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론해설] : 일본은 성노예범죄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4)
5.범죄증거인멸 및 은페책동
일본정부는 1945년 8월 15일의 패전을 전후한 시기에 모든 자료를 소각하도록 명령하였다.이러한 소각명령은 일본왕과 국가의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인도에 대한 범죄증거를 인멸하려는데 기본목적이 있었다.그리하여 륙군참모본부와 륙군성, 해군성은 모든 륙군부대와 해군부대에 기밀문서들을 소각할것을 명령하였다.
대장상이였던 히로세 도요사꾸는 《나는 종전직후 자료는 태워버리라는 방침에 따라 소각하였다.이것은 우리가 각의에서 결정한것이였다.》고 증언한바 있다.
소각하게 된 자료들중에는 일본군성노예자료도 들어있었다.일본은 국가적인 성노예제를 수립하고 운영한 자료를 소각함으로써 특대형반인륜범죄를 은페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자료를 다 없앨수 없었다.가해자들과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이 있으며 소각에서 루락된 문서들도 많다.미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일본군성노예만행자료들이 나타나고있는것은 일본의 자료소각계획이 련합군의 공격으로 인해 채 실행되지 못하였고 많은 자료들이 미국으로 운반된 사정과 관련된다.
그 자료들은 일본의 국가권력이 일본군성노예제를 고안해내고 직접적으로 관리운영하였다는것을 여실히 실증해주고있다.유엔특별보고자는 보고에서 여러 자료들이 《일본군이 〈위안소〉에 대해 어느 정도로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깊이 관계하고있었는가에 대해 의심할 여지없이 밝혀주고있을뿐아니라 〈위안소〉가 얼마나 정당화되고 제도화되였는가를 명백히 보여준다.》고 단언한바 있다.
일본정부는 이렇게 패망을 전후하여 조직적증거인멸을 공공연히 감행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일본군성노예범죄와 관련한 자료들을 극력 은페하고있다.
일본군성노예제수립과 운영에 가담한 주요범죄자들이 입을 다물고 범죄행위에 대해 자백하지 않고있다.이전에 방위청 장관, 수상을 한바 있는 나까소네 야스히로는 자기의 회상록 《종말없는 해군》에서 태평양전쟁시기 자기가 해군대위의 견장을 단 3 000명의 부대지휘관으로서 직접 《〈위안소〉를 만들어준적도 있다.》고 말하여 스스로가 일본군《위안소》설치에 관여하였다는것을 고백하였다.하지만 고령이 된 오늘에 와서는 침묵을 지키고있다.
지금 방위성과 경찰청, 후생로동성, 재무성 등에는 방대한 군성노예범죄관련자료들이 보관되여있다.하지만 철저히 은닉해놓고 공개하지 않고있다.
아베를 비롯한 일본의 현 집권계층은 소장된 문서자료의 공개를 거부하는 한편 력사교과서들에서 일본군성노예범죄관련사실을 서술하지 못하도록 하고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초에 일본군성노예문제가 불거지게 되자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든 출판사들에서 일본군《위안부》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그에 대하여 기술하였다.그런데 일본정부는 교과서에 대한 《검정》이라는 공간을 리용하여 출판사들에 끈질기게 압력을 가하였다.그리하여 이제는 거의 모든 력사교과서출판사들에서 일본군성노예범죄에 대한 기술이 없어지고말았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