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화/エピソード’ Category

혁명일화와 더불어 꽃펴난 이야기 : 따사로운 축복속에 빛나는 박사학위

주체108(2019)년 11월 3일 로동신문

 

지금으로부터 8년전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 과학자를 몸소 만나주시고 그의 연구성과를 높이 평가하시면서 박사로 내세워주신 감격적인 사실을 우리 인민은 오늘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그날은 주체100(2011)년 10월 어느날이였다.

자강도의 어느 한 공장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그가 개발한 석탄연소첨가제를 보시면서 그 덕을 보고있는 인민들의 목소리도 기쁘게 들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말 좋은것을 연구하였다고, 이 동무에게 박사학위를 주어야 한다고, 박사학위는 내가 주는것이 아니라 실지 그 덕을 보고있는 인민이 주는것이라고 참으로 뜻깊은 교시를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고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과학자가 바로 혁명일화 《인민이 주는 박사》를 통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당시 리과대학 화학부 교원이였던 박윤삼동무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장군님의 유훈을 강령적지침으로 틀어쥐고 한치의 드팀도 없이, 한걸음의 양보도 없이 무조건 끝까지 관철하여 장군님의 구상과 념원을 빛나게 실현해나가야 합니다.》

영광의 시각은 빨리도 흘러갔다.너무도 꿈만 같아 현지지도로정을 이어가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고마움의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한 박윤삼동무는 한자리에 못박힌듯 움직일줄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런데 이때 한 일군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를 부르신다고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일군을 따라 바삐 발걸음을 떼였다.

문밖을 나서니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공장의 일군들이 벌써 다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창황중에 맨 끝자리에 가서 자리잡은 그가 옷매무시를 더듬고있을 때였다.

그가 서있는 쪽을 주시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심한 정이 넘쳐흐르는 눈길로 자신의 가까이에 불러주시는것이 아닌가.

누구인가의 손에 이끌려 가운데앞자리까지 가는 불과 몇발자국을 어떻게 옮기였는지 그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였다.

너무나도 큰 영광에 목메여하는 과학자를 자신의 몸가까이에 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

이 숭고한 화폭에는 이 땅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어찌하여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에게는 사회주의조국의 품, 위대한 어머니당의 품이 있다고 소리높이 자랑하고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비껴있었다.오직 위대한 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며 장군님의 두리에 온 나라가 철석같이 통일단결된 영광스러운 로동당시대가, 사랑과 충성으로 엮어진 우리 혁명의 년대기가 이 하나의 화폭에 생동하게 집약되여있었다.

그날 박윤삼동무는 온밤 잠을 이룰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다정하신 음성이 금시런듯 귀전에 울려오고 그이의 해빛같은 미소가 자꾸만 눈앞에 어려와서였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알수 있었으랴.얼마나 따사로운 축복이 그를 기다리고있는지.얼마나 눈부신 빛발이 그의 성장의 갈피갈피를 비쳐주게 될것인지.(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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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회상하여

주체108(2019)년 9월 21일 로동신문

김 명 화

 

나는 오늘 날마다 새 기적을 창조하며 약동하는 천리마시대에 사는 행복을 느낄 때마다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수많은 전우들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깊은 감회에 잠기게 된다.

그중에서도 나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에 대해서 언제나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지니고있다.

내가 김정숙동지를 알게 된것은 연길현 왕우구유격근거지에서 유격대생활을 할 때부터였다.

나는 그후 김정숙동지와 같이 생활하는 과정에 그이의 지난날의 처지와 고결한 품성을 잘 알수 있었다.

극빈한 농가에서 태여나 일찌기 부모를 잃고 그이께서는 어린시절부터 불우한 처지에서 배를 곯고 추위에 떨면서 성장하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어린 녀성의 몸으로 이 모든 고통을 억세게 참아나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러한 과정에 당시의 불공평한 사회를 저주하게 되였고 계급적원쑤가 누구인가를 똑똑히 알게 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이러한 각성은 아동단에 들어가 혁명조직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부터 더욱 견결하여지시였다.

그러기에 그이께서는 혁명조직에서 주는 통신공작을 위하여 수십리 밤길을 무서운줄도 모르고 혼자서 다니시였으며 어린 몸으로 위만군병영에 들어가 삐라도 붙이군 하시였다.

적들의 만행이 더욱 심해가고 《토벌대》에 의하여 집까지 불타버리게 되자 그이께서는 나어린 동생을 데리고 왕우구유격근거지를 찾아들어가시였다.

유격대와 근거지인민들은 일찌기 부모를 잃은 그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며 성의껏 보살펴주었다.

1933년 12월 어느날, 《토벌대》놈들이 불의에 근거지에 밀려들었다.

악귀같은 놈들은 집집에 달려들어 불을 질렀고 산으로 피해 올라가는 무고한 어린이들과 로인들에게까지 사정없이 총탄을 퍼부었다.

이때에 김정숙동지께서는 불행하게도 하나밖에 없던 사랑하는 동생마저 잃으시였다.

원쑤들의 《토벌》로부터 근거지인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들을 자기에게로 유인하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 동생을 그러안고 그이께서는 이 원쑤를 갚지 않고서는 죽어도 투쟁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다지고 또 다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왕우구 북동에서 공청원으로서 아동단사업을 지도하시면서 먹을것, 입을것이 부족하고 놈들의 《토벌대》가 하루에도 몇차례씩 쳐들어오는 그러한 곤난한 환경속에서도 자기의 있는 성의를 다하여 아동단원들을 극진히 보살폈고 그들을 미래의 훌륭한 투사로 키워나가시였다.

한편 그이께서는 유격대를 원호하는 사업은 물론 근거지인민들속에서 그들을 고무하고 굳게 단합하며 동원하는 혁명임무를 어느 한 때도 소홀히 하시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항상 겸손하고 례절이 밝고 품행이 단정하시였다.

그러기에 아동단원들은 물론 로인들에 이르기까지 근거지인민들은 한결같이 그이를 《우리 지부 지도자》, 《우리 정숙이》라고 부르면서 사랑하고 아끼였다.

이러한 김정숙동지의 녀성다운 품성은 그후 유격대생활에서 더욱 빛나게 구현되였으며 녀성대원들의 훌륭한 귀감으로 되였던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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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선별공의 의자

주체108(2019)년 8월 19일 로동신문

 

끝없이 이어지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지지도의 길우에 꽃펴나는 인민사랑의 이야기는 천이런가, 만이런가.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삼지연감자가루생산공장에도 감동깊은 사연이 새겨져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인민을 끝없이 존중하고 인민의 리익을 절대시하며 인민들을 참다운 어머니심정으로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지난 4월 3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새로 건설된지 두해도 안되는 삼지연감자가루생산공장을 네번째로 찾으시였다.

인민들의 식생활향상에 이바지할 또 하나의 보배공장이 일떠선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찾고찾으시며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다.이날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공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제품창고를 나서시여 감자가루생산현장에 들어서시였을 때였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설비들이 고르로운 동음을 울리며 돌아가는 현장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그러시고는 감자선별대앞에서 선별공들이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모습을 한없는 기쁨속에 바라보시는것이였다.이윽고 선별공에게 다가가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의자가 낮지 않은가고 물으시였다.낮지 않다는 대답을 들으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듯 다시 앉아보라고 다정히 이르시였다.

순간 일군들의 가슴은 뭉클 젖어들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평범한 선별공의 의자를 두고 그처럼 기뻐하시는 사연을 잘 아는 그들이였기때문이다.

