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축산업발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해가는 실력가, 실천가 -농업성 중앙수의방역소 검사실장 권정혁동무에 대한 이야기-
우리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먹이시려 그토록 마음쓰신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현대적인 축산기지들을 일떠세워주시였으며 축산의 생명인 수의방역사업에도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절세위인들의 인민사랑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나라의 수의방역초소를 믿음직하게 지켜가는 농업성 중앙수의방역소 검사실장 권정혁동무,
그는 지난 20여년간 수많은 집짐승사육단위들과 축산물수입단위들에서 제기되는 수만건의 검사대상물진단을 신속정확히 진행하여 과학적인 수의방역대책을 제때에 세우도록 함으로써 당의 령도업적을 옹호고수하고 인민들의 건강과 축산물생산의 안전성을 담보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권정혁동무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기의 일터를 사회주의수호전의 전초선으로 여기고 당에서 준 과업을 기어이 관철하는 실천가, 그 어떤 명예나 보수도 바람이 없이 힘과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 나라의 재부를 늘여가는 사람이 참된 애국자로 시대의 존경을 받을수 있다는것을 다시금 깊이 절감하게 된다.
이 한몸 성벽이 되여
권정혁동무는 지금도 22년전 중앙수의방역소에 배치되던 날을 잊지 않고있다.
그때 평양농업대학(당시) 박사원을 졸업하고 방역소에 배치된 그에게 소장은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었다.
《자원하여 우리 방역소로 왔다던데 어떻게 되여 그런 결심을 하게 되였소?》
호기심이 가득 어린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소장에게 권정혁동무는 어린 시절에 체험했던 한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농업위원회(당시)의 축산부문을 담당한 부서에서 사업하던 그의 아버지는 자주 출장을 다니군 하였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하던 정혁은 오래간만에 출장길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목에 매달렸다. 아들을 얼싸안고 방안이 좁다하게 돌아가던 아버지는 정혁의 손에 쥐여져있는 연필을 보더니 자리에 멈춰섰다. 연필대에 씌여있는 《첫 의정》이란 글을 유심히 살펴보던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도 학교에서 배워서 잘 알게다. 해방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첫 의정으로 학생들의 연필문제를 상정하도록 하시였지. 그때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첫 결정으로 무엇이 채택되였는가에 대하여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게다. …》
해방후 갓 조직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나라의 복구발전과 인민생활의 안정, 복리증진을 위한 활동을 시작한 때로부터 19일이 지나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결정 제1-(1)호가 채택되였다.
그것은 《평안북도내에서의 가축우역전염병과 투쟁할 대책에 대한 건》이였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에서 수의방역사업에 대한 문제가 첫 결정으로 채택된것은 우리 인민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마음껏 누리도록 해주시려 어버이수령님께서 건국의 첫 기슭에서부터 얼마나 마음쓰시였는가를 력력히 보여주고있었다.
《그런데 우린 아직 어버이수령님의 뜻대로 수의방역사업을 잘하지 못하고있다. 전염병때문에 많은 집짐승들을 페사시키는것을 볼 때마다 당앞에 머리를 들수 없구나.》(전문 보기)
권정혁동무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