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7月 12th, 2008

남조선관광객 사망에 유감 표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담화

2008년 7월 12일 《조선신보》에 실린 글

                                       남측의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

   남조선관광객이 금강산에 왔다가 7월 11일 새벽 4시 50분경 우리 군인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사고경위에 대해 말한다면 남조선관광객이 관광구역을 벗어나 비법적으로 울타리밖 우리측 군사통제구역안에까지 들어온데 그 원인이 있다.

  특히 남조선관광객은 신새벽에 명백히 표시된 경계울타리를 벗어나 신발을 적시면서 혼자 우리 군사통제구역 깊이까지 침범하였다.

  우리 군인이 군사통제구역을 침범한 그를 발견하고 서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응하지 않고 달아났으며 공탄까지 쏘면서 거듭 서라고 하였으나 계속 도망쳤기때문에 사격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번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

  남측은 이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하며 우리측에 명백히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측 당국이 일방적으로 금강산관광을 잠정중단하도록 한것은 우리에 대한 도전이다.

  이것은 우리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으로서 우리는 남측이 이번 사건에 대해 옳바로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울때까지 남측 관광객을 받지 않는 조치를 취할것이다.

  사고경위가 명백할뿐아니라 이미 사고발생시 현대측인원들과 함께 현장확인을 한 조건에서 남측이 조사를 위해 우리측 지역에 들어오겠다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허용할수 없다.   

주체97(2008)년 7월 12일

평    양

(전문 보기)

[Korea Info]

보 도 ▒ 판문점회의장구역에서 감행된 미군측의 도발행위를 강력히 항의규탄

2008년 7월 10일 《조선중앙통신》중에서

(판문점 7월 10일발 조선중앙통신)   

우리측의 주동적인 제의에 의하여 10일 조미군부 대좌급회담이 판문점에서 진행되였다.   

회담에서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곽영훈대좌는 최근 미군측이 판문점회의장구역에서 우리측 근무성원들의 임무수행을 방해하고 이 지역의 정세를 격화시키는 도발행위들을 매일과 같이 감행하고있는데 대하여 강력히 항의하고 책임을 추궁하였다.   

그는 우리측이 지난 6월 11일 전화통지문을 통하여 미군측 경비병들속에서 감행된 수십차례의 도발행위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비렬하고 저속한 행위들을 련일 감행하고있는것은 회의장구역안의 안전과 질서에 관한 정전협정과 쌍방사이의 합의를 무시하는 란폭한 위반행위라고 엄중히 항의하였다.   

회담에서 우리측은 교전관계에 있는 적대쌍방군인들이 총부리를 마주하고있는 첨예한 군사적대결장소인 판문점회의장구역에서는 상대방을 자극하는 사소한 도발행위도 순간에 무장충돌로 번져질수 있다고 하면서 미군측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도발행위들을 계속 조장묵인하고있는것은 1970년대의 《판문점사건》과 1980년대의《총격사건》과 같이 이 구역에서 또다시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켜 조선반도의 정세를 극단에로 몰아가려는데 그 음흉한 목적이 있다고 까밝혀 폭로하였다.   

그는 최근 미군측이 앞에서는 조미관계개선에 대하여 떠들면서도 뒤에 돌아앉아서는 지상과 해상,공중에서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전쟁연습을 매일과 같이 벌리는것과 함께 남조선괴뢰군을 최첨단전쟁장비로 무장시켜 북남대결에로 부추기고있는것과 때를 같이하여 도발행위들을 련이어 감행하고있는데 대하여 우리 군대는 높은 경각성을 가지고 미군측의 군사적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하고있다고 말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위대한 선군정치와 더불어 빛나는 《지원》의 사상 –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탄생일에 즈음하여 –

주체97(2008)년 7월 10일 《로동신문》에 실린 글

성스러운 우리 혁명이 선군의 기치밑에 승승장구하고 내 나라, 내 조국의 앞길에 빛나는 번영의 새시대가 펼쳐지는 격동적인 시기에 우리는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탄생 114돐을 뜻깊게 맞이하고있다.

이날을 맞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선군시대와 더불어 빛나는 김형직선생님의 고귀한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면서 그이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과 경모의 정으로 가슴 불태우고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1894년 7월 10일 가난하면서도 성실하고 근면한 애국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지원》의 사상으로 력사의 새벽길을 굴함없이 헤쳐오시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위대한 심장을 불태우신 견결한 혁명투사이시였다.

32살이라는 너무도 짧은 한생을 불같이 사시며 조국과 민족앞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신 김형직선생님의 고귀한 혁명생애는 오늘도 열렬한 애국자, 견결한 혁명가의 불멸의 영웅서사시로 더욱 높이 칭송되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나의 아버지는 <지원>의 뜻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지원》!

바로 이 두 글자속에 필승의 혁명적신념과 불굴의 의지로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가시던 김형직선생님의 한생이 어려있고 그이의 고결한 위인상과 업적이 그대로 빛발치고있다.(전문 보기)

[Korea Info]

론 설 ▒ 조국통일3대원칙은 불멸의 자주통일대강

주체97(2008)년 7월 10일 《로동신문》에 실린 글

우리 민족은 력사적인 7. 4공동성명발표 36돐을 뜻깊게 맞이하였다. 7. 4공동성명의 발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으로 내외에 엄숙히 선포한 력사적사변이였다.

오늘 조국통일운동앞에는 난관이 가로놓여있다. 남조선에서 권력의 자리를 가로챈 보수집권세력은 민족자주, 민족공조를 반대하면서 외세와 야합하여 6. 15통일시대의 전진에 악랄하게 도전해나서고있다. 6. 15이후 조국통일운동이 오늘처럼 엄중한 난관에 처한적은 없었다.

반통일세력의 발악적책동을 물리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조국통일3대원칙을 확고히 견지해야 한다. 조국통일3대원칙은 우리 민족이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언제나 튼튼히 의거해야 할 근본초석이며 불멸의 자주통일대강이다. 우리 겨레는 현실을 통해 그 정당성과 생활력이 뚜렷이 확증된 조국통일3대원칙을 높이 추켜들고 자주통일대행진을 더욱 힘차게 다그쳐나가야 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국통일3대원칙은 북과 남이 7. 4공동성명을 통하여 확인하고 내외에 엄숙히 선포한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다.》

조국통일3대원칙은 절세의 위인이신 어버이수령님의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와 숭고한 애국의지가 구현된 위대한 자주통일헌장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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