사실 전해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공장을 찾으시였을 때까지만 하여도 감자선별대앞에는 의자가 없었다.그런데 너무도 응당한것으로 여긴 그것이 경애하는 원수님께 걱정을 끼쳐드릴줄이야…

그날 공장의 여러 공정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감자선별공정앞에 이르시여 걸음을 멈추시고 로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시였다.

(무엇때문일가?) 일군들은 영문을 알수 없어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러는 일군들을 뒤에 두고 선별대로 다가가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선별공에게 힘들지 않은가고 물으시였다.힘들지 않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는 왜 힘들지 않겠는가, 8시간을 서서 일하자니 힘들것이라고 하시였다.

그제서야 일군들은 영문을 깨달았다.선별공정에서 로동자들이 서서 일하는 모습이 얼마나 마음에 걸리시였으면 우리 원수님 가시던 걸음을 멈추신것이랴.

참으로 가슴뜨거운 화폭이였다.사실 그때까지 많은 일군들이 공장을 다녀갔어도 누구도 눈여겨보지 못한 선별공들의 서서 일하는 모습이였다.

하지만 우리 원수님께서만은 그 모습을 스쳐보내지 않으신것이다.

번쩍이는 설비나 쏟아지는 제품에 앞서 그이의 눈길은 로동자들의 모습을 더듬고계시였고 그들의 수고를 헤아리신것이다.

(경애하는 원수님, 저희들이 뭐라고…)

로동자들은 격정에 흐느끼였다.일군들의 자책감도 컸다.

그리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다녀가신 후 선별대앞에는 의자들이 놓여지고 선별공들이 앉아서 일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전해에 보시였던 바로 그 광경을 잊지 않으시고 이날 또다시 선별대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로동자들이 앉아서 일하는 모습을 그리도 기쁘게 바라보신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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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와 더불어 꽃펴난 이야기 : 장군님과 량책의 녀성조립공

주체108(2019)년 8월 16일 로동신문

 

량책베아링공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뜸 위대한 장군님께서 베아링조립작업을 하는 녀성조립공을 만나시고 남편생각이나 애기생각을 하면 베아링알을 한알씩 더 넣거나 넣지 못할수 있지 않는가고 웃음속에 물어주시던 화폭을 먼저 떠올린다.

19년전의 잊지 못할 그날 녀성로동자의 가식없는 목소리에서 그 어떤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오직 당과 혁명만을 생각하는 로동계급의 강직한 모습을 보시며 우리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만족해하시였던가.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그날의 녀성로동자가 바로 혁명일화 《로동계급의 한생각》의 주인공 조정숙동무이다.

한생 영광의 일터에서 당과 조국을 받들어가리라 심장속결의를 다진대로 오늘도 공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며 베아링생산에 깨끗한 마음을 바쳐가고있는 조정숙동무,

그의 인생행로는 말해주고있다.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따사로운 품에 안아 걸음걸음 보살펴주시는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믿음이 있어 우리 조국이 아름답고 참된 인간들을 끊임없이 키워내는 요람으로 되고있다는것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순간의 휴식도 없이 현지지도강행군길을 끝없이 이어가시며 온 나라에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게 하시였다.》

사연도 뜨거운 이 이야기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량책베아링공장을 다녀가신 주체89(2000)년 1월 28일과 함께 시작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타신 차가 멀어진지도 어느덧 오랬건만 조정숙동무는 공장정문앞에서 움직일줄 몰랐다.조금만 밖에 서있어도 온몸이 꽁꽁 얼어드는 강추위속에서도 가슴은 불을 안은듯 달아오르기만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해빛같은 미소가 안겨오고 그이의 다정하신 음성이 금시런듯 귀전에 메아리쳐왔다.

(내가 이런 행운을 받아안다니.꿈은 아닐가?)

이런 생각으로 진정 못하는 그의 눈앞에 위대한 장군님을 작업현장에서 만나뵙던 꿈만 같은 시각이 되살아났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공장을 돌아보실 때 조정숙동무는 베아링환에 베아링알들을 넣는 작업을 하고있었다.조정숙동무가 재빠른 동작으로 무드기 쌓여있는 베아링알에 손을 가져가면 어김없이 규정된 수량의 알이 잡히였고 그것을 환에 가져가면 한알도 허실없이 《쫘르륵-쫘르륵-》소리를 내며 들어가군 하였다.

조정숙동무의 작업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손이 기계보다 낫다고, 베아링을 조립하는 동작이 매우 빠르다고 치하하시였다.조정숙동무에게 젖먹이어린애가 있다는것과 남편이 공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그러니 이 녀성동무가 일하면서도 왜 가정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그런데도 베아링조립을 빠른 동작으로 실수없이 정확히 하니 정말 용타고 치하하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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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옮겨지펴주신 불길

주체108(2019)년 8월 9일 로동신문

 

오늘 어랑이라는 말은 하나의 지명이 아니라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창조물이 빠른 속도로 일떠서는 함북전역의 발전소건설장을 일컫는 대명사로 되고있다.

뜻깊은 10월 10일을 완공의 날로 정하고 총매진하고있는 어랑천발전소건설자들의 영웅적투쟁소식은 온 나라를 기쁘게 하고있으며 사회주의강국에로 향한 전인민적진군에 활력을 더해주고있다.

어랑천발전소건설이 가지는 의의는 자못 크다.이 발전소가 완공되면 함경북도의 경제문제를 풀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킬수 있는 돌파구가 열리게 되며 나라의 전력생산도 장성시킬수 있다. 그런데 지난 시기 해당 부문 일군들의 무책임한 사업태도로 하여 발전소건설이 힘있게 추진되지 못하였다.그러하던 어랑천발전소건설장이 지난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다녀가신 그때부터 혁신과 위훈으로 들끓으며 크게 소문을 내고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 원수님의 그날의 현지지도가 얼마나 뜨거운 고무와 크나큰 믿음으로 이어졌는지 다는 모를것이다.

지난해 7월 12일이였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어랑천발전소 팔향언제건설장을 찾으시였다.꿈결에도 그리던 경애하는 원수님을 뜻밖에 발전소건설장에서 만나뵈운 도의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차마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공사를 시작한지 퍼그나 오래지만 아직 발전소를 완공하지 못하였던것이다.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다정히 손을 잡아주시면서 《오늘 어랑천발전소건설실태와 공사가 진척되지 못하고있는 원인을 현지에서 료해해보고 결정적인 대책을 세우려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신 후 발전소건설에서 걸린 문제들을 상세히 료해하시였다.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언제위치까지 정해주시면서 건설방향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무려 4차례나 찾으시였던 어랑천발전소건설장,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다른 건설장들과는 달리 시대의 벅찬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언제건설장을 흐리신 안색으로 둘러보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긴장한 전력문제를 푸시려고 험한 진창길을 헤치시며 여기까지 오시였던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난다고,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랑천발전소건설을 다그쳐 끝내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빛나게 관철하여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관철!

북방의 험한 골짜기, 아찔한 벼랑가에 깃들어있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로고의 자욱을 마음속으로 더듬어보는 일군들의 가슴은 뼈아픈 죄책감으로 끝없이 옥죄여들었다.

천리도 넘는 먼길을 오시여 진창을 밟으시면서 언제건설장을 돌아보시는 한걸음한걸음에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무겁게 얹으시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어랑천발전소건설을 제대로 내밀지 못한데서 심각한 교훈을 찾고 이제부터라도 이 발전소건설에 전당적, 전국가적힘을 총집중하여 공사를 와닥닥 끝내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도 전당, 전국이 달라붙어 해제꼈다고, 어랑천발전소건설은 정치적의의로 보나 경제적효과성으로 보나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에 못지 않은 중대한 대상건설이라고 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의 눈앞에는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의 웅장한 자태가 우렷이 떠올랐다.

