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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조국을 받들어 애국의 대를 굳건히 이어가렵니다》

2025년 5월 15일《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국땅에 있어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아야 하며 위대한 김정일애국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어머니조국의 대지우에 애국충정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나가야 합니다.》

황금만능과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포부도 희망도 없이 부패와 타락의 늪에 빠져들고있다.

하지만 총련의 새세대들은 자본주의일본땅에 살면서도 아름다운 애국의 인생관을 지닌 고상한 인간으로 름름하게, 씩씩하게 자라나고있다.재일조선인운동의 미래를 걸머지고나갈 리상 안고 힘차게 나아가고있다.

 

어서 가자, 성스러운 애국의 초소로

 

(악성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던 때 대학에 입학한 우리 애가 벌써 졸업하게 되다니.)

총련 조선대학교구내에 들어서며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오사까지부 김명혜녀성의 뇌리에 갈마든 생각이였다.

제67회졸업식이 진행되는 교정은 환희와 격정으로 세차게 설레이고있었다.졸업생들모두의 환한 얼굴들에는 열정과 자신감이 넘쳐흐르고있었다.지난해 조국방문의 나날 애국의 자양분을 한껏 받아안으면서 참된 삶의 위치를 찾은 그들이 아닌가.

졸업증을 수여받는 미더운 청년들을 보며 김명혜녀성은 가슴이 뿌듯해짐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조국의 불같은 그 열정, 억세인 그 기상을 닮아 애국의 한길에서 청춘을 빛내일 결의를 다지는 모습도 참으로 대견하였다.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곳은 민족교육의 성스러운 사명을 다해가는 우리 학교의 교단이라고 하면서 멀리 타지방에 있는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와 시고꾸조선초중급학교 교원으로 탄원한 외국어학부의 김지황, 김윤화, 그들의 결의는 참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교육학부의 류미순은 부모의 뒤를 이어 오사까에서 교원생활을 하게 된다.그의 아버지는 현재 오사까조선초급학교 교장으로 사업하고있다.

함뿍 미소를 담고 손을 흔드는 딸과 대견한 눈길을 보내며 못내 흡족해하는 아버지, 그들부녀의 모습을 보며 김명혜녀성은 가슴이 후더워났다.

조청일군으로 사업하게 된 정치경제학부의 허성, 김례아도 얼마나 름름한가.

리공학부의 리종명, 리종성은 쌍둥이이다.함께 대학을 다닌 이들형제도 애국의 초소를 차지하게 된다.리종명은 군마조선초중급학교에서, 리종성은 조선대학교 연구원에서.

와까야마조선초중급학교 부속유치반에서 교양원으로 사업하게 된 교육학부의 김희령, 집을 떠나 멀리로 간다고 걱정하면서도 그의 부모는 동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곤난을 극복하고 억세여지라고 힘을 주었다.

남편을 여읜 후 시어머니의 병구완을 하는 어려운 속에서도 조선대학교로 등을 떠밀어보낸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정을 졸업식장에서 눈물겹게 토로하는 교육학부의 강미례를 보니 정말 생각이 깊어졌다.

(자식은 교양한대로 자란다고 애국의 가풍이 확고히 서있는 저런 가정들이 많아 우리 총련이 굳건한것이 아닌가.)

졸업공연은 그야말로 감동적인 화폭의 련속이였다.대학생활이 얼마나 보람찼고 그 나날에 다진 애국의 의지가 얼마나 굳건한가를 공연 전 과정이 그대로 말해주고있었다.

조청일군, 교육자, 예술인, 체육인…

재일조선인운동을 떠메고나갈 애국인재가 될 굳은 결심 안고 보람찬 초소로 떠나가게 된 졸업생들을 동포사회는 열렬히 축하하였다.

정열적으로 박수를 치면서 김명혜녀성은 생각하였다.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자라난 동무들이야말로 총련의 자랑이고 애국의 골간들이다.이제 갈길은 순탄치 않을것이다.하지만 동무들은 스스로 택한 신념의 그길을 힘차게 걸어갈것이다.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의 뒤를 이어.)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자랐습니다》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김지세교원은 수업준비를 서둘렀다.

이번에 학생들에게 배워줄 내용은 총련의 이름있는 문필가였던 허남기선생이 민족교육의 초창기에 쓴 시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였다.학창시절 즐겨읊던 시여서 그런지 감회가 새로왔다.

교수안에 제목을 큼직하게 적어넣던 그는 그만 펜을 멈추었다.저도 모르게 시제목에 있는 《이것》을 《이곳》으로 써놓았던것이다.고쳐쓰려고 하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시인은 학교를 이곳이 아니라 이것이라고 표현했을가? 곳은 일정한 자리나 지역을 의미한다.학교를 가리킨다면 곳이 더 적합할텐데…)

수업준비과정 내내 이런 의문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그날 수업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질문하였다.

《왜 허남기선생님은 학교를 두고 〈이곳〉이 아니라 〈이것〉이라고 표현하셨을가요?》

교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학생들은 한참이나 곰곰히 생각하더니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다.

《시인은 창문유리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교사가 아니라 우리 학교에 어려있는 애국의 지향을 묘사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습니다.조국해방후 우리의것을 되찾고 지키려는 마음이 모여 우리 학교가 생겨났습니다.그래서 학교를 이것이라고 표현하였다고 봅니다.》

《위대한 조국을 알고싶어하는, 민족교육사수를 위한 피어린 투쟁의 산아인 우리 학교를 긍지스럽게 대하는 아이들의 절절한 마음을 노래한것입니다.》

《우리 학교가 있는 곳은 일본땅입니다.그러나 학교에서 배워주는것은 우리의것입니다.바로 그래서 이것이 우리 학교라고 하였을것입니다.》

흥분하여 웨치듯 말하는 그들속에는 평소에 국어과목을 몹시 어려워하던 학생도, 장난꾸러기로 소문나 교원들의 애를 태우던 학생도 있었다.

김지세교원은 가슴이 뻐근하도록 놀랐고 기뻤다.학생들모두를 끌어안아주고싶은 심정이였다.

얼마나 대견한 아이들인가.얼마나 름름하게 성장하였는가.

(민족교육의 초창기에는 아이들이 초라한 교사때문에 마음쓰는 선생님을 오히려 위로하여 눈물흘리게 하더니 오늘은 이 아이들의 순결한 마음이 나를 울리는구나.)

김지세교원은 격동된 심정으로 추억깊은 시를 다시금 읊어보았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우리도 앞으로 일본학교보다

몇배나 더 큰집

지을수 있잖느냐고

되려 이 눈물많은 선생을 달래고

그리고 또 오늘도 가방메고

씩씩하게 이 학교를 찾아오는구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비록 교사는 빈약하고 작고

큼직한 미끄럼타기 그네 하나

달지 못해서

너희들 놀 곳도 없는

구차한 학교지만

 

아이들아

이것이 단 하나

조국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서자란 너희들에게

다시 조국을 배우게 하는

단 하나의 우리 학교다

 

조국의 기대에 기어이 보답하리

 

지난 3월 8일 조선신보사 평양지국 기자 김숙미녀성은 온 하루 축하의 인사속에 묻혀있어야 하였다.그날은 그가 조국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5일째 되는 날이였다.

무릇 녀성이라면 3월 8일에 류다른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숙소인 평양호텔의 호실에서 아름다운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활기에 넘쳐 거리로 오가는 녀성들을 바라보니 생각이 깊어졌다.

3월 8일을 국제적명절로 기념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1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그런데 세계를 둘러보면 오늘도 수많은 녀성들이 정치적무권리와 사회적불평등속에서 고통을 겪고있다.

하지만 우리 조국에서는 이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아름답고 행복한 녀성들의 명절로 되고있다.한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조국이라는 넓은 뜨락에서 나라위한 크고작은 일감을 도맡아해제끼는 녀성근로자, 혁신자들,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내는 어머니들이 가장 열렬한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있다.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이 세상 제일 위대하신 어버이의 품에 안겨사는 더없는 영광과 긍지를 안고 국가의 전면적부흥발전을 위한 줄기찬 투쟁에서 조선녀성의 본때와 강의한 정신력을 남김없이 발휘해갈 불같은 열의가 넘쳐있다.

문득 울리는 초인종소리에 김숙미녀성은 상념에서 깨여났다.

(이른아침에 누구일가?)

문을 열어보니 미소를 머금은 평양호텔 종업원들이 꽃송이와 기념품을 들고 서있는것이 아닌가.

《3.8국제부녀절을 축하합니다!》

순간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이렇게 시작된 하루였다.이른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축하의 인사가 그칠새 없었다.바람세찬 이역땅에서 조국을 옹호하고 총련조직을 사수하며 민족성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총련동포들이야말로 애국자들이라고 하면서 진심으로 위해주는 그 모습에서 김숙미녀성은 총련에 대한 조국인민들의 뜨거운 정을 느낄수 있었다.

(세계에는 수많은 해외교포들이 있다.하지만 우리처럼 조국으로부터 이토록 뜨거운 사랑과 환대를 받고있는 해외교포들이 또 어디에 있는가.조국인민들의 이 뜨거운 기대에 보답하자.기어이 보답하자.)

이런 마음 안고 총련의 녀성기자는 오늘도 취재길을 이어가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강국의 존엄을 떨치는 사회주의조국, 부강번영하는 어머니조국의 현실을 한시바삐 동포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전문 보기)

 

[Korea Info]

 

오늘도 긍지높이 전해가는 25년전의 이야기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들의 추억담중에서

2025년 5월 11일《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언제나 마음속에 조국을 안고 살아야 하며 사회주의조국의 절대적인 지지자, 견결한 옹호자가 되여야 합니다.》

1970년대에 진행된 어느한 국제기구회의에서 재일동포학생들이 출연한 음악무용서사시와 집단체조를 찍은 기록영화가 상영된적이 있다.그때 영화를 본 수많은 나라 대표들은 회의에 참가한 총련의 교육자들을 찾아와 《이 아이들이 일본에서 태여난 아이들이 맞는가.상상하기가 어렵다.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큰 집단체조를 한다는것만을 보아도 민족교육이 대단하다는것을 알수 있다.》, 《당신들의 조직이 한 나라도 감히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하고있다.정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지금으로부터 25년전에도 그런 일이 재현되였다.다른 곳도 아닌 미국에서였다.그때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무용단은 미국의 뉴욕과 로스안젤스에서 특색있는 민족문화예술무대를 펼쳐놓아 깊은 여운을 남기였다.

조국과 총련의 영예를 떨친 주인공들은 오늘도 그 나날을 감회깊이 추억하고있다.

 

* *

 

2000년 3월 어느날 한대의 려객기가 뉴욕의 한 비행장에 서서히 착륙하였다.승객들중에는 같은 일행이 분명한 5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과 교원, 학부형들이였다.

처음 미국에서의 공연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학생들의 마음은 불안하였다.이전에 학교취주악단이 중국에서 공연한적은 있었다.하지만 미국에서의 공연은 사정이 달랐다.우리 공화국을 제일 적대시하는 나라이기때문이다.

착잡한 마음을 안고있는 학생들에게 교원들은 말하였다.

《일없습니다.어디 한번 미국땅에서 우리 학교의 영예, 우리 총련의 위상, 우리 조국의 존엄을 높이 떨쳐봅시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미국으로 가게 되였다.

비행장에서 입국절차를 밟을 때였다.이들의 사증을 본 수속관계자의 눈이 화등잔같이 되였다.국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한참이나 사증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그는 황급히 주위의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일본에서 조선사람들이 왔다!》

그제서야 영문을 깨달은 총련학생들은 빙그레 웃었다.

(미국인들이 우리 조국을 두려워하는구나.우리 조국은 그렇게 강하구나.아무렴, 온 세계가 우러르는 주체조선, 영웅조선이 아닌가.)

순간 가슴이 넓어지고 키가 한뽐이나 커지는듯싶었다.학생들은 어깨를 쭉 펴고 당당히 말하였다.

《그래요.우리는 조선사람이예요.우리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호텔에 도착한 그들은 려장을 푼 후 거리로 나갔다.

조선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무용단성원들은 대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였다.거리가 미여지게 오가던 뉴욕시민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특이한 행렬을 호기심에 찬 눈길로 지켜보았다.

뉴욕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보란듯이 사진을 찍었다.그들은 이렇게 당당한 조선사람으로 자신들을 선보였다.사진을 찍으면서 동포학생들은 굳게 속다짐하였다.

(잘해보자! 지금 이 미국땅에서 우리는 총련을 대표하고있다!)

내외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마침내 공연의 막이 올랐다.

먼저 총련민족교육의 력사,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연혁을 소개하는 록화편집물이 상영되였다.

못잊을 화폭들이 흘러갔다.

총련이 결성될 당시 민족교육의 실태가 화면에 비껴들었다.

