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10月 14th, 2018

조선로동당 위원장이시며 재중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립니다

주체107(2018)년 10월 14일 로동신문

 

재중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오늘 우리들은 공화국창건 70돐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성대히 기념한데 이어 북남수뇌분들께서 합의하신 《9월평양공동선언》의 발표로 온 세계가 들끓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조국인민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73돐을 뜻깊게 경축하고있습니다.

력사의 이날을 맞으며 재중조선인총련합회와 전체 재중동포들은 다함없는 경모와 열화와 같은 충정의 마음을 담아 조선로동당의 창건자이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와 조선로동당의 영원한 총비서이신 위대한 김정일대원수님께 가장 숭고한 경의를 드립니다.

아울러 비범한 예지와 특출한 정치실력, 숭고한 덕망으로 조선로동당의 백전백승의 력사를 굳건히 이어가시는 조선로동당 위원장이시며 재중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최대의 영광과 가장 열렬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시기부터 당건설을 첫째가는 근본문제로 보시고 참다운 정치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여 주체형의 혁명적당건설의 시원을 열어놓으시였으며 20성상에 걸치는 항일혁명투쟁의 전기간 당창건의 조직사상적기초를 튼튼히 다지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건하시고 빛내여오신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대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그 위용을 만방에 떨치며 불패의 당으로 더욱 강화발전되여올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비범한 예지와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으로 전당 김일성주의화로선을 제시하시여 조선로동당이 영광스러운 《ㅌ.ㄷ》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의 혁명적당, 수령님의 혁명사상밖에 그 어떤 다른 사상도 모르는 명실공히 김일성주의당으로서의 성격을 변함없이 고수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뜻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받들어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조선로동당을 백두의 혈통을 변함없이 이어나가는 주체의 혁명적당으로 더욱 강화발전시키시고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당의 최고강령으로 제시하여주시였습니다.

오늘 조선로동당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세계정치를 주도하는 위대하고 존엄높은 불패의 당으로 강화발전되였으며 원수님의 애국애족의 높으신 뜻과 통 큰 결단에 의하여 북남관계에서는 련일 사변적성과들이 이룩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있습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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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38) : 불멸의 그 업적 우리는 잊지 않으리

주체107(2018)년 10월 14일 로동신문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관에 대한 참관을 이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4호실로 향하였다.호실에 들어서니 벽면들의 웃쪽에 부각되여있는 글발들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우리 식 사회주의의 정치사상진지 강화》, 《강계정신 창조》, 《성강의 봉화》, 《감자농사에서 혁명을 일으켜》, 《토지정리의 새 력사》, 《전력문제해결을 위하여》.

이 글발들은 4호실의 사상주제적내용이 무엇인가를 전하여주고있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생애는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강철의 의지와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전인미답의 험난한 초행길을 헤쳐오신 위대한 혁명가의 가장 빛나는 한생이였으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의 가장 고결한 한생이였습니다.》

우리의 참관은 1990년대에 준엄한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게 된 사실을 보여주는 벽면에서부터 시작되였다.

당시 적대세력들의 악랄한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과 련이은 자연재해로 하여 우리 조국은 경제적난관에 식량난까지 겹쳐 준엄한 시련을 겪게 되였다.강사는 이러한 력사적사실들을 구체적으로 들려주면서 참관자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 전대미문의 험난한 역경을 과감히 헤쳐나가시며 우리 식 사회주의의 정치사상진지를 강화하신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감명깊이 해설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대중을 사회주의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사회주의사상진지를 굳건히 다져야 사회주의를 공고발전시킬수 있으며 그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 사회주의를 꿋꿋이 지켜나갈수 있다고 하시며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교양, 반제계급교양사업에 큰 힘을 넣도록 하시였다.

벽면에서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일군들은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살며 일해야 한다》,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 등 위대한 장군님께서 발표하신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보며 참관자들은 그처럼 어려운 때 우리 인민이 어떻게 되여 혁명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올수 있었는가를 가슴깊이 느끼였다.

참관자들에게 강사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여 우리 당을 영원한 수령님의 당으로 빛을 뿌리도록 하시였으며 끝없는 인민사랑과 청년중시정치로 전체 인민을 사회주의위업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끝까지 완성하기 위한 투쟁에로 이끄신데 대하여 실감있게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사회주의정치사상진지를 반석같이 다져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돌이켜보며 참관자들은 다음벽면을 마주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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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지휘관은 대원들의 생활을 책임질줄 알아야 한다시며

주체107(2018)년 10월 14일 로동신문

강 위 룡

 

1938년 여름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여러 련대들이 독립임무를 수행하도록 파견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경위중대의 일부 성원들만 데리시고 림강현 신태자일대에서 활동하고계시였다.

