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10月 27th, 2018

인민의 참된 복무자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령도

주체107(2018)년 10월 27일 로동신문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목표수행을 위한 증산돌격운동이 심화되는 속에 뜻깊은 올해를 빛나게 결속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다.

창조와 위훈이 나래치고 혁신의 동음이 높은 곳을 찾아가면 일이 잘되는 비결이 있다.

그 비결의 하나가 일군들이 인민의 참된 복무자로서의 자각과 높은 책임감을 지니고 자기 지역 인민들과 자기 단위 종업원들의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정상적으로 알아보고 성심성의로 풀어줌으로써 대중의 혁명적열의를 고조시켜나가는것이다.

인민을 위하여 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는 그 미더운 모습을 대할수록 가슴뜨겁게 새겨지는것이 있다.

그것은 일군들을 인민의 참된 복무자로 키우시기 위하여 언제나 마음써오신 절세위인들의 크나큰 로고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인민을 위한 일밖에 모르고 인민을 위한 일을 성실하고 능숙하게 하며 인민을 위한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 인민의 참된 복무자가 되여야 합니다.》

인민의 참된 복무자가 되자면 옳바른 인민관을 지녀야 한다.옳바른 인민관을 지닌 일군이라야 인민을 존중하고 인민과 생사고락을 함께 할수 있다.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천만고생도 락으로 여기며 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면서 우리 당의 사랑과 믿음의 정치를 훌륭히 받들어나갈수 있다.

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을 강화발전시키며 우리 혁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대책적문제들에 대하여 가르쳐주실 때마다 일군들이 인민에 대한 관점과 립장을 바로가질데 대하여 중요하게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의 마지막시기에 조직하시였던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때였다.

우리 당의 자주적립장과 원칙적인 투쟁에 의하여 내외정세가 유리하게 전변되여가고있는 력사적환경에 맞게 당의 혁명적경제전략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이 참된 인민관을 지닐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내가 늘 말하지만 일군들은 인민을 선생으로 여기고 인민대중에게서 배워야 한다.세상에 인민대중보다 더 힘있고 지혜로운 존재는 없다.인민대중에게서 배우고 인민대중을 옳게 이끌어나가면 그 어떤 고난도 뚫고나갈수 있다.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면 백번 승리하지만 인민을 믿지 않고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한다는것이 바로 혁명하는 사람들의 좌우명으로 되여야 한다.…

잊지 못할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은 인민대중을 믿고 그들의 지혜와 힘에 의거할뿐아니라 인민대중에게 헌신적으로 복무하여야 한다고, 인민대중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것은 가장 영예롭고 보람찬 일이며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더없는 행복이고 영광이라고 참으로 뜻깊은 교시를 주시였다.

이민위천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오로지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은 정녕 우리 일군들모두가 인민의 참된 복무자가 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스승이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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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설 : 인민생활향상과 일군들의 역할

주체107(2018)년 10월 27일 로동신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불후의 고전적로작 《일군들은 인민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참된 복무자가 되여야 한다》를 발표하신 때로부터 15돐이 되여온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92(2003)년 10월 28일에 발표하신 이 로작은 당의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를 구현해나가는데서 우리 일군들이 항상 되새겨보며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강령적문헌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대중은 나라의 주인이며 일군들은 인민대중의 복무자, 심부름군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일군들을 위하여 인민들이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인민들을 위하여 일군들이 존재한다고 하시면서 일군들이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무해나가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다.로작은 우리 일군들이 인민의 참된 충복으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가기 위한 실천투쟁에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전투적기치이다.

로작이 발표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15년간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사상리론의 정당성과 생활력이 우리 혁명실천에서 뚜렷이 발휘된 나날이다.지금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투쟁에서 성과를 이룩하고있는 단위들을 보면 례외없이 일군들이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을 지니고 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고있는 단위들이다.

우리 염주군은 몇해전까지만 하여도 다른 군들에 비하여 뒤떨어져있었다.그러던 군이 최근년간 모든 면에서 커다란 전진을 이룩할수 있은것은 일군들이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심장깊이 새기고 인민의 참된 충복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해온것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지난 기간 군당위원회가 최대로 중시한것은 일군들이 인민생활문제를 풀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도록 한것이다.

