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휘날리며
위대한 장군님 따라 걸어온 조국수호,
사회주의수호의 길을 꿋꿋이 이어가리
사나운 눈보라, 그를 맞받아 굴함없이 전진하는 대오, 그앞에 펄펄 휘날리는 붉은기.
이것이 바로 우리 혁명의 가장 준엄했던 시기에 위대한 장군님 따라 선군길을 꿋꿋이 걸어온 우리의 추억이다.
귀기울이면 들려온다.
고난의 행군과 더불어 이 땅 어디서나 90년대 《적기가》로 높이 울려퍼졌던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
안변청년발전소건설장에서도, 공장과 마을들에서도 이 노래는 신념의 메아리되여 울렸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과 인민은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고난의 행군을 벌려 겹쌓이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우리 식 사회주의를 영예롭게 수호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붉은기를 들었는가.고난의 시기 붉은기를 내리우면 살길을 열어주겠다는 끈질긴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인민은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붉은기아래로 모여들었고 쓰러지면서도 붉은기를 놓지 않았다.어째서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어려운 시기에 녕원발전소를 기념비적창조물로 일떠세운 군인건설자들의 투쟁에서 찾는다.
고난의 시기 세멘트 한포대, 강재 한t도 국가로부터 받기가 어려웠다.연유도 부족하고 지어 식량도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였다.
건설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주저앉느냐.군인건설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여기가 어떤 곳인가.대동강을 길들여 평양시를 큰물피해로부터 보호하고 전기문제를 풀기 위해 위대한 수령님께서 험한 산길을 톺으며 발전소언제위치를 잡아주신 곳이였다.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해 험한 길을 걷고걸으신 우리 수령님의 념원이 어려있는 발전소건설을 조건이 어렵다고 중도에서 그만둔다면 그보다 큰 죄악이 어디 있겠는가.
승리의 언제우에 붉은기를 날려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기어이 관철하고 위대한 장군님께 충정의 보고, 기쁨의 보고를 올리리라.
병사들의 맹세의 분출인양 《높이 들자 붉은기》의 노래소리가 높이 울려퍼지는 속에 녕원땅의 이름없는 산기슭들에 철근을 비롯한 자재와 각종 설비부속품들까지도 자체로 해결하기 위한 자력갱생기지들이 일떠섰고 언제는 한치한치 솟구쳤다.
녕원발전소의 언제에는 이렇듯 군인건설자들이 충정의 날과 달을 이으며 바친 피와 땀 그리고 열정이 그대로 슴배여있다.
수령의 유훈을 관철하고 령도자의 어깨우에 실린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려는 고결한 충정의 세계가 우리 인민으로 하여금 붉은기를 더 높이 들게 하였다.
붉은기는 신념의 강자들만이 추켜들수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90년대 김제원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신 은파군 양동협동농장 제7작업반원들,
민족의 대국상이후 련이어 들이닥친 자연재해는 은파땅에도 혹심한 피해를 주었다.
여기에 은파군의 한 로인이 가정방문을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겠는가고 묻는 국제기구의 외국인에게 한 대답이 있다.
《우리 장군님께서 계시는데 이쯤한 큰물피해가 무슨 큰일이겠소.집도 잃고 가산도 잃어버렸지만 우리 장군님께서 다 돌보아주시기때문에 이제 집도 생기고 재산도 생기고 우리가 더 잘살게 되는것을 두고보시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