예로부터 교육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한 성스러운 사업이라고 일러왔다.이역땅에서 사는 해외동포들에게 있어서 자기 민족의 말과 글, 력사와 문화를 알게 하는 민족교육은 동포사회의 존망과 관련되는 더없이 중요하고 사활적인 사업이다.

망국의 시절 자기들이 겪은 무지와 몽매의 설음을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려고 재일동포들은 한푼두푼 돈을 모아 일본각지에 학교들을 세웠다.하지만 동포들 대다수가 최하층의 생활을 하고있다나니 재정난을 면할수 없었다.가까스로 시작한 학교건설이 자금때문에 해를 넘기면서도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있었다.많은 학교들이 여러해째 가교사신세를 면할수 없었다.총련 조선대학교도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교실 몇개를 빌려쓰고있는 형편이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원들의 생활비 같은것은 꿈도 꿀수 없었다.많은 교원들이 아침은 건빵에 물 한고뿌, 점심은 학생들이 날마다 번갈아 가져오는 주먹밥으로 끼니를 에웠다.저녁을 번지는것은 보통이였고 잠자리는 학교경비실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 말과 글을 배운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있었다.비바람이 새여드는 판자집교사, 백묵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교단에서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교육자들은 눈물을 삼키였다.

이런 실태를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짓는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나라형편이 그토록 어려운 속에서도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였다.

낡을대로 낡고 비좁던 학교대신 사랑의 교육원조비로 건설된 현대적인 학교로 씩씩하게 등교하는 자식들의 환희에 넘친 모습을 보며 동포들은 격정으로 가슴들먹이였다.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생명수와도 같이 동포들모두의 몸과 마음을 뜨겁게 적셔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그것은 거치른 이역땅에서 민족의 혈통, 애국의 넋이 꿋꿋이 이어지게 한 사랑의 젖줄기였다.

그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아래 자본주의일본땅에 민족교육의 대화원이 펼쳐졌다.…

참으로 놀라운 력사와 현실이 반영된 편집물이였다.감동과 충격으로 장내는 물뿌린듯 고요하였다.

이윽고 흥겨운 춤무대가 펼쳐졌다.서장 《봄맞이》에 이어 장고춤, 탈춤 등 다채로운 민족무용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조선무용의 흥취나는 률동은 관중을 고상한 조선민족문화의 세계에로 이끌어갔다.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민족의 향기를 고이 간직한 조선의 꽃으로 피여나려는 학생들의 순결한 마음이 작품마다에 그대로 어려있었다.

군무 《회오리》가 무대에 펼쳐졌다.일명 《조선치마저고리칼질사건》으로 불리우는 일본우익반동들의 비렬하고 야만적인 테로행위에 굴하지 않고 민족적존엄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재일동포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였다.민족적차별과 탄압의 회오리가 아무리 세차도 민족의 넋이 어려있는 조선치마저고리를 결코 벗을수 없다는 재일동포학생들의 의지가 격렬한 춤가락을 통해 관중에게 전달되였다.

객석에서는 격찬과 환호가 그칠새 없었다.

《잘한다!》

당시 공연상황에 대해 미국의 한 언론은 《관중의 우렁찬 박수소리는 마치도 뉴욕과 로스안젤스전체를 흔들어주는듯하였다.》고 전하였다.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이 민족의상을 차려입고 마음껏 춤추는 모습에 정말 경탄을 금할수 없다.》, 《민족적인 화려한 무대이다.》, 《보면볼수록 더 보고싶은 공연이다.》…

랭담한 미국인들이였지만 우리 동포학생들의 청신한 자태, 뛰여난 재능에 반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조선민족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재미동포들의 심정은 더욱 류달랐다.

(어쩌면 저렇게 자신만만하고 생기발랄한가.민족배타주의가 가장 심한 일본에서 살면서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민족의 넋을 지켜나가는것이 정말 놀랍구나. )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럴만도 하였다.재미동포들에게 있어서 큰 고민거리는 자식들이 자기 민족도 모르고 완전히 미국인화되여가는것이였다.부모자식간에 우리 말로 의사소통을 할수 없는 가정이 대다수였다.그런데 재일동포학생들은 우리 말을 류창하게 하고 보란듯이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상을 입고 흥겹게 춤추고 노래부르고있다.그것이 놀랍고 그래서 생각이 깊어지는것이였다.

뉴욕에서 예술학교를 운영한다는 한 재미동포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춤을 추는것만 같았다,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민족성을 굳건히 고수하고 민족문화를 꽃피워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놀랍다, 정말 부럽다고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가슴이 뜨거워져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이역땅에서 살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정신상태가 깨끗한가.》, 《강압과 차별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지켜낸 총련조직이 정말 놀랍다.》, 《정말 가슴이 흐뭇하다.총련은 해외동포들모두의 자랑이다.》…

재미동포들은 이렇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그 말을 들으며 총련학생들은 크나큰 긍지로 가슴들먹이였다.우리 학교의 소중함을 사무치게 느끼였다.

공연을 마친 출연자들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교가를 자랑스럽게, 우렁차게 불렀다.관중이 모두 일어나 열렬한 박수로 호응하였다.그들속에는 미국에 와있던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도 있었다.그는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혼자 조용히 불러보군 하던 교가를 이 미국땅에서 들을줄 정말 몰랐다고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도꾜조선중고급학교 학생무용단이 미국의 뉴욕과 로스안젤스에서 펼쳐놓은 공연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기였다.

 

* *

 

세월은 흘러 그때의 어린 무용단성원들은 어느덧 교육자, 학부형이 되여 민족교육의 강화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있다.그들중에는 총련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김화미녀성도 있다.어제날의 무용소조원이 오늘은 지도교원이 되여 아이들의 재능을 꽃피워주고있다.

25년전 미국땅을 뒤흔들었던 총련의 재간둥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애국의 싹을 자래워준 우리 학교를 정녕 잊을수 없다고, 우리들의 보람찬 인생좌표는 바로 그곳에서 그어졌다고.

어머니조국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새세대들에게 민족의 넋, 애국의 넋을 심어주는 총련의 민족교육은 더욱 강화발전되고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총련소식

2025년 5월 8일《로동신문》

 

귀중한 경험을 공유하며

 

얼마전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녀성동맹) 교또부본부가 분회교류모임을 개최하였다.지난해에 진행된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4》(새 전성기 4차대회)에서 종합모범분회, 부문별모범분회칭호를 수여받은 5개 분회의 경험을 따라배우자는데 목적을 둔 모임이였다.

간또지방의 녀성동맹 분회장들이 보내여온 축하동영상편집물이 상영되였다.이어 본부의 년간사업방향과 모범창조운동에 대한 해설이 진행되였다.

모범분회의 분회장, 부분회장들이 동포제일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동포봉사활동을 힘있게 벌리는 과정에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활기있는 동포사회를 꾸려놓은 경험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모범분회들의 사업에서 공통적인것은 분회위원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대중행사를 년중 꾸준히 조직하며 동포가정방문사업을 중단없이 벌려온것이다.

눈내리는 날에도 어린 자식을 자전거에 태우고 동포가정들을 방문하였다는 한 부분회장의 토론은 깊은 감명을 자아냈다.

모임참가자들은 애로와 난관이 많으나 동포들과의 련계를 긴밀히 하여 살아움직이는 분회를 만든 모범분회장들의 경험에서 많은것을 배웠다고 말하였다.그러면서 자녀교양사업과 민족교육지원사업, 우리 학교 사랑하는 운동에서 자기들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나갈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애국의 자랑찬 성과를 안고 총련결성 70돐을 떳떳하게 맞이할 의지가 어리여있었다.

모든 기층단위들을 총련의 믿음직한 성돌로 반석같이 다져나가려는 이런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교또지역의 녀성동맹사업에서는 날로 큰 전진이 이룩되고있다.

 

애국의 나팔소리를 더욱 힘차게

 

오사까조선취주악단은 재일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져있다.

50여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관록있는 예술집단이다.단원들은 직업을 가지고있는 동포들로서 사업과 생활의 여가에 한데 모여 연주훈련과 공연활동을 벌리는 음악애호가들이다.모두가 스스로 이길에 나선 사람들이다.

조직된이래 취주악단은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진행하여 동포들의 생활에 풍만한 정서와 랑만을 주는데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이 악단에 대한 동포사회의 사랑과 믿음은 언제나 열렬하다.

연주회가 진행될 때면 극장은 초만원이다.

지난 2021년 정기연주회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악성전염병사태로 여러 차례 연기되다가 오래간만에 마련된 공연이였다.

공연시작전에 한 녀성동맹 고문이 찾아와 연주가들의 손을 꼭 잡고 《동무들의 공연을 애타게 기다렸다.》고 말하는것이였다.순간 취주악단성원들의 두볼로는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동포들이 늘 자기들의 연주회를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절감한 그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애국의 나팔소리를 멈출수 없다고 결의다지였다.그리고 그길을 변함없이 이어가고있다.

그들은 결코 무대에서만 활동하지 않는다.자기들이 사는 곳에 있는 총련지부의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있다.학생들의 예술소조활동에 대한 방조, 학생인입사업 등 여러 활동이 진행되는 장소들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조국의 사랑, 조국의 숨결이 애국의 자양분이였습니다》 -한 총련일군의 딸이 쓴 수기중에서-

2025년 4월 27일《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주체와 애국으로 자랑높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열렬한 조국애, 민족애의 력사는 승리와 영광으로 가득찬 우리 공화국의 어제와 오늘, 광명한 래일과 더불어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입니다.》

재일조선인운동사의 갈피마다에는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애국위업의 강화발전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친 총련일군들의 값높은 생의 자욱이 수놓아져있다.

총련이 형언할수 없는 고난속에서도 좌절을 모르고 승리와 영광만을 수놓을수 있은것은 이런 애국자들이 많았기때문이다.

한 총련일군의 딸이 쓴 수기를 통하여서도 그들의 고결한 인생관을 느낄수 있다.

 

* *

 

김숙희녀성은 때없이 한장의 색날은 사진을 들여다본다.비록 손바닥만한것이지만 볼 때마다 하많은 추억이 밀물쳐와 감회를 금할수 없다.사진에는 애기차를 탄 어린애가 공화국기를 손에 들고 인파에 묻혀있는 모습이 찍혀있다.두살때의 그이다.

때는 1960년대초, 장소는 조국에서 온 귀국선이 정박해있는 일본의 니이가다항이다.분명 이역땅의 한 부분이지만 항구는 환희에 넘친 조선사람들로 흥성거리고있었다.동포들은 천대와 학대속에 구부러졌던 허리를 환생의 기쁨으로 곧게 펴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만시름을 가시고 덩실덩실 추는 그들의 춤가락에 검푸른 파도도 넘실넘실 호응하는듯싶었다.

어린 숙희는 그때 그 광경의 의미를, 자기가 손에 든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리 없었다.자라면서 사연을 알게 되였다.

그의 아버지 김순흠은 총련중앙상임위원회에서 사업하였다.총련의 첫 세대 일군이였다.애국사업으로 밤낮없이 뛰여다니느라 딸이 태여난것도 뒤늦게 알게 되였다고 한다.숙희라는 이름은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일군들이 지어준것이다.

멀리 출장길에 있던 아버지가 금옥같은 딸에게 보내준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공화국기발이였다.

그는 안해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고 한다.

《숙희의 가슴속에 애국의 넋을 심어줍시다.자랑스러운 우리 국기를 소중히 안고 살게 합시다.…》

당시 애국운동은 한창 고조되고있었다.

동해의 파도너머로 들려오는 조국의 자랑찬 소식, 민족의 존엄을 온 세계에 떨쳐가는 사회주의조국의 드높은 숨결은 숙희의 아버지를 비롯한 총련일군들에게 있어서 투쟁의 활력소였다.

아버지는 늘 바빴다.언제 들어오고 언제 나가는지 알수 없었다.

이런 총련일군들을 동포들은 무한히 존경하고 따랐다.

숙희가 학교갈 나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어머니는 기쁨도 컸지만 걱정도 많았다.집세를 물고나면 얼마 남지 않는 돈으로 학생복과 학용품 등을 마련해야 하였기때문이다.어느 총련일군가정이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애국사업을 하느라 수고하는분들에게 무엇을 아끼겠는가고 하면서 동포들이 도와나섰다.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나직이 말하였다.

《아버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구나.조국의 믿음, 동포들의 기대에 보답해야겠는데.숙희야, 공화국기가 펄펄 휘날리는 우리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거라.꼭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숙희가 입학한 총련 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있는 곳에 위치하고있는데 동포자녀들이 줄지어 씩씩하게 학교로 가는 광경은 총련기록영화에도 수록되였다.

