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노예로동을 강요하기 위해 감행한 죄악

주체107(2018)년 10월 27일 로동신문

 

2003년말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는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의 일부에 해당되는 42만여명의 명단을 입수하여 공개한바 있다.

위원회가 이 명단을 분석조사하는 과정에 일제의 《농경근무대》에 끌려가 노예로동을 강요당하였던 피해생존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찾을수 있었다.그들의 증언을 통하여 《농경근무대》가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하는 방법으로 조직운영된 범죄적인 실체였다는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였다.

《농경근무대》는 일본국내의 부족되는 식량을 생산할 목적밑에 구일본륙군이 조직한 생산부대였다.일제의 침략전쟁과 그의 계단식확대는 막대한 인적 및 물적자원의 소모를 초래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일본국내의 병력과 로동력은 고갈상태에 빠지게 되였다.하여 일제는 《징병》의 명목으로 수많은 조선청년들을 일본에 끌어다가 《농경근무대》에 배속시키고 부침땅개간을 비롯한 고된 로동에 마소처럼 내몰았다.

일본의 《아사히신붕》 2003년 3월 15일부에는 《조선인 징병하여 식량증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였다.기사는 태평양전쟁말기인 1945년 4월 조선에서 《징병》된 병사들을 식량증산 등에 동원시켰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구일본군의 전보문을 오사까부의 고등학교 교원이 발견하였다는데 대해 전하였다.전보문에 의하면 당시 일제는 서부(규슈지방)군인원 1만 5 700명, 각 군관구 《자활대》인원 1만 7 000명, 《농경근무대》인원 1만 3 000명 등으로 일본에 끌어간 4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청장년들에게 무기대신 삽, 괭이 등을 주었다고 한다.

《농경근무대》에 끌려갔던 수천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의 명단을 통해서도 그들이 1945년 봄경에 평안남북도와 황해도, 함경남도, 충청남북도, 강원도 등 조선의 거의 모든 지역들에서 끌려간 청년들이라는것이 확인되였다.

《농경근무대》 성원들의 모집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는 강제성을 띠고있었다.그것은 일제가 《농경근무대》를 조직함에 있어서 완전히 의무화된 《징병》제도에 의거하였기때문이다.

피해자 김치린과 진태범은 다같이 《징병》으로 《농경근무대》에 끌려가게 되였는데 그들에게는 《국가총동원법》이라는 악법이 적용되였다.

이에 대하여 김치린은 《1945년 1월초에 경찰관주재소의 왜놈순사와 구장이 〈징병〉령장을 가지고와서 나를 면사무소로 끌어갔다.오후에 나를 포함한 12명이 순천역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이미 300여명의 청장년들이 끌려와있었고 일본경찰들이 그들을 삼엄하게 감시하고있었다.일제는 양덕방향에서 도착한 화차에 우리들을 태워 떠나보냈는데 헌병들이 화차입구에 서서 우리들을 감시하였다.우리는 그날 저녁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사동에 주둔하고있던 제44부대로 끌려갔다.》고 증언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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