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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론해설] : 일본은 성노예범죄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4)

주체107(2018)년 9월 23일 로동신문

 

5.범죄증거인멸 및 은페책동

 

일본정부는 1945년 8월 15일의 패전을 전후한 시기에 모든 자료를 소각하도록 명령하였다.이러한 소각명령은 일본왕과 국가의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인도에 대한 범죄증거를 인멸하려는데 기본목적이 있었다.그리하여 륙군참모본부와 륙군성, 해군성은 모든 륙군부대와 해군부대에 기밀문서들을 소각할것을 명령하였다.

대장상이였던 히로세 도요사꾸는 《나는 종전직후 자료는 태워버리라는 방침에 따라 소각하였다.이것은 우리가 각의에서 결정한것이였다.》고 증언한바 있다.

소각하게 된 자료들중에는 일본군성노예자료도 들어있었다.일본은 국가적인 성노예제를 수립하고 운영한 자료를 소각함으로써 특대형반인륜범죄를 은페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자료를 다 없앨수 없었다.가해자들과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이 있으며 소각에서 루락된 문서들도 많다.미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일본군성노예만행자료들이 나타나고있는것은 일본의 자료소각계획이 련합군의 공격으로 인해 채 실행되지 못하였고 많은 자료들이 미국으로 운반된 사정과 관련된다.

그 자료들은 일본의 국가권력이 일본군성노예제를 고안해내고 직접적으로 관리운영하였다는것을 여실히 실증해주고있다.유엔특별보고자는 보고에서 여러 자료들이 《일본군이 〈위안소〉에 대해 어느 정도로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깊이 관계하고있었는가에 대해 의심할 여지없이 밝혀주고있을뿐아니라 〈위안소〉가 얼마나 정당화되고 제도화되였는가를 명백히 보여준다.》고 단언한바 있다.

일본정부는 이렇게 패망을 전후하여 조직적증거인멸을 공공연히 감행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일본군성노예범죄와 관련한 자료들을 극력 은페하고있다.

일본군성노예제수립과 운영에 가담한 주요범죄자들이 입을 다물고 범죄행위에 대해 자백하지 않고있다.이전에 방위청 장관, 수상을 한바 있는 나까소네 야스히로는 자기의 회상록 《종말없는 해군》에서 태평양전쟁시기 자기가 해군대위의 견장을 단 3 000명의 부대지휘관으로서 직접 《〈위안소〉를 만들어준적도 있다.》고 말하여 스스로가 일본군《위안소》설치에 관여하였다는것을 고백하였다.하지만 고령이 된 오늘에 와서는 침묵을 지키고있다.

지금 방위성과 경찰청, 후생로동성, 재무성 등에는 방대한 군성노예범죄관련자료들이 보관되여있다.하지만 철저히 은닉해놓고 공개하지 않고있다.

아베를 비롯한 일본의 현 집권계층은 소장된 문서자료의 공개를 거부하는 한편 력사교과서들에서 일본군성노예범죄관련사실을 서술하지 못하도록 하고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초에 일본군성노예문제가 불거지게 되자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든 출판사들에서 일본군《위안부》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그에 대하여 기술하였다.그런데 일본정부는 교과서에 대한 《검정》이라는 공간을 리용하여 출판사들에 끈질기게 압력을 가하였다.그리하여 이제는 거의 모든 력사교과서출판사들에서 일본군성노예범죄에 대한 기술이 없어지고말았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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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론해설] : 일본은 성노예범죄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2)

주체107(2018)년 9월 16일 로동신문

3.국가권력을 총발동하여 감행한 죄악

 

일본은 군성노예제를 내오는데 군권을 비롯한 각종 국가권력을 총동원하였다.

2000년 국제녀성전범법정에서도 많은 방증자료, 피해자증언자료 등을 통해 일본이 군성노예제수립에 군권, 관권을 발동하였다는것이 적라라하게 폭로되였다.

우메즈 요시지로 일본륙군성 부장관(당시)이 북지나방면군 및 중지나방면군의 참모장들에게 발송한 1938년 3월 4일부의 《군위안소 종업원 등 모집에 관한 건》(통첩문)이 대표적실례이다.

이 통첩문은 일본군성노예제도를 세우도록 한 직접적지시자, 그 운영관할자가 누구인가 하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일본륙군대신 스기야마 하지메(1880-1945)의 위임에 따라 륙군성 병무과장 이마무라와 륙군성 부장관 우메즈 요시지로(1882-1949)가 결재인장까지 찍은 이 문건에는 《위안부》모집사업이 무질서하게 진행되여 일본군의 《위신》을 저락시키고 군사작전에 지장을 주며 주둔지역《치안》에 불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있다고 지적되였고 다음과 같은 명령들을 하달한다고 명기되여있었다.

《① 〈위안부〉모집을 철저히 파견군의 통제하에 진행할것.

② 민간인전문매춘업자들을 인입하려는 경우 그들을 엄선할것.

③ 〈위안부〉모집시에는 현지 헌병대와 경찰들과 련계를 가지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할것.…》

이에 따라 1938년 4월 6일 남경주재 총령사관에서 일본륙군성 병참사령관, 총령사, 령사관의 해군무관이 참석하여 륙군성, 외무성, 해군성 3성공동회의를 열었다.회의에서 그들은 《위안소》의 관리원칙과 앞으로 《위안소》를 늘일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합의하였다.

《① 륙군전속〈위안소〉는 군이 직접 관할 또는 경영하는 조건에서 령사관이 관여하지 않는다.

② 사민으로 리용하는 〈위안소〉의 경영자에 대한 관할통제는 령사관이 하며 거기에 출입하는 군인, 군속들에 대한 통제는 헌병대가 한다.

③ 헌병대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위안소〉에 대한 림검을 할수 있다.

④ 파견군은 점차 민간인매춘업소들을 군〈위안소〉로 전환시킨다.

⑤ 파견군은 민간인들에게 군대를 위한 〈위안소〉를 설치하도록 허가를 주는 경우에도 경영업자의 본적, 주소, 이름, 나이에 대하여 령사관에 통보하여야 한다.》

일본륙군성은 1940년 9월 《위안》시설에 주목하는것이 필요하다, 《성적위안》이 병사들에게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 특히 《성적위안》이 군인들의 《사기진흥》, 《군기유지》, 《범죄》 및 《성병방지》 등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는 통보를 부대들에 하달하였다.이밖에도 성노예제를 군부가 직접 틀어쥐고 영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조치까지 취하였다.그것이 바로 1942년 3월 26일부 《과장회보》에 발표된 륙군성 은상과장의 제안이다.

그 제안에는 주민들이 헌납하는 《국방헌금》으로 하사관이하를 위한 영구적《위안》시설을 설치할데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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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론해설] : 일본은 성노예범죄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1)

주체107(2018)년 9월 14일 로동신문

 

세계인류사는 헤아릴수 없이 많은 전쟁들을 기록하고있다.그러나 일본처럼 군대를 위한 성노예제도를 수립하고 전쟁마당에 성노예들을 끌고다니면서 침략과 인간도살행위를 감행한 포악무도한 침략자를 알지 못하고있다.랍치, 유괴, 강제련행의 방법으로 수많은 녀성들을 성노예로 만든 추악한 반인륜죄악은 왜왕제국가의 리익과 침략적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군국주의일본만이 감행할수 있는 극악무도한 범죄적만행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지배계층과 그 대변인들은 그러한 사실이 없었다고 한사코 부인하고있다.지어는 일본군성노예《합의》라는것까지 조작하여 피해생존자들을 모독하고있다.이것은 절대로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

세계여론을 오도하고 과거청산의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발악하는 일본집권층의 책동을 묵인할수 없어 다시한번 일본군성노예범죄의 진상을 폭로한다.

 

1.일본군성노예제를 내온 목적

 

군국주의일본이 군대내에 성노예제도를 내온것은 침략전쟁과 직접적으로 련관되여있다.

그 목적은 첫째로, 침략전쟁을 위한 전투력을 보존하고 군기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일본이 1918년에 씨비리출병을 하였을 때 병사들의 란잡한 성행위로 성병이 크게 만연되여 전투력이 감소되였었다.그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일본군부내에는 장기적인 침략전쟁수행을 위해서는 군성노예제를 내와야 한다는 인식이 확립되게 되였다.

