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우리 생활, 우리 생명
우리는 왜 사회주의를 열렬히 사랑하는가.
우리는 왜 사회주의를 목숨처럼 지키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의 착공을 알리며 울려퍼진 발파소리에서도 찾아본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그날의 발파소리가 금시 들려오는듯싶다.
그 메아리는 결코 약동하는 3월의 대지만을 뒤흔든것이 아니였다.
우리 사회가 인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것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임을 온 세상에 다시금 선언한 이 장쾌한 뢰성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세찬 격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있다.
지금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착공식에서 하신 연설을 되새겨볼 때마다 우리 인민은 누구나 눈굽을 적신다.
우리 당과 국가가 펼치는 대규모의 살림집건설작전은 어떤 경제적리득을 위한것이 아니라 철두철미 국가의 재부와 근로대중의 창조적로동의 결과가 고스란히 근로자들자신의 복리로 되게 하는 숭고한 사업이라고 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그이의 연설을 자자구구 새겨볼수록 인민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고마움이 북받쳐오른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라의 근본인 인민보다 더 귀중한 존재는 없으며 인민의 리익보다 더 신성한것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주의제도에서 인민은 하늘처럼 떠받들리우고있다.
위대한 우리 국가의 수도 평양의 중심에 인민대학습당이 자리잡게 된데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다.
수십년전 10월 어느날 모란봉에 오르시여 평양시의 전경을 부감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남산재를 가리키시며 저기에 무슨 건물을 앉혔으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은 선뜻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너무도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찌기 평양시복구건설계획도 작성사업을 지도해주실 때 남산재일대를 수도의 중심부로 정하고 그곳을 축으로 도시를 형성하도록 가르치심을 주시면서도 남산재자체는 공지로 남겨두도록 하시였다.
세월이 흘러 남산재앞으로는 김일성광장이 꾸려지고 그 주변에도 크고작은 건물들이 키돋움하며 일떠섰으나 그곳만은 여전히 공지로 남아있었다.
어느해인가 한 설계일군이 그 좋은 자리가 그냥 비여있는것이 아쉽게 생각되여 거기에 다른 나라들처럼 정부청사를 앉힐 안을 만들어올린적이 있었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설계안을 론의에 붙여보지도 않으신채 부결하시였다.그런 일까지 있었던지라 일군들은 남산재에 어떤 건물을 앉혔으면 좋겠는가고 하시는 그이의 물으심에 쉽게 대답을 드릴수가 없었다.
일군들의 그 마음을 헤아려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래 중심광장에는 박물관이나 회관, 도서관, 문화궁전과 같은 인민을 위한 건물을 앉혀야 한다고 뜻깊게 말씀하시였다.
인민을 위한 건물!
그때로부터 두달후 어느날 일군들과 함께 몸소 남산재에 오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이곳을 정리할 때가 되였다고 하시면서 평양에는 이미 인민문화궁전도 있고 학생소년궁전도 있으니 여기에다는 도서관을 하나 크게 짓자고, 학생소년궁전에서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여기서는 어른들이 공부하게 될것이라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수도의 중심에 인민대학습당이 솟아나게 되였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는 광장에 정무원청사를 하나 앉혀놓았는데 그것도 중앙에 앉힌것이 아니라고, 중앙에는 인민을 위한 인민대학습당을 앉히고 그옆에 정무원청사를 앉혔는데 그것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인민의 심부름을 많이 하라고 앉힌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얼마나 뜻깊은 교시인가.(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