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전구는 불굴의 인간, 참된 애국자들을 키우는 혁명대학 -삼지연군건설장에서 창조되고있는 영웅적위훈과 랑만적인 생활을 전하며(3)-
빨찌산의 후손들
세대는 바뀌고 혁명은 멀리 전진하였지만 변함없는것이 바로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온 투사들의 혁명정신을 꿋꿋이 이어가고있는 우리의 생활이다.
취재의 나날 전투장마다에서 우리가 만났던 청년돌격대원들의 평균나이는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혁명의 길에 나서던 항일혁명투사들의 평균나이와 비슷하였다.
20대, 30대 항일투사들의 심장마다에 끓어번지던 백두의 혁명정신, 열렬한 조국애가 년대와 세기를 이어 오늘도 주체혁명의 계승자들을 불굴의 인간, 참된 애국자들로 억세게 키우는 자양분으로 되고있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숭엄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번듯하게 일떠선 삼지연읍지구를 가로질러흐르는 양사천의 모습이 달라졌다.
수천m의 양사천기슭에 뿌리내린 나무들이며 꽃관목들, 번듯하게 지은 정각이며 민속놀이장, 아담한 휴식터들, 뽀트장…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오늘의 그 광경이 어떻게 마련된것인지를 우리 잠시 돌이켜본다.
철길건설려단의 한 련대가 맡은 양사천호안석축공사는 그야말로 악조건속에서 진행되였다.
초봄이라고 하지만 날씨는 따끈한 줴기밥덩이도 순간에 떵떵 얼굴 정도로 맵짰다.어느날 양사천기슭에 650명의 청년들이 가설막을 전개했다.
삼지연의 추위는 매 돌격대원의 의지를 검열하듯 좀처럼 수그러들줄 몰랐다.
언제나 련대의 앞장에서 달리는 명간군대대, 수남구역대대, 김책시대대의 돌격대원들이 호안석축공사에서도 중요한 공사과제를 맡아 해제꼈다.
여러개의 정각을 일떠세워야 하는 명간군대대 돌격대원들, 사실 몇해동안 철길을 건설하여온 그들에게는 우리의 민족성이 살아나면서도 정교성을 갖춘 정각을 지어본 경험이 없었다.제일 어려운것은 아치식으로 된 정각의 웃부분에 대한 시공이였다.
어느날 련대의 결사대 대장인 김은철동무가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방도를 찾지 못해 며칠째 고심하고있는 명간군대대 돌격대원들을 찾아왔다.
무슨 좋은 수라도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한 돌격대원들은 그에게 석축을 하라면 하고 다리를 놓으라면 놓겠지만 정각을 일떠세우는것은 정말 자신이 없다고 걱정을 터놓았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있던 결사대 대장이 불쑥 메고온 배낭에서 몇권의 책을 꺼내는것이 아닌가.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였다.이어 그는 회상기의 어느 한 대목을 읽기 시작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을 친솔하시고 다시 전방으로 나가시며 우리에게 무기수리와 함께 전방부대 대원들의 버선을 만들어보낼 긴급한 과업을 주시였다.
불과 일주일사이에 수백컬레의 버선을 만들어야 하였다.한대밖에 없는 재봉기를 가지고 이 과업을 수행하는것은 매우 어려웠다.…
재봉대동무들은 교대를 조직하여 밤낮 기대를 멈추지 않고 버선을 만들었다.그런데 예정수량의 절반도 만들지 못하였는데 하나밖에 없던 재봉바늘이 부러졌다.…》
회상기를 읽는 그의 주위에 돌격대원들이 늘어나더니 어깨성을 이루었다.
《물론 우리는 망치와 집게, 줄칼 등을 가지고 작탄도 만들었고 작은 권총까지도 고치였었다.그리고 재봉기북도 만들어썼다.그렇지만 줄칼을 가지고 재봉바늘이야 어떻게 만들겠는가.
…
(혁명과업을 앞에 놓고 해결하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
나는 자신을 이렇게 채찍질하며 강철철사를 잘라서 돌에다 갈아 재봉바늘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담배씨로 뒤웅박을 판다는 말이 있지만 이 일도 그만 못지 않은 일이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