실지로 1920년대부터 일본군안에 《위안소》들을 설치하고 운영하기 시작하였다.1931년의 9.18사변(만주사변)이후 전쟁기간 군부는 성노예들을 없어서는 안될 《군수품》으로 리용하는것을 제도화하였다.

일본군병사들은 중국대륙의 일부를 강점한 후 점령지마다에서 부녀자들을 닥치는대로 강간, 륜간하고는 그 증거를 없애기 위하여 죽여버리는것을 상례화하였다.

초기 성노예수요를 충족시킬수 없었던 군부우두머리들은 강간, 륜간 등의 전시성폭행을 묵인조장하였으며 그 진상을 은페시켰다.그러한 행위는 일본군내의 기강을 문란케 하고 성병을 만연시켰을뿐아니라 강점지역 주민들의 반일감정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이에 당황한 군부우두머리들은 급기야 군《위안소》들을 대대적으로 설치하고 그것을 군부가 직접 통제관리하고 운영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군《위안소》는 1937년 중일전쟁도발이후 급격히 확대되였으며 일제침략군의 발길이 가닿은 모든 곳에 설치되였다.심지어 고정《위안소》뿐아니라 이동《위안소》까지 내왔고 그것은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유지되였다.

일본이 군성노예제를 내온 목적은 둘째로, 조선민족을 말살하고 조선을 영원히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일본정부와 군부는 성노예를 주로 조선녀성들로 충당하는것을 정책화하였다.일제는 군사적으로 강점한 조선에서 무권리상태에 있는 녀성들을 돈을 들이지 않고 대량적으로 끌어갈수 있었을뿐아니라 그들을 실컷 써먹고 마음대로 죽일수 있었다.

엄중한것은 조선녀성들의 생식능력을 없애버리는 방법으로 조선민족을 말살하려고 하였다는데 있다.

1990년대초 일본잡지 《세까이》는 일본녀성사 연구사 스즈끼 유꼬의 글을 실었다.글에는 이렇게 씌여져있었다.

《일본처녀들을 〈위안부〉로 전장에 내보내지 않은것은 어째서인가.그처럼 횡포하기 그지없는 일본군이 일본처녀들의 인권을 고려했기때문이겠는가.그렇지 않을것이다.그들 일본통치배들은 일본처녀들의 생식기관이 못쓰게 되는것을 두려워했기때문이다. 〈위안부〉를 시키면 녀성의 〈생식능력〉이 쇠퇴해진다는것을 그들은 빈틈없이 계산에 넣고있었던것이다.

이런 계산에 기초하여 생각해낸것이 식민지에서 처녀들을 끌어오자는것이였다.이렇게 하면 당면하여 성병을 막을수 있을뿐아니라 식민지민중에게서 민족성을 앗아내기도 매우 좋다는 품먹인 음모적타산이 작용했을것이다.바로 여기에 민족적차별이 있고 식민지지배의 본질이 있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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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론해설] : 재침광신자들의 파렴치한 도발소동

주체107(2018)년 9월 5일 로동신문

 

조선반도의 긴장완화흐름을 가로막고 군국주의마차가 거침없이 질주할 길을 열어보려는 일본반동들의 책동이 극도에 달하고있다.

얼마전 아베패당은 군사대국화야망과 독도강탈야욕을 로골적으로 드러낸 2018년 《방위백서》라는것을 발표하였다.그 누구의 《핵, 미싸일위협》이 일본의 안전에 대한 《전례없이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이며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심히 손상》시키고있다는것이 이 전쟁문서의 골자이다.

과거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더러운 재침야망을 이루어보려고 칼을 물고 날뛰는 일본반동들의 사악한 몰골은 온 민족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내고있다.

섬나라족속들의 못된 심보를 모르는바 아니지만 낮이나 밤이나 재침의 칼을 영악스럽게 갈고있는자들이 조선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기류가 흐르고있는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 무슨 《전례없이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에 대해 떠들고있으니 이 얼마나 후안무치하고 가증스러운가.

세상이 믿건말건 무작정 우리를 걸고들며 헌법을 뜯어고치고 군국주의를 부활시켜 전쟁국가로 변신하려는것이 일본반동들의 검은 속심이다.이미 《주변유사시법》, 《유사시관련법》, 《테로대책특별조치법》을 비롯하여 해외침략의 법률적토대를 마련해놓은 일본반동들은 지금 《핵, 미싸일위협》에 대비한다고 고아대며 항공모함형의 전투함선들과 신형전투기들, 공중급유기들을 보유하고 중장거리미싸일능력을 확대하는데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다.외신들과 전문가들이 일본이 《북조선위협》을 집요하게 떠들고있는것은 그를 구실로 삼아 《전쟁가능한 국가》로 등장하려는 아베정권의 속내를 그대로 반영한것이라고 평하고있는것은 우연하지 않다.

재침열기로 한껏 달아오른 일본반동들은 보는바와 같이 있지도 않는 그 누구의 《위협》을 집요하게 제창하며 일본렬도전체를 군국주의소용돌이속에 몰아넣고 뿌리깊은 해외침략야망을 실현하려고 발광하고있다.

긴장완화와 평화에로 향한 조선반도의 정세흐름을 못마땅해하며 그에 역행하여 재침의 길에 서슴없이 나서는 일본반동들이 세인의 규탄과 경계의 대상으로 되고있는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다른 문제도 있다.심각한 통치위기에 빠지고 정치적으로 엄혹한 상황에 처해있는 아베패당이 그로부터의 출로를 《북조선위협론》을 적극 부각시키는데서 찾으려 하고있는것이다.

지난해 10월에 있은 중의원선거 당시 아베패당은 《북조선의 핵과 미싸일도발》은 일본에 《커다란 위협》이라느니, 그에 《단호하게 대처》할수 있는 자민당정권에 《힘을 실어달라.》느니 하며 반공화국대결기운을 극구 고취하였다.이와 관련하여 내외여론들은 아베정권이 《북조선위협론》을 들고나온것은 저들을 곤경에 빠뜨린 정치추문사건들에 대한 민심의 이목을 딴데로 돌리고 위기를 모면하려는데 그 불순한 정치적목적이 있다고 폭로하였었다.지금도 아베패당의 그 간특한 속심은 변함이 없다.

역시 백번 죽었다나도 고칠수 없는것이 남을 걸고 제 리속을 추구하는 일본반동들의 악습이며 천번 죽었다나도 달라질수 없는것이 사무라이후예들의 재침야망이다.

더우기 격분을 자아내는것은 일본반동들이 2018년 《방위백서》에서 독도에 대한 날강도적인 《령유권》주장을 또다시 되풀이한것이다.

독도는 력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보나 국제법적으로 보나 우리 민족의 고유한 령토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독도가 제것이라고 생떼를 쓰고있다.여기에는 《독도령유권》을 여론화, 국제화하여 독도분쟁을 일으키고 유사시 조선재침의 명분을 마련하려는 흉심이 깔려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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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백배로 피값을 받아내야 할 반인륜적죄악

주체107(2018)년 9월 5일 로동신문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간또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수많은 행방불명자가 났고 10여개 도시들과 마을들이 재더미로 되였다.백수십만명의 사람들이 한지에 나앉았다.불의에 들이닥친 자연의 광란은 간또지방을 무서운 공포와 극도의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나 일본반동정부는 아무런 구제대책도 취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앉아있었다.

일본인들속에서는 불만이 고조되였고 폭동에로 넘어갈 기세까지 보였다.

일본반동정부는 어떻게 하나 이것을 저지시켜야만 하였다.바로 그 출로를 재일조선인들에게 대혼란의 책임을 넘겨씌우는데서 찾았다.

일본수상관저에서 열린 내각림시회의에서는 민심안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데 대한 명령이 하달되였다.이에 따라 조선사람들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쳤다는 터무니없는 모략선전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일본전국에 조선인을 박멸하라는 살인명령이 내려졌다.

일제는 간또대진재를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재일조선인들을 합법적으로 탄압하고 학살하기 시작하였다.짐승도 낯을 붉힐 만행들에는 군대와 경찰은 물론 우익깡패무리들까지 총동원되였다.

