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화/エピソード’ Category
혁명일화 : 하루반과 일년내내
지난 1월 중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국가과학원을 현지지도하신 혁명활동소식은 과학자,기술자들뿐아니라 온 나라 인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오전내내 국가과학원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나라의 과학발전에 강령적인 지침으로 될 고귀한 가르치심을 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길로 과학자휴양소가 일떠서게 될 연풍호를 찾으시여 오후시간마저 다 바치신 소식은 삽시에 전설처럼 퍼져갔다.
바로 그날 저녁에 있은 일이다.
경애하는 김 정 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과학자,기술자들은 나라의 귀중한 보배들이며 과학기술사업은 조국의 만년대계를 위한 애국사업입니다.》
온 하루 경애하는 원수님을 몸가까이 모시는 영광을 지니였던 국가과학원 책임일군은 저녁에 또다시 원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우리 과학자들을 위해 저녁시간마저도 바치시다니!…)
국가과학원 책임일군의 눈앞에는 새벽에 경애하는 원수님의 뜻밖의 전화를 받아안던 그 시각부터 꿈같이 흘러간 하루의 순간순간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밤새 생각해보니 은정과학지구에 건설할 거리이름은 《위성과학자거리》라고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던 가슴뜨거운 그 말씀을 받아안으면서,연풍호까지 달려오느라 산골길의 흙먼지에 황토색으로 변한 원수님의 승용차를 바라보면서 거듭거듭 눈물을 삼키였던 그였다.(전문 보기)
혁명일화 : 눈을 뜬 멋있는 사진
희생된 동해의 해군용사들은 오늘도 사랑하는 군항의 잠풍한 언덕에서 조국의 푸른 바다를 지켜보고있다.
묘비에 돌사진으로 고착된 그들의 모습은 부모들과 전우들도 처음 보는 생전의 가장 훌륭한 초상들이다.
이 사진들에는 참으로 감동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다.
경애하는 김 정 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지휘관과 병사는 다같은 최고사령관의 귀중한 전우들입니다.》
지난 11월 1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들의 묘를 돌아보실 때였다.
용사들의 돌사진을 하나하나 보시면서 사진이 잘되였다고,금시라도 일어나 반길것만 같다고 하시며 격정을 애써 누르시던 그이께서는 리은철동무의 묘비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묘비에 손을 얹으시고 돌사진을 보시며 특별히 품을 들여 그의 사진을 만들도록 하던 때가 생각나시는듯 이 동무는 눈을 감은 사진의 원본이 올라왔댔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의 놀라움과 호기심이 비낀 눈길들이 그의 돌사진에로 향하였다.(전문 보기)
혁명일화 : 113건의 형성안
문수물놀이장이 얼마나 희한하고 황홀하게 꾸려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이 종합적인 물놀이장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인민을 위해 온갖 심혈을 다해 마련해주신것이라는것도 모두가 안다.
하지만 물놀이장의 방대한 규모나 다종다양한 시설들을 수자로 계산해보는 사람들은 있을수 있어도 이 희한한 물놀이장의 형성안이 몇건이나 되는지 그 정확한 수자를 아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것이다.
경애하는 김 정 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모시는것처럼 우리 인민을 받들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려는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마식령속도》창조의 거세찬 불바람속에 완공된 문수물놀이장이 준공을 앞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문수물놀이장에 또다시 나오시였다.
어버이장군님의 리상,인민의 꿈이 또 하나 현실로 꽃펴나게 된것이 너무도 기쁘시여 시종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돌아보시는 경애하는 그이의 앞에 문수벌이 좁다하게 거대한 물놀이장의 전경이 황홀하게 펼쳐졌다.(전문 보기)
혁명일화 : 바다밑에서의 축구경기
바다밑에서 축구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의문부터 앞세울것이다.
바다밑에서 축구를 하다니?!
세상을 놀래우는 이 꿈같은 사실이 수십년전 서해갑문건설장에서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 일 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 정 일동지의 령도밑에 우리 혁명은 새로운 앙양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4월 위대한 장군님께서 서해갑문건설장을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
오래도록 가물막이공사장이며 기본언제건설장,멀리 대형부재장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으로부터 공사진행정형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였다.