성스러운 백두대지에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창조물로 거연히 솟아오른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참으로 이름만 외워보아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거창한 창조물이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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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합격도장》의 주인

주체108(2019)년 7월 31일 로동신문

 

우리 원수님께서 흙먼지가 날리는 멀고 험한 길을 이어 찬바람부는 물가의 나무숲을 헤치시며 몸소 잡아주신 자리에 일떠선 연풍과학자휴양소!

과학자들을 금방석에 앉혀주시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사랑이 넘쳐나는 연풍과학자휴양소가 첫 휴양생들을 받아들인 때로부터 어느덧 다섯해가 되여온다.

그 기간 수천명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휴양소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였다.

지금도 이곳은 휴양생들로 흥성거리고있다.휴양생활을 위한 온갖 조건이 최상의 수준에서 구비되여있는 으뜸가는 곳에서 평생토록 잊지 못할 휴양의 나날을 보내는 과학자, 기술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줄 모른다.

허나 어찌 기쁨만이 꽃피는 곳이라고 하랴.멋들어진 휴양각들을 보아도, 꽃향기넘치는 휴식터들과 어서 타라고 부르는듯 호수가에서 고물을 들썩이는 뽀트들을 보아도 눈굽을 적시는 과학자, 기술자들이다.

연풍과학자휴양소가 가슴뜨거운 그 유래와 독특한 건축미, 더없이 훌륭한 휴양조건으로 하여 세상에 크게 소문났지만 아직도 이곳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적지 않다.

아래의 일화도 그중 하나이다.

주체103(2014)년 10월 21일이였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완공된 연풍과학자휴양소를 찾으시였다.

푸른 물 출렁이는 호수를 배경으로 울창한 수림속에 특색있게 건설된 휴양소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풍치수려한 연풍호기슭에 과학자, 기술자들이 흥겹고 다채로운 휴양생활을 하면서 피로도 풀고 몸도 단련할수 있는 최상급의 휴양소가 일떠선것이 못내 기쁘시여 환한 미소를 지으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오늘 연풍과학자휴양소를 돌아보면서 휴양소운영준비상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주려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 휴양소의 여러곳을 돌아보시였다.

종합봉사소 1층 홀에 꾸려진 기념품매대에 들리시여서는 휴양소에 왔다가 기념으로 남는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기념품매대대신 사진현상설비를 차려놓도록 하시였고 주방에 들리시여서는 설비상태를 하나하나 료해하시면서 그릇소독을 더 잘할수 있도록 대책도 친히 세워주시였다.2층 홀에 설치한 탁구판을 보시고서는 여기에서 휴양생들이 탁구를 치면 탁구공이 아래로 굴러떨어져 그것을 줏자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고 일깨워주시면서 탁구판을 옮기고 다른 운동기재를 놓아주도록 하시였다.

과학자, 기술자들에 대한 그이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정에 일군들은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이윽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치료실, 리발실, 미용실을 비롯한 봉사시설들이 있는 홀에 이르시였다.

그때였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문득 걸음을 멈추시더니 일군들을 돌아보시였다.그러시고는 휴양소가 과학자들에게 합격될수 있겠는지 모르겠다고 하시였다.

미소속에 하시는 말씀이였으나 저으기 걱정이 실려있었다.

참으로 뜻밖의 말씀이였다.

일군들은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휴양소의 곳곳을 돌아보시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시종일관 그려보신것이, 세상에 둘도 없는 이처럼 희한한 휴양소를 일떠세워주시기까지의 그 모든 나날에 늘 심중에 안고계신것이 뜨겁게 어려왔던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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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창성각에 울린 박수소리

주체108(2019)년 3월 25일 로동신문

 

주체102(2013)년 6월 어느날 창성군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새로 일떠선 창성각을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

책임자의 안내를 받으며 창성각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는 그이께서는 시종 기쁨을 금치 못하시였다. 주방에 일식으로 갖추어져있는 설비들을 보시고서는 옥류관과 청류관의 종업원들도 와보고 자기 식당들에 있는 설비들보다 낫다고 하였다는데 창성각의 주방설비들이 중앙의 식당들에 있는 설비보다 나은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였고 2층에 있는 식사실에 들어서시여서는 전골과 불고기는 누구나 좋아할것이라고 하시며 만족해하시였다.

먼길을 달려오시며 쌓인 피로도 다 잊으신듯 그리도 기뻐하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우러를수록 책임자의 가슴은 크나큰 행복감으로 한껏 높뛰였다.

하지만 그 시각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심중에 한가지 아쉬움이 서리고있었음을 그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이윽고 1층에 있는 식사실에 이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인민들이 리용하는 의자에 허물없이 앉으시며 누구에게라없이 말씀하시였다.

《지금 식사실들이 비여있는데 인민들이 식사를 할 때 여기에 왔더라면 더 좋았을걸 아쉽게 되였습니다.》

순간 수행한 일군들도, 책임자도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산골군인민들에게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급양봉사기지를 마련해주시고도 그것을 리용하며 좋아하는 인민들을 만나보지 못하는 서운함을 터놓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인민들의 행복넘친 모습, 즐거운 웃음소리에서 더없는 기쁨을 찾으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의 한량없는 사랑이 그 말씀에 그대로 어려있는것이 아닌가.

그들이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득 군당책임일군이 창성각에서 군안의 주민들에게 생일상과 결혼상을 차려준것을 사진으로 남겨놓았다는데 대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기다리신듯 그럼 어서 보자고 하시며 못내 반가와하시였다.

이어 책임자가 펼쳐드린 사진첩을 마주하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안광에 인민들의 밝은 모습이 정깊게 안겨들었다. 전쟁로병부부와 세쌍둥이가 생일상을 받아안는 사진이며 창성군으로 탄원해온 교원부부의 결혼사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좋은 사진들이 많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전쟁로병부부의 여든번째 생일에 초청되여온 로병들이 모두 좋아하였다니 자신께서도 기쁘다고 하시였고 인민군대후방가족속에 있는 군당책임일군을 알아보시고는 대뜸 반색을 지으시였다.

그이께서 사진첩을 다 보아주시였을 때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 더 큰 기쁨을 드리고싶은 생각에 책임자는 어려움도 다 잊고 이렇게 말씀올리였다.

《경애하는 원수님, 창성각에서 식사한 우리 군인민들이 좋은 글을 많이 남겼는데 제가 한 대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때에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책임자의 무랍없는 제기를 쾌히 수락하시며 어서 읽어보라고 따뜻이 이르시였다.

하여 그는 전해 국제로인의 날에 창성각에서 봉사를 받은 한 로인이 쓴 감상문을 펼쳐들었다.

호기심어린 눈길들이 책임자에게 모아지는데 그의 입에서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오는것이 아닌가.

《하늘에서 내렸나, 땅속에서 솟았나. 우리 창성땅에 창성각이 웬 말이냐.

옥류관은 알아도 창성각은 몰랐구나. …》

로인이 남긴 글은 감상문이라기보다 즉흥시에 더 가까왔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감상문을 들을수록 일군들은 흥그러워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책임자가 감상문을 다 읽고났을 때 참으로 가슴뜨거운 광경이 펼쳐졌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자리에서 일어서시며 박수를 쳐주시는것이 아닌가.