첫 등교를 하는 날 숙희의 마음은 마냥 날아갈듯하였다.은정어린 교육원조비로 훌륭히 꾸려진 학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20주년기념칭호를 받은 학교, 조국에서 보내준 민족악기를 처음으로 받은 학교 등 자랑이 많았기때문이다.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원수님의 사진은 언제 봐도 기뻐요 우리들이 어느때나 보고싶은 원수님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숙희네는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삼가 인사드리군 하였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조국의 사랑이 얼마나 따사로운지, 왜 아버지를 비롯한 총련일군들이 애국사업에 그토록 헌신적인지 숙희는 다소나마 알게 되였다.

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되여 숙희는 조국에서 이역의 학생소년들에게 보내준 왕밤을 한아름 받아안게 되였다.

조국의 향취를 한껏 느끼라는 사려깊은 뜻이 어려있는 열매였다.

왕밤이 가득찬 가방을 멘 소녀는 동네동포들에게 《조국에서 왕밤을 보내왔어요!》라고 웨치며 나는듯이 집으로 달려갔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딸에게 갈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직 조국의 형편은 어렵다.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이역의 동포자녀들을 위해 이토록 마음쓰고있구나.너희들이 언제나 조국을 잊지 않고 조선사람으로 당당히 살아가라는것이다.이 사랑, 이 기대를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

어느날 집으로 돌아온 숙희는 학교에서 배운 노래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를 청아한 목소리로 불렀다.

노래를 마치고 무심히 뒤돌아보던 숙희는 그만 굳어졌다.언제 들어섰는지 자기의 노래를 들은것이 분명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것이 아닌가.

언제인가 조국에서 총련일군들의 가정에 식료품과 옷감을 보내주었을 때에도 아버지는 좋아라 환성을 올리는 자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렇게 눈시울을 적시였었지.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일본땅에서 조국을 마음속으로 우러르며 애국의 발걸음을 순간도 멈추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총련일군들이다.

자기들의 남모르는 수고를 속속들이 헤아려주는 조국의 사려깊은 은정이 너무도 고마와 아버지가 어깨를 들먹이였다는것을 숙희는 퍽 후날에야 알게 되였다.

숙희가 총련의 주요행사에 재일본조선소년단축하단 성원으로 뽑히였을 때였다.축하시랑송련습을 하면서 제일 난해한것이 바로 《주체적해외교포운동》이라는 말이였다.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딸의 초롱초롱한 눈을 들여다보며 아버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들려주었다.

암담한 세월 우리 동포들이 일본땅에 끌려오게 된 피눈물나는 사연으로부터 조국이 해방된 후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주체의 대로따라 보람찬 애국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기를.

어느날 숙희는 학급동무들과 함께 총련중앙회관을 구경하였다.회관은 도꾜 지요다구의 높은 둔덕에 위치하고있어 멀리서도 펄펄 휘날리는 공화국기를 확연하게 알아볼수 있었다.

회관을 돌아보던 숙희네는 조국에서 보내온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배분문제를 토의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였다.

그날 밤 딸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아버지는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동서고금에 없는 예산항목이 우리 공화국의 국가예산에 포함되게 된 사연에 대하여 눈물겹게 이야기해주었다.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일본땅에서 돈을 벌지 않고서는 생계조차 유지할수 없었지만 총련일군들은 돈벌이가 아니라 애국사업을 선택하였다.온갖 유혹과 협박을 물리치며 조국을 위해 묵묵히 일하였다.

늘 아침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군 하던 아버지가 하루는 가족사진을 찍자고 약속한적이 있다.

숙희는 신새벽부터 마음이 들떠 노상 시계만 쳐다보았다.그런데 야속하게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제기된 중요한 사업때문에 자식들과 모처럼 한 약속을 지킬수 없었던것이다.목빠지게 기다리던 숙희의 남매는 그만 울상이 되였다.

사진을 찍으면서 숙희는 애꿎은 어머니에게 투정질하였다.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하지 않겠는가고.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숙희는 물었다.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없나요?》

철없는 딸의 투정질에 한동안 묵묵해있던 아버지는 조용히 말하였다.

《조국은 우리 총련일군들에게 일본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존엄과 운명을 맡기였다.그래서 아버지는 늘 동포들속에 들어가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거란다.》

아버지가 자주 출장길에 있다나니 자식들과의 간격이 생겨나게 되였다.

이에 왼심을 쓰던 어머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당과류를 미리 장만해놓고 아버지가 돌아오면 슬쩍 손에 들려주군 하였다.

총련일군의 안해들은 누구보다도 걱정이 많았으며 부담도 컸다.

더우기 숙희의 어머니는 남편의 뒤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하는 속에서 녀성동맹사업도 하고 총련에서 처음으로 세운 유치원에서 원장사업까지 하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루는 퇴근시간이 훨씬 지났으나 어머니가 오지 않았다.숙희의 남매는 허기증을 달래면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런데 밤늦게 집에 들어선 어머니가 하는 말은 숙희를 아연케 하였다.

이제부터 매일 늦어지니 맏딸인 네가 구실을 잘하여 동생들을 돌봐주어야 한다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또 투정질하였다.유치원아이들이 자기 자식들보다 더 중한가고.

하지만 동포들로부터 《우리 원장선생님》으로 존경받는 어머니를 보며 생각을 달리하게 되였다.

숙희의 부모는 총련일군자녀들은 화려한 생활을 부러워하지 말고 소박하고 검박하게 살아야 한다고 늘 말하군 하였다.

딸이 등교할 때에는 물론이고 그 어디에 갈 때에도 무조건 조선치마저고리를 입도록 하였다.

깡패들의 란동이 무서워 그가 치마저고리를 입는것을 삼가하려 할 때 아버지는 준절하게 말하였다.

《우리는 조선사람이다.우리에게는 위대한 조국이 있다.무엇이 무서우냐.당당하게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거라.》

이것은 오래동안 총련일군으로, 교육자로 사업한 부모에 대한 김숙희녀성의 추억의 일부이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되였지만 그는 애국의 길에서 언제나 변함없던 아버지를 비롯한 총련의 첫 세대 일군들의 모습을 잊을수 없어한다.

그리고 말한다.조국의 사랑, 조국의 숨결이 바로 애국의 자양분이였다고.

 

* *

 

인간에게 있어서 천만금의 재부보다 귀중한것은 믿고 의지할 운명의 품이다.

그 품이 있을 때 인간은 외롭지 않고 어떤 고난속에서도 비관을 모르며 긍지높고 떳떳한 삶을 누릴수 있다.

총련의 전세대 일군들이 바로 그렇게 살았고 오늘의 총련일군들도 그렇게 생을 이어가고있다.

황금만능이 지배하는 거치른 이역땅에서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과 열렬한 애국심을 지니고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헌신분투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총련이 그처럼 강하고 애국의 대가 굳건히 이어지고있는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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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들의 신성한 민주주의적민족교육권리는 그 누구도 침해할수 없다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담화

2025년 4월 24일《로동신문》

 

재일조선인운동사에 1948년 4월 24일은 조선인학교를 요람기에 없애버리려는 미일반동들의 파쑈적탄압책동에 재일동포들이 대중적인 투쟁으로 견결히 맞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권리를 피로써 지켜낸 날로 아로새겨져있다.

1945년 8월 패망한 이후에도 일본반동정부는 재일동포들에게 일제식민지시기의 《동화교육》을 끈질기게 강요하였으며 1948년 1월에 들어와 미제의 사촉밑에 조선학교들에 대한 《페쇄령》을 내리였다.

뿐만아니라 조선사람들의 독자적인 학교설치는 절대로 인정할수 없으며 재일조선인자녀들은 반드시 일본학교에 입학하여야 한다는 강도적인 요구가 담긴 지령을 전국의 지사들에게 하달하였다.

이에 분노한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떨쳐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옹호하여 항의투쟁을 벌리였으나 일본반동들은 그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해버린채 1948년 4월 24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방대한 경찰무력을 내몰아 물총을 쏘아대고 총탄까지 란사하며 체포구금하는 등 류혈적인 탄압책동에 광분하였다.

일제가 패망한 때로부터 어언 80년이 되여오지만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을 말살하려는 일본당국의 극심한 민족배타주의와 반인륜적인 차별정책에서는 자그마한 변화도 없다.

2019년 8월 일본당국이 조선학교 유치반들을 념두에 두고 각 지방자치체들에 보육시설허가신청을 받지 말며 접수한 신청도 모두 기각하라는 지시를 하달한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재일동포들이 자녀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는것은 너무도 응당한것이며 아동들에게는 최선의 리익, 재정적지원이 보장되여야 한다는것은 국제법의 초보적인 요구이다.

유엔에서 채택된 아동권리에 관한 협약 제28조에는 모든 당사국들은 교육에 관한 어린이의 권리를 인정하며 이 권리를 점진적으로 그리고 평등하게 실현시켜야 한다고 규제되여있다.

그러나 일본당국은 아동권리에 관한 협약도 배타주의로 얼룩진 저들의 법률에 맞춰 해석하려고 어리석게 놀아대고있으며 《아이키우기지원법》을 모든 아동들에게 공평하게 적용하겠다고 하던 공약마저 지키지 않고있다.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모국어를 배워주려는 초보적인 권리마저 빼앗으려는것은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의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특대형인권침해로 된다.

일본당국은 재일조선인들에게 일본인들과 꼭같은 세금납부의무를 걸머지우면서도 그 자녀들이 다니는 조선학교들만은 부당한 구실을 붙여 《고등학교무상화》와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적용을 비롯한 각종 교육지원제도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천진란만한 어린이들의 가슴에까지 못을 박고있다.

재일조선인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실시는 아동권리협약을 비롯한 국제인권협약들과 유네스코의 교육차별반대협약 등 일본도 수락한 수많은 국제법들과 일본의 헌법, 교육기본법과 같은 국내법규에도 전적으로 부합되는 마땅한 권리행사이다.

일본정부는 조선에 대한 일제식민지통치의 직접적피해자들과 그 자녀들인 재일조선인들에게 응당 교육권, 생활권 등 민족적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도의적책임과 함께 법률적의무를 지니고있다.

재일조선인들의 정정당당한 민족교육권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부정할수 없고 그 누구도 침해할수 없는 신성한것이다.

조선법률가위원회는 일본당국이 총련과 재일조선인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침해하는 온갖 불법무법의 제도적, 행정적차별조치들을 지체없이 철회하고 법률적, 도의적의무를 다할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2025년 4월 23일

평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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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法律家委員会代弁人が談話発表

2025年 4月 24日 朝鮮中央通信

 

【平壌4月24日発朝鮮中央通信】朝鮮法律家委員会のスポークスマンが23日に発表した談話「在日朝鮮人の神聖な民主的民族教育権利は誰も侵害することはできない」の全文は、次の通り。

在日朝鮮人運動史に1948年4月24日は朝鮮人学校を揺籃(ようらん)期になくそうとする米・日反動層のファッショ的弾圧策動に在日同胞が大衆的な闘争で断固と立ち向かって民主的民族教育の権利を血潮を流して守り抜いた日に記されている。

1945年8月、敗北した後にも日本の反動政府は在日同胞に日帝植民地時期の「同化教育」をしつこく強いたし、1948年1月に入って米帝のそそのかしの下で朝鮮学校に対する「閉鎖令」を下した。

それだけでなく、朝鮮人の独自的な学校の設置は絶対に認められず、在日朝鮮人子女は必ず日本学校に入学すべきだという強盗さながらの要求が盛り込まれた指令を全国の知事に下達した。

これに憤激した数多くの在日同胞が決起して民主的民族教育を擁護して抗議闘争を展開したが、日本の反動層は彼らの正当な要求を無視してしまったまま1948年4月24日、「非常事態」を宣布し、膨大な警察武力を駆り立てて水鉄砲を発射し、銃弾まで乱射しながら逮捕、拘禁するなど流血の弾圧策動に狂奔した。

日帝が敗北してからいつの間にか80年になるが、在日朝鮮人の民族教育を抹殺しようとする日本当局の甚だしい民族排外主義と反人倫的な差別政策においてはいささかの変化もない。

2019年8月、日本当局が朝鮮学校の幼稚班を念頭に置いて各地方自治体に保育施設の許可申請を受けず、受け付けた申請も全て棄却しろという指示を下達したのがその代表的実例である。

在日同胞が子女に朝鮮の言葉と文字を教えるのはあまりにも当然なことであり、児童には最善の利益、財政的支援が保障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は国際法の初歩的な要求である。

国連で採択された児童の権利に関する条約第28条には、全ての当事国は教育に関する児童の権利を認め、この権利を漸進的に、そして平等に実現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と規制されている。

しかし、日本当局は児童の権利に関する条約も排外主義で染まった自分らの法律に合わせて解釈しようと愚かに振る舞っており、「子ども・子育て支援法」を全ての児童に公平に適用すると言っていた公約さえ守っていない。

