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값높은 재부 -사동구역 두루2동에 사는 백영숙녀성에 대한 이야기-

주체108(2019)년 3월 17일 로동신문

 

삼지연군건설장에 대한 지원사업을 성심성의로 하여 경애하는 원수님의 은정어린 감사를 받아안은 사람들속에는 사동구역 두루2동에서 사는 백영숙녀성도 있다.

사회보장을 받은 이후 남편과 자식들의 부양을 받으며 살던 백영숙녀성은 몇해전부터 늦게나마 나라일에 한가지라도 보탬할 일념을 안고 지원의 길에 나섰다.

삼지연군건설장으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과 탄전으로, 평양무궤도전차공장과 송신무궤도전차사업소, 평양초등학원과 평양중등학원을 비롯한 여러 단위에로…

하기에 오늘 그는 구역안의 일군들과 마을사람들속에서 이름보다도 애국자할머니란 호칭으로 불리우고있다.

하다면 그가 애국의 길을 걷게 된데는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 *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처녀시절 신의주시의 철도운수부문에서 혁신자로 이름떨치던 백영숙녀성은 남편을 따라 수도 평양에 시집을 왔다.시교외의 어느 한 돼지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신병관계로 집에 들어오게 되였다.그때 그의 머리속에는 세간살이를 깐지게 하고 부업도 부지런히 하여 오누이인 두 자식을 잘 내세워야겠다는 생각뿐이였다.

그래서 저금통장도 자식들의 이름으로 따로따로 마련해놓았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그 저금통장들에는 계획했던 액수의 자금이 차게 되였다.이제는 두 자식앞에 어머니로서 떳떳하게 되였다는 자부로 하여 그는 마냥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갑자기 심장부위에로 칼로 찌르는듯 한 아픔이 몰려오더니 안면신경마비가 겹치고 점차 하반신까지 움직일수 없게 된 백영숙녀성은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병원 구급과에로 실려가게 되였다.오래동안 앓던 심장병에 합병증이 온것이다.위험한 고비를 넘긴 그는 해당 과의 집중치료실에서 거의 1년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이 나날에 병력서의 부피는 장편소설처럼 두터워졌고 그의 몸안으로 흘러든 고급의약품은 수십종이나 되였다.의사들과 간호원들은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각이한 수법치료로 끝끝내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켰다.

어느날 병원복도를 지나던 백영숙녀성은 벽에 나붙은 직관판에 눈길을 돌리게 되였다.거기에는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적용하는 각이한 치료비가 구체적으로 밝혀져있었다.어느 한 나라에서는 입원을 하자고 해도 수백~수천€를 내야 하고 주사를 한대 맞자고 해도 수십€나 내야 하였다.

가슴이 섬찍했다.그 나라에서 일반주민이 자기와 같은 의료봉사를 받는다는것은 꿈에서조차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그는 슬며시 속구구를 해보았다.자기가 거의 1년동안 받은 집중치료를 자본주의나라들에서처럼 돈으로 환산해보니 엄청난 수자를 헤아렸다.자본주의사회에서는 백만장자들이나 이런 치료를 받을수 있었다.

의사, 간호원들의 정성이 커만 갈수록 그의 가슴속에 나날이 덧쌓여지는것은 나이 50이 넘도록 나라를 위해 크게 한 일도 없는 평범한 공민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우리 제도에 대한 감사의 정이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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