한순간 놀라움에 싸였던 수행일군들도 그이를 따라 박수를 쳤다.

뜻밖의 요란한 박수갈채에 책임자는 너무도 당황하고 감격하여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경애하는 원수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장내에 울렸다.

《일군들의 사업에 대한 제일 공정한 평가는 인민들의 목소리입니다. 인민들이 좋다고 하면 다른 평가가 더 필요없습니다. 일군들은 무슨 일을 하나 해도 인민들이 좋아하게 하여야 합니다. 인민의 요구와 리익이 모든 사업의 기준입니다.》

그제서야 수행일군들과 책임자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평범한 로인의 감상문에 어째서 박수까지 쳐주시였는지 다소나마 깨달을수 있었다.

거기에는 위대한 어버이의 인민사랑의 세계가 어려있었다.

산골군에서도 우리 당의 뜻을 충직하게 받들어가는 인민의 참된 봉사자들에 대한 그이의 크나큰 믿음과 정이 실려있었다.

창성각에 울린 박수소리,

정녕 그것은 인민을 제일로 귀중히 여기시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숭고한 인민관을 세상에 전하여주는 메아리였고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것을 바라시는 간곡한 당부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이민위천의 뜻을 정히 받들어가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모시여 이 땅에서는 창성각의 박수소리와 같은 인민사랑의 감동깊은 일화들이 끝없이 꽃펴날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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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금방석과 바늘방석

주체107(2018)년 11월 17일 로동신문

 

지금도 우리 인민은 혁명일화 《꽃방석과 바늘방석》을 깊은 감회속에 되새겨보군 한다.

꽃방석은 남에게 권하고 바늘방석에는 자기가 앉는 사람이 진짜인간이라고, 자신께서는 모든 일군들이 그런 일군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시며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적풍모를 보여주는 잊지 못할 그 이야기.

오늘 우리는 위대한 김정은시대에 새롭게 태여난 《금방석과 바늘방석》에 대한 이야기에서 대를 이어 누리는 수령복, 태양복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지난 8월초 어느날 깊은 밤이였다.

례년에 없는 폭염이 계속되던 때여서 밤이라고는 하지만 바깥공기는 여전히 숨막힐듯 하였다.

그런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우리 로동계급이 만든 새형의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의 시운전을 지도하시기 위해 현지에 나오시였다.

그날 낮에 새형의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를 보아주시였건만 우리 인민이 리용하는데 자그마한 부족점이라도 있을세라 또다시 귀중한 시간을 내시였던것이다.

먼저 궤도전차의 시운전을 지도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어 무궤도전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시였다.

한폭의 그림같이 유정하게 안겨드는 무궤도전차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새형의 무궤도전차는 낮에 보아도 멋있고 밤에 보아도 멋있습니다.》라고 하시며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려객운수부문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이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만든것이여서 더더욱 애착을 느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다.

이윽하여 그이를 모신 무궤도전차는 수도의 밤거리를 누비며 기운차게 달리였다.

인민들이 앉을 평범한 좌석에 자리를 잡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전차의 기술적특성지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몸소 가늠해보시였다.

소음과 진동은 어느 정도인가.내부환경과 의장품들의 문화성과 질은 제대로 보장되였는가.…

그 모든것을 료해하고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새형의 무궤도전차가 반년전에 만든 무궤도전차보다 질이 월등하게 개선된것은 이 공장 로동자들을 비롯한 수도려객운수부문 일군들과 로동계급이 각성하고 분발하여 달라붙었기때문이라고, 우리 로동계급의 창조적지혜와 정신력을 발동시키고 높은 리상과 목표를 내세우고 완강하게 투쟁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제손으로 훌륭한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를 만들어 출퇴근하는 수도시민들을 금방석에 앉히고 사회주의웃음소리를 싣고 달리게 하는 일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입니까.》

일군들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누구나 무궤도전차, 궤도전차라고 하면 려객수송을 위한 운수수단으로만 생각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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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 : 과학기술중시로선이 안아온 빛나는 결실

주체107(2018)년 11월 15일 로동신문

리 원 철

 

주체99(2010)년 8월 24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현대적으로 개건된 평양곡산공장을 찾아주시였다.

그때 우리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의 교원, 연구사들로 무어진 기술집단을 책임지고 공장의 현대화공사에 참가했던 나도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한해전 12월 평양곡산공장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꾸려놓은 당과류생산공정을 돌아보시면서 당과류를 전문생산하는 국영공장의 체모에 맞지 않게 꾸려놓은데 대하여 지적하시고 평양시안의 대학들과 과학연구기관들이 달라붙어 현대적인 생산공정으로 다시 꾸릴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우리들은 현장으로 침식을 옮기고 전투를 벌려 한달동안에 사탕, 과자생산공정을 비롯한 여러 생산공정들의 기대, 설비설계를 끝내고 해당 공장들에서 설비제작전투를 진행하도록 하였으며 전반공정을 CNC화하기 위한 체계설계, 프로그람을 완성함으로써 생산공정을 현대적으로 일신시켰다.

이윽고 공장지배인의 안내를 받으시며 당과류직장의 종합조종실에 들어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뜸 만족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당과류직장의 종합조종실을 아주 잘 꾸렸습니다.》

순간 긴장되였던 나의 심중은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그처럼 마음쓰시는 장군님께 조금이나마 기쁨을 드리게 되였다는 안도감으로 스르르 풀리였다.

공장지배인이 위대한 장군님께 이번에 종합조종실을 새로 꾸리면서 현장감시뿐아니라 실시간적인 측정과 설비별, 계렬별에 따라 종합조종을 실현할수 있게 하였다는데 대하여 직접 조종을 해보이면서 해설해올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종합조종실에서 진동랭각채를 조종하는것을 보니 조종하는데 따라 진동랭각채가 멈추어섰다가 다시 가동하는데 조종이 아주 잘됩니다.이렇게 모든 생산공정을 조종실에서 조종하여야 CNC화를 실현하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이때 지배인이 장군님께 나를 소개해올리며 이번에 공장현대화를 책임지고 진행하였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김책공업종합대학 과학부총장입니다.》

이렇게 삼가 인사를 드린 나는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여러 계렬의 생산공정을 우리가 설계제작한 설비들로 꾸리고 자체로 개발한 프로그람에 의하여 조종되는 자동흐름선체계로 완성하였다고 보고올렸다.

나에게 믿음어린 시선을 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김책공업종합대학 과학부총장이 평양시안의 일부 대학 교원, 연구사들과 같이 평양곡산공장 당과류직장을 현대화하는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나갔다는데 아주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 과정에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비롯한 공장의 현대화에 참가한 대학교원, 연구사들의 실천실기능력이 한계단 더 높아졌을것입니다.그들에게 나의 인사를 전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사실 그 인사는 우리들이 위대한 장군님께 먼저 올렸어야 할 감사의 인사였다.

우리 교원, 연구사들을 인민생활향상의 최전선에 세워주시는 장군님의 믿음이 있었기에 오늘의 눈부신 성과가 마련될수 있었다.

더우기 우리가 조금이나마 성과를 거둘수 있은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훌륭한 전자도서관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이번에 곡산공장을 현대화하면서 어려운 과학기술적문제들이 많이 제기되였다.그럴 때마다 장군님께서 우리 김책공업종합대학에 꾸려주신 전자도서관에서 최신과학기술자료들과 최첨단자료들을 신속히 열람함으로써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우리 식으로 해결할수 있었다.