育ちゆく新世代に母国語を教えようとする初歩的な権利さえ奪おうとするのは、この世のどの国の歴史にも見られない特大型の人権侵害である。

日本当局は、在日朝鮮人に日本人と同じ税金納付義務を負わせながらもその子女が通う朝鮮学校だけは不当な口実を設けて「高等学校無償化」と「幼児教育、保育無償化」の適用をはじめとする各種の教育支援制度から除外させることで天真爛漫(てんしんらんまん)な子供たちの胸にまで釘を打ち込んでいる。

在日朝鮮人の民主的民族教育の実施は、児童の権利に関する条約をはじめとする国際人権条約とユネスコ(UNESCO=国連教育科学文化機関)の教育差別反対協約など日本も受諾した数多くの国際法と日本の憲法、教育基本法のような国内法規にも全的に合致する当然な権利行使である。

日本政府は、朝鮮に対する日帝植民地支配の直接的被害者とその子女である在日朝鮮人に当然、教育権、生活権など民族的権利を保障すべき道義的責任と共に法律的義務を負っている。

在日朝鮮人の正々堂々たる民族教育権利は、いかなる場合にも否定することはできず、誰も侵害することはできない神聖なものである。

朝鮮法律家委員会は、日本当局が総聯(在日本朝鮮人総聯合会)と在日朝鮮人の民主的民族権利を侵害するあらゆる不法無法の制度的・行政的差別措置を遅滞なく撤回し、法律的・道義的義務を果たすことを強く求める。(記事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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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조선의 찬란한 태양이시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립니다

2025년 4월 16일《로동신문》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전원회의 결정을 높이 받들고 조국인민들이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80돐을 향한 총공격전을 힘있게 벌리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우리들은 민족최대의 명절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탄생 113돐을 맞으며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재일동포자녀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위하여 보내주신 일본돈 2억 8 702만¥의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크나큰 감격과 기쁨속에 받아안았습니다.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의 피해를 가시기 위하여 한푼의 돈이 귀중했던 1957년에 꿈결에도 생각을 못했던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은 력사의 그날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끊임없이 보내주신 사랑의 생명수는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에 의하여 고스란히 이어져 그 총액은 171차에 걸쳐 일본돈으로 실로 499억 8 859만 390¥에 달합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총련결성 70돐을 충성과 애국, 단결의 힘으로 빛내이기 위한 혁신운동을 힘차게 벌려나가고있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필승의 신심과 무한한 용기를 안겨주고있습니다.

2025년의 새해벽두에 설맞이공연에 참가한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 성원들을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 불러주시고 특대의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재일동포자녀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그토록 귀중한 자금을 또다시 보내주시였으니 진정 어버이원수님의 숭고한 후대중시사상과 동포들에 대한 사랑에 저희들은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습니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는 력대초유의 난국을 맞받아 미증유의 변천사를 아로새겨가고있는 우리 공화국의 눈부신 비약상승을 진두지휘하시는 혁명령도의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하여 크나큰 은총을 거듭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최대의 영광과 가장 뜨거운 고마움의 인사를 삼가 드립니다.

지금 우리모두의 가슴가슴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동포자녀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영원히 믿고 따를 충성의 열의로 충만되여있습니다.

조국해방 80돐과 총련결성 70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우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총련중시, 민족교육중시의 참뜻을 정히 새기고 원수님의 강령적서한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공세적으로 벌려 총련 제25차 전체대회 결정집행의 확고한 담보를 마련해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주체의 사상체계와 령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주선으로 틀어쥐고 재일조선인운동의 개척세대, 총련의 결성세대가 지녔던 숭고한 정신과 리상, 신념을 따라배워 충성과 애국, 단결의 전통을 꿋꿋이 이어나가며 각급 조직들을 경애하는 원수님과 사상과 뜻, 행동을 같이하는 일심일체의 조직으로 더욱 튼튼히 다져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총련의 대가 굳건히 이어지게 하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을 가슴에 새기고 새세대를 비롯한 광범한 동포들을 애국주의와 우리 민족제일주의정신으로 교양하는 사업에 큰 힘을 넣겠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베풀어주신 하해같은 은총에 보답할 일념을 안고 교육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고 교수교양의 질적수준을 한단계 높여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배우는 학생소년들을 활기있고 명랑하고 대바른 총련애국위업의 계승자들로 더 잘 키워나가겠습니다.

민족교육사업을 애국사업의 제1순위에 놓고 학생인입사업과 학교지원사업에 최대의 공력을 들임으로써 학생수를 늘이고 각급 학교들의 교육조건과 환경을 개선하여 민족교육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남김없이 과시해나가겠습니다.

우리의 운명이시고 승리의 기치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안녕은 우리들의 한결같은 소원이며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총련중앙상임위원회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한결같은 충성과 다함없는 경모의 마음을 담아 주체조선의 태양이시고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위대한 스승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부디 옥체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2025년 4월 14일 일본 도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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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조선의 위대한 태양이시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립니다

2025년 4월 15일《로동신문》

 

오늘 우리들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탁월한 령도밑에 공화국의 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창조와 변혁의 새시대, 국방력강화와 경제건설, 농촌진흥과 《지방발전 20×10 정책》실현을 위한 거창한 작전들이 련이어 펼쳐지고있는 속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탄생 113돐을 민족최대의 대경사로 뜻깊게 경축하고있습니다.

4월명절의 이 아침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한없이 자애로운 태양의 모습을 우러러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생애와 업적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면서 다함없는 경모와 감사의 정에 휩싸여있습니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는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4월의 봄명절에 즈음하여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끓어오르는 흠모의 마음을 담아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 가장 숭고한 경의를 드리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승발전시켜오신 주체혁명위업과 총련애국위업을 언제나 승리의 한길로 현명하게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최대의 영광과 가장 열렬한 축하를 드립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여 조국해방의 민족사적위업을 빛나게 성취하시였으며 건당, 건국, 건군의 대업을 실현하고 미제국주의를 괴수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을 타승하는 세계사적기적을 창조하시였습니다.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인 조선로동당을 창건하시고 자주, 자립, 자위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일떠세우시였으며 혁명의 계승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업적은 만대에 길이 빛나고있습니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은 우리 공화국이 영원히 승승장구하고 우리 인민이 자자손손 복락할 부강번영의 억년 드놀지 않을 초석을 마련해주신 불세출의 위인, 절세의 애국자이십니다.

총련결성 70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맞이하는 4월의 명절이여서 자주시대 해외교포운동의 개척자, 총련의 창건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에 대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그리움은 더더욱 사무쳐집니다.

재일동포들을 자주독립국가의 당당한 해외공민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해있던 재일조선인운동의 실태를 깊이 통찰하시고 독창적인 로선전환방침을 제시하시여 세계해외교포운동의 본보기조직인 총련을 결성해주시였으며 재일조선인운동을 주체의 궤도우에 확고히 올려세워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계각층 재일동포들을 국가정사를 론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내세워주시고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해 수많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였으며 재일동포들에게 귀국의 배길을 열어주시여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민족대이동의 경이적인 력사를 펼쳐주시였습니다.

독창적인 해외교포운동사상과 현명한 령도로 총련을 승리와 영광의 한길로 손잡아 이끌어주시고 재일동포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여 온갖 배려를 다 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태양으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모두의 가슴속에 영생하고계십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빛내여오신 주체혁명위업과 총련애국위업은 오늘 경애하는 원수님에 의하여 굳건히 계승발전되고있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희생적인 헌신과 로고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에서 개척하시고 만대의 진로로 펼쳐주신 주체혁명의 길에 우리 조국과 총련의 영원한 존엄과 승리가 있고 무궁번영이 있다는것을 우리 인민과 재일동포들의 가슴속에 불변의 철리로 각인시켜주시였습니다.

우리들은 뜻깊은 올해에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따라 어버이수령님께서 무어주신 주체의 해외교포조직인 총련의 결성 70돐을 충성과 애국, 단결의 힘으로 자랑차게 빛내이겠습니다.

무엇보다먼저 조직안에 주체의 사상체계, 령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는 사업에 주력하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총련조직의 면모를 동포제일주의로 일신시켜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총련 제25차 전체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주신 강령적서한에 제시된 과업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기운차게 벌려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기어이 열어나가겠습니다.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을 애국주의와 우리 민족제일주의정신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사상교양사업과 일군들의 사업방법과 작풍을 일신하기 위한 사업, 신진핵심육성사업에 큰 힘을 넣으며 조선대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들에서 학생들을 활기있고 명랑하고 대바르게 키워 총련애국위업의 바통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총련이 부흥하는 새시대를 개척하는 길에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바라시는 실제적인 발전변화를 기어이 이룩함으로써 원수님께 충성의 보고, 기쁨의 보고를 삼가 드리겠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안녕은 총련의 전체 일군들과 동포들의 가장 간절한 소원입니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끝없는 충성과 경모의 마음을 담아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과 총련애국위업의 승승장구를 위하여 민족의 찬란한 태양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부디 옥체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2025년 4월 15일 일본 도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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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Info]

 

민족의 넋을 꿋꿋이 지켜가는 총련의 새세대들

2025년 4월 13일《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의 새세대들이 단결력과 개척정신이 강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조선민족의 억센 기질과 웃어른을 존경하고 이웃들과 화목하며 부모처자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미풍량속을 순결하게 이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재일조선인운동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애국의 피줄기로 굳건히 이어주는 민족교육의 화원 조선학교, 어머니조국의 따뜻한 손길이 어려있는 이 학교들에서 수많은 동포자녀들이 배우고있다.자본주의이역땅에서 불의와 악덕에 물젖지 않고 민족의 넋을 지닌 조선사람으로, 애국의 역군으로 의젓하게 성장하고있다.

이역의 새세대들의 순결한 정신세계는 그들의 생활의 단면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애국의 시간에 살자

 

총련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에는 쌍둥이자매가 있다.이들이 쌍태머리를 팔랑거리며 학교로 갈 때면 지역동포들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그들에게는 철구라고 부르는 귀여운 남동생이 있다.바쁘게 일하는 어머니를 도와 그들은 동생의 시중을 맡아하고있다.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끝마치고는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밤에는 머리맡에 앉아 어머니처럼 자장가를 불러주기도 했다.해죽해죽 웃는 남동생의 귀여운 모습은 쌍둥이자매의 기쁨이였다.

어느덧 철구는 누나들이 공부하는 학교의 부속유치원에 들어가게 되였다.자매는 휴식시간이면 유치원으로 나는듯이 달려가 동생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군 하였다.그런데 왜서인지 생기가 없어보였다.유치원선생님은 철구가 다른 애들과 잘 섭쓸리지 않고 우울해있다고 걱정하는것이였다.

아직 유치원생활에 익숙되지 않아서인가.

덜컥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무슨 병에 걸린것이 아닐가?)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남동생에게 왜 유치원에서 말도 잘 하지 않고 재미나게 뛰놀지 않는가고 물었다.

시무룩해서 머리를 외로 틀던 동생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의 대답은 누나들을 깜짝 놀래웠다.자기도 다른 애들처럼 우리 말로 멋지게 이야기를 하고싶다는것이 아닌가.

자매는 서로 마주보았다.그리고는 약속이나 한듯이 동생을 부둥켜안았다.

《기특한 우리 철구야, 누나들이 그 마음을 몰랐구나.우리가 널 도와주겠다.》

철구는 유치원 높은반부터 다니기 시작하였으므로 우리 말이 몹시 서툴렀다.그래서 류창하게 말을 하는 자기또래 아이들과 섭쓸리지 못하였던것이다.

자매는 한편으로 자책이 컸다.학교에서 돌아오면 보통 일본말로 대화하군 하였으니 동생이 어떻게 우리 말 환경에 익숙될수 있으랴.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께서는 조국 멀리 이역땅에서 사는 동포들에게 있어서 민족의 혈통을 고수하는데 애국의 참모습이 있으며 우리 말을 하는 시간은 곧 애국으로 사는 시간이라고 가르쳐주시지 않았는가.

그날부터 그들은 철구에게 열심히 우리 말을 배워주었다.자칭 꼬마선생이 되였다.

흥겨운 민요 《옹헤야》도 배워주고 학교에서 부르던 여러가지 아동가요들도 따라부르도록 하였다.

영특한 동생은 제꺽제꺽 받아물었다.

《누나, 저걸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아니? 가지라고 해.》, 《난 사과보다 배가 더 맛있어.》…

철구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유치원선생님은 철구가 몹시 쾌활해지고 다른 애들과 잘 논다고 기뻐하였다.

쌔근쌔근 잠자는 사랑스러운 남동생을 어머니처럼 대견하게 지켜보며 자매는 이렇게 속삭였다.

《이제 학교에 입학하면 철구도 우리들처럼 발랄하게, 더욱 무럭무럭 자라날거야.》

 

《총련의 대를 이어가렵니다》

 

(우리 아버지의 경력은 정말 특이해.무슨 사연이 있을가?)