이르는 곳마다에 설치한 검문소들에서 사람들에게 발음하기 까다로운 일본말을 시켜보고 발음이 정확치 않으면 조선사람으로 단정하고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목을 자르거나 배를 갈라 죽이였다.10여명씩 묶어 제방에 세워놓고는 새로 만든 기관총의 성능검사대상으로 삼아 죽이였고 해탄로에 집어던져 불태워죽이였다.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여 밟아죽이였고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어린아이들의 목을 잘랐다.식칼로 눈을 도려내고 팔을 톱으로 켜는자도 있었다.불과 며칠사이에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야수적인 방법으로 학살하였다.

살인광경이 얼마나 처참하였으면 일본사람들자체가 일본인의 수치를 토로하였겠는가.

《이웃동네에 가보았다.…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사람들의 목부분이 끊기워 기관지와 식도의 경동맥이 허옇게 드러나있었다.목이 떨어져나간 시체들도 있었는데 목을 강짜로 비틀어 끊었는지 살과 피부와 힘줄이 풀려있었다.…녀성의 배는 갈라져있었고 6~7개월쯤 되여보이는 태아가 창자속에 딩굴고있었다.…우리 일본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잔인한짓을 했단 말인가.…내가 일본사람이라는 수치감을 이때처럼 절감하기는 처음이였다.》

1972년 일본의 어느 한 잡지는 간또대지진때 일본살인악당들이 조선사람들을 얼마나 처참하게 죽였는가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한 례를 들면 잡은 사람을 전주에 비끄러매고 우선 눈을 도려내고 코를 베여내면서 고통케 한 다음 배를 찔러죽였다.간다거리 길가에서는 조선녀학생 수십명을 발가벗기고 량쪽으로부터 다리를 잡아당겨 째고 생식기에 칼을 박아 녀자는 이렇게 죽이는것이 재미가 있다고 웃어댔다.…이러한 참상을 보다 못해 도꾜에 있는 각국 대사와 공사들이 련명으로 외무성에 항의하였다.〈일본은 놀랄만 한 한개 야만국이다.이러한 야만국을 상대로 외교를 계속할수 없다.〉는 취지를 전달했다고 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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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할 만고대죄

주체107(2018)년 9월 1일 로동신문

 

지난해 8월 일본 도꾜에서는 일제의 강제련행에 의한 조선인희생자들의 유골봉환모임이 진행되였다.도꾜의 한 절간에 안치되여있던 조선사람들의 유골가운데서 30여구의 유골을 고향에 보내는 모임이였다.

일본에서는 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을 비롯한 총련의 여러 단체들과 일본의 량심적인 인사들에 의하여 해방전 일본에 끌려와 가혹한 살인로동에 시달리다가 무참히 희생된 조선사람들의 유골이 수많이 발굴되고있다.

일제에 의해 산설고 물설은 타향에 강제로 끌려가 노예살이를 강요당하면서 넋이라도 가리라 절절히 그리던 고향,

무엇때문에 그들은 이역의 하늘아래서 한많은 생을 마치고 방황하는 령혼이 되여야 했는가.어이하여 그들은 사랑하는 부모처자가 기다리고 소꿉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있는 고향산천에 백골이 되여서야 돌아갈수 있게 되였는가.

과거 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의 산물이다.

중일전쟁발발이후 840만여명의 청장년들이 일제에 의해 유괴, 랍치, 강제련행되여 죽음의 전쟁터와 고역장들에서 노예살이를 강요당하였다.20만명의 조선녀성들은 일제에게 끌려가 정조와 청춘을 빼앗겼고 거의 모두가 학살당하였다.

일본은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통치기간 국가권력과 군권을 발동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랍치해간 특대형범죄국가이다.

2008년에 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은 조사활동을 하는 과정에 일제의 군사적강점시기에 랍치, 강제련행되였던 조선인피해자들과 관련한 42만 7 129명의 명단을 입수하였다.이 명단에는 태평양전쟁발발을 전후하여 징용, 징병, 성노예 등으로 끌려간 피해자들이 포함되여있으며 《우끼시마마루》침몰사건의 피해자들과 원자탄피해자들도 들어있다.이들이 강제로 끌려간 지역을 보면 일본전역은 물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태평양상의 작은 섬들까지 속해있다.

일제는 랍치, 강제련행한 조선청장년들을 수용소에 가두어넣고 노예제적규률을 적용하였으며 가혹한 로동강도와 로동시간을 강요하였다.

피해자 홍찬정은 《고베제강소에 도착한 우리들을 판자로 만든 합숙에 들이밀었다.우리의 대렬 및 생활을 감시, 통제한것은 나까무라라는 일본군 오장이였다.다음날 나까무라는 아침일찍 전원을 깨우고 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우리를 제강소로 끌고갔다.나는 제강소에서 용해공으로 일하였는데 뜨거운 로앞에서 하루에 14~16시간씩 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왜놈들은 조금이라도 일손이 더디거나 저들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덮어놓고 우리에게 폭행을 가하였다.2년 남짓한 기간 이러한 노예생활이 매일 반복되였다.》고 증언하였다.그러면서 그는 고베제강소에서의 강제로동기간에 휴식은 일체 없었으며 외출은 철저히 금지되고 로임이란 한번도 손에 쥐여보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차례진 하루식사량은 한줌밖에 안되는 콩밥이나 납작보리밥, 콩깨묵에 절인 무우 몇점이 전부였다고 진술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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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론해설] : 불법비법의 날조문서―《한일합병조약》

주체107(2018)년 8월 29일 로동신문

 

일제가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고 공포한 때로부터 108년이 되였다.

《한일합병조약》은 간악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조선강점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불법비법의 문서이다.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에 이어 또다시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해낸 일제는 우리 인민에게 망국노의 치욕을 들씌웠다.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의하면 조약체결에서 당사국들의 합의의 자유가 보장되여야 하며 위협과 강제가 작용하면 그런 조약은 성립될수 없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을 철저히 진압하고 조선봉건통치배들을 군사적으로 굴복시켜 저들의 야망을 순조롭게 단행할 목적밑에 수많은 침략군을 서울일대에 집결시켜 주요지점들에 배치하고 경계태세를 강화하였다.고종이 거처하고있던 덕수궁과 순종황제가 있던 창덕궁을 겹겹이 에워싸고 황실과 황궁으로 드나들던 관리들을 위협공갈하였다.

특히 일제는 서울에 살벌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미쳐날뛰면서 시내의 곳곳에 헌병, 순사들을 조밀하게 배치해놓고 두사람이상 모여 이야기를 해도 단속하고 심문하였다.

1910년 7월 우두머리들로부터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해낼데 대한 임무를 받고 서울에 기여든 조선《통감》 데라우찌는 조선봉건정부의 최고통치자인 순종황제의 전권대표임명권한까지 가로챘다.

친일역적에 대한 《전권위임장》을 제멋대로 조작해내고 그에 비준할것을 강요함으로써 기어이 《조약》을 강압체결하려는 날강도적인 속심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

그해 8월 22일 일제는 친일매국역적들과 야합하여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해냈다.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일제의 이 특대형범죄에 대해 순종황제는 1926년 4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궁내대신 조정구에게 한 유조에서 《병합인준은 강린(일제를 가리킴)이 역신의 무리(리완용 등을 가리킴)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것》이라고 폭로하였다.

공인된 국제조약체결절차에 의하면 국가간의 중요한 문제들을 규제하는 조약들은 반드시 국가원수의 비준을 받아야 효력을 가지게 되여있다.

그러나 《병합》을 알리는 순종황제의 《칙유문》에는 행정적결재에만 사용하는 어새만 있고 황제의 서명이 없었다.

이와 반면에 같은 날에 발표된 일본왕의 《조칙문》에는 어새와 함께 서명이 찍혀져있었다.

《칙유문》에 조선황제의 서명이 없었다는 사실은 순종황제가 조선을 강탈하려는 일제의 책동을 반대하여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다는것을 실증하여준다.

이처럼 일제강도무리들이 날조해낸 《한일합병조약》은 철두철미 국제조약으로서의 초보적인 체모도 갖추지 못한 사기협잡문서이며 그 어떤 합법성도 효력도 가지지 못한것이였다.

우리 인민의 거세찬 반일투쟁기세에 겁을 먹은 일제는 불법비법의 문서날조사실을 숨기고있다가 8월 29일에 가서야 공포하였다.

일제식민지통치기간 조선사람들이 겪은 피해와 고통은 실로 헤아릴수 없다.