나는 한없이 고마우신 장군님께 강냉이가공공정을 비롯한 공장의 앞공정CNC화를 완성하여 우리 나라 식료공업을 발전시키는데서 과학자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갈것을 결의다졌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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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사랑의 가족사진

주체107(2018)년 10월 23일 로동신문

 

지난 7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강원도양묘장을 현지지도하신 그날은 숨막힐듯 한 무더위가 계속되던 날이였다.

소문도 없이 양묘장에 찾아오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는 도와 양묘장의 일군들은 형언할수 없는 격정에 목메이였다.례년에 없이 고온이 지속되는 삼복철에도 쉬임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그이의 로고가 가슴에 미쳐와서였다.하지만 겹쌓인 피로와 무더위를 다 잊으신듯 양묘장의 전경을 바라보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안광에는 기쁨이 한껏 어려있었다.

드넓은 부지에 규모있게 자리잡은 산뜻하고 특색있는 건물들과 나무모밭들, 푸르싱싱 자라는 나무모들…

당의 뜻을 받들어 자체의 힘으로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대규모의 나무모생산기지를 훌륭히 일떠세운 강원도인민들의 혁명적인 투쟁기풍이 경애하는 원수님의 심중을 뜨겁게 하여주었다.

강원도양묘장을 자신께서 돌아본 다른 단위들보다 더 질적으로 건설하였다고, 건설기능공들을 양성하는데서 강원도가 기치를 들었다고 높이 치하하시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강원도양묘장은 강원도안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자기 힘을 믿고 자기 힘으로 일떠세운 애국심의 결과물입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만을 그리며 애국충정의 구슬땀을 바쳐온 도인민들의 헌신적인 투쟁의 나날이 감회깊이 되살아나고 그 진정을 그이께서 대번에 헤아려주신것이 너무도 고맙고 감격스러워 일군들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묘목전시장으로 향하실 때였다.그이의 현지지도를 몸가까이 따라서며 이르는 곳마다에서 웅심깊은 사랑, 소탈하신 풍모에 온넋이 끌린 양묘장의 녀성지배인이 북받쳐오르는 흥분을 걷잡지 못하고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었으면 하는 종업원들의 소원을 정중히 말씀드리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환한 미소속에 지배인을 바라보시며 종업원들이 지금 다 있는가고 물으시였다.일요일이여서 오후에 휴식을 하는 종업원들이 더러 있다는 지배인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 종업원들이 3년동안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속에 지배인은 이렇게 덧붙여 말씀드리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하는 그의 절절한 눈빛에서 이곳 종업원들의 간절한 소망을 읽으신듯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렇다면 찍읍시다라고 하시고는 수행성원들에게 촬영조직을 하도록 이르시였다.

이어 묘목전시장을 돌아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양묘장종업원들인 제대군인부부의 살림집에도 들리시여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군사복무시절처럼 살며 일해나가라고 앞날을 따뜻이 축복해주시고 그들부부와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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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인재농사

주체107(2018)년 10월 15일 로동신문

 

교육사업에서 대혁명을 일으켜 우리 나라에 인재가 바다를 이루게 하시려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숭고한 뜻은 《인재농사》라는 하나의 시대어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지난 7월 9일이였다.

이날 삼지연군안의 건설장들을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삼지연읍에 교육기관이 몇개나 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그러시고나서 동행한 도와 군의 책임일군들에게 도들에서 교육사업에 힘을 넣을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 당정책을 철저히 관철하자면 도들에서 교육사업을 발전시켜 많은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고, 인재는 나라의 재부인 동시에 도, 시, 군의 발전을 담보하는 중요한 자원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후대교육사업을 농사에 비유하면 인재농사라고 할수 있습니다.감자농사만 과학화, 집약화할것이 아니라 인재농사도 과학화, 집약화하여 도들에서 짧은 기간에 많은 인재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인재농사!

참으로 심오한 뜻이 담겨진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일군들은 가슴이 벅차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후대교육사업을 인재농사라는 단 한마디 표현으로 통속화하시고 인재농사도 과학화, 집약화하여야 한다고 깨우쳐주신 그이의 말씀에는 과학기술강국, 인재강국을 하루빨리 건설하자면 온 나라에 인재농사열풍을 일으켜야 한다는 고귀한 철리가 담겨져있기때문이였다.

사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후대교육사업을 천하지대본이라 일러오는 농사에 비유하여 통속적으로 말씀하신것은 비단 이때뿐이 아니였다.

일군들의 뇌리에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처음으로 인재농사에 대하여 말씀하시던 뜻깊은 그날이 떠올랐다.

주체104(2015)년 11월 13일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짧은 기간에 우리 식 현대화의 본보기로 전변된 공장을 돌아보시며 못내 기뻐하시였다.

그이께서 생산지령실에 들리시였을 때였다.공장의 통합생산체계가 높은 수준에 이른것을 대번에 헤아려보신 그이께서는 지배인에게 통합생산체계를 어느 단위에서 맡아하였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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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지휘관은 대원들의 생활을 책임질줄 알아야 한다시며

주체107(2018)년 10월 14일 로동신문

강 위 룡

 

1938년 여름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여러 련대들이 독립임무를 수행하도록 파견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경위중대의 일부 성원들만 데리시고 림강현 신태자일대에서 활동하고계시였다.

그때 사령부호위에 필요한 인원들이 부족하여 소대장인 나도 기관총을 메고 보초근무를 서지 않으면 안되였다.그러다나니 나는 대원들의 식생활에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이 생활하고있는 천막으로 나오시였다.

마침 식사시간이였다.방금 근무교대를 하고와서 식사를 하던 대원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이께 인사를 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인사를 받으시고 어서 앉아 식사를 하라고 이르시였다.

대원들은 식찬이 없어 맨 소금에 밥을 먹고있었다.

그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거운 걸음으로 천막을 나서시자 즉시 나를 부르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로 달려가 보고를 드리였다.

《왜 대원들에게 산나물국이라도 끓여먹이지 못하고 맨 소금에 밥을 먹게 하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이의 음성은 여느때없이 엄하였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머뭇거리다가 근무가 긴장하여 산나물을 뜯지 못하였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동무는 소대장이 아닌가, 아무리 조건이 그렇다고 해도 소대장이 그런것도 해결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좋은 수림속에서 대원들이 소금에다 밥을 먹게 해서야 지휘관으로서 면목이 서는가 말이요!

사람이 모자라면 전령병도 한사람만 남기고는 모두 나물을 뜯게 할수 있지 않소.

조직사업을 잘해서 보초를 섰던 동무들이 돌아올 때만 나물을 뜯게 해도 국거리는 될것이 아니요?

그제서야 나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깨닫게 되였다.

사실 나는 방금전만 해도 대원들에게 소금이나마 떨구지 않고 먹이는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그때로 말하면 부대가 적의 포위속에서 활동하던 때였으므로 부식물을 구하러 떠날 형편이 못되였고 산나물은 모두 쇠여서 무수해싹밖에 먹을만 한것이 없었다.그래서 근무인원도 모자라는데 언제 얼마 없는 산나물까지 뜯겠는가 생각하면서 맨 소금에 밥을 먹어도 할수 없다고 생각하였던것인데 그이께 심려를 끼치고보니 크나큰 죄책감으로 가슴이 조여드는것만 같았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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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로동자시인에게 하신 인사

주체107(2018)년 10월 5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온 나라에 《봄향기》화장품으로 명성이 자자한 신의주화장품공장을 찾으신것은 지난 6월 어느날이였다.