이것은 총련 니시도꾜조선제2초중급학교 학생 박지호가 철이 들면서부터 품기 시작한 의문이였다.

그도그럴것이 정규적인 민족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는 아버지가 애국사업에 매우 적극적이기때문이다.

지호의 아버지는 일본의 소, 중, 고등학교에서 공부하였다.

학교시절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일본인동급생들이 알게 될가봐 무척 왼심을 썼다고 한다.간혹 그들이 집으로 놀러 오겠다고 하면 서둘러 먼저 달려가 조선사람의 체취가 느껴질수 있는 물건들을 방안에서 치워버리려고 허둥지둥하군 하였다지 않는가.

그런 아버지가 지금 누구보다도 동포사회를 위해, 애국위업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가고있다.

학교 아버지회 회장으로서 학교를 위한 일이라면 발벗고나선다.

자주 도서도 희사하고 학교에서 진행될 행사계획도 밤늦도록 작성하고…

그 내용은 《조선신보》에도 크게 소개되였다.

《지호의 아버지가 정말 대단하구나.》

동무들이 부러워할수록 지호의 의문은 더욱 커갔다.

마침내 그것을 풀어주는 계기가 생기였다.

어느날 아버지가 자기의 특이한 인생길에 대해 아들에게 말해주었던것이다.

일본의 어느한 대학에 다닐 때 나는 재일본조선류학생동맹(류학동)이라는 조직을 알게 되였다.그 영향으로 난생처음 우리 말과 글을 배우고 력사와 문화를 익히게 되였다.

열심히, 꾸준히 배웠다.대학에서 강의받은 시간보다 류학동에서 배운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이렇게 우수한 우리 민족에 대하여, 위대한 조국에 대하여 뒤늦게야 알게 된다는 후회감이 얼마나 크던지.

그 과정에 아버지는 깨달았구나.민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일본땅 곳곳에 있는 우리 학교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그래서 나의 잘못된 전철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고 너를 우리 학교에 보낸것이다.미덥고 당당한 조선사람으로 씩씩하게 자라나라고.

지호의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한 후 류학동 전임일군으로 사업하였다.지금은 상공회에서 동포들의 권익을 위해 힘쓰고있다.그래서 동포사회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다.

추억의 상념에 잠겨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지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토로하였다.

(아버지를 존경합니다.애국위업에 몸바치는 모든분들을 존경합니다.나도 그들처럼 살겠습니다.총련의 대를 이어가렵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총련소식

2025년 4월 8일《로동신문》

 

민족의 기개를 높이 떨치며

 

《만세! 만세! 우리가 이겼다!》

얼마전 일본 사이다마현에서 열린 전일본구락부투구대회에서는 이런 환호성이 터져나왔다.전일본적인 투구애호가들의 경기에서 재일조선인투구구락부인 천리마투구단이 우승을 쟁취한것이다.

천리마투구단은 1980년 총련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투구부출신 졸업생들로 무어졌다.민족교육의 화원에서 재능의 싹을 키운 천리마투구단 성원들은 일본에서 진행된 여러 경기대회에서 무시하지 못할 강팀으로 이름떨쳐왔다.

1993년부터 진행되여온 전일본구락부투구대회에서도 세번씩이나 2등을 하였다.

천리마투구단 성원들은 이번에 잡도리를 단단히 하였다.

무조건 우승하자!

결승에서 맞다든 상대는 3련승의 전적을 가진 강팀이였다.경기는 치렬하였다.하지만 동포선수들은 높은 집중력과 인내력을 발휘하여 끝끝내 승리하였다.

우승이 선포되자 선수, 감독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민족의 기개를 높이 떨치라는 동포들의 열렬한 성원이 있어 승리를 안아올수 있었습니다.》

동포들의 열렬한 환호속에 우승의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은 조선사람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이역땅에서 민족의 슬기와 기개를 높이 떨쳐갈 애국의 의지를 더욱 굳게 가다듬었다.

 

우리의 노래춤이 제일로 좋아

 

세대와 세대를 이어온 자랑스러운 력사를 후대들에게 알려주고 그들의 가슴속에 민족의 넋이 맥맥히 살아높뛰게 하기 위해 총련의 각급 조직들에서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활발히 벌려나가고있다.

얼마전 총련 니시도꾜 마찌다지부에서 민족문화감상모임이 진행되였다.

공훈배우인 총련 금강산가극단 장새납연주가를 비롯한 총련의 우수한 예술인들이 민족음악의 흥취나는 세계를 펼쳐놓았다.《도라지》, 《모란봉》, 《종다리》를 비롯한 민요작품들이 먼저 무대에 올랐다.《매혹과 흠모》,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 추억깊은 선률도 울려퍼지였다.《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도 소해금으로 연주되여 관객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리였다.

동포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 노래는 세대가 바뀌여도 변함이 없는 어머니조국의 사랑을 구가하는 명곡이라고 격정을 터치였다.

관람자들 누구나 민족의 넋, 우리의것을 굳건히 지키고 열렬히 사랑하겠다고 흥분된 심정을 터놓았다.

출연자들은 또 그들대로 총련의 문예일군답게 동포들의 정서와 심리에 맞는 예술활동으로 그들의 애국열의를 더욱 고조시켜나갈 결의를 피력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총련 조선대학교 교직원들에게 학직 수여

2025년 4월 7일《로동신문》

 

총련 조선대학교 교직원들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수, 부교수학직을 수여하는 모임이 2일 일본 도꾜에 있는 조선회관에서 진행되였다.

박구호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제1부의장 겸 조직국장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결정을 랑독하였다.

허종만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이 전달사를 하고 학직증서를 수여하였다.

그는 전달사에서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바라시는대로 조선대학교 교직원들이 실력있는 교육과학전사들로 준비하며 총련애국위업의 바통을 이어나갈 역군들을 더 훌륭히, 더 많이 키워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송근학부의장 겸 교육국장, 한동성 조선대학교 학장을 비롯한 일군들과 교직원들 등이 모임에 참가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어머니조국의 손길이 있어 고난도 시련도 웃으며 헤쳐왔습니다》 -총련동포들의 추억의 목소리-

2025년 4월 1일《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역땅에 있어도 언제나 마음속에 조국을 안고 살아야 하며 사회주의조국의 절대적인 지지자, 견결한 옹호자가 되여야 합니다.》

이역에서 사는 해외교포들은 생활하는 과정에 이러저러한 곡절과 난관을 겪게 된다.자본주의일본땅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일본이 타민족 특히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이 우심한 나라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모든 시련과 난관을 웃으며 헤쳐오고있다.자애로운 어머니조국, 강대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 있기에.

《많은것을 잃었지만 제일 귀중한것을 얻었습니다》

얼마전 일본 효고현에서는 총련조직의 주최밑에 30년전 한신대지진으로 희생된 동포들에 대한 추모모임이 열리였다.장내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있었다.

하지만 이 모임은 결코 슬픔의 나날을 돌이켜보는 모임이 아니였다.절망에 빠졌던 자기들을 손잡아 일으켜세워준 어머니조국의 뜨거운 사랑에 감사를 드리는 마당이였다.

1995년 1월 17일 5시 46분 일본의 효고현을 비롯한 깅끼지방에서 강한 지진이 일어났다.살림집과 건물들이 처참하게 무너져 숱한 사람들이 생매장당하였다.지역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화하였다.

이 재난은 재일동포들에게도 커다란 불행을 들씌웠다.백수십명이 목숨을 잃고 1 500여명이 부상당하였다.근 2 000호의 동포가옥이 완전히 파괴되였다.

추모모임에 참가한 많은 동포들이 그때의 일을 추억하였다.

총련 효고현 니시노미야지부 부위원장으로 사업하는 조리관동포는 당시 조청 효고현 니시노미야지부 부위원장이였다.요란한 진동에 놀라 깨여나보니 집집의 창문들이 깨여져나가고 거리의 곳곳에서 불길이 솟구쳤다.급히 가까이에 있는 한신조선초급학교(당시)에 뛰여가보니 총련과 조청일군들, 교원들이 모여와있었다.

《동포들의 생사여부를 확인하는것이 첫째입니다.모두 출동합시다.》

한 총련일군의 결패있는 말에 모두가 밖으로 뛰쳐나갔다.전화가 두절되고 교통이 마비되다나니 걸어서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상황은 험악하였다.길가에서 통곡하는 사람들, 페허가 된 거리와 마을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을 볼수 있었다.음식점을 경영하던 한 동포가 오가는 사람들에게 주먹밥을 나누어주고있는것이였다.

조리관동포는 눈굽이 뜨거워졌다.

고베조선초중급학교에서 그는 피난와있는 부모를 만났다.하루밤만이라도 같이 지내자고 하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말하였다.

《미안해요.어머니, 페허에서 우리 동포들이 기다리고있어요.내가 있어야 할 곳은 동포들이 있는 그곳입니다.》

당시 고급학교학생이였던 최수영동포는 함께 자던 부모의 생사를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1층에서 자던 형 최수광을 찾아보았다.총련 조선대학교에 다니던 형은 방학으로 집에 와있었다.찌그러진 베란다를 통해 겨우 1층에 내려가 이미 숨진 형을 발견했을 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으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원이 되겠다고 하던 형이 이렇게 되다니.)

최수영의 가족은 주변에 있는 일본피난소에서 림시 생활하였다.

고생하던 그들을 총련지부 위원장이 찾아냈다.동포들이 모여있는 고베조선초중급학교에 가니 각지 총련조직들에서 보내여온 지원물자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지원물자를 실은 자동차들이 매일과 같이 들이닥치였다.도꾜에서, 교또에서…

언제나 총련과 재일동포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리고계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라사정이 그토록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 동포들이 당한 피해를 속속들이 료해하시고 사랑의 위문전문과 위문금을 보내주시였다.

동포사회는 뜨거운 격정의 파도로 세차게 설레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위문금을 보내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 재일본조선인중앙대회장은 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감사와 열화같은 경모의 정으로 끓어번지였다.온통 눈물바다였다.

암담하였던 민족수난의 시기에 일어났던 간또대지진, 그때 재일동포들은 억울하게 참혹한 학살을 당하고도 하소할수 없었다.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어도 물 한모금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라가 없었던탓으로 강요당하였던 그 비참한 과거와 오늘의 현실은 얼마나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것인가.

재일동포들은 사회주의조국의 품이야말로 영원히 운명을 맡길 진정한 삶의 요람, 한없이 따사로운 어머니품이라는것을 다시금 깊이 절감하였다.

어머니조국의 사랑의 손길이 있어 재일동포사회는 횡포한 자연의 광란속에서도 안정을 유지하면서 난관을 극복해나갔다.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효고지부 위원장인 심달야동포는 당시 교원이였는데 지진이 일어난지 3일만에 학교에서 수업이 열리였던 사실을 눈물겹게 추억하였다.

총련 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 교육회 부회장인 리현규동포는 당시 조선신보사 기자였다.급히 취재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받고 효고현으로 떠났다.

《기자동무가 왔다!》

동포들은 환성을 올리였다.비록 피난생활을 하고있었지만 모두가 락천적으로 곤난을 이겨내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신 뜨거운 사랑이 그들모두를 일으켜세운것이다.

기자는 놀라운 광경도 볼수 있었다.어느한 분회의 동포들이 페허가 된 분회사무소부지에서 《우리 분회는 살아있다! 모든 힘을 피해복구에로!》라는 글이 씌여진 횡단막을 들고있는것이였다.모두 집과 가산을 잃었지만 그들은 웃고있었다.이 분회의 분회장이 바로 사망한 조선대학교 학생 최수광의 아버지 최민부동포라는것을 알았을 때 기자는 눈굽이 쩌릿해짐을 금할수 없었다.

몇달후 이곳에서는 고베조선초중급학교개건을 위한 모임이 진행되였다.자기 집, 자기 기업이 다 파괴된 속에서도 동포들은 학교복구부터 시작한것이다.

조청 효고현 니시노미야지부에서는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한신조선초급학교에 대한 유희기구기증사업을 준비하고있었다.그런데 재난으로 가산을 다 잃다나니 누구 하나 손에 쥔것이 없었다.

하지만 조청원들은 두주먹을 부르쥐고 웨치듯 말하였다.

《무조건 합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힘을 합칩시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동포들은 말한다.재난으로 많은것을 잃었지만 제일 귀중한것을 얻었다고.

그것은 위대한 조국이 있는한 그 어떤 재난이 닥쳐도 이겨낼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였다.

위대한 조국은 우리 운명의 은인

예로부터 해외동포들은 민족이라는 대하에서 튀여나온 물방울에 비유되였고 그들의 력사는 례외없이 수난의 력사로 불리워왔다.우리 민족의 불행에 찬 해외류랑의 력사는 일제의 조선침략으로부터 시작되였다.그 불우한 행렬가운데서 최악의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다름아닌 재일동포들이였다.