중요공사대상별력량배치정형과 앞으로 진행할 기본언제,가물막이,무넘이언제,갑실공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며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는 갑문건설을 위한 전투조직과 지휘에 문제가 있는것 같다고,자신의 생각에는 주타격목표가 없는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전문 보기)
혁명일화 : 복받은 병사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느 한 인민군부대를 현지시찰하신데 대한 소식이 실린 주체93(2004)년 4월 14일부 《로동신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강철민동무를 비롯한 중대의 군인들이 한마음한뜻이 되여 투쟁의 노래, 혁명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충천한 기세로 힘차게 전진하고있는데 대하여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그들의 공연성과를 축하해주시였다. …
강철민, 그는 누구인가.
어떻게 되여 부대의 지휘관도 아니고 평범한 병사가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활동보도에 소개되게 된것인가.
여기에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국보위는 공민적의무에 대한 충실성의 최고표현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부대를 찾으신 그날 근무장소와 병사들의 침실을 돌아보시고 중대군인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아주실 때였다.(전문 보기)
혁명일화 : 사랑의 면회
어느해 12월에 있은 일이다.
흐릿해진 하늘에서 소담스러운 하얀 눈송이들이 쏟아져내리는 날이였다.
오랜 병환으로 치료를 받던 인민군대의 한 지휘관은 아침부터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고있었다.
방금전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시였는데 저녁에 찾아오시겠다는것이 아닌가.
(위대한 장군님을 어떻게 모신단 말인가.)
그도그럴것이 오래동안 치료를 하였지만 차도는커녕 최근에는 설상가상으로 전염성이 강한 몹쓸 병으로 일체 면회사절이라는 선고까지 받게 된 그였던것이다.
(가까운 동지들은 물론 가족까지도 받아들이지 않던 내가 어찌…아,그리운 장군님!)
육신의 고통보다 마음의 괴로움이 더욱 그를 괴롭히였다.
이러는 사이에 겨울의 짧은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져갔다.
게다가 저물녘에는 바람까지 왜 이다지 모질게 불어치는지.
온종일 기쁨 절반,괴로움 절반으로 그의 몸은 녹아내리는것만 같았다.(전문 보기)
혁명일화 : 온천마을의 《성황당》이야기
위대한 령도자 김 정 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어머님은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를 받들어나가는 길에서는 한치의 드팀도 없으시였습니다.》
해방된 이듬해 봄 어느 한 마을에서 있은 이야기이다.
마을에는 한겨울에도 더운 김을 피워올리는 온천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병치료에 좋다는것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있었다.특히 녀성들의 부인병치료에 특효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때부터인지 이곳에서는 《룡신당》에 가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고 《애기소》에 돈을 한줌 싸서 넣으면 망짝같은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돌게 되였다.그 소문을 들은 많은 녀성들이 아이를 낳으려는 간절한 소망을 안고 찾아와서는 《룡신당》과 《애기소》를 찾아가 빌군 하였는데 《애기소》에 뿌려진 동전을 모두 찾아 쌓아놓는다면 아마 큰 무지를 이룰 정도였다.
이 허망한 소문을 퍼뜨리는 주인공이 바로 마을의 박씨성을 가진 한 할머니였다.사람들을 모여놓고 그럴듯하게 손짓,몸짓을 써가며 이야기하면서 어디에 사는 누구는 그렇게 하여 아이를 낳았다고 그 실례까지 루루이 엮어내려가는데 거기에 끌려들지 않은 녀성이 없었다.
어느날 저녁무렵 그의 집에는 많은 녀성들이 모여들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전문 보기)
혁명일화 : 닭알 한알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한평생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 정 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한평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시였습니다.》
찌물쿠는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해 여름날이였다.
끊임없는 현지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바다기슭에서 점심시간을 맞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잔파도가 일렁이는 도래굽이의 펑퍼짐한 바위우에 이르시자 동행한 일군들에게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준비해가지고오신 점심꾸레미를 펴놓게 하시였다.너무도 검소하였다.