이날의 현지지도길에서 꽃펴난 하나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이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화장품직장의 여러 생산공정들을 돌아보시였다.화장도구생산실의 수수한 의자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다른 나라에서는 화장용붓을 생산하는 일을 수공업적으로 한다고 해도 우리는 반드시 기계화해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였고 배합작업반에 이르시여서는 기술적특성이 복잡한 배합공정에 대한 작업반장의 설명을 들으시고 이제는 우리 로동자들도 고도의 과학자수준이라고 높이 치하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완성작업반으로 향하시였다.

그때 완성작업반의 무균화, 무진화된 작업장의 한 기대옆에는 공장에서 오랜 기간 일한 녀성로동자가 있었는데 그는 우리 당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자라난 현직작가, 로동자시인이였다.

울렁이는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기대의 작업과정을 세심히 살펴보고있던 그는 갑자기 눈앞이 확 밝아지는것만 같은 느낌에 머리를 들었다.

순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작업반복도에 들어서시여 그가 일하는 곳으로 다가오시는 모습이 맑은 유리칸막이를 통해 안겨왔다.

녀성로동자는 그만 자신을 잊고말았다.그는 두손을 높이 들고 나어린 처녀애마냥 발을 동동 구르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우러러 《만세!》하고 격정의 웨침을 터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걸음을 멈추시였고 일행의 시선이 그한테로 쏠리였을 때 공장 지배인이 최고령도자동지의 곁으로 다가가 말씀드리였다.

《경애하는 원수님, 저 동무가 바로 노래 〈준마처녀〉의 가사를 지은 우리 공장의 로동자시인입니다.》

이렇게 아뢰인 녀성지배인은 어려움도 잊고 경애하는 그이앞에서 노래 《준마처녀》의 처음 몇소절을 조용조용 불렀다.

우리 공장 동무들 웃으며 말을 해요

그리고는 다시 말씀올리였다.

《경애하는 원수님, 이 노래입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자기 공장 종업원을 내세우고싶어하는 심정이 다분히 풍기는 녀성지배인의 응석기어린 이야기를 들으시고 만면이 환하게 웃으시였다.

《준마처녀》!(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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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들속에서 : 포전에서 진행하신 방식상학

주체107(2018)년 7월 16일 로동신문

문창모

 

우리 농장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여러가지 농작물의 생육상태를 시험해보시던 포전들이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포전들에서 벼, 강냉이, 콩, 수수를 비롯한 주요농작물들에 대한 새로운 비배관리방법을 연구하시고 새 품종의 특성을 파악해보기도 하시면서 여기에서 얻어진 귀중한 경험을 온 나라에 일반화하기 위하여 자주 방식상학을 조직하시였다.

그 방식상학들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새로운 농업과학기술지식과 영농방법을 알려주시고 당의 농업정책관철에로 그들을 적극 불러일으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농장에서 조직하신 방식상학에 내가 처음으로 참가한 날은 주체64(1975)년 8월 18일이였다.

이날의 방식상학에는 각 도당책임일군들과 도농촌경리위원장들이 참가하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군들에게 보여주신것은 강냉이와 콩, 수수에 대한 새로운 재배방법이였다.

먼저 방식상학참가자들을 콩포전으로 데리고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나같이 충실한 콩포기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있는 그들에게 이 포전을 보니 기분들이 어떤가고, 농사는 여기 동무들처럼 해야 한다고 하시며 잘 배우라고 말씀하시였다.

하지만 그 포전에 펼쳐진 흐뭇한 콩작황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해 이른봄 우리들에게 콩재배에 대한 새로운 기술자료를 보내주시고 그와 관련하여 여러차례나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7월말에는 몸소 포전에까지 나오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콩 한포기에 피는 꽃의 개수와 한평에 피는 꽃의 개수, 한포기에 달리는 꼬투리의 개수 그리고 1 000알당 무게까지 몸소 계산해보시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그러시며 지금 한창 꽃이 필 때이니 비료를 잘 주고 관수를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모든 자료를 포전의 표말에 적어놓으라고 이르시고는 장마철에 콩이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고 떠나가시였다.

그리고 방식상학이 진행되기 전날 또다시 나오시여 우리들에게 래일 방식상학을 진행하겠으니 준비를 잘해야겠다고 하시며 구체적인 사업조직까지 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이 성과를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시니 나는 송구스러움을 감출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참가자들에게 이것이 새로운 방법으로 재배한 콩이라고 하시며 나에게 어서 설명하라고 이르시였다.

나는 참가자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새로운 재배방법에 따라 콩모를 키워 밭에 옮겨심기까지의 과정에서 지켜야 할 기술적문제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날씨가 하도 무더워 나는 위대한 수령님을 한시바삐 그늘에 모시고저 설명을 빨리 끝내려고 서둘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오히려 덤비지 말고 차근차근 이야기하라고 다정히 이르시였다.

내가 설명하는동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뜨거운 해볕이 내리쪼이는 포전머리에 서시여 나의 설명을 긍정도 해주시고 어떤 대목에서는 자신께서 보충도 하시며 방식상학을 지도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나의 설명이 끝나자 새로운 콩재배방법에서 제기되는 기술적요구들에 대해 다시금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콩에 비료를 주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시며 그 시비량을 알려주시고는 《콩의 생물학적요구를 충족시키자면 매운 재도 꼭 쳐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콩재배에서도 역시 종자를 바로 선택해야 한다고 하시며 포전에 심은 품종의 이름을 알려주시고 이 방법은 분수식관수를 한 조건에서만 은을 낼수 있다고 하시면서 콩농사에서 흔히 놓치고있던 관수문제에 대해 특별히 강조해주시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인민들속에서 : 우리 유치원에 찾아오신 수령님

주체107(2018)년 6월 1일 로동신문

오봉옥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생전에 늘 우리가 혁명을 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것은 자라나는 후대들을 위해서라고 하시며 현지지도의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유치원과 탁아소에 자주 들리시여 어린이들의 생활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돌보아주군 하시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TV화면에서 어린이들속에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뵈올 때마다 40년전의 일이 떠올라 가슴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습니다.

정말 그때 일을 되새겨보면 세상에 우리 수령님처럼 어린이들을 사랑해주신분이 또 어디 계실가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수 없습니다.

주체57(1968)년 3월 3일이였습니다.

당시 평양시 외성구역 련화1동의 한 유치원에서 교양원으로 일하고있던 저는 이날 어린이들에게 노래를 배워주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좀 지나 한 일군이 급히 방에 들어서더니 어버이수령님께서 곧 우리 유치원에 오신다고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도 뜻밖의 일에 저는 한순간 어리둥절해졌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지구에 다층살림집들이 새로 일떠섰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이날 친히 련화1동을 찾으시였다고 합니다.

제가 어찌할바를 몰라 서성거리고있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 벌써 전실을 거쳐 교양실로 들어서시는것이였습니다.

그러자 어린이들이 막 달려나가 챙챙한 목소리로 《아버지 김일성원수님,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드리며 수령님의 옷섶에 매여달리는것이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됐다, 됐어.》라고 하시며 사랑어린 손길로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애무해주시였습니다.그러시고는 어린이들에게 《자, 그만하고 이젠 자리에 가 앉거라.》라고 하시고나서 저를 바라보시였습니다.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던 저는 그제서야 어버이수령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시였습니다.