돗도리현에는 생의 시작이 영 다른 두 동포로인이 살고있다.리규석로인과 박정우로인이다.그들의 인생사는 나라의 흥망이 매 민족성원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있다.

《허약했던 나라마저 빼앗겨 내 운명이 비참했습니다.하지만 위대한 조국을 따르는 길에서 극적인 운명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90고령의 리규석로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리규석로인은 조선봉건왕조시기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내였던 가문에서 태여났다.방바닥을 기여다니던 애기의 눈에 비쳐진것은 고래등같은 기와집과 뜨락을 분주히 오가는 하인들이였다.생활은 비교적 유족하였다.

하지만 안정은 오래가지 못하였다.량반출신이지만 반일감정이 강한 이 가정을 일제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집과 재산은 다 차압당하고 아버지는 일본으로 끌려갔다.굶어죽을 지경에까지 처하였던 리규석은 인정많은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났다.그의 신세는 아지에서 떨어져 오가는 발길에 짓밟히는 잎사귀와 같았다.

어린 규석은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갔다.아버지가 공사판에서 일한다니 목구멍에 풀칠이야 할수 있겠지 하는 천진한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던가.그의 눈에 비쳐진 아버지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하였다.노예였다.기대가 무너진 규석은 15살때부터 생계유지를 위해 몸부림쳤다.오사까, 나고야, 요꼬하마 등으로 떠돌아다니며 품팔이를 하였다.무슨 일인들 못해보았으랴.하지만 일본땅은 죽도록 발버둥쳐도 살아가기 힘든 막막한 암흑천지, 차거운 동토대였다.

아, 우리를 품어줄 조국, 조국은 어디에 있는가.

조선사람이라는 죄 아닌 죄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그는 이렇게 피터지게 부르짖었다.

마침내 간악한 일제가 패망하고 조국이 해방되였다.10년후에는 공화국의 존엄높은 해외공민단체인 총련이 고고성을 터치였다.총련이 자기들의 권익을 지켜주는 조직이라는것을 알게 된 그는 품팔이를 그만두고 애국사업에 몸을 담그었다.

마가을 찬바람에 흩날리는 가랑잎신세나 다름없던 리규석동포는 참다운 삶의 좌표를 세우게 되였다.피눈물나는 노예살이속에 진정한 조국의 참의미를 깨달은 인간의 필연적인 선택이였다.키도 노도 없이 표류하던 운명의 쪽배는 마침내 포구에 와닿았다.

리규석동포는 조청지부 재정부장, 현본부 문화부장, 조직부장사업을 하면서 밤낮없이 뛰여다니였다.그후 상공회에 들어가서도 많은 일을 하였다.

리규석로인과 거의 동년배인 박정우로인은 그와는 달리 극빈한 가정에서 태여났다.고향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있다는것은 어릴적에 엿장사군이 올 때마다 입술을 감빠는 자기에게 할머니가 엿을 사주던 기억뿐이다.그 엿의 달콤한 맛이 고향에 대한 추억의 전부이다.

그는 6살때 부모의 등에 업혀 일본으로 갔다.관부련락선을 타고 시모노세끼항에 도착하니 이역의 차디찬 공기가 엄습해와 애어린 소년은 몸을 옹송그리였다.그들의 가정은 탄광에 보따리를 풀었다.그곳 탄광에는 강제련행되여온 조선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어린 정우는 생각하였다.

(여기는 일본땅, 남의 나라 땅이라는데 왜 조선사람이 이토록 많은가.)

붕락사고로 수십, 수백명의 조선사람이 한꺼번에 희생되여 골안에 피절은 곡성이 터질 때 소년은 공포에 질려 몸을 떨었다.죽음의 유령이 배회하는 살인고역장들에서 조선사람의 생명은 파리목숨이나 같았다.

몇해후 겨우 일본소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걸핏하면 《조선놈인 주제에》라는 모욕과 차별을 받았다.노예적굴종만을 강요하는 일제의 란폭한 발길질과 모질게 짓누르는 가난의 멍에로 하여 그의 가슴속에는 피멍이 들었다.

해방후 조선학교에서 우리 말, 우리 글을 배우면서 정우는 생기를 찾게 되였다.그런데 미일반동들은 악명높은 《조선인학교페쇄령》을 휘둘러 그 학교마저 없애버리려고 미쳐날뛰였다.그때의 격렬한 투쟁과정에 굳은 결심을 다진 정우는 그후 총련에서 세운 중앙사범학교에 선참으로 들어갔다.졸업후에는 나가사끼현에서 조청, 총련사업을 하였다.황금만능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신의 영달이나 돈벌이가 아니라 조국과 총련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였다.

곡절많은 인생의 길을 걸어온 리규석, 박정우로인은 후대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하군 한다.

《우리는 조선사람이다.조선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수난의 력사를 잊지 말고 오로지 애국, 애국을 하자.》(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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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길에 바쳐온 나날이 참으로 보람찹니다》 -총련의 한 시인의 수기중에서-

2025년 3월 22일《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국땅에 있어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아야 하며 위대한 김정일애국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어머니조국의 대지우에 애국충정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나가야 합니다.》

지난해말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결성 65돐기념 문예발표모임 《한마음》이 진행될 때 있은 일이다.

문예동 오사까지부 고문인 허옥녀로인은 무대옆에서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있었다.이제 몇분후이면 자기가 저 무대로 걸어나가 시를 랑송해야 하기때문이였다.

수백편의 시작품을 창작하여 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져있는 로시인이지만 매번 무대에 나설 때면 처녀시절 동포들앞에서 자기의 첫 작품을 발표하던 그때의 심정이였다.

(내가 문예동에서 사업해온지도 어느덧 57년이 되였구나.민족의 넋을 심어주고 참다운 삶의 보람과 긍지를 안겨준 고마운 조국, 미더운 총련조직과 인정많은 동포사회에 무슨 말로 감사의 정을 표현할것인가.)

마침내 로시인은 무대에 나섰다.그를 바라보는 장내의 시선은 뜨거웠다.허옥녀로인은 머지않아 총련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의 교단에 서게 될 손녀에 대한 대견한 심정을 담은 자작시 《이런 날이 올줄이야…》를 읊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저도 모르게 두볼로는 눈물이 흘러내리였다.동포들은 로시인이 손녀의 성장과정을 담은 시를 읊으면서 다름아닌 자신의 인생길을 더듬고있다는것을 알수 없었다.

허옥녀로인의 뇌리에는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혜택으로 초, 중, 고급학교에서 공부하던 나날들, 우리 말과 글, 노래와 춤을 배우며 생기발랄하게 자라나던 그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공화국창건 20돐을 맞으며 5개 학교의 새 교사건설에 떨쳐나선 오사까지역의 애국동포들을 고무격려하고싶어 처음으로 시작품을 창작하던 일도 떠올랐다.

불현듯 수십년간 지켜섰던 교단이 눈앞에 우렷이 안겨왔다.

허옥녀로인이 교원이 될 결심을 가지게 된것은 총련의 교양선전대 성원으로 일본의 한 지역에 파견되였던 오빠에게서 한장의 편지를 받은 후였다.외진 산간벽지에서 아직 조국이 해방된줄도 모르고 숨어사는 동포들을 찾아냈다는 놀라운 소식과 함께 오랜 세월 뼈저리는 고통을 강요당하였던 그들을 위해 한생 교단에 서겠다는 오빠의 편지는 누이동생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그후 그는 오빠의 뒤를 따라 성스러운 교단에 섰다.

서로 멀리 떨어져 바쁜 나날을 보내는 속에서 어쩌다 만날 때에도 오누이는 교육사업에서 얻은 경험을 나누는것으로 상봉의 기쁨을 대신하였다.허옥녀로인에게 있어서 교단은 삶의 전부였고 사랑의 대명사였다.때로 힘들어 주저앉으려는 자기를 꾸짖는 오빠의 엄한 질책을 누이동생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사랑으로 받아들이였다.이렇게 힘과 용기를 주고받으면서 오빠는 공훈교원으로, 누이동생은 2중모범교수자로 성장하였다.제자들이 애국위업의 일선에서 한몫 단단히 맡아하고있다는 소식은 그들오누이에게 있어서 기쁨중의 가장 큰 기쁨이였다.

벅찬 생활이 있는 곳에는 흥겨운 노래와 아름다운 시가 있기마련이다.훌륭한 노래와 시들은 인간생활의 향기를 풍만하게 해주고 사람들에게 억센 기상과 용기를 안겨준다.특히 바람세찬 이역땅에서 모진 시련과 난관을 뚫고헤치며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나가는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애국적인 시작품들은 귀중한 사상정신적량식으로 된다.

허옥녀로인은 가슴속에 차오르는 애국의 긍지와 영예, 동포들을 애국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고싶은 자기의 심정을 시작품에 담기 시작하였다.

《나래쳐라 푸른 하늘에》, 《살뜰한 그대여 고개를 드시라》, 《계주봉》, 《우리 교장선생님》, 《노래자랑모임》, 《하나의 꼴문을 향하여》 등 그가 창작한 시작품들은 오래동안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새세대들을 키워내는 과정에 겪은 가지가지의 자랑스럽고 잊지 못할 사실들을 아름다운 운률에 담아 노래한것이다.민족중등교육실시 60돐을 맞으며 출판된 그의 시집 《출발의 날에》는 오늘도 동포들속에서 널리 애독되고있다.

허옥녀로인은 공화국의 기치따라 조국과 운명을 같이해온 총련의 투쟁로정과 일본반동들의 악랄한 민족차별책동속에서도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사수하고 민족문화를 꽃피워온 동포사회의 력사, 고상한 민족성이 흘러넘치는 동포생활을 실감있게 반영한 시작품들도 수많이 창작하였다.어머니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크나큰 민족적자부심, 민족교육에 대한 애착심이 어려있는 그의 작품들은 《조선신보》와 《이어》, 《종소리》 등 총련의 출판물들에는 물론 일본의 문예잡지들에도 널리 소개되였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도 같아 어느덧 백발을 얹었지만 로시인은 아무런 여한이 없었다.한생을 민족교육에, 민족성고수에 바친 삶이 참으로 긍지스러웠다.

(혼자힘으로는 결코 넘을수 없는 시련의 고비들이 많았지.총련조직이 있어, 화목한 동포사회가 있어 나의 오늘이 있다.애국의 길에서 누려온 삶이야말로 얼마나 보람찬가.)

이렇게 생각하며 그는 시랑송을 마치였다.

순간 장내에서는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변함없이 애국의 꽃을 피우는 로시인에게 동포들은 열렬한 존경의 인사를 보내였다.

물기어린 눈으로 객석을 바라보며 허옥녀로인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내 인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애국의 붓을 놓지 않으렵니다.애국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렵니다.)

허옥녀로인을 비롯한 문예동성원들은 이역의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동포사회에 민족의 향기를 부어주고 동포들의 애국열의를 고조시키는 사업을 순간도 멈추지 않고있다.시련과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동요함이 없이 애국의 화원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미더웁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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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소식

2025년 3월 18일《로동신문》

 

민족교육권리를 지켜

 

얼마전 일본 오사까부청앞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중지하고 고등학교지원제도와 보조금지급제도를 적용할것을 요구하는 600번째 화요행동이 진행되였다.

총련일군들과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교직원, 학생, 학부형들을 비롯하여 각계각층 재일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이 참가하였다.

이 투쟁은 2012년 4월부터 오사까지역의 조선학교 관계자들과 일본시민단체 성원들에 의해 발기되고 시작되였다.

격렬한 항의와 치솟는 민족적분노의 목소리가 높이 울려퍼지는 투쟁현장, 거기에는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지팽이를 짚고나온 로인들도 있고 애기를 업은채로 마이크를 잡고 격분을 토로하는 녀성도 있다.

이번 집회에서 발언한 히가시오사까조선초급학교 어머니회 회장은 우리 학교는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배움터라고 하면서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 일본당국에 계속 항의해나갈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의 한 교원은 자기가 학창시절에 당하였던 차별이 오늘까지도 이어지고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시위투쟁을 벌리면서 참가자들은 일본당국의 악랄한 민족교육차별정책을 준렬히 성토하였다.

민주주의적민족교육권리를 끝까지 지켜싸우려는 재일동포들의 의지는 날로 더욱 굳세여지고있다.

 

고상한 미풍량속을 적극 살려

 

어려운 때일수록 덕과 정으로 서로 돕고 위해주는것은 동포사회의 미풍이다.

썩어빠진 자본주의생활풍조가 차넘치는 이역의 어지러운 환경속에서도 재일동포들은 고상한 우리의 미풍량속을 적극 살려나가고있다.