수많은 청장년들이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이역땅에 끌려가 모진 학대와 천대, 멸시를 받으며 노예로동을 강요당하였고 총알받이로 내몰려 처참하게 목숨을 빼앗겼다.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가 정조를 무참히 유린당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의 귀중한 력사문화재들과 자연부원을 마구 파괴략탈하고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무참히 짓밟았으며 지어 조선사람의 말과 글, 성과 이름까지 빼앗으려고 미쳐날뛰였다.

일제의 극악무도한 식민지파쑈폭압통치는 전대미문의것이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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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론해설] : 그날의 령혼들은 피의 복수를 부른다

주체107(2018)년 8월 24일 로동신문

 

지금으로부터 73년전인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20분경, 일본 교또부 마이즈루항입구 해안선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수역에서 갑자기 요란한 폭음이 련속적으로 울리면서 4 000t급의 배 한척이 두동강났다.검푸른 바다에는 삽시에 수난자들의 비명소리가 차고넘쳤다.배의 침몰로 수천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오늘까지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는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이다.

해방의 기쁨과 나서자란 고향땅에서 행복하게 살아보려는 소중한 꿈을 안고 귀향길에 올랐던 수천명 조선사람들을 날바다에 수장해버린 일제의 대중적학살만행, 그때의 참혹한 광경을 조선사람치고 과연 그 누가 잊을수 있겠는가.

세월이 흐르면 지나간 일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법이다.그러나 과거 일제가 저지른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의 진상은 세월과 더불어 더욱 선명하게 밝혀지고있다.

력사는 단순히 시간의 루적이 아니라 모든 사실자료들의 체현자이며 진실의 거울, 정의의 심판자이다.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은 일제에 의한 조선인집단학살만행으로 력사에 기록되였다.

일본방위성 전쟁사자료실에서는 1945년 8월 19일 해군성 운수본부가 오미나또해군경비부 참모장앞으로 보낸 전보가 발견되였다.《우끼시마마루》의 운항을 허가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전보는 오미나또해군경비부가 보낸 제181439호 전보에 대한 답전이였다.

당시 련합군의 명령으로 일본령해에서 100t급이상 되는 선박들의 항행은 금지되여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끼시마마루》의 운항이 허가되였다는것은 그자체가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라는것을 잘 보여준다.

일본정부의 허가와 지시밑에 오미나또해군경비부는 《우끼시마마루》가 부산으로 가게 된다, 조선으로 가는 배편은 이것밖에 없다고 하면서 회유와 기만으로 조선사람들을 배에 태웠다.결과 《우끼시마마루》는 정원을 훨씬 초과한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을 태우고 오미나또항을 떠나게 되였다.

《우끼시마마루》의 항로문제도 까밝혀볼 필요가 있다.

《우끼시마마루》는 처음부터 부산이 아니라 폭침장소인 마이즈루항 앞바다로 항로를 정하고 떠났다.이것은 애당초 배가 부산항까지 갈 계획이 아니였다는것을 명백히 말해준다.폭발직전에 배에 탔던 일본인들이 부랴부랴 뽀트를 타고 달아난 사실도 폭침이 이미 계획되여있었다는것을 증명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사고발생당시 일본은 《우끼시마마루》가 《기뢰에 의해》 폭침되였다고 주장하였다.황당무계한 궤변이다.마이즈루항주변의 항로는 이미 기뢰해제가 끝나 안전하였다.이날 많은 배들이 마이즈루항으로 들어갔지만 모두 무사하였다.

《우끼시마마루》가 기뢰에 의해 폭침되였다는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목격자들은 만약 기뢰에 의한 폭침이라면 폭발시 물기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더우기 기뢰는 한번밖에 폭발하지 않는데 배에서는 련속적인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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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병력과 로동력해결을 위해 감행한 노예사냥

주체107(2018)년 8월 22일 로동신문

 

《가장 나쁜것은 인간을 빼앗은것이다.일본에서는 석탄을 캐는 사람이 필요하였다.5 000만t의 석탄을 캐지 않으면 안되였는데 그의 60%는 조선사람들이 하였으며 항만축조와 군항을 만든것도 조선사람들이였다.리해같은것은 시킬수도 없었다.》

이것은 조선에 대한 침략과 략탈정책의 직접적집행자였던 조선총독부의 재무국장 미즈다 나오히로가 실토한 내용이다.

관권과 군권이 발동되여 백주에 공공연히 감행된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만행은 그 규모와 수단, 방법에서 중세기의 노예사냥을 훨씬 릉가한것이였다.

1930년대에 들어와 대륙침략전쟁을 도발하고 그것을 계단식으로 확대한 일제에게는 더 많은 병력과 로동력이 요구되였다.당시 일본당국자들이 실토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새로 요구되는 로동력은 1939년에 110여만명, 1941년에 250만명에 달하였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일제는 조선인청장년들에 대한 랍치, 강제련행에서 찾았다.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 《로무조정령》과 같은 악법들이 공포실시되였다.조선총독부는 이러한 《법령》들을 내걸고 조선사람들을 일본에 끌어가기 위한 《알선요강》이라는것까지 만들어냈다.

일제가 조선인강제련행에 《모집》 등의 외피를 씌워놓았지만 그것은 철두철미 노예사냥이였다.군사력이 개입된 로골적이고 규모가 큰 범죄행위였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이른바 《전시로력동원계획》에 따르는 《인력공출》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알선요강》에 근거하여 《조선로무협회》를 만들어내고 총독부내에 그 본부를, 각 도에는 지부를, 각 부, 군, 도(섬)에는 분회를 두는 등 조직망을 전국각지에 거미줄처럼 늘여놓고 조선청장년들을 닥치는대로 강제련행해갔다.

어느 장소에 모이라고 하고는 두손에 쇠고랑을 채우고 기차에 태워 목적지에 끌어가기도 하였으며 이른새벽에 남정들이 자고있는 집을 갑자기 습격하거나 혹은 논밭에서 한창 일하고있는 때에 차를 들이대고 마구 잡아갔다.

이렇게 끌고간 조선사람들을 일본인로동자들이 기피하던 광산, 탄광, 발전소언제공사장 등에 배치하고 짐승처럼 부려먹었다.

조선사람들을 일본인죄수들보다 더 심하게 학대한것만 보아도 일제의 비인간성과 민족멸시사상이 얼마나 농후하였는가를 잘 알수 있다.

이에 대해 어느 한 일본인은 다까시로해군공창건설장에 강제련행되였던 조선사람들을 일본인죄수들과 비교하면서 《푸른색, 붉은색 옷을 입은 일본인죄수들은 조선인들에 비해본다면 식의주, 로동조건 등 모든 면에서 훨씬 월등하였다.조선사람들은 언제나 벌거벗고 일하였으며 땀을 닦을 수건도 없었다.조선사람들은 노예들이였다.》고 실토하였다.

일제는 강제련행한 조선사람들에게 《산업전사》, 《반도로동전사》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그들에게 인간사회에서 일찌기 볼수 없었던 야만적인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산 로동력으로가 아니라 전시소모품처럼 취급하였다.결국 일제가 조선사람들에게 강요한 노예로동은 끝없는 인력소모과정인 동시에 강제련행한 조선사람들에 대한 집단적학살의 련속적과정이였다.

밀차를 밀 때에는 몽둥이를 든 감독이 따라다니면서 마구 때리며 악착스럽게 부려먹었다.굴안에 갇히운 사람들의 생명안전은 고려함이 없이 갱입구를 폭파하여 질식시켜 죽이였다.지어 힘겨운 로동강도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린 조선사람들을 갈구리로 찍어 콩크리트타입물에 처넣어 죽이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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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평 : 비렬하고 파렴치한 반총련망동

주체107(2018)년 8월 20일 로동신문

 

일본반동들이 반총련모략책동에 더욱 피를 물고 매여달리고있다.얼마전 제복입은 강도무리로 악명높은 일본경찰패거리들은 재일본조선인축구협회 부리사장 겸 국제부장의 집과 사무실을 강제수색하는 폭거를 저질렀다.근거는 유엔의 대조선제재결의와 일본의 《외환법》에 위반되는 거래를 하였다는것이다.이른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날강도적인 수색소동을 벌린 경찰깡패들은 동포의 손전화기와 콤퓨터, 각종 서류들을 압수하였다.이번 강제수색은 이 동포가 최근 몇해동안에 세번째로 겪는것이라고 한다.그야말로 총련과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극도의 적대심과 악의적인 편견으로 가득찬 일본식《법치》제도하에서만 볼수 있는 살풍경이다.

