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어머니-《우리 초급당비서》 -평양우편국 초급당비서 김종관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1(2022)년 4월 2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중앙의 뜻과 정을 자기 단위에 철저히 구현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있는 초급당비서들은 마땅히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고 정성다해 받들어야 합니다.》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전당강화의 새로운 리정표를 세운 조선로동당 제2차 초급당비서대회 일정이 끝난 직후인 지난 3월초 어느날이였다.

자정이 넘어 평양시 대회참가자들을 태운 뻐스들이 어느한 광장으로 줄지어 들어서자 그곳에서 기다리고있던 여러 사람이 반갑게 맞으며 《초급당비서동지!》, 《초급당비서동지!》라고 목청껏 불렀다.그들은 손에손에 정성껏 엮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있었다.

깊어가는 이밤 자기 단위의 초급당비서를 마중하려고 하루일의 피곤마저 다 잊고 달려온 그들은 누구들이며 그들이 찾는 꽃다발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수많은 대회참가자들의 호기심과 감동어린 눈빛이 모아지는 가운데 중키에 다부진 체격의 한 초급당비서가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동무들이 어떻게 왔소?》

《초급당비서동지, 축하합니다!》

향기로운 꽃다발들이 그에게 아름벌게 안겨지였다.

그가 바로 이번 대회에서 감동깊은 토론을 하여 전체 대회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였으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직접 수여하신 표창장을 받아안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은 평양우편국 초급당비서 김종관동무였다.

초급당비서가 지닌 크나큰 영광을 자기들이 받아안은 영광인듯 못내 기뻐하며 열렬히 축하해주는 평양우편국 종업원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대회토론문에도 다 담을수 없고 당사업경험만으로도 다 이야기할수 없는 참된 당일군의 무한한 헌신에 대한 이야기, 전체 종업원들의 심장을 울리고 그들모두가 우리 당을 받드는 충성의 한길, 혁명의 한길로 힘차게 따라나서게 한 지극한 사랑과 정성의 이야기중의 일부를 우리 여기에 펼친다.

 

바른길로 이끌어주는 어머니

 

평양시당위원회에서 사업하던 김종관동무가 평양우편국 초급당비서로 임명된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이였다.

그날 김종관동무는 종업원명단을 마주하고 한사람한사람의 이름과 직무를 새겨보았다.

200여명!

한가정의 어머니가 한두명의 자식을 잘 키워 내세우기도 쉽지 않은데 초급당비서로서 200여명이나 되는 종업원들의 정치적생명을 책임지고 바른길로 이끌어주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이런 생각으로 모대겼다.

당시 평양우편국 종업원들의 정신상태나 단위의 면모는 시대의 요구에 비추어볼 때 너무도 뒤떨어져있었다.조건이 좋은 다른 단위로 가겠다고 하는 의견도 그칠새 없는 형편이였다.

문득 평양우편국 초급당비서로 임명받을 때가 되새겨졌다.

당의 믿음과 기대에 꼭 보답하기 바랍니다!

귀전에 메아리쳐오는 그 목소리.

김종관동무의 가슴은 세차게 울렁이였다.

당에서는 나를 믿고 한개 단위 200여명의 종업원들을 맡겨주었다.하다면 나는 슬하의 자식들을 두고 언제나 마음쓰며 바른길로 떠밀어주는 어머니처럼 모든 종업원들을 당앞에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그들을 위해 오만자루, 천만자루의 품을 아끼지 말자! 그들의 앞길에 놓여지는 억센 디딤돌이 되고 밝은 등불이 되자!

그는 밤이면 종업원명단을 마주하고 종업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낮이면 현장에서 얼굴을 익히면서 자식들의 성격이며 우결함을 손금보듯 알고있는 어머니처럼 그들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사무실이나 현장에서만이 아니였다.종업원들과 함께 우편통신차도 타고 우편통신길도 걸으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였고 단위사업을 추켜세울 방도를 모색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편국의 한 작업현장을 나서는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날 군대나간 아들한테서 편지가 왔다는 이야기며 우편통신길에서 만나군 하는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던 가운데 한 종업원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수십년전에 우편국에 찾아오시였댔다는 이야기를 이곳에서 오래동안 일한 어머니에게서 들은적이 있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러자 모두 고개를 기웃거리며 처음 듣는 말이라고 하는것이였다.사실 평양우편국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단위였다.하지만 그때까지 우편국의 연혁사에는 그 종업원이 말한 사실이 기록되여있지 않았던것이다.

김종관동무는 이 일을 그냥 스쳐지날수 없었다.그것은 결코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차수에 관한 문제가 아니였다.종업원들이 자기 단위의 근본도 뿌리도 모르고 일해왔다는것이 아닌가.