인민생활문제는 오늘 우리 당이 제일 관심하는 문제의 하나이다.바로 여기에서 지역적거점으로서의 군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간생활이 천태만상이듯이 인민들의 생활을 높이는데서 나서는 문제도 한두가지가 아니다.군당위원회에서는 일군들이 무엇보다 인민들의 먹는 문제, 살림집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 떨쳐나서도록 하였다.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푸는데서 기본은 자기 지역의 특성을 잘 리용하는것이다.우리 군은 벌방군으로서 농사만 잘 지으면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에서 큰걸음을 내디딜수 있다.군당위원회에서는 군의 농업생산에서 전환을 가져오자면 농사를 과학화해야 한다는것을 자각하고 우렝이유기농법을 적극 받아들였다.처음에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머리를 기웃거리는 일군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우렝이유기농법은 긴장한 로력과 비료를 절약하고 지력을 개선하면서도 벼의 생육기일을 줄이고 알곡소출을 높일수 있을뿐만아니라 우렝이를 가지고 축산을 활성화하여 고기생산도 늘일수 있는 일거다득의 농사방법이라는것을 과학적으로 인식시키고 모두가 달라붙도록 하였다.룡북리, 남압리를 비롯하여 군안의 여러 농장들에서 정보당 10t이상의 알곡소출을 내여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에서 개선을 가져온것은 바로 자기 실정에 맞게 군이 살아나갈 방도를 찾고 끝장을 볼 때까지 밀고나간데 있다.

군당위원회에서는 일부 일군들속에서 주민들이 살림집문제로 생활상불편을 느끼고있는것을 보면서도 조건타발을 하며 만성적으로 대하는데 대해 인민성이 없는 심각한 문제로 제기하고 그것을 풀기 위하여 일군들부터 발벗고나서도록 하였다.세멘트와 모래, 철근과 목재를 비롯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군안의 일군들은 시공주, 건설자가 되고 자재인수원이 되여 뛰고 또 뛰였으며 군의 예비와 건설력량을 총동원하여 몇해사이에 수백세대에 달하는 살림집을 건설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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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장령급군사회담 진행

주체107(2018)년 10월 27일 로동신문

 

【평양 10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력사적인 《9월평양공동선언》리행을 위한 북남고위급회담합의에 따라 북남장령급군사회담이 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진행되였다.

회담에는 안익산 조선인민군 륙군중장을 단장으로 하는 우리측 대표단과 김도균소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남측대표단이 참가하였다.

회담에서 쌍방은 력사적인 《9월평양공동선언》부속 군사합의서의 첫 단계 실행정형을 종합적으로 점검총화하였으며 다음단계 리행에서 제기되는 실무적문제들을 론의하고 필요한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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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갱생의 심오한 철리를 밝혀주시여

주체107(2018)년 10월 27일 로동신문

 

세계의 수많은 언론들은 온갖 시련과 난관을 과감히 뚫고 사회주의강국건설에서 기적적인 승리만을 아로새겨나가는 우리 공화국의 현실에 대해 보도하고있다.

영국신문 《프로레타리안》은 지난 수십년간 제재와 봉쇄속에서 자강력으로 전진해온 나라, 자력갱생을 자기 발전의 원칙으로 삼고있는 조선을 핵위협이나 제재로 굴복시키려는것은 그야말로 오산이며 어리석은짓이다고 평하였다.

로씨야의 어느 한 출판사의 인터네트홈페지는 조선의 자강력은 주체사상에 뿌리를 두고있다고 하면서 조선인민이 조국해방전쟁후 짧은 기간에 전후복구건설을 끝내고 사회주의공업화의 력사적과업을 수행할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바로 자력갱생의 정신이였다는 글을 올렸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식 사회주의의 전 력사를 쥐여짜면 자력갱생이라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번영의 전성기를 수놓아가고있는 근본비결은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가 마련된데 있으며 그것은 철두철미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의 산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후 제국주의식민지기반에서 해방된 나라들은 거의 모두가 발전된 나라들의 원조에 의거하거나 그들의 경제운영방식을 모방하는 길을 택하였다.자체의 경제건설리론도 경험도 밑천도 없이 국가경제를 건설해나가야 하는 실정에서 그 어떤 독자적인 길을 선택할 여지가 없다는것이 보통의 상식이였다.