그때 사령부호위에 필요한 인원들이 부족하여 소대장인 나도 기관총을 메고 보초근무를 서지 않으면 안되였다.그러다나니 나는 대원들의 식생활에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이 생활하고있는 천막으로 나오시였다.

마침 식사시간이였다.방금 근무교대를 하고와서 식사를 하던 대원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이께 인사를 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인사를 받으시고 어서 앉아 식사를 하라고 이르시였다.

대원들은 식찬이 없어 맨 소금에 밥을 먹고있었다.

그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거운 걸음으로 천막을 나서시자 즉시 나를 부르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로 달려가 보고를 드리였다.

《왜 대원들에게 산나물국이라도 끓여먹이지 못하고 맨 소금에 밥을 먹게 하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이의 음성은 여느때없이 엄하였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머뭇거리다가 근무가 긴장하여 산나물을 뜯지 못하였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동무는 소대장이 아닌가, 아무리 조건이 그렇다고 해도 소대장이 그런것도 해결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좋은 수림속에서 대원들이 소금에다 밥을 먹게 해서야 지휘관으로서 면목이 서는가 말이요!

사람이 모자라면 전령병도 한사람만 남기고는 모두 나물을 뜯게 할수 있지 않소.

조직사업을 잘해서 보초를 섰던 동무들이 돌아올 때만 나물을 뜯게 해도 국거리는 될것이 아니요?

그제서야 나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깨닫게 되였다.

사실 나는 방금전만 해도 대원들에게 소금이나마 떨구지 않고 먹이는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그때로 말하면 부대가 적의 포위속에서 활동하던 때였으므로 부식물을 구하러 떠날 형편이 못되였고 산나물은 모두 쇠여서 무수해싹밖에 먹을만 한것이 없었다.그래서 근무인원도 모자라는데 언제 얼마 없는 산나물까지 뜯겠는가 생각하면서 맨 소금에 밥을 먹어도 할수 없다고 생각하였던것인데 그이께 심려를 끼치고보니 크나큰 죄책감으로 가슴이 조여드는것만 같았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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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당의 보건정책을 충직하게 받들어가는 참된 당원 -황해북도인민병원 안과 책임의사 김명월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07(2018)년 10월 14일 로동신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보건일군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돌보는것만큼 누구보다도 당에 충실하고 인민을 사랑하며 책임성과 기술실무적자질이 높아야 합니다.》

황해북도인민병원 안과 책임의사 김명월동무는 단발머리처녀시절부터 수십년세월 안과의사로 일해오면서 수많은 환자들에게 광명을 안겨준 오랜 의료일군이다.

인간에 대한 지극한 정성을 지니고 인민들에게 우리 나라 사회주의보건제도의 혜택이 더 잘 미치도록 하기 위하여 한생을 깡그리 바쳐가고있는 그의 헌신적인 삶은 당의 보건정책을 받들어가는 의료일군이라면,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의 당원이라면 어떤 책임감과 열정을 지녀야 하는가를 깊이 새겨주고있다.

 

의료일군, 그 부름속에

 

우리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황해북도인민병원 안과의 어느 한 치료실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녀성의 눈을 검진하고난 김명월동무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한숨이 새여나왔다. 한창나이의 젊은 녀성이 백내장으로 앞을 전혀 보지 못하였던것이다.

《선생님, 고칠수 있겠지요?!》

애절한 기대를 안고 자기의 손을 더듬어잡는 그에게 어찌 다른 말을 할수 있으랴.

김명월동무는 애써 웃으며 그의 두손을 꼭 잡아주었다.

《일없어요. 인차 아들의 얼굴을 볼수 있을거예요.》

첫 수술이 진행된 후 다시는 앞을 보지 못할것 같았던 환자의 눈에 광명이 흘러들었다. 비록 시력이 정상수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자식의 얼굴을 어렴풋이나마 알아보고 기쁨에 눈물짓는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김명월동무의 마음도 어느 정도 개운하였다.

그날 같은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있는 남편인 현성린동무와 함께 나란히 퇴근길에 올랐던 김명월동무는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의 말속에는 앞 못 보던 환자의 눈을 띄워준데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 깔려있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는 현성린동무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것이 아닌가.