더더욱 격분스러운것은 경찰깡패들이 저들이 조작한 사건과 관련이 없는 동포의 아들과 동생, 지어 재일본조선인축구협회 회장의 집과 사무실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색한것이다.

충격적인 사건조작과 그의 여론화를 위해 련쇄적인 강제수색소동을 벌리는 일본반동들의 악습이 또 발작한것이다.

일본반동들이 총련과 재일조선인들을 저들의 국내문제, 정치적위기해결을 위한 희생물로 삼아 탄압하는것이 하나의 수법으로 되고있다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최근에 와서 그 기질은 더욱 위험하고 파렴치한 양상을 띠고있다.

일본경찰은 우리 동포의 《비법거래》라는 날조설을 내돌리면서 끈질긴 추적, 조사놀음을 벌리고 그가 거래하던 외국기업들에게까지 압력을 가하는 한편 주린 참새무리같은 사이비언론들을 사촉하여 터무니없는 모략보도들을 날리게 하던 끝에 이런 폭거를 저질렀다.

이번 망동은 사회전반에 반총련기운을 대대적으로 고취하여 저들의 범죄적인 총련말살책동을 합리화해보려는 일본특유의 간악성과 비렬성, 민족배타주의적인 어지러운 정치풍토를 그대로 보여주고있다.지금 저들의 의도와는 달리 조선반도에 평화의 기류가 조성되고 세계적인 전략국가로서의 우리 공화국의 지위가 날로 높아가고있는데 부아통이 터진 일본반동들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국가적테로를 계단식으로 확대하고있다.갈수록 우심해지는 총련기관들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당국의 탄압과 협박, 테로행위는 그 구체적표현이다.최근 일본정계에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압박을 주장하는 수작들이 어지럽게 울려나오고있는것을 념두에 둘 때 이번 사건 역시 그 연장선우에서 감행된것이라는것을 쉽게 알수 있다.일본이라는 나라는 보다싶이 이처럼 좀스럽고 악착하다.

터무니없는 죄를 들씌워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모진 탄압과 박해를 가함으로써 어머니조국과 그들사이의 혈연적련계를 끊어버리려는것이 일본반동들의 더러운 속심이다.

재일동포들이 숨쉬고 살수 없는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일본의 정치불망나니들의 망동은 한계를 넘어서고있다.총련조직과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온갖 탄압행위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악랄한 정치적도발이며 인권과 인도주의에 대한 란폭한 유린으로서 절대로 용납할수 없다.

지금 우리 인민들은 지난날 조선민족앞에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행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할대신 반공화국, 반총련책동에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재일동포들의 인권과 생활권을 계속 짓밟는 일본반동들의 간악한 망동에 치솟는 격분을 금치 못하고있다.

우리는 일본당국에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권리를 보장해주고 그들을 우대해야 할 법적, 인도적의무가 있다는것을 한두번만 언급하지 않았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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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평 : 외토리의 부질없는 발버둥질

주체107(2018)년 8월 18일 로동신문

 

일본정객들이 대조선제재유지의 중요성을 제창하며 계속 못되게 놀아대고있다.그 대표적인물이 외상 고노이다.

얼마전 아세안지역연단 상회의에 참가한 그는 조선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재를 유지하고 조선의 제재회피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 저들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희떠운 나발을 불어댔다.나가사끼를 방문한 유엔의 고위인물을 만났을 때에도 조선에 제재를 계속 가하며 각국이 제재결의를 착실히 리행해야 한다는 고약한 소리를 하였다.

그야말로 돈 끼호떼식사고방식이다.

지금 로씨야와 중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시효가 지난 대조선제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있다.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제재가 조선반도정세를 또다시 악화시킬수 있는 전제로 되기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은 오히려 정반대로 대조선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고아대고있다.조선반도와 지역에서 흐르고있는 긍정적분위기를 한사코 깨버리려는 평화파괴책동이라고밖에 달리 볼수 없다.

올해에 들어와 조선반도에서는 우리 국가의 넓은 도량과 대범하고도 주동적인 조치, 진지한 노력에 의하여 세상사람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던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여러 국제기구들과 우리와 엇서나가던 나라들까지도 세계최대의 열점지역으로 공인되여있는 조선반도에 모처럼 마련된 화해의 분위기가 공고한 평화에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지지와 환영의 뜻을 표시하였다.

유독 일본만이 저들에게 큰 재난이라도 닥친것처럼 복닥소동을 일구며 어떻게 하나 좋게 나아가는 대세의 흐름을 되돌려세워보려고 발버둥질하였다.심술이 바르지 않게 남의 잔치상에 재를 뿌리며 돌아쳤다.

북남사이에 여러 갈래의 대화가 진행되자 수상 아베와 내각관방장관, 외상, 방위상을 비롯한 일본정계의 거두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떨쳐나 《북조선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페기에 나서는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의미있는 대화가 된다.》, 《대북강경메쎄지를 북에 제대로 전하는 대화가 되기를 바란다.》, 《북남대화에 관계없이 국제적공조에 의한 기존의 대북압박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악담들을 련발하며 북남사이에 쐐기를 쳐보려고 하였다.

력사적인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조미공동성명이 채택되였을 때에는 왼새끼를 꼬며 조선이 행동에 착수하지 않았다느니, 엄격한 조건을 달지 않으면 조선은 움직이지 않는다느니 하며 《강제적이고 예고없는 핵사찰》을 들이대야 한다고 떠들었다.

요즘에는 제재에 이미 다 해결된 랍치문제까지 곁들여가지고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조선에 압력을 가해달라고 구차스러운 구걸외교, 청탁외교를 벌리고있다.

일본의 정객들이 돌아치며 하는 짓거리란 전부 이런것들이다.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를 위해 한 일이란 꼬물만큼도 없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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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랍치는 국가정책이였다

주체107(2018)년 8월 16일 로동신문

 

일본은 지난 시기 랍치, 강제련행을 정책화하고 그것을 국가적범위에서 조직적으로 시행한 범죄국가이다.

오늘도 세상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일본의 성노예범죄는 그 직접적산물로서 세계최대의 랍치국의 정체를 고발하고있다.

1918년 씨비리침략전쟁후 일본당국은 《군대의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성적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변태적인 군사론리에 기초하여 성노예제도를 내올것을 결정하였다.이에 따라 1920년대부터 다른 나라 녀성들에 대한 랍치, 강제련행이 공공연히 감행되였으며 대륙침략과 태평양전쟁 전기간 지속되였다.

당시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있던 일본왕은 녀성들에 대한 랍치, 강제련행을 해외파견군의 참모부가 담당하게 하고 필요에 따라 륙군성이 지시를 내려 집행하게 하였다.

성노예제도는 이렇게 일본왕의 직접적인 지령밑에 나왔으며 군부는 성노예확보를 위해 조선과 아시아지역의 녀성들을 마구 랍치, 강제련행하였다.

일본에서 발행된 출판물 《왕의 군대와 조선인〈위안부〉》에 의하면 정부와 군부는 군인 29명당 1명의 성노예가 차례지도록 계획을 세웠다.그리고는 그 실현을 위해 각종 법령과 문건을 만들어냈다.

1938년에 나온 《위안소규정》과 1944년에 조작발포된 《조선녀자청년련성소규정》, 《녀자정신근로령》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일본이 관권과 군권을 발동하여 녀성들을 조직적으로 랍치, 강제련행하였다는것은 일본군의 전시전보들과 문건들에 의해서도 립증되였다.

1942년 3월 12일 대만주둔 일본군사령관이 도죠에게 보낸 전시전보에는 《남방의 군본부로부터 50명의 〈위안부〉를 브루네이에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은것과 관련하여 헌병에 의해 선발된 다음의 3명의 인물을 〈위안소〉관리인으로 파견하도록 허락해줄것을 당신에게 요청하는바이다.》고 씌여져있다.

륙군성은 1941년 12월말 태평양전전선에 《위안소》개설을 명령하고 녀성들을 대대적으로 랍치해오라고 지시하였다.이런 명령은 일제의 패망직전인 1945년 7월까지 군부대들에 하달되였다.