천리혜안의 예지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립적민족경제건설로선을 제시하시고 자력갱생으로 그것을 빛나게 실현하시였다.그리고 그 귀중한 경험을 밑천으로 새 생활창조의 길에 들어선 많은 발전도상나라들이 오직 자기 힘을 믿고 자체의 힘으로 살아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64(1975)년 4월 라틴아메리카의 꼬스따리까사회당 위원장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자력갱생의 혁명적원칙을 지켜나갈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것이 그 한 실례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를 세우고 자력갱생한 결과 우리 당은 부닥친 온갖 난관과 시련을 성과적으로 이겨내고 우리 나라 혁명을 힘있게 전진시킬수 있었으며 우리 나라를 정치에서 자주적이고 경제에서 자립적이며 국방에서 자위적인 힘있고 존엄있는 사회주의강국으로 만들수 있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발전도상나라들이 민족해방위업을 끝까지 완수하는데서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제적자립은 정치적독립의 물질적기초이다, 경제적으로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존할 때에는 정치적으로도 다른 나라에 예속되지 않을수 없으며 식민지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날수 없다,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여야 정치적독립을 공고히 하고 나라의 부강발전과 민족의 번영을 이룩할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우리 나라를 방문한 아프리카의 어느 한 나라 대통령도 자력갱생의 원칙과 관련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게 되였다.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나라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유능한 농업기술대표단을 파견하여 자체의 힘으로 살아나가도록 방조를 주신데 대해 그는 충심으로부터의 감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수많은 외국의 인사들을 만나시여 모든 나라와 인민들이 자기 힘을 믿고 싸워나갈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주체82(1993)년 2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루과이3월26일운동대표단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하신 교시는 자력갱생만이 살길이고 승리의 길이라는 진리를 확신시켜준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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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조단체들 《자유한국당》의 모략책동을 단죄

주체107(2018)년 10월 27일 로동신문

 

남조선에서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민주로총산하 로조단체들이 지난 22일 서울에서 그 무슨 《채용부정의혹》이라는것을 제기한 《자유한국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자유한국당》이 《채용부정의혹》이라는것을 들고나와 《국정조사》까지 요구하고있지만 증거는 단 하나도 없으며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하면서 이 보수야당이 민주로총을 사건과 련결시키기 위해 허튼 소문을 사실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하였다.서울교통공사 로조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이 불순한 정치적목적밑에 로조단체들을 채용부정의 주범처럼 광고하고있다고 하면서 외곡된 사실을 정치적으로 리용하지 말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그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로동조합을 부정세력으로 몰아대는 《자유한국당》의 낡은 정치수법은 반드시 근절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서는 터무니없는 날조자료들로 로조단체들을 모해하는 보수언론들을 규탄하면서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는 허튼짓은 그만두고 소설이나 쓰길 바란다고 야유하는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

기자회견에서 로조단체들은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의 허위사실류포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명예훼손 고소고발 등 법적으로 대응할것이라고 밝혔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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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이 남긴 값비싼 교훈

주체107(2018)년 10월 27일 로동신문

 

로씨야력사에는 비극적인 《피의 일요일》사건이 기록되여있다.

20세기 초엽에 이르러 로씨야의 국내정세는 격변하는 사변들로 하여 몹시 복잡하였다.자본주의나라들을 휩쓴 세계적인 대경제공황의 여파가 로씨야에도 덮쳐들었으며 여기에 일본과의 전쟁까지 터졌다.

로씨야인민들은 극도로 어려운 처지에 빠져들었다.통치계급, 착취계급에 대한 근로대중의 원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갔다.혁명정세도 더욱 성숙되여갔다.

1905년 1월 3일 뻬쩨르부르그의 뿌찔로브공장 로동자들은 악질기업주의 해고소동을 반대하여 들고일어났으며 이것은 총파업으로 확대되였다.