이윽고 남편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난 당신이 완치시키지 못한 환자를 두고 기뻐할줄은 몰랐소.》

《…》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으나 김명월동무는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남편의 말대로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것 같은 자책감이 자꾸만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김명월동무는 보건일군가정에서 나서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자주 김명월동무에게 우리 나라 사회주의보건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군 하였다. 그때 들은 이야기중에는 지금도 김명월동무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것이 있다.(전문 보기)

 

김명월동무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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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어머니조국을 떠받들며 -총련 효고현본부 고문 리대희동포에 대한 이야기-

주체107(2018)년 10월 14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국땅에 있어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아야 하며 위대한 김정일애국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어머니조국의 대지우에 애국충정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나가야 합니다.》

우리 공화국의 건국과 수호, 기적과 번영의 성스러운 발전행로속에는 머나먼 이역땅에서 람홍색공화국기를 창공높이 휘날리며 애국애족의 선각자, 애국충정의 모범, 세계해외교포조직의 본보기의 영예를 떨쳐온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고귀한 피와 땀이 뜨겁게 스며있다.총련 효고현본부 고문이며 재일본조선사회과학자협회, 재일조선인평화통일협회 고문인 리대희동포도 그들중의 한사람이다.올해 96살로서 총련의 1세인 그는 공화국창건 70돐에 즈음하여 평양을 방문한 해외의 수많은 손님들가운데서 제일 나이많은 사람이다.주체100년대의 력사를 거의다 체험하였고 우리 공화국과 운명을 같이해온 그의 남다른 인생담은 조국과 민족, 애국과 통일에 대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깨우쳐주고있다.

 

조국이 없어보라

 

나라없던 그 세월 리대희동포의 처지는 그야말로 얼음판에 떨어진 씨앗신세였다.전라남도 구례군에 있는 그의 고향마을은 비옥한 고장이였다.하지만 일제에게 짓밟힌 그 땅은 오히려 피눈물과 한숨, 기아와 빈궁만을 가져다주는 절망의 땅이였다.총칼을 앞세운 날강도들에게 조상전래의 기름진 땅을 빼앗기고 정처없이 류랑의 길을 떠나던 고향사람들의 그 처절한 모습은 어린 리대희동포의 망막에 비낀 조국의 모습이였다.10대의 어린 나이에 《기술전습》이라는 꾀임수에 속히워 일본땅에 끌려간 그는 가혹한 소년로동에 시달리며 매일, 매 시각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였지만 살벌한 일본땅 어디에도 그를 품어안아줄 곳은 없었다.형사들의 추적을 피해 거치른 이역의 거리를 정처없이 헤매던 불쌍한 식민지청년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을 해방하시고 진정한 인민의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신 그때로부터 태양의 눈부신 빛과 열이 흘러드는 애국의 화원에 인생의 씨앗을 묻게 되였다.이역의 찬바람, 궂은 눈비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공화국과 운명을 같이하였다.특히 4.24교육투쟁과 공화국기게양투쟁,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투쟁의 앞장에서 용감히 싸웠다.공화국창건직후 일본반동들이 일본땅에서 공화국기를 게양하는 재일조선인들을 가차없이 체포처형하겠다고 위협공갈하였지만 리대희동포는 보란듯이 자기 집 창문가에 공화국기를 꽂았다.악에 받친 일본경찰이 문짝을 부시며 달려들어 온 집안을 란장판으로 만들고 가혹한 폭행을 가하였지만 그의 애국의 신념을 꺾을수 없었다.

총련이 결성된 후 그는 오랜 기간 총련 효고현본부 위원장, 재일본조선사회과학자협회 서일본본부 회장 등으로 사업하면서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과 조국통일위업에 애국적열정을 깡그리 바쳐왔다.식민지노예의 설음속에 나라없던 암흑의 그 세월도 겪어보았고 어머니조국의 귀중함도 눈물겹게 체험한 그는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는 길에 삶의 보람도, 가정의 행복도 있다는 신념을 안고 재일동포들을 거족적인 통일운동에로 불러일으키고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를 강화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지난 4월 력사적인 판문점수뇌상봉과 회담이 진행되였을 때 격동된 심정을 누를길 없었던 리대희동포는 용약 일본의 한 방송에 출연하여 《조선은 하나이다.조국통일이 가까와오고있다.력사는 전진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여 내외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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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교포녀성운동의 자랑찬 로정에 어려있는 불멸의 업적

주체107(2018)년 10월 14일 로동신문

 

주체36(1947)년 10월 12일에 창립된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은 조선녀성운동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계승한 해외교포녀성조직으로서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조국의 통일과 부강번영, 총련애국위업에 커다란 공헌을 하여왔다.사회주의조국을 참다운 어머니품으로 굳게 믿고 천만고생을 달게 여기며 남편들을 애국의 길로 떠밀어주고 자녀들을 민족의 넋을 지닌 미래의 역군으로 억세게 키워가는 재일동포녀성들, 황금만능이 지배하는 거치른 이국땅에서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에 대한 끝없는 충정과 열렬한 애국심을 지니고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헌신분투하는 그들은 우리 조국과 민족의 자랑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녀성동맹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여 동포사회의 힘있는 애국력량으로 키워주시였으며 세계해외교포녀성운동의 본보기의 영예를 빛내여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습니다.》

민족적차별과 박해가 우심한 이역의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은 언제나 어머니조국과 운명을 같이하며 조국의 부강발전과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애국지성을 다 바쳐왔다.