녀성들에 대한 일본의 랍치, 강제련행정책은 조선에서부터 실행되였으며 그 집행자는 식민지통치기구였던 조선총독부였다.조선총독부는 산하의 도청, 군청, 면사무소, 파출소 등 행정과 경찰기관은 물론 헌병대와 군대까지 동원하여 조선녀성들을 대대적으로 랍치, 강제련행하였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발발후 그 수는 더욱 늘어났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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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평 : 비루한 청탁외교

주체107(2018)년 8월 15일 로동신문

 

일본반동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이미 다 해결된 랍치문제에 대해 떠들어대고있다.

바로 며칠전에도 수상 아베가 먼 라틴아메리카의 작은 섬나라인 쎈트빈쎈트 그레너딘즈 당국자까지 청해들여 랍치문제해결에 협력해줄것을 간청하였다.그런가 하면 외상 고노는 싱가포르에 날아가 미국무장관을 비롯하여 이 나라, 저 나라 외교당국자들을 만나 랍치문제해결이 중요하다느니, 그것을 인식하고 적극 협력해주기 바란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였다.

그야말로 가긍하고 구차스러운 청탁외교이다.

일본은 국제무대에 나서기만 하면 《정치대국》흉내를 곧잘 낸다.또 《자주외교》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도 입이 아프게 떠들어대는것이 현 정권이다.이런 일본의 당국자들이 다른 나라들의 힘을 빌어보겠다고 설레발을 놓으며 돌아치는것을 보면 확실히 그들에게는 정치난쟁이라는 말이 꼭 어울린다.사람들이 일본의 외교를 청탁외교, 구걸외교라고 야유조소하고있는것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일본이 국제사회의 비난과 조소를 받으면서도 랍치문제를 계속 들고다니며 비굴하게 놀아대고있는것이다.

일본당국자들은 랍치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고서는 살아갈수 없을 정도로 랍치문제에 중독되였다.

하기는 랍치내각에서 다른 소리가 나올리 만무하다.

하지만 일본당국자들이 무엇때문에 그렇게 수모를 받으면서까지 비굴한 청탁외교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있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다시한번 명백히 까밝히지 않을수 없다.

올해에 들어와 조선반도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정세흐름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계최대의 열점지역으로 되였던 조선반도에서는 대결과 불신이 아니라 긴장완화와 평화, 관계개선의 분위기가 흐르고있다.

많은 나라들이 우리 나라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활발히 움직이고있다.이것은 대세의 흐름으로 되였다.

그런데 일본만은 여기에서 배제되여 지역과 세계에서 외토리신세가 되였다.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주대없이 남의 지휘봉에 따라 《제재》와 《압력》을 선창하며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집요하게 추구하여온것이 일본을 오늘과 같은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일본의 정계와 언론계에서 일본이 모기장밖에 놓여있다는 말이 자주 울려나오고 외신들이 조선반도에서 일어나고있는 정세완화의 흐름에서 일본은 방관자의 역할만을 수행하고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소외감은 더욱 커질것으로 예견된다, 일본은 완전한 패자이다고 평하고있는것은 우연한것이 아니다.

일본당국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불리한 처지에서 벗어나보려 하고있다.한쪽으로는 우리에게 대화를 구걸하면서도 랍치문제를 여기저기에 들고다니며 분주탕을 피워대고있다.그 밑바탕에는 랍치문제를 국제적으로 여론화하여 조선의 대외적권위를 떨어뜨리는것과 동시에 조일관계문제의 본질을 외곡하여 두 나라사이의 관계에서 최대의 미해결문제인 과거청산을 회피하고 조선반도문제에 머리를 들이밀어보려는 어리석은 타산이 깔려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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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평 : 언제까지 《평화》간판으로 세계를 기만하려는가

주체107(2018)년 8월 14일 로동신문

 

해마다 패망일을 맞는 일본의 감정은 괴로울것이다.

1945년 8월의 패전이래 73년간 하루같이 파쑈전범국의 흉상을 털어버리고 이른바 《평화국가》, 《정상국가》의 새로운 신분을 얻어보려고 모지름을 써온 일본이다.

이로부터 전후 일본에 대외정치적으로 가장 많이 소요된것이 있다면 《평화》라는 용어일것이다.

《평화헌법》, 《평화의 시대》, 《평화적발전》, 《적극적평화주의》, 《평화성취》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무성하다.

정의와 도덕, 평화를 문명과 발전의 기준으로 삼는 현세기의 흐름까지 도용하여 더욱더 《평화주의》를 고창하며 《선량한 국가》의 행적을 광고하고있다.

희대의 정치만화로 력사에 기재된 《선한 일본인》상은 일본의 이러한 영상개변광증의 집중적산물이다.

198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한 신문사는 세계적인 정치만화가를 초청하여 일본인의 새로운 초상을 그리게 하고 착한 맏아들을 상징하는 《다로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지난날 게다짝에 버덩이가 드러난 우습고 못난 모습으로 국제사회의 경멸을 받던 일본인의 상을 세계적인 정치만화가의 손을 빌어 일약 아름답게 만들려 하였던것이다.

이후 일본정객들은 《다로상》을 바탕으로 자국에 《선량한 국가》, 《평화국가》의 면사포를 씌우며 세계를 기만하여왔다.

일본집권자는 패망 60년을 맞으며 발표한 담화에서 《평화》라는 말을 무려 12번이나 해가면서 일본의 전후력사는 전쟁에 대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준 《평화》의 60년이였다고 떠벌이였다.

정책자문기관이 명시한 《21세기 일본의 국가상》의 대외정치표어도 《아름다운 나라》건설과 《적극적평화주의》였다.

수상 아베는 《적극적평화주의는 새로운 일본의 자화상이며 앞으로 일본을 대표하고 이끌어나갈 하나의 기치》이라고 력설하였다.

일본이 패망후 《평화국가》로서 전쟁부정의 맹세를 견지해왔으며 앞으로도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적극 기여할것이라고 한 아베의 태평양전쟁패전 70년 담화는 더욱 요망스럽다.

집권자가 《전후 70여년 일본의 평화행보에 긍지를 느낀다.》고 공언할 정도로 일본은 미화분식에 여념이 없다.

과연 일본이 평화국가다운 성숙의 길을 걸어왔단 말인가.

아니다.패망과 함께 《천황》제를 보존한 일본은 평화의 막뒤에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군국주의부활의 일로를 걸어왔다.

그 량면성과 교묘성은 정치행보에서 뚜렷이 로출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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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평 : 재침야망이 비낀 엄중한 력사외곡행위

주체107(2018)년 8월 12일 로동신문

 

일본반동지배층의 력사외곡책동이 집요하고 악랄하게 감행되고있다.

일본당국이 다음해부터 고등학교들에서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교육하는것을 의무화한다는 학습지도요령리행조치를 고시한것은 그 단적인 실례이다.

초등, 중등학교에 이어 고등학교들에서도 강도적인 령토강탈교육을 공공연히 벌려놓는것은 일본반동들의 력사외곡책동이 극도에 달하였다는것을 실증해준다.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아무리 새 세대들에게 주입시킨다고 해도 제것으로 만들수 없다.

독도는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조선의 신성한 령토로 공인되여있다.

문학에서는 예술적허구가 있을수 있어도 력사에서는 날조가 허용되여서는 안된다.문학에서의 예술적허구도 진실한 자료에 바탕을 둘 때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줄수 있다.일본에서 당국의 강권과 우익세력의 협박에 의해 학생들에게 강제주입되고있는 외곡된 력사는 새 세대들뿐아니라 일본의 운명도 망치게 하는 근원으로 된다.

일본에 있어서 력사에 대한 태도문제는 단순한 학술상의 문제가 아니다.과거죄악을 인정하는가 안하는가, 과거죄악에 대해 반성하고 청산할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예민한 정치적문제이다.또 군국주의, 재침의 길로 가는가 안 가는가를 가르는 척도로 된다.

아베세력은 사실그대로의 력사를 가르쳐야 할 교육의 신성한 사명을 저버리고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군국주의력사관과 복수주의를 주입시키려고 발광적으로 책동하고있다.

오래전부터 일본은 적지 않은 교과서들에서 저들의 과거범죄와 관련한 내용들을 외곡하거나 완전히 지워버리는 망동을 의도적으로, 체계적으로 강행하여왔다.

일본문부과학성이 고등학교교과서들에서 일제의 성노예범죄와 관련한 내용을 삭제하도록 강권을 발동한 결과 현대사회학교과서와 정치경제학교과서들에서 일본군《위안부》와 《강제련행》이라는 문구가 전부 사라졌다.