이에 겁을 먹은 짜리반동정부는 혁명적진출에 나선 로동자들을 대중적으로 학살할 악랄한 흉계를 꾸몄다.이에 따라 당시 로씨야공장로동자협회를 조직하였던 승려 가뽄을 내세워 짜리에게 진정서를 내면 요구를 들어줄것이라는 감언리설로 로동자들을 얼리도록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짜리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로동자들은 그것을 곧이 믿고 1905년 1월 9일(일요일) 이른아침 가족들과 함께 평화적시위에 나섰다.그들은 짜리에게 평화와 빵, 정치적자유와 로동의 권리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할 목적으로 짜리의 초상과 교회성상, 기발을 들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짜리의 소굴인 동궁으로 행진하였다.행렬에는 약 14만명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시위자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이룰수 없었다.동궁앞에 이미 대기하고있던 짜리군대가 황제 니꼴라이2세의 명령에 따라 시위군중에게 일제사격을 퍼부었던것이다.순식간에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동궁앞광장은 피로 물들여졌다.

로씨야인민들은 이날을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렀다.짜리반동정부의 야만적인 학살만행은 로씨야인민의 격분을 자아냈으며 그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던 짜리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깨뜨려버렸다.짜리를 반대하는 대중적투쟁은 범람하는 물결마냥 전국적범위로 무섭게 노도쳐갔다.1월 9일사건은 제1차 로씨야부르죠아민주주의혁명의 발단으로 되였다.

《피의 일요일》은 짜리의 《자비심》에 기대를 걸고있던 로씨야인민들에게 반동적인 통치계급에 대한 환상은 곧 죽음이며 오직 투쟁으로써만 광범한 근로대중의 권리를 쟁취할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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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 노예로동을 강요하기 위해 감행한 죄악

주체107(2018)년 10월 27일 로동신문

 

2003년말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는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의 일부에 해당되는 42만여명의 명단을 입수하여 공개한바 있다.

위원회가 이 명단을 분석조사하는 과정에 일제의 《농경근무대》에 끌려가 노예로동을 강요당하였던 피해생존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찾을수 있었다.그들의 증언을 통하여 《농경근무대》가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하는 방법으로 조직운영된 범죄적인 실체였다는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였다.

《농경근무대》는 일본국내의 부족되는 식량을 생산할 목적밑에 구일본륙군이 조직한 생산부대였다.일제의 침략전쟁과 그의 계단식확대는 막대한 인적 및 물적자원의 소모를 초래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일본국내의 병력과 로동력은 고갈상태에 빠지게 되였다.하여 일제는 《징병》의 명목으로 수많은 조선청년들을 일본에 끌어다가 《농경근무대》에 배속시키고 부침땅개간을 비롯한 고된 로동에 마소처럼 내몰았다.

일본의 《아사히신붕》 2003년 3월 15일부에는 《조선인 징병하여 식량증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였다.기사는 태평양전쟁말기인 1945년 4월 조선에서 《징병》된 병사들을 식량증산 등에 동원시켰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구일본군의 전보문을 오사까부의 고등학교 교원이 발견하였다는데 대해 전하였다.전보문에 의하면 당시 일제는 서부(규슈지방)군인원 1만 5 700명, 각 군관구 《자활대》인원 1만 7 000명, 《농경근무대》인원 1만 3 000명 등으로 일본에 끌어간 4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청장년들에게 무기대신 삽, 괭이 등을 주었다고 한다.

《농경근무대》에 끌려갔던 수천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의 명단을 통해서도 그들이 1945년 봄경에 평안남북도와 황해도, 함경남도, 충청남북도, 강원도 등 조선의 거의 모든 지역들에서 끌려간 청년들이라는것이 확인되였다.

《농경근무대》 성원들의 모집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는 강제성을 띠고있었다.그것은 일제가 《농경근무대》를 조직함에 있어서 완전히 의무화된 《징병》제도에 의거하였기때문이다.

피해자 김치린과 진태범은 다같이 《징병》으로 《농경근무대》에 끌려가게 되였는데 그들에게는 《국가총동원법》이라는 악법이 적용되였다.

이에 대하여 김치린은 《1945년 1월초에 경찰관주재소의 왜놈순사와 구장이 〈징병〉령장을 가지고와서 나를 면사무소로 끌어갔다.오후에 나를 포함한 12명이 순천역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이미 300여명의 청장년들이 끌려와있었고 일본경찰들이 그들을 삼엄하게 감시하고있었다.일제는 양덕방향에서 도착한 화차에 우리들을 태워 떠나보냈는데 헌병들이 화차입구에 서서 우리들을 감시하였다.우리는 그날 저녁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사동에 주둔하고있던 제44부대로 끌려갔다.》고 증언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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