이 사실은 그로 하여금 당사업을 무엇으로부터 시작하고 일관시켜야 하는가를 깊이 절감하게 했다.

혁명사적발굴사업을 초급당비서인 자기의 몫으로 맡아안은 그는 수많은 신문들과 도서들을 탐독하고 련관단위 일군들을 만나 도움도 받으면서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평양우편국과 관련한 혁명사적자료들을 하나라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러던 어느해 몹시 추웠던 소한날이였다.

초급당비서의 사무실에 들어서던 우편국의 한 일군은 무춤 굳어졌다.

책상우에는 색날은 신문과 도서들이 전날보다 곱절이나 더 쌓여있는데 또 한밤을 꼬박 지새운듯싶은 초급당비서가 부랴부랴 길떠날 차비를 하는것이 아닌가.

《방금전에 전화가 왔는데 오래동안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일한 연고자를 찾았답니다.그가 우리 단위에 깃든 혁명사적내용에 대해 알수 있으니 당장 찾아가 만나야 하겠습니다.》

연고자가 산다는 곳까지는 수백리, 그 머나먼 길을 가더라도 추위나 풀린 다음 떠나는것이 어떻겠는가고 하는 일군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터에 대한 애착심을 지녀야 한다고 종업원들을 교양하기에 앞서 그들이 자기의 근본과 뿌리를 바로 알도록 하는것이 중요합니다.그러니 어찌 한시라도 미룰수 있겠습니까.》

이런 마음을 안고 여러해동안 김종관동무가 걸은 길은 그 얼마였던가.

그 과정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양중앙우편국(당시)을 여러 차례나 찾으시여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높은 애국적열의를 안고 인민들에 대한 봉사를 책임적으로 잘해나가도록 세심하게 가르쳐주신 사적내용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51(1962)년 12월 24일 친히 이곳에 찾아오시여 우편물취급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면서 우편국사업을 결정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가르쳐주신 사적내용을 비롯하여 많은 사적자료들을 발굴고증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평양우편국에서는 새로 발굴고증한 혁명사적자료들을 당에 보고드리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세심한 령도와 뜨거운 사랑속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편국사업과 관련한 귀중한 첫 가르치심을 주신 날인 주체34(1945)년 10월 12일이 평양우편국의 창립일로 제정되게 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종업원들은 자기들에게도 진짜생일이 생겼다고 기쁨과 흥분을 금치 못하였다.

그들에게 김종관동무는 뜨겁게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우편국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습니다.

동무들, 언제나 명심합시다.조선로동당이 창건된 력사의 10월부터 우리 우편국의 자랑스러운 연혁사가 시작되였다는것을!》

순간 장내에는 요란한 박수가 터져올랐다.

그후 종업원들의 사상관점과 일본새에서는 눈에 뜨이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김종관동무는 마음의 신들메를 바싹 조이고 모든 종업원들이 영광의 일터에서 일한다는 영예를 깊이 간직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에 더 큰 품을 넣었다.그런 속에 단위의 면모는 몰라보게 전변되여갔고 사업에서는 눈에 뜨이는 성과가 이룩되였다.

하지만 다섯손가락도 크기가 서로 다른것처럼 종업원들속에는 새롭게 분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뒤전에 물러나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가운데는 성격상결함으로 누구도 마주서기를 꺼려하는 한 종업원도 있었다.자기 우월감에 사로잡혀 물우에 뜬 기름방울처럼 생활하는 그를 바른길에 세워주기 위해 김종관동무는 많은 품을 들이였다.일욕심이 많고 무슨 일에나 적극적으로 나서는것을 장점으로 보고 어렵고 힘든 과업을 솔선 맡겨주었고 함께 우편물구분작업도 하면서 따뜻이 타일러주었다.

그후 그는 혁신자로, 직장에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 자라났다.

지난 시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며 종업원들은 흐뭇함을 금치 못하였다.그러나 그들이 어찌 다 알수 있었으랴.

자체의 힘으로 우편국건물을 일떠세우던 나날 대중의 심금을 울린 그의 수많은 방송원고를 초급당비서가 직접 써주었다는것을, 그리고 그의 남다른 가정생활을 위해 누구보다 마음쓴 사실을.

10여년전 새해를 맞으며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선물을 받아안게 된 그는 이 선물은 응당 초급당비서동지가 받아야 한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는 그에게 김종관동무는 환한 미소를 보내였다.