그들이 진행한 첫 대중적인 투쟁은 악명높은 《조선인학교페쇄령》을 짓부시기 위한 투쟁이였다.력사에 4.24교육투쟁으로 기록된 이 격렬한 투쟁의 앞장에 선것은 다름아닌 녀성동맹일군들과 어머니들, 녀성교원들이였다.그들은 공화국기게양투쟁때에도 장갑차와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일본경관들과 결사적으로 싸워 자랑스러운 우리 국기를 끝끝내 사수하였다.이에 대해 《녀맹시보》 주체37(1948)년 10월 25일부는 《…굳세게 자라나는 녀성동맹 새 나라 기발도 찬란케 우리의 국기를 사수!》라는 제목으로 긍지높이 전하였다.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동포녀성들은 공화국을 사수하는 투쟁의 앞장에서 견결하게 싸웠다.

이역땅에서 조선녀성의 기상을 떨치며 용감하게 싸우는 재일동포녀성들을 그토록 대견해하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새 조국건설의 첫 시기에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포하시여 우리 녀성들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재일조선녀성운동의 발전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온갖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일찌기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앞에 나서는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발표하시여 재일조선녀성운동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 세대 동포들을 적극적으로 교양하는데서 재일조선녀맹조직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그러시면서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훌륭한 조선사람으로 키우는데서 동포녀성들이 지니고있는 책임이 매우 크다고, 민족의 대, 애국의 대를 굳건히 이어나가게 하는 민족교육사업에 동포녀성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은 동포녀성들의 가슴마다에 애국의 의지가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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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의 갈피에서 : 빠리콤뮨이 남긴 교훈

주체107(2018)년 10월 14일 로동신문

 

2001년 3월에 프랑스에서 진행된 지방자치제선거결과 사회당원이 빠리시장으로 당선되자 세계는 빠리콤뮨이후 130년만에 좌익세력이 수도의 정권을 장악하였다고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빠리콤뮨은 1871년 3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 72일간밖에 존재하지 못하였지만 국제사회가 백수십년세월이 지나도 잊지 않고있을 정도로 세계정치사와 국제로동운동사의 갈피에 뚜렷이 새겨져있다.

빠리콤뮨은 1870년대초 프랑스-프로씨아전쟁으로 첨예화된 프랑스에서의 사회계급적모순의 산물이였다.빠리의 로동자들과 인민들은 1871년 3월 18일에 대중적인 항쟁에 궐기하였다.부르죠아지들의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고 인민대중의 리익을 위하여 무장을 들고일어난 콤뮨용사들은 반동정부를 축출하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로동계급의 정권을 탄생시켰다.

빠리콤뮨은 력사상 세계최초의 프로레타리아독재정권형태였다.

빠리콤뮨은 착취계급의 낡은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로동계급의 새로운 국가기구를 창설하였다.빠리콤뮨은 계획한 방대한 사회경제적개혁을 실천에 다 옮기지는 못하였으나 여러가지 진보적인 정책들을 실시하였는데 이러한 시책들은 빠리콤뮨이 로동계급의 정권이며 로동계급의 정권만이 광범한 인민대중의 리익과 요구에 맞는 인민적시책을 실시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당시 반혁명세력은 빠리콤뮨을 없애버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악하면서 방대한 병력으로 공격해나섰다.콤뮨용사들은 우세한 반혁명무력의 공격을 맞받아 마지막 한사람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결국 빠리콤뮨은 비극적으로 자기 존재를 끝마쳤다.

빠리콤뮨은 로동계급의 혁명투쟁사에 심각한 교훈을 남기였다.

빠리콤뮨이 실패하게 된 주요한 원인은 자체의 혁명력량을 튼튼히 준비하지 못한데 있다.

당시 프랑스에는 로동계급의 혁명적당이 없었다.그런데로부터 옳바른 혁명리론과 과학적인 전략전술을 가지고있지 못하였다.

빠리의 로동계급은 농민과 동맹하지 않았으며 다른 지역들과도 련계를 맺지 못하였다.빠리콤뮨은 거의 고립무원한 상태에서 우세한 반혁명세력과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혁명과 반혁명사이의 판가리싸움이 벌어질 때 콤뮨의 군사력은 반혁명군에 대비도 할수 없으리만큼 약하였다.

인류력사상 최초의 프로레타리아정권이였던 빠리콤뮨은 결국 실패하였다.누가 누구를 하는 계급투쟁에서 인민대중이 승리하자면 반드시 탁월한 수령을 모신 혁명적당의 령도를 받아야 한다는것이 빠리콤뮨이 남긴 피의 교훈이다.

빠리콤뮨은 또한 주권을 잡은 로동계급이 전복된 착취계급과 반혁명세력을 철저히 소탕해버리지 않을 때 얼마나 쓰라린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가 하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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