일군들은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하며 어느 한 곳에 준비시킨 점심식사때문에 아쉬워하였다.
그러한 일군들을 곁에 불러앉히시고 점심식사를 하고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의 얼굴을 보니 무슨 의견이 있어하는것 같은데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나는 오늘 동무들과 함께 시원한 바다기슭에서 땀을 들이며 점심식사까지 하고나니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다른 생각은 말고 우리 재미나는 이야기를 좀 나눕시다라고 하시였다.(전문 보기)
혁명설화 : 경축의 날에 드신 축배
공화국창건기념일을 마중해가는 이즈음 온 나라 군대와 인민은 잊지 못할 65년전 력사의 그날 우리 조국의 래일을 그려보시며 밝게 웃으시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모습을 뜨거운 격정속에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 일 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가였습니다.》
주체37(1948)년 9월 9일이였다.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거리마다에 설치된 확성기들에서는 하루종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시였다는 격동적인 소식이 거듭 전해지고 평양은 말그대로 명절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뜻깊은 그날 댁으로 들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가정에서도 이 기쁜 날을 함께 축하하자고 하시며 식탁으로 향하시였다.(전문 보기)
【혁명전설】:어둠속에서 나타난 흰새
지난 조국해방전쟁은 그 엄혹성과 간고성에 있어서 류례없는 피의 결전이였다.전화의 그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늘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전선강행군길을 걸으시며 비범한 군사적지략과 천리혜안의 예지로 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였다.
참으로 감동깊은 전설적일화들이 그이의 전선길의 자욱마다에 소중히 수놓아져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 정 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하늘이 낸분이시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39(1950)년 7월 어느날 전선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수안보를 찾으실 때의 일이다.
적들의 야간폭격이 너무 심하여 그이를 모신 승용차는 전조등도 켜지 못하고 달리였다.하늘이 이마에 내려와 붙는다는 여름철의 장마비구름이 무겁게 내리덮이여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조차 가려보기 힘든 캄캄한 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일행은 개성일대의 어느 크지 않은 강에 이르러 멈춰섰다.장마에 물이 불어나 승용차가 더 전진할수 없게 되였던것이다.인적드문 곳이여서 도움을 청할수도 없었고 물어볼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전문 보기)
혁명일화 : 헌신의 로고를 전하는 눈물겨운 사연
오늘도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속에는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초강도강행군길에서 색안경을 끼시였던 위대한 장군님의 숭엄한 모습도 깊이 간직되여있다.
사랑하는 병사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실 때에도,온 나라의 대경사를 안아온 현대적인 비날론공장준공을 경축하는 함흥시군중대회연단에서도,개점을 앞둔 광복지구상업중심을 찾으시였을 때에도 색안경을 끼시였던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어찌하여 우리 장군님께서 색안경을 끼시고 현지지도의 자욱자욱을 이어가시였던가.
위대한 수령 김 일 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 정 일동지는 인민의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훌륭한 풍모를 다 갖추고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헌신성을 지니고있습니다.》
잊지 못할 하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심장을 두드린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한 회의에 참석하실 때였다.
회의장에 나가시기에 앞서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은 몹시 초조하시였다.
며칠밤을 꼬박 밝히시며 일하신 까닭에 눈은 충혈되고 입술이 부르트시였기때문이였다.(전문 보기)
혁명설화 : 증산하고 절약하자
절약은 곧 증산이다.
절약이 없는 증산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이 없다.
한방울의 물,한g의 석탄도 극력 아껴쓰며 더 많은것을 생산하기 위해 애쓰는것이 곧 애국이다.
김 정 일애국주의가 높이 발휘되는 이 땅의 벅찬 숨결을 대할수록 부강한 새 조국건설에 일떠선 우리 인민을 증산절약에로 이끌어주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자애깊은 손길이 못 잊을 추억을 떠올린다.