이것은 일본이 과거사를 되풀이하려 한다는것을 보여준다.

일본은 저들의 과거범죄사실이 서술되여있는 다른 나라들의 교과서까지 시비질하고있다.

일본외무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안젤스시와 그 부근의 공립고등학교들에서 사용되고있는 세계사교과서들의 내용이 《력사적사실과 어긋난다.》고 하면서 그에 대한 수정을 미국에 공공연히 요구한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 력사외곡행위는 당국의 적극적인 지지비호밑에 은페, 축소의 범위를 벗어나 이제는 전면외곡, 전면부정으로 이어지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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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평 : 사무라이후예들의 변함없는 재침야망

주체107(2018)년 8월 11일 로동신문

 

남을 걸고 제 리속을 채우는데서는 일본을 따를 나라가 없다.아베패당이 8월중에 발간하려고 하는 2018년 방위백서만 놓고보아도 그것을 잘 알수 있다.백서에는 우리를 걸고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이 있다는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 신형요격미싸일체계 《이지스 어셔》의 도입을 비롯하여 미싸일방위능력을 강화해나간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2016년과 2017년에 발간한 방위백서에도 우리의 전쟁억제력에 대해 《일본의 안전에 대한 중대하고 긴박한 위협》, 《새로운 단계의 위협》 등으로 걸고드는 문구들을 박아넣고 반공화국대결소동에 광분하였다.

일본반동들이 우리의 《위협》을 걸고 군사력강화에 매달리는것은 그 무엇으로도 합리화될수 없는 침략적, 범죄적망동이다.

위협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철두철미 일본에서 오고있다.패망에 대한 앙갚음을 해보려고 재침의 독이발을 부득부득 갈고있는 일본반동지배층은 지난 세기 《대동아공영권》을 제창하면서 아시아를 메주밟듯 하던 그 시절을 재현해보려 하고있다.임의의 시각에 재침의 포성을 울릴수 있는 준비를 착실히 갖추고있다.

일본은 무제한한 군비확장으로 실지 전쟁을 치를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국민총생산액의 1%라는 군사예산의 명목상 한계도 안중에 두지 않고있다.군사비가 증대되는 속에 《자위대》는 준항공모함과 신형잠수함 및 전투기들을 비롯하여 공격용무기들로 장비되고있다.

중장거리순항미싸일의 개발 및 보유도 꾀하고있다.이러한것들은 《자위》와 《방위》의 개념을 벗어난것이며 선제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 필요한것이다.《자위대》의 무장장비는 세계군사렬강들과 어깨를 겨루고있다.

일본반동들의 재침열기는 달아오를대로 올랐다.그들은 전쟁에 뛰여들지 못해 몸부림치고있다.오래전부터 해외침략에 장애로 되는 거치장스러운 법적, 제도적장치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버렸다.

일본은 군국주의국가로서의 몰골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고있다.아베패당은 일본렬도와 그 주변에서 다른 나라들과 야합하여 우리 국가를 반대하는 합동군사연습을 계속 강행하며 정세완화의 흐름을 되돌려세우려 하고있다.얼마전에도 우리의 《위협》을 구실로 항공《자위대》의 《F-15》전투기들을 동원하여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와 공중합동군사연습을 벌렸다.

재침야망에 들떠있는 일본반동들의 군국주의광기는 위험계선을 넘어서고있다.

사실들은 조선반도에 조성된 평화기운에 찬물을 끼얹으며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실현에 미쳐날뛰는 일본반동들이야말로 세계평화와 인류의 안전을 파괴하는 가장 위험한 세력이라는것을 립증해주고있다.

국제사회가 날로 로골화되고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재침책동을 놓고 우려를 금치 못하고있는것은 당연하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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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마쯔시로에 서린 원한

주체107(2018)년 8월 9일 로동신문

 

도꾜로부터 160km 떨어진 나가노현소재지 나가노시의 남동부에 마쯔시로라는 곳이 있다.마쯔시로는 봄철의 꽃놀이와 온천으로 이름났으며 옛성을 비롯한 문화유적들도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아드는 관광지이다.

사람들이 꽃향기에 취하고 온탕목욕으로 시름을 푸는 바로 그곳의 땅속에는 지난날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해 끌려와 비인간적인 노예로동을 강요당하다가 무참히 학살된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백골이 원한품고 묻혀있다.일본반동들이 그곳에서의 살인만행을 오늘까지 극력 숨겨왔기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못하다.

1944년말 일제는 《최후결전》을 하려는 망상밑에 마쯔시로에 일본왕과 전시최고통수부가 거처할 총연장길이 13km의 지하대본영을 건설하기로 하였다.저들의 패전의 징조가 시시각각 짙어가던 때인것만큼 일제는 이 공사에 막대한 자금과 로력을 들이밀었으며 패망할 때까지의 9개월동안에 전체 공사량의 75%를 해치웠다.어려운 지하구조물건설공사를 그처럼 강압추진하자니 그에 동원된 인부들이 얼마나 혹사당하였겠는가 하는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들의 대부분은 강제로 끌려온 조선사람들이였다.그들은 조선주둔 일본군과 헌병, 경찰들이 《징용》의 명목밑에 자동차를 몰고 도시와 농촌들을 돌아치면서 대낮에 길가는 사람이건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건 깊은 밤에 잠자는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마구 잡아서 일본으로 보낸 장정들과 늙은이, 어린 소년들이였다.

당시 공사설계가 완성되자 파쑈전쟁광인 수상 도죠 히데끼는 곧 조선총독부에 조선인로동자들을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그리하여 먼저 《징용》으로 징집된 2 000명의 조선사람들이 현해탄을 건너 마쯔시로의 비밀공사장으로 끌려갔으며 뒤이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다.그것으로도 모자라 일제는 이미 일본 각지에서 《징용》으로 끌려와 일하고있던 조선사람들을 골라내여 이 공사판으로 끌어갔다.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마쯔시로의 지하대본영공사장에 끌려가 노예로동을 강요당한 조선사람들의 수가 하루평균 7천명이상이였으며 때로는 1만명을 넘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일제가 전쟁의 운명, 《제국》의 운명과 관련된 그런 중요한 비밀공사에 자기 나라 로동자들도 아닌 식민지조선의 인력을 동원하기로 하였겠는가.단순히 임금같은 잡다한것들을 보장해주지 않고도 실컷 부려먹을수 있다는 타산에서만이 아니였다.여기에는 보다 흉악한 목적이 깔려있었다.

그것은 공사가 끝난 다음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일제는 지하대본영공사가 다 끝난 다음에는 공사에 동원시켰던 전체 조선인로동자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함으로써 그 비밀을 덮어버릴것을 노렸던것이다.그야말로 조선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극악한 악귀, 살인마들만이 할수 있는 타산이였다.

당초에 이런 끔찍한 흉계를 세우고 조선사람들을 끌어간것만큼 일제는 그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으며 짐승보다 더 혹사시켰다.마쯔시로의 고역장에 끌려간 조선사람들에 대한 일제의 학대는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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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평 : 긴장완화의 분위기를 해치는 위험한 망동

주체107(2018)년 8월 8일 로동신문

 

얼마전 일본항공《자위대》가 조선반도주변상공에서 미공군과 야합하여 폭탄투하훈련을 감행하였다.핵무기탑재가 가능한 괌도주둔 미전략핵폭격기 《B-52》 2대와 일본《자위대》의 《F-15》전투기 6대가 훈련에 참가하였다고 한다.전쟁연습조직자들은 이번 합동군사연습의 도발적성격을 가리워보려고 전략폭격기에 핵폭탄을 탑재하지 않았다는 구차스러운 변명을 늘어놓고있다.일미공동훈련이 조선반도에 조성된 완화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도발행위라는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엄중시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일본반동들이 조선반도정세를 악화시켜 어부지리를 얻어보려고 발광하고있는것이다.

싱가포르조미수뇌회담을 앞두고 일본은 《자위대》를 동원하여 영국해군과 우리 공화국을 해상봉쇄하기 위한 공동훈련을 간또앞바다에서 처음으로 강행하였다.미국이 남조선과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한다고 발표하자 덴겁하여 그것이 일미합동군사연습과 무관계하다고 나발을 불어대며 전쟁연습소동에 광분해왔다.얼마전에는 일본의 보소반도앞바다에서 미국, 남조선과 함께 《대량살상무기전파방지》구상에 기초한 선박검사를 위한 공동훈련을 벌리며 소동을 피웠다.