《동무가 집단의 사랑을 받는 혁신자가 되여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선물을 받아안은것을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우리 함께 일을 더 잘합시다.》

이 나라의 수많은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당과 혁명을 위해 떳떳한 삶을 수놓아가는데서 더없는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김종관동무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으로 종업원들에게 사심없고 꾸밈없는 진정을 쏟아부었다.훌륭한 어머니에게는 쓸자식, 몹쓸자식이 따로 없듯이 초급당비서에게는 교양할 사람, 교양 못할 사람이 따로 없다는것을 매일매일 자각하며 사는 김종관동무,

그 뜨거운 진정에 떠받들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선로동당원으로, 일터의 소문난 혁신자로 자라났던가.

평양우편국에는 《장군님 따라 천만리》, 《원수님 따라 천만리》라는 글발이 씌여진 부피두툼한 기록장이 수십권이나 된다.거기에 담겨지는 가지가지의 소행들을 정상적으로 종업원들에게 알려주며 김종관동무가 하는 말은 길지 않다.

《얼마나 돋보이는 동무들입니까.먼 후날에 가서도 이들의 소행은 우리 우편국의 연혁사와 더불어 길이 남게 될것입니다.》

그의 말을 새기며 종업원들은 매일 아침마다 만수대언덕과 당창건사적관을 찾아 충성의 결의를 다지고 주변관리사업을 진행하는것을 비롯하여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적극 찾아하고있으며 그 대렬은 갈수록 늘어나고있다.

오늘날 우편국종업원들은 김종관동무를 두고 박식가당일군이라고 부른다.초급당비서가 직접 틔워준 착상으로 현실에 도입된 기술혁신안이 여러건이나 되며 그의 도움으로 창의고안증서를 받은 종업원들이 적지 않기때문이다.언제인가 새 전동기가 마련되였을 때에도 순간에 그 기술적제한성을 꿰뚫어보고 즉시 개조안을 내놓은 사람도 다름아닌 그였던것이다.

종업원식당의 취사원들에게서는 국수를 맛있게 만들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워준 사람이 다름아닌 우리 초급당비서동지라는 말을 들을수 있고 다른 단위들에서 도전경기까지 걸어온다는 우편국의 탁구명수들을 만나보면 자기들의 스승이 바로 우리 초급당비서라는 자랑어린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

어느 면에서나 막히는것이 없고 종업원들이 제기하는 열백가지 물음에 매번 어김없이 명쾌한 대답을 준다는 김종관동무,

하여 종업원들이 초급당비서동지는 어쩌면 그렇게 모르는것이 하나도 없는가고 물을 때면 그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린다.

자식들은 자기들이 알고싶어하는 모든것을 바로 어머니에게 묻지 않는가.어머니라면 응당 모르는것이 없어야 한다.그런 어머니만이 자식들모두를 훌륭히, 대바르게 키울수 있다.당에서는 우리 초급당비서들이 어머니가 되기를 바라고있다.당일군은 종업원들의 천만가지 물음에 다 옳은 대답을 줄수 있게 항상 준비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김종관동무의 남다른 당사업지론이다.

종업원들이 겹쳐든 고난앞에 힘들어하고 마음아파할 때면 신심에 넘쳐 일어설 방도를 가르쳐주고 정신적보약을 안겨주며 갈길을 몰라 주저할 때면 앞길을 환히 밝혀주는 우리 당의 참된 일군이 되려는 높은 자각과 열정이 그를 박식가당일군으로 되게 하였던것이다.

김종관동무가 평양우편국 초급당비서로 일해온 15년!

정녕 그 나날은 종업원들에 대한 옳바른 당생활조직과 지도의 15년인 동시에 스스로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쉬임없이 사색하고 탐구해온 열정적인 배움의 15년, 남다른 성장의 15년이였다.

우리 초급당비서들이 인민의 당, 심부름군당의 정치일군이라는 고귀한 영예와 무거운 책임앞에 떳떳할수 있게 힘차게 투쟁해나갈것을 바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뜻에 따라서자면 아직 배워야 할것이 너무도 많다는 자각을 안고 박식가당일군-김종관동무는 오늘도 시간을 쪼개가며 열정적으로 공부한다.

이런 그였기에 종업원들의 가슴속에 언제나 바른길로 이끌어주는 훌륭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간직될수 있었다.(전문 보기)

 

김종관동무(가운데)

 

[Korea Info]

 

Leave a Reply

《웹 우리 동포》후원 안내
カレンダー
2022年4月
« 3月   5月 »
 123
45678910
11121314151617
18192021222324
252627282930  
最近の記事
バックナンバー
  • 2024
  • 2023
  • 2022
  • 2021
  • 2020
  • 2019
  • 2018
  • 2017
  • 2016
  • 2015
  • 2014
  • 2013
  • 2012
  • 2011
  • 2010
  • 2009
  • 2008
  • 2007
  • 2006
  • 2005
  • 2004
  • 2003
  • 2002
  • 2001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