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에 다진 맹세 끝까지 지킨 투사들처럼 우리 살고있는가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제9권에서 《불사조》를 펼치고-

주체111(2022)년 4월 19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죽어도 살아도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하여 만난을 헤치며 싸워 승리한 항일혁명선렬들의 필승의 신념과 불굴의 기개가 오늘 우리 천만군민의 심장마다에 그대로 맥박쳐야 합니다.》

항일혁명투사 리두수동지가 쓴 회상실기 《불사조》,

그 회상실기를 우리는 자주 펼친다.단지 선렬들을 추억하며 지나간 력사를 더듬기 위해서가 아니다.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무수한 격난들을 정면돌파할수 있는 힘과 용기를 백배로 다지기 위하여, 선렬들의 불굴의 그 정신으로 누구나 맡은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고 사회주의건설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가기 위해서이다.

혁명의 길은 시련과 난관을 동반하는 준엄한 길이다.그길에 나선 혁명가에게 있어서 중요한것은 조성된 난국을 과감히 뚫고나가는 백절불굴의 투지와 신념이다.

항일혁명투사 박순일동지는 심한 동상으로 하여 두발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하자 통졸임통으로 만든 양철톱으로 자기 발을 자를것을 결심하였다.앉아서 죽음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두발이 없는 몸으로라도 끝까지 혁명에 이바지하려는 마음으로 그런 비장한 결심을 내린것이였다.

톱으로 뼈를 켜는 처절한 아픔과 몸서리치는 소리, 허나 그 모진 고통속에서도 그에게서는 《동무들아 준비하라 손에다 든 무장 제국주의침략자를 때려부시고》라는 노래구절이 흘러나왔다.그 노래소리는 진정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싸우고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겠다는 불굴의 신념의 웨침이였다.하기에 그는 불의에 달려든 적《토벌대》와 맞다들게 되자 두발이 없는 몸으로 적병을 붙안고 벼랑아래로 굴러떨어져 생을 마쳤다.

혁명에 다진 맹세를 지키기 위하여서는 스스로 자기 발을 자르면서까지 생을 보존하였지만 혁명을 위하고 동지들을 위하여 필요할 때에는 자기 생명도 서슴없이 바친 이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 혁명의 1세들이였다.

몸은 한점의 티끌로 사라져도 혁명정신만은 아아한 백두산악처럼 높고 도고했던 그들, 바로 그것으로 하여 혁명의 거세찬 흐름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는 항일의 불사조들, 그들앞에 누구나 자신을 세워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가 투사들처럼 살고있는가,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시련과 난관앞에 겁먹고 주저앉았던적은 없었는가,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 불굴의 의지로 투쟁하고있는가를 순간순간 돌이켜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어렵고 힘든 속에서 투쟁하고있는것은 사실이다.하지만 그 애로와 난관이 아무리 크다 한들 시시각각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발톱까지 무장한 제국주의침략자들과 싸워야 했던 그 나날의 간고함에 어찌 비할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 혁명을 위함이라면 그 무엇도 두려울것이 없고 풀뿌리를 씹어먹어도, 설사 래일 당장 죽는다 해도 그 순간까지 혁명만 할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는 각오로 절해고도에 있건 단두대에 올라섰건 혁명앞에 다진 맹세를 변치 않았던 투사들처럼 살며 투쟁한다면 뚫지 못할 난관은 정녕 없다.

모진 시련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불사조와 같이 싸워나가는 굳센 지조, 완강한 난관극복정신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있는가.

부상당한 몸으로 깊은 밀림속에 홀로 남았던 리두수동지,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에 나무마저 기를 펴고 자라지 못하는 령하 30~40℃의 엄혹한 추위, 적들의 《토벌》에 동지들을 잃고 한알의 낟알도 없었던 그때 살아있다는 그자체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극악한 조건에서 보통사람이라면 절망에 빠져 열백번도 더 맥을 놓고 쓰러졌을것이다.하지만 그는 생눈을 삼키고 속새풀을 우려먹으면서 석달 스무날이나 싸워 최악의 역경을 이겨냈다.

삶과 죽음의 계선에서 그는 무엇때문에 필사적으로 삶을 택하였던가.

력사적인 보천보전투가 있은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두수동지가 있던 후방병원의 부상자들에게 병과 싸워서 반드시 승리하라는 격려와 완치된 다음 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한다는 당부가 담긴 편지를 보내주시였다.그 사랑과 믿음의 당부를 리두수동지는 사령관동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혁명과업으로 간주하였다.

나에게는 죽을 권리가 없다.스스로 죽음을 택하는것은 자기를 희생시켜 나를 살려준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다.살아서 다시 전장에 나서라는것은 사령관동지께서 나에게 주신 명령이다.나는 그 명령을 어길 권리가 없다!

이렇듯 리두수동지를 비롯한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 그것은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한 조선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철석의 신념, 사령관동지의 사랑과 믿음에 기어이 보답해야 하며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명령은 어떤 일이 있어도 관철해야 한다는 투철한 각오로 충만된 끝없는 충실성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에 기초하고있다.

회상실기 《불사조》는 출판된 때로부터 오랜 세월 우리 인민에게 귀중한 사상정신적량식을 주는 삶과 투쟁의 길동무, 훌륭한 교본으로 되여왔다.특히 천리마시대의 청년들이 가장 애독한 회상실기들중 하나가 바로 《불사조》였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1950년대말 생산능력확장을 위한 새 직장건설이 진행되던 성진제강소(당시)에는 함경북도안의 여러 전문학교 학생들이 달려왔다.

곡괭이날이 탕탕 튀여나는 언땅을 까내고 얼마쯤 들어가니 감탕층이 나졌다.아무리 퍼내고 또 퍼내도 계속 쏟아져나오는 감탕속에서 여러날째 전투를 벌리고있던 어느날 그들은 회상실기 《불사조》에 대한 독보모임을 가지였다.

그날 그들은 항일혁명선렬들이 지녔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이어받아 새 직장건설에서 천리마시대의 청년영웅이 될것을 결의하면서 《불사조》기발을 만들어 5일에 한번씩 작업총화를 짓고 제일 우수한 소대에 그 기발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약동하는 청춘들의 숨결인양 건설장에서 세차게 나붓긴 《불사조》기발, 그 기발아래서 청년들은 무섭게 일떠섰다.감탕을 가득 담은 질통을 지고 혁명가요를 부르며 달리고달렸으며 수십리 먼곳에서 기초콩크리트치기에 필요한 골재를 운반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할줄 몰랐다.그 나날 모두가 혁신자로, 모든 소대가 《불사조》소대로 자랑떨치였으며 얼마후에는 맡은 공사과제를 훨씬 앞당겨 끝내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어찌 그들만이겠는가.창조와 변혁의 시대인 천리마시대에는 어디서나 《불사조돌격대》, 《박길송돌격대》와 같은 투사들의 이름으로 빛나는 돌격대들이 맹활약하며 눈부신 성과를 안아왔으며 그 귀중한 전통은 세월의 언덕넘어 새로운 주체100년대에도 줄기차게 이어져오고있다.(전문 보기)

 

항일혁명선렬들이 지녔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은 오늘도 천만인민을 투쟁에로 부른다.

-만수대대기념비에서-

본사기자 한광명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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