최근 총련과 녀성동맹의 각급 조직들이 어렵게 사는 동포들에게 자금을 전달하는 광경이 펼쳐지고있다.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4》(새 전성기 4차대회)에서 종합모범분회인 새 전성기 애국애족모범분회로 평가받은 총련 효고현 니시고베지부 낭꼬분회, 우리 학교를 지키고 사랑하는 분회의 영예를 지닌 총련 야마구찌현 시모노세끼지부 쥬오분회를 비롯하여 많은 분회의 성원들이 고령자, 장애자들을 비롯하여 생활상고충이 있는 동포들을 찾아가 자금을 넘겨주며 위문격려해주었다.

뜨거운 지성이 담겨진 자금을 받아안은 동포들은 그 성의도 고맙지만 우리 민족의 미풍량속이 새세대들에 의해 그대로 이어지고있는것이 더 기쁘다고 하면서 격정을 금치 못해하고있다.

지금 총련의 각급 조직들과 단체, 사업체들은 뜨거운 혈연의 정을 안고 재일동포들의 생활상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봉사복지활동에 더욱 전심전력하고있다.동포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보살피는 사업에 만전을 기하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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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본부위원장회의 제25기 제5차회의 도꾜에서 진행

2025년 3월 17일《로동신문》

 

총련본부위원장회의 제25기 제5차회의가 12일 일본 도꾜에 있는 조선회관에서 진행되였다.

허종만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과 박구호제1부의장 겸 조직국장, 부의장들, 총련중앙감사위원회 위원장, 총련중앙 상임위원들, 총련본부위원장들이 회의에 참가하였다.총련중앙 참사, 부국장들이 회의를 방청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가 주악되였다.

박구호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제1부의장이 보고를 하였다.

그는 보고에서 올해 총련의 기본사업방향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총련 제25차 전체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주신 강령적서한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공세적으로 벌려 전체대회 결정집행의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는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본부위원장들이 올해 총련사업의 기본방향에 담겨진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사상과 의도를 높이 받들고 만난을 뚫고 헤치면서 총련 제25차 전체대회 결정집행의 마지막해인 올해의 주요과업들을 무조건 집행하여야 한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총련본부위원장들이 힘있는 정치사업과 주도세밀한 조직사업으로 총련결성 70돐이 되는 올해에 모든 기층조직들을 활성화함으로써 총련을 동포들속에 깊이 뿌리박고 애국충정의 대를 변함없이 이어나가는 위력한 조직으로 다져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어 총련본부위원장들의 토론이 있었다.

토론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상과 의도대로 총련 제25차 전체대회 결정집행의 확고한 담보를 기어이 마련할 결의를 다지였다.

허종만의장이 회의결속을 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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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 조선대학교 제67회 졸업식 진행

2025년 3월 15일《로동신문》

 

총련 조선대학교 제67회 졸업식이 9일 일본 도꾜에 있는 대학강당에서 진행되였다.

박구호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제1부의장 겸 조직국장과 송근학부의장 겸 교육국장, 강추련부의장 겸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상임위원회 위원장, 한동성 조선대학교 학장을 비롯한 일군들, 교직원들, 졸업생들, 학부모들, 학생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가 주악되였다.

졸업식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육성에서 보내온 축전이 전달되였다.

박구호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제1부의장이 축하발언을 하였다.

그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이 총련결성 70돐을 맞는 올해를 애국애족의 뚜렷한 사업성과로 빛내이기 위한 혁신운동을 기세충천하게 벌리고있는 벅찬 시기에 졸업식을 가지고있다고 말하였다.

세계에는 수많은 대학들이 있으나 공화국의 유일한 해외교포대학에서 영광넘친 대학생활을 보내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가리키시는 애국애족의 활로를 따라 희망찬 새 출발을 하는 졸업생은 오직 조선대학교 졸업생들뿐이라고 그는 언명하였다.

그는 조선대학교 졸업생들은 동포들의 무궁한 힘이자 곧 총련의 힘이고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는 지름길이라는것을 깊이 명심하고 언제나 동포들속에서 배우고 그들의 지혜와 힘에 의거하여 애국애족운동을 활발히 벌려 자기의 본분을 다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한동성 조선대학교 학장의 보고에 이어 졸업생들에 대한 표창수여식과 결의토론이 진행되였다.

졸업식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리는 편지가 랑독되였다.

졸업생들의 예술공연이 있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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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높은 생의 자욱을 새기며 -애국의 길을 이어가는 재일동포녀성들-

2025년 3월 8일《로동신문》

 

강인한 의지로 온갖 풍파를 헤치며 조국과 운명을 같이하여온 조선녀성들의 불멸의 군상속에 재일동포녀성들의 미더운 모습도 어리여온다.

바람세찬 이역에서 사회주의조국을 참다운 어머니품으로 굳게 믿고 천만고생을 달게 여기며 남편들을 애국의 길로 떠밀어주고 자녀들을 민족의 넋을 지닌 미래의 역군으로 억세게 키워가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황금만능이 지배하는 거치른 이국땅에서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에 대한 끝없는 충정과 뜨거운 애국심을 지니고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헌신분투하는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과 애국적동포녀성들을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조국과 민족의 크나큰 재부이며 자랑입니다.》

민족적차별과 박해가 우심한 이역의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재일동포녀성들은 언제나 조국을 굳게 믿고 따르며 애국의 길을 꿋꿋이 걸어왔다.

그들이 진행한 첫 대중적인 투쟁은 1948년 미일반동들의 악명높은 《조선인학교페쇄령》을 짓부시기 위한 투쟁이였다.력사에 4.24교육투쟁으로 기록된 이 격렬한 투쟁의 앞장에 선 사람들은 다름아닌 녀성동맹일군들과 어머니들, 녀성교원들이였다.

공화국기게양투쟁때에도 동포녀성들은 참으로 견결하였다.남자들 못지 않게 완강하게 싸우는 그들의 기개에 미일반동들은 전률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또 어떠하였던가.동포녀성들은 죽음도 두려움없이 공화국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 궐기하여 용감히 싸웠다.

전후에는 가정살림이 극도로 어려운 속에서도 전후복구자금기금운동에 너도나도 떨쳐나섰다.

총련결성이후 동포녀성들의 애국열의는 더욱 세차게 불타올랐다.총련에서 벌어진 각종 대중운동들에서 동포녀성들은 핵심적역할을 수행하였다.사회주의조국과 언제나 뜻과 마음을 함께 하며 애국애족의 화원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모든것을 다 바쳐왔다.

총련애국위업을 고수하고 아이들의 배움터를 끝까지 사수보존하여 애국의 계주봉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흘린 헌신의 땀방울은 그 얼마였던가.

지금도 도꾜지역에서는 금요투쟁, 오사까지역에서는 화요행동, 니시도꾜지역에서는 수요행동 등 민족교육권리고수를 위한 각종 투쟁들이 벌어지고있는데 여기서는 《우리 어머니들은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동포녀성들의 견결한 웨침이 높이 울려나오고있다.

썩어빠진 자본주의생활풍조가 만연하는 이역에서 동포녀성들은 노래를 불러도 우리의 민요를 부르고 춤을 추어도 어깨춤 절로 나는 우리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아름답고 고상한 우리 민족의 미풍량속을 적극 살려나가고있다.그들이 창작하는 작품마다에는 몸은 비록 이역에 있어도 민족의 향기를 고이 간직한 조선의 꽃으로 영원히 피여있으려는 순결한 마음이 그대로 어려있다.

동포동네사랑운동, 우리 분회 꽃마음운동 등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이 벌리고있는 여러가지 대중운동들은 동포사회에 애국의 열기가 더욱 끓어넘치게 하고있다.

자본주의일본땅의 수많은 녀성들이 황금만능, 약육강식의 탁류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한많은 세상을 저주하고있지만 우리의 재일동포녀성들은 어머니로서, 안해로서 자식들과 가정의 래일, 조국과 민족의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안고 살고있다.

동포사회에서 값높은 삶의 뿌리가 되여주고 인생의 자양분이 되여준 미더운 녀성동맹일군들과 동포녀성들이 있기에 총련이 그처럼 강하고 이역땅에 애국일가들이 늘어나며 민족의 대가 굳건히 이어지고있는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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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소식

2025년 3월 4일《로동신문》

 

언제나 앞장서나가는 모범분회들

 

동포들의 기본생활단위이며 말단기층조직인 분회가 힘을 내야 총련이 강화되고 동포사회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되여나갈수 있다.

지금 총련의 모든 분회들에서 화목과 단합, 애국애족의 열기가 끊임없이 고조되고있다.

지난해 11월에 진행된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4》(새 전성기 4차대회)에서 높이 평가된 단위들이 애국운동의 앞장에서 힘차게 전진하고있다.이 대회에서는 25개 분회가 종합모범분회인 새 전성기 애국애족모범분회의 영예를 지니였다.

부문별모범분회도 많이 배출되였는데 29개 단위가 한마음한뜻으로 뭉친 분회로, 26개 단위가 상부상조의 미풍이 넘치는 분회로, 25개 단위가 우리 학교를 지키고 사랑하는 분회로 되였다.또한 16개 단위가 민족성이 차넘치는 분회, 3개 단위가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한 분회의 영예를 지니였다.

자기 단위를 애국의 숨결이 넘치는 단합되고 생기발랄한 기층조직으로, 덕과 정이 넘치는 따뜻한 동포동네로 꾸리기 위해 적극 노력한 결과이다.

머지않아 총련은 결성 70돐을 맞이한다.충성과 애국으로 단결된 힘과 혁신적성과로 총련결성 70돐을 빛나게 경축하자고 하면서 모범분회들의 동포들은 더욱 분발하고있다.

 

애국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가며

 

총련의 자랑스러운 년대기마다에는 동포사회의 기둥이 되고 대들보가 되여 재일조선인운동을 믿음직하게 떠메고나가고있는 총련 조선대학교 졸업생들의 자욱이 어리여있다.일본각지에서 살고있는 그들을 이어주는 뉴대가 바로 조선대학교 련합동창회이다.근 1만 8 000명이 망라되여있다.지난 기간 그들은 모교인 조선대학교와 각급 조선학교들을 위해 참으로 많은 일을 하여왔다.

문학력사학부 동창회만 놓고보아도 대학교정에 들어서는 신입생들을 축하하는 모임을 비롯하여 좋은 일들을 찾아하고있다.

《우리 학부는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동포사회에서 민족성이 굳건히 이어지게 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는 학부이다.》, 《민족교육의 화원이 영원히 만발하게 하는데서 우리 학부 졸업생들모두는 원예사가 되여야 한다.》…

이것은 문학력사학부 동창회성원들이 늘쌍 외우는 말이다.그들은 자기들의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주고있다.

학창시절에 다진 애국의 맹세를 변치 않고 애국위업의 강화발전을 위해 헌신의 자욱을 새겨가는 이런 미더운 사람들을 동포사회는 끝없이 사랑하고 자랑하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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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가의 수반이시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립니다

2025년 3월 2일《로동신문》

 

우리 국가의 수반이시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경애하는 원수님의 각별한 믿음과 배려에 의하여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겨 위대한 김정일대원수님의 탄생 83돐을 뜻깊게 경축한 재일본조선인축하단 성원들은 조국을 떠나기에 앞서 다함없는 고마움의 정을 담아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속에 한생토록 잊지 못할 추억들로 가득찬 조국방문의 나날들을 소중히 새겨보는 우리모두의 마음은 원수님께서 헤쳐가실 멀고 험난한 혁명전구로 뜨겁게 달리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총련결성 70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위대한 장군님을 그리워하는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간절한 소망을 헤아려 재일본조선인축하단을 조국으로 불러주시고 매일, 매 시각 한량없는 특전과 특혜를 베풀어주시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조국방문기일은 비록 짧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그 하루하루는 온 우주를 다 안은듯 너무도 행복한 나날들이였습니다.

언제나 그립던 조국의 품에 안긴것만도 무상의 영광인데 조국땅에 발을 내디딘 첫 순간부터 받아안은 분에 넘치는 극진한 환대에 해외전사들을 위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믿음과 사랑이 뜨겁게 어려와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린 저희들입니다.

더우기 조국방문기간 저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아흔번째 생일을 맞는 허종만의장동지에게 배려하여주신 사랑의 축전을 받아안으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품들여 키워주신 해외혁명전사들을 자신의 가장 귀중한 혁명동지로 손잡아 이끌어주시며 한생을 끝까지 지켜주고 보살펴주시는 원수님의 숭고한 사랑의 세계에 높뛰는 심장의 박동을 억제할수 없었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에 저희들이 조국에 와서 다시금 새겨안은것은 수령복은 결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차례지는 행운이 아니며 경애하는 원수님을 국가수반으로 높이 모시였기에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력사와 불멸의 업적이 세세년년 줄기차게 흐르고 주체조선의 존엄과 영광이 빛난다는것입니다.