일본의 《아사히신붕》은 미일남조선이 공동훈련을 벌리면서 《특정한 사태, 대상국을 가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연습은 조선을 념두에 둔것이라고 까밝혔다.

일본은 대조선군사적압박에 다른 나라들도 끌어들이려 하고있다.앞으로 오스트랄리아와 카나다의 초계기들이 일본에 있는 가데나미공군기지를 거점으로 삼고 경계감시임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외신들이 조선반도에 평화의 봄이 찾아왔지만 현재의 상황과 별도로 조선에 대한 다국적군의 군사활동은 중단없이 진행되고있다고 전한것은 우연하지 않다.이것은 서방나라들을 등에 업고 기어이 조선재침야망을 실현해보려는 군국주의광신자들의 도발적망동이 극도에 달하고있음을 시사해준다.어떻게 하나 긴장완화에로 향한 지역정세흐름을 되돌려세우고 그속에서 리익을 챙기자는것이 일본반동들의 타산이다.

일본반동들은 우선 정세를 긴장시켜 그것을 턱대고 군사대국화야망을 실현해보려 하고있다.일본을 전쟁국가로 만드는것은 아베패당의 최종목표이다.그들은 조선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수립되면 군사대국화실현의 명분을 잃을것 같아 몹시 불안해하고있다.일본반동들은 우리의 《위협》을 구실로 총소리를 울리고 화약내를 피우며 정세를 격화시켜야 저들의 목적을 달성할수 있다고 보고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최근 일본방위상이 조선의 《미싸일위협》에 대처하여 미국의 지상배비형요격미싸일체계 《이지스 어셔》 2기를 배비할 계획을 발표하였다고 하면서 이것은 조선반도정세가 완화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무력증강을 위한 계획을 계속 추진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전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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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평 : 비렬한 차별행위를 정당화하지 말라

주체107(2018)년 8월 6일 로동신문

 

일본자민당소속 참의원의원 가따야마 사쯔끼라는자가 얼마전 《산께이신붕》계렬의 한 석간전문지를 통해 총련의 민족교육에 대한 아베정권의 악랄한 차별조치를 정당화하는 망언을 늘어놓아 온 겨레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내고있다.

이자는 조선학교들을 고등학교지원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조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재일조선인학생들의 기념품을 빼앗은 일본당국의 부당한 조치가 유엔인종차별철페위원회에 제기된것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시비질하면서 조선학교들이 지원을 받으려면 《북조선과의 부당한 관계를 종식시킨 증거가 필요》하다느니, 기념품몰수는 《엄숙한 법집행일뿐 차별이 아니》라느니 하고 떠벌였다.

그러면서 저들의 비렬한 차별조치와 인권침해행위가 유엔인종차별철페위원회에서 심의되는것과 관련한 대응책으로서 《유엔분담금의 재검토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고아댐으로써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수 있다는 식의 경제동물다운 속구구도 드러냈다.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 정무조사회장대리직을 겸하고있다는 가따야마의 이번 망언은 결코 일개인의 견해를 반영한것이 아니다.그것은 총련의 민족교육을 기어이 말살하려는 일본반동들의 뿌리깊은 흉심을 그대로 드러내보여주고있다.

아베패당이 일본에 있는 외국인학교들중 유독 조선학교만을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키고있는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다.그것은 명백히 일본특유의 민족배타주의와 끈질긴 반공화국, 반총련적대시정책의 집중적발로로서 우리 동포들의 민족교육권리를 빼앗고 재일동포사회의 미래를 짓밟아버리려는 불법무법의 파쑈적폭거이다.

재일조선인자녀들은 일제식민지통치시기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의 후손으로서 그들이 자기 나라 력사와 문화에 대한 교육을 받는것은 응당한것이다.또 그들이 공부하는 학교들이 일본학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것은 론할 여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조선학교들이 사상이나 운영면에서 공화국의 영향을 받고있기때문에 지원대상으로 될수 없다는 터무니없는 궤변을 늘어놓고있다.지어 조선학교를 통해 공화국에 송금된 사실도 있다는 날조설까지 내돌리고있다.조선학교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론거에 따라 고등학교지원제도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것은 일본반동들의 반공화국, 반총련광증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하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가따야마가 지난 6월 총련 고베조선고급학교 학생들의 짐을 마구 뒤지면서 기념품까지 압수한 저들의 비인도적인 만행을 《차별이 아니》라고 두둔해나선것도 용납할수 없다.

일본반동들이 조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나어린 학생들의 기념품마저 강탈한것은 지금도 국제사회의 경악을 자아내고있다.이런 천하의 망나니짓을 그 누구의 《핵과 미싸일시험에 따른 대응조치》로 둔갑시키는 꼴을 보면 분칠이 일곱가지 흠을 가리운다는 저들의 속담을 정치에 그대로 써먹는 본새이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조선반도의 정세흐름을 막아보려고 앙앙불락하며 별의별짓을 다하였지만 동분서주에 신발만 꿰뜨리는 격이 된 일본반동들은 그야말로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상대로 치사한 밸풀이를 하고있다.섬나라쪽발이들의 더럽고 체질화된 악습이야 어디 갈데 있겠는가.(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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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강권을 발동하여 감행한 반인륜적죄악

주체107(2018)년 8월 5일 로동신문

 

조선녀성들을 직업알선 등의 각종 명목으로 꾀여내여 일본군성노예로 충당하던 일제는 수요가 급증하게 되자 가장 파렴치한 랍치범죄를 공공연히 감행하였다.애기어머니들은 물론 12~13살 되는 미성년들도 일제의 횡포한 마수에 걸려 성노예살이를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본군성노예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생존자들은 일제가 자기들을 어떻게 날강도적으로 끌어갔는가를 낱낱이 고발하였다.

한 녀성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두번째 아이가 배속에 있을 때였다.남편은 징병에 끌려간 직후여서 집에 없었다.그날 나와 시어머니는 강냉이밭에 있었다.한낮이 지났을 때 여러명의 일본인이 밭으로 왔다.…

시어머니가 놋그릇을 다 바칠테니 하다못해 애기가 태여날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달라고 일본인들에게 빌었다.일본순사는 그런 거짓말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면서 임신했다는 소리는 거짓말이라고 코웃음을 쳤다.

밭에 있던 할머니와 시어머니가 몇차례 나를 앗아냈다.그러자 놈들은 내 머리칼을 마구 쥐고 강냉이밭으로 질질 끌고갔다.두살짜리 딸애가 울면서 내뒤를 쫓아오다가 넘어졌다.…》

량청자라는 가명으로 증언석에 나섰던 한 일본군성노예생존자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16살 나던 해에 어머니가 마을처녀들을 사냥하러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와서 너도 위험하니 산골에 있는 삼촌어머니집에 가서 숨어있으라고 했다.그때 관헌이 달려들어 딸을 내놓으라고 어머니를 구두발로 차고 위협했지만 어머니는 완강히 뻗쳤다.

닷새후 나는 삼촌어머니집에 가 숨으려고 점심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얼굴을 가리우고 산길을 혼자서 걸어갔다.1시간쯤 걸었을 때 갑자기 일본군이 나타났다.주먹에 얼굴을 얻어맞아 코피가 터져 얼떨떨해진 나를 자동차에 올려실었다.자동차에는 나처럼 붙잡혀온 처녀가 40명가량 있었다.

모두 18살도 안되는 나이여서 서로 손을 부여잡고 〈우린 이젠 죽었구나.〉 하면서 울어댔다.다른 자동차에도 20명가량의 처녀들이 실려있었다.…》

수난을 당한 녀성들이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한 녀성은 아버지의 병구완을 하던중 갑자기 달려든 일본순사들에 의해 끌려갔고 다른 한 녀성은 밥을 먹다가 일본헌병과 순사에게 잡혀갔다.

심미자라는 녀성은 일본지도에 벗꽃을 수놓으라는 일본교원의 말을 듣지 않고 나팔꽃을 수놓았다는 리유로 경찰서에 끌려가 일본순사에게 몸을 더럽히고 전기고문 등 모진 고문을 당한 다음 성노예로 끌려갔다.

세계는 일제가 감행한것과 같은 야만적인 랍치행위를 그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다.조선녀성들에 대한 일제의 강제련행, 랍치만행은 중세암흑기의 노예사냥보다 더한것이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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