위대한 수령 김 일 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동무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조국과 인민앞에 남긴 고귀한 업적은 길이길이 빛날것입니다.》
주체36(1947)년 4월 어느날 김정숙동지께서 평양시에 자리잡고있는 어느 한 차수리공장을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
김정숙동지께서 작업장에 들어서니 마당 한쪽에서는 여러명의 로동자들이 해체하여놓은 자동차의 기관을 한창 수리하고있었다.
로동자들이 일하고있는 곳으로 다가가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에게 수고한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전문 보기)
혁명전설 : 파탄된 《포위》작전
위대한 령도자 김 정 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수령님은 탁월한 사상리론가,위대한 정치가,강철의 령장이시였을뿐아니라 신념과 의지의 제일강자,제일배짱가이시였습니다.》
주체26(1937)년 3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소탕하의 밀림속에서 수천명의 대적과 맞다들게 되였다.이미 한차례의 전투를 통하여 심대한 타격을 받은 적들은 병력을 더욱 증강하여 포위망을 형성한 다음 조선인민혁명군을 소탕하골안에서 전멸시키려고 시도하고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소탕하의 수십리 골안에는 적들이 피운 우등불의 바다가 펼쳐졌다.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적들의 포위망을 뚫고나가자면 어차피 큰 전투를 치르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긴장되여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태연하신 안색으로 적진을 바라보시며 전령병들에게 지휘관들을 모두 모이게 하라고 이르시였다.(전문 보기)
혁명설화 : 뜻깊은 력사의 총소리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는 온 나라에 명성이 자자한 빨찌산녀장군이시기 전에 혁명의 위대한 어머니이시였다.
어리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슴속에 총대의 귀중함을 새겨주시고 그 백두산총대를 높이 들고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나가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우리 어머님,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으로부터 넘겨받으신 권총을 더없이 귀중한 유산으로 여기시고 우리 조국을 그 어떤 천만대적이 달려들어도 추호도 끄떡없는 불패의 군사강국으로 강화발전시키시였다.
이와 관련한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다.
해방후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애국의 총대에 선군의 의지를 담으시고 뜻깊은 총성을 울리셨던 이야기는 오늘도 사람들의 가슴을 후덥게 적셔주고있다.
경애하는 김 정 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김 일 성-김 정 일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의 길,선군의 길,사회주의길을 따라 끝까지 곧바로 나아가야 합니다.》(전문 보기)
혁명설화 : 숙영지에서 진행된 사령부당세포회의
수령결사옹위의 대오,당정책결사관철의 기본전투단위,대중의 심장속에 뿌리박은 당의 튼튼한 기층보루로 우리 당세포들을 강화발전시키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되새길수록 항일의 나날에 진행된 당세포회의에서 유격대원들의 가슴마다에 수령결사옹위정신을 심어주시던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의 모습이 숭엄히 어려온다.
위대한 령도자 김 정 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보위하는것이 조선혁명을 지키는 길이라는것은 우리 어머님의 절대불변의 신조였습니다.하기에 어머님은 수령님의 신변호위사업을 첫째가는 임무로,신성한 의무로 여기시고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목숨으로 지키시였습니다.》
주체29(1940)년 가을 어느날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숙영지에서 진행된 사령부당세포회의때 있은 일이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회의에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전문 보기)
혁명설화 : 원아들에게 베푸신 뜨거운 은정
경애하는 김 정 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는 친혈육의 정으로 혁명학원원아들의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신 자애로운 어머니이시였으며 혁명가유자녀들을 혁명의 대를 이어나갈 계승자들로 자라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스승이시였습니다.》
주체37(1948)년 6월 어느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백두산에서 함께 싸운 녀투사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계실 때였다.
한 녀투사가 정성껏 만든 송기떡을 가지고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찾아왔다.
송기떡에서는 싱그러운 소나무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고있었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송기떡을 보시는 백두산녀장군의 감회는 참으로 크시였다.