체류기간 우리들은 인민의 꿈과 리상이 국가정책의 제1순위에 놓여지고 그 실현을 위해 멸사복무하는 우리 국가특유의 국풍과 지방진흥의 새시대, 그 거창한 변혁적실체들을 직접 보고 체감하면서 형언할수 없는 깊은 감동을 받아안았습니다.

우리들이 조국방문기간 가장 강렬하게 절감한것은 수령의 위대성에 국가의 존위와 명성이 있고 강대한 우리 국가는 곧 경애하는 원수님이시라는것입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우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에 안겨 보낸 잊을수 없는 나날들을 한생토록 가슴에 새겨안고 총련의 결성세대들처럼 애국의 신념과 깨끗한 량심으로 값높은 삶을 빛내여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총련결성 70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총련과 재일조선인운동의 명줄인 주체의 사상체계, 령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고 이역의 모든 초소를 애국의 믿음직한 성돌로 반석같이 다져나가겠습니다.

저희들은 조국의 질풍같은 전진속도에 보조를 맞추어 모두가 일심분발하여 기층조직강화와 민족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혁혁한 위훈을 세우겠습니다.

모든 일군들이 동포제일주의기치를 더 높이 들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시는 동포들을 위해 멸사복무하는 헌신적인 복무기풍을 더욱 철저히 확립하고 동포들의 참된 심부름군이 되여 애국의 무궁한 힘으로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힘차게 열어나가겠습니다.

저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상과 의도에 맞게 해외동포들의 전렬에서 총련결성의 근본리념이며 존재명분인 애국을 한시도 잊지 않고 강대한 우리 국가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길에 더욱 뚜렷한 자욱을 긍지높이 아로새기겠습니다.

위대한 어버이를 그리는 사무치는 마음을 안고 조국을 떠나는 우리모두의 간절한 소원은 오직 하나 경애하는 원수님의 안녕입니다.

김일성민족, 김정일조선의 천만년 강성번영을 위하여, 인민의 행복한 삶과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우리 국가의 수반이시며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부디 안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2월명절경축 재일본조선인축하단 성원일동

2025년 3월 1일

(전문 보기)

 

[Korea Info]

 

《영광의 그날, 행복의 그 50여일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의 조국방문후기-

2025년 3월 2일《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은 사회주의조국의 한 부분이며 재일동포들은 어머니조국과 한피줄을 잇고 사는 친형제, 한집안식솔입니다.》

올해 정초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은, 동심에 받아안기에는 너무나도 크나큰 영광을 지닌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 성원들이 일본으로 돌아간 후의 이야기이다.

 

《안아보자, 복받은 우리 아이들, 우리 제자들아!》

 

지난 1월 11일 일본 도꾜의 하네다비행장역사에는 류다른 환영대렬이 운집해있었다.총련중앙상임위원회의 책임일군들로부터 시작하여 중앙단체, 사업체일군들, 간또지방의 총련본부위원장들과 각급 조선학교 교직원, 학생, 학부형들이 그지없이 환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아들딸들, 제자들의 도착을 기다리고있었다.

모두의 가슴속에서는 이름할수 없는 격정이 세차게 끓어번지고있었다.

《설맞이공연을 보셨겠지요? 조국으로 불러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뜨거운 은정을 설화로 전하는 아이가 바로 내 딸입니다.정말 눈물이 절로 납디다.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에 그토록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을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총련 도꾜조선제4초중급학교 리유름학생의 아버지인 리수강동포가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적시였다.전총련적인 모범지부로 자랑높은 총련 도꾜도 아다찌지부에서 분회장으로 사업하고있는 리수강동포는 딸이 설맞이공연에 꼭 참가하고싶다고 울면서 떼를 쓰던 일을 떠올렸다.

《몇해전에는 맏딸이 설맞이공연에 참가하였는데 이번에 둘째딸도 조국에 가게 되여 정말 흐뭇했습니다.그런데 그애가 글쎄…》

목이 꽉 메여서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신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딸을 보며 우리 유름이의 앞날은 걱정이 없겠구나, 미덥고 씩씩한 조선사람으로 자라나겠구나 하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글썽해있던 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 송미윤학생의 어머니 정민혜녀성도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뜻밖의 소식에 접하고 우리 가족, 친척들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이게 꿈이 아닌가 하고 반신반의하고있는데 우리 애의 학교선생님들, 내 동창생들이 축하의 전화를 련속 걸어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청껏 만세를 부르며 기쁨에 울고웃는 딸의 모습을 보니 우리 세대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감격의 환호를 올리던 그때의 추억이 되새겨졌다고 말하며 그는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갔다.

총련 지바현 지바지부 부위원장으로 사업하는 지바조선초중급학교 윤희원학생의 아버지 윤태준동포의 심정도 다를바 없었다.

《조선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우리 맏아들과 맏딸도 아직 조국에 가보지 못하였습니다.그런데 막내딸이 정말 만복을 받아안았습니다.온 가족이 그애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릅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신 총련 니시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 김유아학생의 어머니 황금실녀성은 그날의 감격을 아직도 누를길 없었던지 줄곧 눈물만 흘리였다.그래서 한마디 말도 할수 없었다.

하지만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 니시도꾜 동부지부 자녀부장으로 사업하는 그의 가슴속에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 애국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갈 의지가 차넘치고있음을 두볼에서 흘러내리는 하염없는 눈물이 다 말해주고있었다.

마침내 비행기가 착륙하였다.활기에 찬 모습으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아이들이 보이였다.환영군중은 바다처럼 설레이였다.

대오를 정돈한 문봉수 총련 교또조선중고급학교 교장(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 단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도착보고를 하였다.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제1부의장동지, 설맞이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조국을 방문하였던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이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은 영광과 긍지 안고 전원 도착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안은 동무들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원수님의 높은 뜻을 우리모두 충성으로 받들어나갑시다.그이의 강령적말씀을 철저히 관철해나갑시다.》

이렇게 말하며 총련중앙상임위원회의 책임일군은 단장의 손을 억세게 잡고 흔들었다.장내에 열렬한 박수소리가 울려퍼지였다.

이어 감격적인 상봉이 이루어졌다.

《내 아들아!》, 《내 딸아!》, 《아버지!》, 《어머니!》, 《선생님!》…

이역의 비행장역사에 어머니조국의 뜨거운 사랑이 감도는 감동적인 순간이였다.

묻고싶은 말도 많았고 못잊을 체험에 대한 자랑거리도 많았다.

부모와 자식들, 스승과 제자들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본각지의 학교들에서 모여왔던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 성원들이 50여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어느덧 헤여질 시각이 다가왔다.

문봉수단장은 사랑하는 학생들을 빙 둘러보며 말하였다.

《우리 어디에 가있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각별한 사랑을 잊지 말고 떳떳한 조선사람으로 살아갑시다.어머니조국에 기쁨의 보고, 충성의 보고를 드릴수 있게 자신들을 철저히 준비해나갑시다!》

지난 50여일간 친형제, 친자매같은 사이로 된 학생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 《그래, 애국의 길에서 꼭 다시 만나자.》

이렇게 그들은 헤여졌다.

그리고 달음질쳐갔다.

정든 학교, 다정한 동무들이 우리를 몹시 기다리고있다.

어서 가자, 빨리 가자!

 

위대한 조국을 떠받드는 애국인재로 자라나리

 

조국에 왔던 학생들은 대다수가 어머니품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의 어린 학생들이다.50여일간이나 집을 떠나 생활한다는것을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하였던 철부지들이다.제일 나어린 초급부학생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이런 그들이 조국방문과정에 마음의 키가 부쩍 자랐다.

방문기간 그들의 눈에 비쳐진 조국의 모습은 말그대로 따사로운 어머니품이였고 그 품속에서 보낸 나날은 한식솔의 정을 한껏 느낀 행복한 날들이였다.숙소와 련습장, 참관지 등 이르는 곳마다에서 그들은 이역의 아들딸들을 위하는 조국인민의 뜨거운 마음을 느낄수 있었다.총련의 귀여운 학생들이 왔다고 등을 두드려주고 손을 흔들어주던 조국인민들, 모두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친혈육의 정이 그득히 어려있었다.

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 조유애학생은 사람들이 늘 밝은 미소를 띠고 활기있게 오가는 조국의 거리와 침침하고 랭랭한 일본거리의 풍경이 대조되였다고 하면서 조국인민들의 미소, 그것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여 밝고밝은 앞날에 대한 확신이 아니겠는가고, 위대한 조국의 참모습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생활의 구석구석을 따뜻이 보살펴주던 안내원들과 평양호텔의 관리원들, 민족기악연주와 무용수준을 높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던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무용종합대학의 선생님들과 평양학생소년궁전 안무가선생님의 모습은 그 얼마나 정다왔던가.

종합적인 과외교양기지, 인재교육의 원종장인 만경대학생소년궁전도 정녕 잊을수 없다.아이들이 사회적불평등과 사회악의 희생물이 되여 범죄와 타락, 죽음의 나락에 굴러떨어지는 자본주의세계의 랭혹한 현실만을 보아오던 이역의 동포학생들에게 있어서 이처럼 황홀하기 그지없는 소년궁전에서 앞날의 이름난 과학자, 체육인, 예술인, 군인이 되고 영웅이 될 꿈을 꾸고있는 조국학생들은 정말 부러움의 대상이였다.

그러는 그들에게 조국인민들은 말해주었다.

걱정말아 얘들아, 이역땅의 너희들을 위해서도 이 궁전의 대문은 활짝 열려져있단다. 아버지원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느냐.재일동포들은 어머니조국과 한피줄을 잇고 사는 친형제, 한집안식솔이라고.

조국은 진정 어머니품이였고 조국인민들은 피를 나눈 한식솔이였다.

그들은 생각하였다.

너무나도 한 일이 없는 우리가 너무나도 크나큰 사랑을 받아안았다.공부를 더 열심히 하여 아버지원수님께서 바라시는 애국인재로 꼭 준비하자.사랑만을 받는 철부지가 되여서는 안된다. 아버지원수님을 따르는 애국위업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준비해가자.

이것이 조국에 왔던 학생들의 가슴속에 차넘치는 철석의 의지이다.

규슈조선초중고급학교 박지우학생은 아버지원수님을 몸가까이 뵙게 되니 정말 위대하고 자애로우신분, 조국인민들 누구나 목청껏 노래부르듯이 친근한 어버이이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하면서 영광의 그날을 한시도 잊지 않고 원수님앞에서 맹세다진대로 어엿한 민족인재로 씩씩하게 자라나겠다고 말하였다.

도꾜조선제4초중급학교 리우나학생은 지금도 그 영광의 하루가 어제인듯싶다고 하면서 바로 그날에 위대한 조국을 받들어 애국의 한길을 억세게 걸어갈 의지가 굳건해졌다고, 학습과 소년단조직생활을 더 잘하여 당당한 조선사람으로 자라나겠다고 힘주어 말하였다.

오사까조선초급학교 송희윤학생은 최상의 영광을 받아안으며 재일동포자녀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아버지원수님의 뜨거운 진정, 우리가 조선학교에 다니는 의미,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민족교육의 화원을 왜 그리도 굳건히 지키고 아름답게 가꾸어가는지 알게 되였다고 하면서 애국의 계주봉을 이어받아 어머니조국을 받들어갈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총련의 어린 학생들은 조국에서의 50여일간 참으로 많은것을 배웠고 체험하였다.

그중의 하나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정신이 온 나라에 차넘치고있는것이였다.그 정신이 자기들의 교정에, 동포사회에 나래치게 하기 위해 우리의 주인공들은 힘껏 활약하고있다.

그들의 성장을 두고 교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보는것이 낫다고 교정에서의 수십수백시간의 수업보다도 조국에서의 체험이 아이들의 정신적키를 몰라보게 자래웠다고.

니시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 백가련학생의 어머니 김선옥녀성은 인생의 가장 귀중한것을 체험한 자기 딸은 앞으로 어떤 시련이 가로막아도 영광의 그날을 잊지 않고 꿋꿋이 살아갈것이라고 흥분된 심정을 터치였다.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 앞에서 자기들이 부른 노래를 늘 마음속으로 부르고 또 부르는 동포학생들의 가슴속에서는 우리 학교, 우리 조직을 지키고 사회주의조국을 충성으로 받들어갈 맹세의 목소리가 세차게 울려퍼지고있다.

《받아안은 그 사랑과 은혜에 기어이 보답하겠습니다.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 우리도 한몫하겠습니다.》

 

* *

 

우리 공화국의 현실을 외곡하고 헐뜯는 모략보도들이 하루도 그칠새없이 지면과 화면을 어지럽히고 재일동포들을 조국의 품에서 떼여내려는 일본반동들의 책동이 갈수록 악랄해지고있지만 이역의 아들딸들은 이처럼 위대한 조국을 심장속에 안고 살고있다.넋을 주고 뜻을 주고 정과 사랑을 주는 어머니조국을.(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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