위투사들로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하여 헌신하는 계급교양관강사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싶은 마음으로 우리도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강사들이 도착한 곳은 군농기계작업소였다.

농기계부속품생산과 수리작업이 진행되고있는 군농기계작업소는 모내기철을 맞아 더욱 부글부글 끓고있었다.쉴참이 되자 로동자들이 현장에 모여앉았다.

관장 전애경동무가 미제의 만행을 보여주는 이동강의판을 펼쳐놓고 그들앞에 나섰다.

지금으로부터 75년전 이 땅에서 침략전쟁을 도발하여 우리 인민의 가슴에 피맺힌 한을 남긴 불구대천의 철천지원쑤 미제의 야수적만행을 단죄하는 그의 이야기에 이어 강사들이 출연한 시와 노래 《조국은 내 삶의 전부》가 로동자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이어 또 다른 강사가 로동자들앞에 나섰다.

오늘날 우리들 한사람한사람이 지켜선 일터와 초소는 바로 계급적원쑤들과 판가리싸움을 벌리는 계급투쟁의 전호이다.감히 우리를 어째보려는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침략전쟁연습소동에 파렬구를 내고 국가부흥의 전면적발전기를 확신성있게 열어나가기 위해 생산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키자.

강사의 열렬한 호소에 로동자들은 주먹을 부르쥐고 노래 《죽음을 미제침략자들에게》를 힘차게 부르는것으로 화답하였다.그들은 이동강의를 마치고 떠나는 강사들에게 미제침략자들에게 퍼부을 탄약을 생산하는 심정으로 농기계부속품생산과 수리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둘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계급교양관으로 돌아온 강사들에게는 휴식이 없었다.다음날의 이동강의를 위한 준비로 누구나 바빴다.

다음날 아침 계급교양관강사들은 이동강의판을 메고 석담리로 발걸음을 다그쳤다.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원쑤놈들에게 희생된 당시 군녀맹위원장이였던 김재숙동지의 남동생인 김태덕로인도 그들과 함께 동행하였다.

석담리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만행이 감행된 곳이였다.

우리가 현지에 도착했을 때 농장에서는 올해 당이 제시한 알곡생산목표수행에서 관건적고리인 모내기가 한창이였다.

강사들은 제3작업반으로 향하였다.그곳에는 전쟁시기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이 무고한 주민들을 가두어놓고 감옥으로 리용하던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여있었다.

잠시후 모내기의 휴식참을 리용하여 농장원들과 지원자들이 그곳으로 모여왔다.

김태덕로인이 사람들앞에 비분강개한 모습으로 나섰다.

이윽고 그는 원한서린 건물을 가리키며 원쑤놈들의 치떨리는 살인만행을 고발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김재숙동지를 체포한 원쑤들은 악질빨갱이를 잡았다고 뇌까리며 집게로 손톱을 잡아뽑는 등 악착한 고문을 들이대다가 그가 조금도 굽어들지 않자 사형장으로 끌어냈다.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그는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로동당 만세!》를 소리높이 웨쳤다.그러자 원쑤들은 그의 목을 삽으로 쳐서 잘라버리고도 성차지 않아 그의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비단 그만이 아니였다.전화의 나날 석담리에서만도 수많은 무고한 인민들이 원쑤들의 손에 억울하게 희생되였다.…

이어 로인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원쑤들에게 희생된 한 시인의 시를 읊었다.

우리 다시 여기서 살아 일어나리라

다시 일어나 부르고부르리라

우리의 진리이며 우리의 행복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로동당 만세!

 

강사들의 선창에 따라 《우리의 총창우에 평화가 있다》의 힘찬 노래소리가 전야에 울려퍼지고 한 농장원은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이렇게 피력했다.

《나는 오늘 우리가 살며 일하는 이 땅에 얼마나 피절은 당부가 슴배여있는가를 다시금 똑똑히 알게 되였습니다.쌀로써 온갖 원쑤들의 책동을 짓부시고 우리의 사회주의를 지켜갈 각오를 안고 앞으로 이 땅을 더 잘 가꾸어가겠습니다.》

이것은 그만이 아닌 농장원들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한해 농사에서 중요한 영농공정인 모내기를 단순한 영농사업으로만이 아니라 치렬한 계급투쟁과정으로 여기고 오늘의 하루하루를 애국적헌신과 열정으로 이어가는 농업근로자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날로 로골화되는 원쑤들의 반공화국압살책동에 파렬구를 내며 생산과 건설을 힘있게 다그쳐가고있는 온 나라 인민의 모습을 보았다.

혁신의 기상 넘치는 농장벌을 뒤에 남기고 또다시 이동강의의 길을 떠나는 계급교양관강사들과 함께 우리도 취재길을 이어갔다.

박춘근

 

착취자의 본성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제침략자들이 살판치는 땅에서 가난한 조선사람들이 살 곳이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해방전 황해도의 어느한 광산에서 있은 일이다.살길을 찾아 여기저기에서 모여온 막벌이로동자들은 집이 없어 버럭더미의 한쪽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그속에는 열한명이나 되는 식구들과 함께 고향을 등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그 움막이라는것은 누우면 하늘이 보이고 새벽이면 이슬이 방울져내리는 그야말로 짐승우리만도 못한 곳이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움막에 뜻밖에도 세금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이게 웬일인가.집도 아닌 움막에 세금이라니?

그것은 돈밖에 모르는 광주놈이 고안해낸것이였다.

로동자들은 세금을 물지 못하면 거처지에서 쫓겨날 형편에 놓이게 되였다.그리하여 이제 다시 갈데도 없는 그들은 이를 악물고 광산일을 하였다.애어린 자식들까지 아버지를 따라 광산막장에 들어가 광차에 광석을 싣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하지만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어도 돈을 벌기는 고사하고 굶기가 일쑤였다.

세금을 바쳐야 할 날이 지난 어느날 아침이였다.

개화장을 짚고 움막에 나타난 광주놈은 《래일중으로 돈을 바치지 않으면 막을 헐어치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가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세금을 마련해보자고 누데기같은 옷가지라도 싸들고 시장으로 떠났고 그것마저 없는 로동자들은 아침일찍 광산막장으로 들어갔다.

한낮이 되였을 때였다.

갑자기 《굴이 무너졌다!》, 《사람 살리시오!》 하는 비명소리가 울려왔다.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달려갔을 때 갱입구에는 광주놈이 뻗치고서있었다.

광주놈은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채 무너진 갱을 그대로 페갱해버리겠다고 씨벌여댔다.

격분한 로동자들은 광주놈을 때려엎고 무너진 갱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시신을 밖으로 내왔다.

온 광산마을이 울음바다가 되여버렸다.하지만 아무리 가슴을 치며 통곡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라를 빼앗겼던 그 세월 조선사람들의 운명은 이렇듯 비참하였다.(전문 보기)

 

일제의 야수적만행에 격분을 금치 못하고있다.
-온성군계급교양관에서-

본사기자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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