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평 : 주제넘는 허욕과 편견에 사로잡히면 일을 그르치기마련이다
오늘 세계의 초점은 력사에 전무후무한 특대사변들이 련발되고있는 조선반도에 집중되여있다.
력사적인 판문점수뇌상봉과 회담으로 장장 70여년이나 조선반도에서 지속되여온 민족분렬의 비극과 대결사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자주와 통일, 평화와 번영에로 나아가는 새로운 력사적흐름이 거창한 대하가 되여 용용히 굽이치고있다.
지구상에서 세기를 두고 가장 오래동안 첨예하게 이어져온 조미적대관계도 싱가포르조미수뇌상봉이라는 《세기의 담판》으로 일시에 극적인 전환을 맞이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화해평화분위기를 푼수없이 휘저으며 관계개선을 저해하는 온당치 못한 발언들이 때없이 튀여나와 만사람이 미간을 찌프리게 하고있다.
최근 남조선당국은 여러 계기에 저들이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공동의 인식밑에 북의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참가와 고위급특사래왕, 남북수뇌회담과 북미수뇌회담에 이르는 《력사의 대전환》을 이끌어냈다고 사실을 전도하며 체면도 없이 자화자찬하고있다.
지어 주변국들과의 련쇄적인 외교로 《북핵문제》해결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분위기를 조성하였다고 청을 돋구던 끝에 나중에는 북과 미국이 국제사회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것이라는 주제넘는 발언도 늘어놓았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대한 맹목과 주관으로 일관된 편견이고 결과를 낳은 엄연한 과정도 무시한 아전인수격의 생억지이며 제 처지도 모르는 희떠운 《훈시》라고 평하지 않을수 없다.
사태의 심각성은 이것이 일부 언론이나 학자의 견해가 아니라 바로 남측의 《국책》에 따른 고의적인 여론확산이며 고위당국자들이 그 주창자로 나섰다는데 있다.
누구든지 사물현상에 대한 평가와 주장을 할수 있지만 일면적인 사고와 편견은 부당한 결과를 산생시키고 정의와 진리를 오도하는 죄악으로 된다.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남조선당국의 사유의 기초이고 발언의 론거이며 행동의 담보인 《한반도운전자론》에 대해 재조명하고 그 실체를 해부해볼 필요를 느끼게 하고있다.
남조선당국이 《한반도평화를 향한 려정의 운전석》을 운운하며 《한반도운전자론》을 들고나온것은 불과 1년전의 일이다.
그 짧은 기간이지만 조선반도문제를 해결할 힘도, 합의를 이끌어낼 능력도 없다는것을 남조선당국이 자인하고 맥빠진 탄식까지 늘어놓았다는것은 내외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것은 조선반도에 조성되였던 전쟁국면이 평화국면으로 180°급선회하는 극적인 현실이 어떻게 되여 펼쳐졌는가를 그들스스로가 인정하였기때문이다.
새해 첫아침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 위대한 전환의 해로 되게 하자는 천출위인의 호소가 천하를 진감한데 이어 평창을 뒤흔들어놓은 통일사절단, 평화사절단의 우렁찬 통일함성과 29일동안에 두차례나 진행된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으로 이 땅우에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시대가 펼쳐지고 고위급회담과 부문별회담들,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에서 진행되는 모든 사업들이 과연 어떻게 마련되였는가.
싱가포르에서 조미수뇌상봉과 회담이 진행된 력사적인 순간은 조미적대관계를 일시에 불식시키고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 조미협력의 시대가 펼쳐지는 엄청난 파격을 가져왔다.
그야말로 우리는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의 새 력사를 써나가기 위하여 할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대범한 조치들을 과감한 실천행동으로, 련발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엄연한 현실은 남조선당국이 《한반도운전자론》을 꺼내든것 자체가 얼마나 비정상인가를 백일하에 드러내보여주고있다.
원래 운전자라고 하면 차를 몰아갈 도로를 선택하고 운전방향과 속도 등을 스스로 판단하고 조절해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남조선당국이 북남관계의 개선과 발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자기 주견을 가지고 제 마음먹은대로 실천해나가고있단 말인가.
남조선당국이 입버릇처럼 외우는 《한반도운전자론》이나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를 위한 《주도적역할론》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상식이하의 궤설인가 하는것은 판문점선언이후 그들자신이 취한 행동만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