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인재양성의 원종장에 어려있는 은혜로운 사랑 -총련 조선대학교가 걸어온 65년의 자랑찬 로정을 더듬어-
세상을 둘러보면 오랜 력사나 배출한 명인들의 수, 교직원, 학생대렬의 규모와 부지면적, 도서관의 장서 등에서 제노라 하는 대학들이 많다.
하지만 총련 조선대학교처럼 이 세상 가장 걸출한 위인들의 비범한 령도밑에 주체성과 민족성으로 일관된 자기의 교육강령을 가지고 해외교포운동과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해온 해외교포대학은 그 어디에도 없다.
민족인재양성의 원종장인 총련 조선대학교가 창립 65돐을 맞이한다.
이 뜻깊은 날을 맞으며 온 나라 인민들과 총련일군들, 재일동포들은 세상에 류례없는 해외교포대학을 세워주심으로써 총련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체계를 완전무결하게 갖추어주시고 재일조선인운동의 명맥을 꿋꿋이 이어주신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뜨겁게 되새기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은 우리 조선대학교의 창립자, 건설자이시고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자애로운 어버이, 스승이시며 조선대학교는 명실공히 수령님과 장군님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태여나고 성장하여온 수령님과 장군님의 대학, 공화국의 존엄높은 주체의 해외교포대학입니다.》
총련 조선대학교가 걸어온 65년의 력사는 총련의 후대교육사업에 대한 절세위인들의 하늘보다 높고 태양보다 따사로운 숭고한 동포애, 민족애의 력사이며 민주주의적민족권리와 민족교육사업을 위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애국헌신의 력사이다.
지난날 망국노의 구슬픈 운명을 탄식하며 이역땅에 끌려와 모진 학대속에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자녀들만이라도 남부럽지 않게 대학공부까지 시키려는것은 더없이 간절한 소원이였다.
소원은 하늘에 닿았지만 일본반동들의 민족차별책동으로 하여 재일조선인들의 대학진학의 길은 꽁꽁 막혀있었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진학의 길이 막혀 몸부림치고 앞날이 기대되는 제자들이 단지 조선사람이라는 한가지 리유로 대학문전에도 가보지 못하고 서리를 맞는것을 보는 부모들과 교원들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으랴.
재일동포들의 이 피타는 숙망을 헤아려주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아무리 조건이 어렵다 해도 애국인재와 민족간부를 양성할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대전당을 마련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을 주체의 궤도따라 강화발전시키고 재일동포들의 세기적념원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어버이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고 총련은 모든것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대학창립을 위한 준비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갔다.
온 동포사회가 격정으로 들끓었다.어디서나 우리 대학에 대한 이야기였다.동포들의 애국열의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당황망조한 일본반동들은 《도꾜의 중심에 평양의 공화국기가 날리는 조선대학교가 일떠서는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발광적으로 날뛰였다.
그러나 도도히 굽이치는 애국의 격랑을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었다.
우리 수령님의 불보다 뜨거운 후대사랑은 마침내 력사에 특기할 격동적인 사변을 안아왔다.
주체45(1956)년 4월 10일 총련 조선대학교가 창립되였다.
비록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구내에 림시로 꾸린 가설교사에서 불과 10명의 교원과 60여명의 학생으로 고고성을 울리였지만 교정에 차고넘친 환희와 열정은 그 어느 명문대학에서도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주체형의 해외교포대학의 탄생, 그것은 재일조선인운동의 밝은 앞날을 담보한 의의깊은 사변이였다.
대학은 창립되였으나 그 토대는 매우 빈약하였다.재일동포들이 세상에 내놓고 자랑하고싶은 해외교포대학이였지만 온전한 교사조차 없다보니 사진 한장 찍어 소개할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교원들에게 대학교육과 관련한 지식과 경험이 매우 부족한것도 문제였다.
과목편성은 어떻게 해야 하고 교재는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집필하여야 하는가.모든것이 초행길이였다.
이런 실태를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탄알이 없는 무기는 결코 무기로 될수 없다고 하시면서 대학교재와 필요한 참고서들을 빨리 보내주어야 하겠다고, 그것이 조국이 그들에게 주는 큰 선물로 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은혜로운 손길아래 바다를 건너온 귀중한 참고서들을 오래오래 쓰다듬으며 대학의 교원들은 격정의 눈물을 흘리였다.
오늘 수만㎡의 부지에 보란듯이 펼쳐져있는 드넓은 교정에도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의 손길이 뜨겁게 어려있다.
불비한 교사문제를 두고 늘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두번째로 보내주신 거액의 교육원조비를 통채로 새 교사건설비로 쓰도록 하시였다.
그때로 말하면 전쟁의 혹심한 피해를 가시기 위해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투쟁하던 어려운 시기였다.더우기 원쑤들이 또다시 전쟁의 불을 지르려고 날뛰던 그 준엄한 시기에 만사를 제쳐놓고 해외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사건설자금까지 마련하여 보내준다는것은 보통상식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것이였다.
이역의 자식들을 위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은 이토록 뜨거웠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