저는 어린이들에게 《유치원동무들, 빨리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아버지원수님께 노래를 불러드리자요.》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린이들은 《야!》 하고 손벽을 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미소속에 그 모습을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에게 《유치원어린이들이 몇명이나 됩니까?》라고 물으시였습니다.

제가 18명이라고 말씀드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드럽고 자애넘친 어조로 교양원은 몇명인가고 다시금 물으시였습니다.

교양원이 2명이라는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유치원어린이가 18명이면 많지 않으니까 교양원 2명도 되겠습니다라고 하시며 천천히 교탁이 있는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습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인민의 참된 충복으로

주체107(2018)년 5월 30일 로동신문

 

오늘 우리 일군들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뜻을 정히 받들고 인민을 위한 멸사복무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가고있다.

이런 현실을 대할 때마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일군들을 인민의 참된 충복으로 손잡아 이끌어주시던 잊지 못할 나날들을 뜨겁게 되새겨보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정일동지는 그 누구보다도 조국과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시였으며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에 한생을 깡그리 바치시여 조국청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십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집들이를 앞둔 살림집들을 돌아보실 때에 있은 일이다.

넓다란 방들과 부엌, 세면장 등 정말 흠잡을데가 없을상싶었다.살림집내부의 구석구석을 세심히 살펴보신 후 베란다에까지 나가시여 바닥을 눈여겨 살펴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였다.

그러시고는 베란다의 바닥 한쪽모서리를 가리키시며 물빠지는 구멍이야 밑바닥에 바싹 붙여서 내야지 이렇게 올려다내면 어떻게 하는가고 하시였다.미처 관심하지 못한 문제인것으로 하여 송구해하는 일군에게 그이께서는 비록 사소하고 하찮은것 같지만 우리 일군들의 일하는 본새와 마음씨를 그대로 말해준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이 집은 인민들의 살림집수요를 보다 높은 수준에서 해결하기 위하여 당에서 직접 맡아서 지은 집이 아닌가고, 그러므로 눈에 잘 보이는데건 안보이는데건, 큰것이건 작은것이건 세심하게, 깐지게, 자그마한 흠집도 없이 하여야 하며 바로 그렇게 하는것이 자신께서 늘 말하는 인민의 충복다운 일본새이고 마음씨라고 다정히 일깨워주시였다.

일군들의 가슴은 이름할수 없는 감동으로 높뛰였다.

베란다의 물빠지는 구멍의 높이, 건설자들도 스쳐보냈고 실무일군들도 발견하지 못한 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적해주신 베란다의 물빠지는 구멍의 높이는 일군들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우리 인민들에게 무엇을 하나 마련하여주어도 최상의것으로 안겨주고싶어하시는 어버이장군님.

북받치는 격정을 누르지 못하고있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혹 어떤 사람들은 옥에도 티가 있다고 이처럼 요란한 살림집을 지어준것만도 대단한데 그런 사소한 흠집이야 뭐라겠는가고 할수 있다고, 그러나 옥에 티는 허용할수 있어도 인민을 위한 우리 일군들의 마음에 티는 절대로 허용할수 없다고 강조하시였다.

일군들은 인민을 위한 일에서는 크고작은 일이 따로 없이 인민을 위한 복무문제로 중시하시는 위대한 어버이의 숭고한 뜻과 높은 요구성에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 일군들이 어떤 관점과 립장에서 어떻게 일하는가 하는것은 그가 한 일의 량적결과에서만 아니라 질적결과에서도 표현된다.때문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로 하여금 한채의 집을 짓고 하나의 공장을 일떠세워도 앞으로 그 집을 쓰고 살며 그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들을 받아안게 될 인민들의 심정에서 최상의 질적수준을 보장할것을 요구하시였으며 인민의 참다운 충복, 혁명의 미더운 지휘성원답게 사고하고 실천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이런 감동깊은 사연을 전하는 이야기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전문 보기)

 

[Korea Info]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숙영지에서 있은 일

주체107(2018)년 5월 27일 로동신문

김 룡 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는 보천보전투에서 승리한 후 그해 여름과 가을동안 기동작전으로써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몽강현 마당거우를 향하여 행군하였다.

행군도중에 우리는 시베즈골안에서 숙영하게 되였다.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선발대로 도착한 소대장에게 어느 사이에 준비하시였는지 부근산간의 농민들과 벌목장로동자들에게 보낼 삐라와 선전문을 내놓으시면서 두 동무를 부락에 파견할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다.

소대장은 지체없이 대원 두 동무를 선발하여 그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다. 그 동무들은 약간 남아있던 비상용미시가루를 나누어 요기를 하고 바삐 길을 떠났다.

잠시후에 사령관동지께서는 각 구분대 숙영지를 친히 돌아보시며 대원들을 일일이 보살피시였고 공작내보낸 소대에도 들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사나운 눈보라속에서 숙영준비를 하고있는 대원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도록 이르시였다. 그리고 산에서 끌어내려온 통나무 쌓는것을 친히 도와도 주시고 잔가지들을 꺾어서 손수 불도 피워주시였다.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은 순식간에 어두운 밀림을 환히 비치며 대원들의 몸을 훈훈히 녹여주었다.

그이께서는 경계근무조직정형을 다시 살피신 다음 공작나간 동무들이 출발할 때에 무엇을 먹었으며 땀에 젖은 수건이나 내의, 발싸개는 어떻게 했는가를 일일이 물으시였다.

이때 소대장은 그들이 공작경험이 있는 동무들이므로 준비를 잘하고 떠나리라 생각했기때문에 따로 살펴보지 않았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소대장의 말을 들으시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대원들을 잘 보살펴야 하오. 자신이 춥고 배고플 때뿐만아니라 자신이 덥고 배부를 때에도 대원들은 춥고 배고플수 있다는것을 항상 생각해야 하오. 그래도 그들의 애로를 다 알지 못할수 있소.

그들이 무엇때문에 간고한 이 투쟁의 길에 나섰는가, 오직 혁명을 위해서는 피흘리기를 서슴지 않는 그들이 아니요.

그들의 자각성만을 믿을것이 아니라 지휘관으로서는 그들이 더 용감하게 싸울수 있도록 보살펴야 하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눈보라가 사납게 울부짖는 산아래 먼 벌판쪽을 바라보시면서 공작나간 동무들을 념려하시였다.

《날씨가 더 험해지는데… 그들이 추운 눈길에서 얼마나 고생이 심하겠는가.》

곁에 있을 때나 멀리 떨어져있을 때나 모든 대원들을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사령관동지의 깊고도 뜨거운 사랑을 우리는 다시금 가슴뜨겁게 느꼈다.

한동안 눈보라속으로 멀리 벌판쪽을 바라보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물이라도 미리 끓여두었다가 공작나간 동무들이 돌아오거든 마시게 하라고 이르시고 사령부천막쪽으로 가시였다.

소대장은 사령관동지의 말씀대로 우등불가에 그릇을 들여놓고 눈을 녹여 물을 끓였다. 소대장은 그이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원들이 벗어놓은 배낭들을 모조리 풀어보았다. 그러나 그가 행여나 얻어보려던 미시가루는 조금도 없었다. 비상용미시가루까지 다 먹은 뒤였기때문에 이제 날밝을무렵에 군수관동무가 도착하는것을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소대장은 하는수없이 맹물만 끓였다. 그리고 보초근무정형을 돌아본 다음 불무지곁에 앉아서 공작나간 동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결엔가 깜빡 잠들어버렸다.(전문 보기)

 

[Korea Info]

몸소 세워주신 대책안

주체107(2018)년 5월 22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일군들이 수령님식, 장군님식인민관을 지니고 인민을 하늘같이 여기고 내세우며 언제나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인민을 위하여 뛰고 또 뛰는 참된 인민의 충복이 되여야 한다.》

주체53(1964)년 12월 어느날 저녁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뻐스를 리용하는 근로자들의 퇴근길을 돌아보자고 하시며 한 일군을 데리고 거리에 나서시였다.

