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의 갈피에서 : 제2국제당파산의 장본인 카우츠키

주체108(2019)년 3월 12일 로동신문

 

카우츠키는 도이췰란드사회민주당과 제2국제당을 말아먹은 혁명의 변절자로 력사에 기록되여있다.

카우츠키는 오스트리아사회민주당에 입당하는것으로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그는 리론분야에서 초학도에 불과하였다.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본데 기초한 엥겔스의 평가는 이러하였다.

《카우츠키는 괜찮은 친구이지만 타고난 현학자이며 형식적인 인간이여서 그에게서는 복잡한 문제들이 풀리는것이 아니라 간단한 문제도 복잡하여진다.》

그러나 엥겔스는 카우츠키가 나이도 젊고 열성도 있기때문에 리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잘 이끌어주고 내세워주려고 애썼다.뿐만아니라 동지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분에 넘치는 신임을 안겨주었다.카우츠키가 한때 로동계급의 혁명투쟁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고 《리론가》로 자처하게 된것은 다 로동계급의 첫 수령들의 믿음과 신임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카우츠키는 이 모든것을 망각하고 점점 기고만장하여 엥겔스에게 공격의 초점을 맞추고 도전해나섰다.

1890년대에 국제로동운동안에서는 의회투쟁을 계급투쟁의 기본형태라고 하면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평화적이행에 대하여 광고하는 우경기회주의가 나타났다.그것을 선동한 대표적인물이 풀마르였다.

엥겔스는 이러한 경향을 강력히 규탄하는 한편 카우츠키에게 여러차례 편지를 보내여 1875년 맑스가 라쌀주의의 개량주의적본질을 전면적으로 비판폭로하여 쓴 《고타강령비판》을 잡지 《새 세대》에 게재할것을 요구하였다.그러나 풀마르의 기회주의적책동이 나타난 순간부터 뜻있는 동료를 만났다고 속으로 기뻐하던 카우츠키는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가며 어떻게 해서나 《고타강령비판》의 발표를 막으려고 획책하였다.그후 《고타강령비판》에 대하여 일련의 《성명》이라는것을 내는 놀음을 벌려놓은 카우츠키는 여기에서 교묘한 찬사와 알쑹달쑹한 언어유희로 일관된 궤변으로 맑스를 헐뜯어댔다.나중에는 자기가 직접 《에르푸르트강령초안》을 대회에 제출하여 엥겔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이로써 카우츠키는 맑스와 엥겔스를 그들이 가장 증오하는 부르죠아사환군들과 기회주의자들의 편에 서서 역습함으로써 은혜를 원쑤로 갚은 배은망덕한 인간으로 되였다.

이뿐이 아니였다.엥겔스로부터 맑스의 유고정리와 출판을 위임받았을 때에는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기면서 질질 끌다가 《자본론》 제4권을 저자의 의도와 어긋나게 《잉여가치학설사》로 출판하였는가 하면 《자본론》총론을 내면서도 원문과 어긋나게 자기 식의 주석을 제멋대로 다는 망동을 서슴지 않았다.

카우츠키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맑스와 엥겔스의 공동저서인 《공산당선언》을 2 000부, 그후 맑스의 저서 《1848년부터 1850년까지의 프랑스계급투쟁》은 3 000부만 발행한 반면에 자기가 저술한 《상업정책과 사회민주당》은 그의 10배나 되는 3만부를 발행함으로써 로동계급의 수령들우에 자기를 올려세우는 인간쓰레기로서의 행위도 거리낌없이 저질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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