녀투사들에게 이 송기떡을 보니 동지들 생각이 난다고 젖으신 음성으로 말씀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산에서 싸우던 동지들이 다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아마 옛말을 하면서 이 송기떡을 먹었을것입니다.》라고 하시며 간고하였던 항일의 나날들을 뜨겁게 추억하시였다.(전문 보기)
혁명설화 : 다심한 인정미
위대한 령도자 김 정 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혁명동지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뜨거운 인정미는 어머님의 천품이였습니다.》
주체36(1947)년 8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군인들의 배를 타시고 대동강물결을 헤가르며 항행하게 되시였다.
언제나와 같이 군인들의 생활조건부터 알아보군 하시는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날도 스스럼없이 배의 취사장에 들리시여 한창 끓고있는 국가마뚜껑을 열어보시였다.
가마안에서는 배추국이 설설 끓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 일군에게 군인들에게 생선국은 끓여먹이지 못하는가고 물으시였다.그는 후방부에서 절임한 물고기를 공급해준다는것과 그것으로 이따금씩 반찬을 해먹이고있다는데 대하여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동강에도 수산합작사(당시)가 조직되여있겠는데 거기에서 잡는 물고기를 받지 못하는가고 다시금 물으시였다.받지 못한다고 말씀올리는 일군에게 그이께서는 대동강에는 여러가지 물고기들이 많은데 그것을 보면서도 잡아먹지 못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동무들이 짬시간을 리용하여 물고기와 조개들을 잡으면 반찬감은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전문 보기)
혁명설화 : 후대들을 위하여 부탁하신 글
위대한 수령 김 일 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동무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조국과 인민앞에 남긴 고귀한 업적은 길이길이 빛날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되고 당의 빛나는 교육정책아래 눈부신 변혁이 이룩되고있던 주체38(1949)년 9월 어느날이였다.
민주청년사(당시)에서는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소년단사업을 더욱 강화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할 목적으로 사설 《소년단사업강화를 위하여》를 준비하여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기로 하였다.
병석에서 이 사실을 아신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께서는 몸소 원고를 보아주시고 매우 중요한 글인데 틈을 봐서 수령님께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하시였다.
신문사일군들은 크나큰 기쁨에 휩싸여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 원고를 드리지 못하신채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너무도 뜻밖에 우리곁을 떠나실줄 어이 알았으랴.(전문 보기)
혁명설화 : 원아들의 자애로운 어머니
위대한 령도자 김 정 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언제나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속에 계시면서 친부모도 다하지 못할 뜨거운 사랑과 은정으로 원아들의 학습과 생활을 세심히 돌보아주시였습니다.》
만경대혁명학원,이 성스러운 교정으로 마음달리느라면 원아들의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시여 그리도 따뜻하고 열렬한 정을 부어주시던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의 고결한 사랑이 심장속에 흘러든다.
주체36(1947)년 11월초 어느날이였다.
이날 만경대혁명학원을 돌아보시던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음식그릇을 들고 바쁜 걸음을 옮기고있는 한 유가족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시였다.
그가 올리는 인사를 받으신 어머님께서는 그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느라 얼마나 수고하는가고 하시면서 《그런데 식사는 어데로 가져가는것입니까?》라고 물으시였다.
유가족아주머니는 《…앓는 아이들에게…》 하고는 더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전문 보기)
혁명전설 : 천기를 내다보신 위인
한평생을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혁명력사의 갈피마다에 만사람을 격동시키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수놓아져있는것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 천리혜안의 예지와 과학적통찰력으로 횡포한 자연의 조화를 미리 내다보시고 벼가을을 앞당기도록 하신 사실도 그 하많은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 정 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위대하다는 말만 가지고서는 우리 수령님의 위대성을 다 표현할수 없습니다.우리 수령님은 하늘이 낸분이시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어느해 9월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라의 중대사를 돌보시는 바쁘신 가운데서도 청산벌을 찾으시고 농사작황을 료해하시였다.
가을바람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구수한 낟알향기 한껏 풍기는 논벌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안광에는 밝은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때였다.농장일군들로부터 정당 예상수확고며 농사가 잘된 요인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느닷없이 이제는 벼가을을 서둘러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