어슬녘부터 눈보라가 일기 시작하더니 날씨는 점점 맵짜졌다.뻐스정류소들에는 사람들이 뻐스를 기다리고있었다.

어느 한 뻐스정류소에 이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근로자들과 함께 뻐스를 타시고 수도의 려객문제를 료해하시였다.

일군은 그이께 이젠 그만 돌아가시자고 몇번이나 말씀올렸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좀더 돌아보자고 하시며 다른 지구에도 나가시여 눈바람을 맞으시며 뻐스를 리용하는 근로자들의 퇴근길을 두고 깊이 마음쓰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시안의 뻐스운행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집무실에 도착하시였을 때는 늦은 밤이였다.

그이께서는 방안에 들어서시는 길로 책상을 마주하시고 종이우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어나가시였다.

시간은 흘러 자정이 지난지도 퍼그나 오랬다.

일군은 초조해지는 마음으로 이제 얼마 있으면 새날이 밝겠는데 다문 얼마만이라도 쉬실것을 그이께 간절히 말씀드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였는가고 하시며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시여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 창밖을 내다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력있는 어조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우리 일군들은 언제나 인민을 위하시는 수령님의 심중을 헤아려볼줄 알아야 합니다.인민들이 불편해하면 수령님께서 괴로와하시고 인민들이 안타까와하면 수령님께서 시름을 놓지 못하십니다.우리가 하는 일이 인민을 위하고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인데 잠을 좀 덜 자면 뭐랍니까.이왕 시작한 일이니 마저 끝냅시다.…(전문 보기)

 

[Korea Info]

우리 과학자들이 안겨사는 위대한 사랑의 품

주체107(2018)년 5월 18일 로동신문

 

위대한 당을 따라 험산준령도, 세찬 격랑도 과감히 넘고헤쳐온 우리 인민이 새로운 전략적로선관철에로 부르는 당의 호소따라 경제강국건설의 대통로를 열어나갈 만만한 투지와 불타는 열의에 넘쳐 산악같이 일떠섰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과학기술강국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짧은 기간에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에서 새로운 비약을 이룩하며 과학으로 흥하는 시대를 열고 사회주의건설에서 혁명적전환을 가져와야 합니다.》

지식경제시대인 오늘날 과학기술은 나라와 민족의 흥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과학기술에서 뒤떨어지면 약자가 되고 과학기술을 틀어쥐면 강자가 된다는것은 력사의 진리이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휘황찬란한 래일을 마중해가는 이 시각 뜨거운 감회가 우리의 가슴을 적셔준다.

지난 1월 국가과학원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우리의 과학자들은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정말 큰일을 하고있다고 치하하시면서 미더운 과학자대군이 조선로동당의 정책을 열렬히 지지하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고있기에 우리 당이 강한것이라고 긍지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세상에 믿음이면 이보다 더 큰 믿음이 또 어디에 있으랴.

과학전사들이 이룩한 성과를 두고 그처럼 만족해하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지금도 우리의 눈앞에 숭엄히 안겨온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고싶으신 심정으로 우리 과학자들을 금방석에 앉혀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숭고한 사랑의 갈피에 새겨진 감동깊은 사실들이 되새겨진다.

몇해전 7월 어느날이였다.

건설중에 있는 은하과학자거리를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살림집내부를 돌아보시며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금방석에 앉혀준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과학자들에게 금방석과 같은 집을 지어주어 거기서 생활하게 하자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일군들에게 과학자살림집건설에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질보장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살림집을 완전무결하게 꾸려놓고 과학자들에게 넘겨주어 그들이 집들이를 하며 손을 대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세심한 보살피심과 은정어린 손길에 떠받들려 희한하게 꾸려진 궁전같은 새 집에서 다함없는 격정을 터치며, 크나큰 행복의 웃음꽃을 피우며 보답의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던 우리 과학자들이다.

연풍과학자휴양소에 깃든 이야기는 또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는것인가.

과학자들을 위해 경치아름다운 연풍호기슭에 휴양소터전을 잡아주시고 몸소 시공주, 건설주가 되시여 건설장에 불멸의 자욱을 남기신 경애하는 원수님,

그날의 가슴뜨거운 사연은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

연풍과학자휴양소가 완공된 그날 휴양소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느라 목깃까지 땀에 푹 젖어들었건만 과학자들에게 사소한 불편이라도 있을세라 그처럼 마음쓰시던 우리 원수님이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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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점의 불꽃이 대중운동의 불길로

주체107(2018)년 5월 16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혁명원리를 신념으로 간직하시고 언제나 인민들속에 들어가 그들의 무궁무진한 힘과 창조적지혜를 발동하여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인민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풀어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봄날 경성군에 있는 아마공장(당시)을 찾으시였다.

공장에 들어서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로동자들의 생활형편부터 료해하시였다.

일군들에게 공장탁아소가 어디에 있는가도 알아보시고 아이들에게 소젖을 풍족하게 공급하라고 이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직장으로 향하시였다.

직장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자체로 만든 공기마치를 보시면서 아주 훌륭하다고, 수고했다고 하시며 로동자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공장일군으로부터 단능선반도 자체로 만들었다는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어디 있는가고 하시며 그 기대가 있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기대앞에서 물러서려는 선반공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대로 일하라고 이르시며 그의 어깨너머로 선반기의 동작을 세심히 보시고나서 이번에는 선반기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히시고 기대의 움직임을 자세히 들여다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 일군은 만들어놓고보니 결함이 많다고, 한번 만들어본 경험에 기초하여 지금 만능선반기를 만들고있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만능선반기를 보자고 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머뭇거리지 않을수 없었다.한것은 만능선반기를 조립하고있는 장소가 공무직장 뒤벽에 덧붙여 지어놓은 가설건물인데다가 문까지 낮아 드나들기가 여간 불편한 곳이 아니기때문이였다.

하건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안으로 들어가시여 곧바로 선반기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아니, 이런 선반기도 만드는가, 설계를 어떻게 하였는가고 하시며 기쁨속에 환히 웃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미소로 하여 장내가 밝아지는것만 같았다.

한심한 건물에 어버이수령님을 모신것으로 하여 얼굴을 들기 저어하던 일군들은 수령님께서 하도 만족해하시자 어느새 어버이앞에서 자랑많은 자식의 심정이 되고말았다.

충분한 기술적토대를 갖추지 못하여 도면 한장 그릴수 없는 조건이였지만 당의 뜻을 받들고 대담하게 기능공들을 모아 빈터에 작업장을 꾸리고 시작했던 일이며 자재도 낡은것을 회수하여 쓰고 용선로도 어방없이 모자라 마음먹고 개조하여 걸리는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간 일, 조립도 남의 손을 빌린것이 아니라 기계수리공동무가 맡아하고있는 사실…

나중에 일군들의 목소리는 울먹임으로 변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도 무척 감동에 겨워하시였다.

여기에 기계박사가 있다고 하시며 수리공의 어깨를 다정히 두드려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가 십여년간이나 기계수리를 하였으며 앞으로 수십대의 공작기계를 생산할 통이 큰 목표도 세웠다는 대답을 들어주시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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