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충실한 혁명전우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이였던 김양건동지가 받아안은 고귀한 믿음과 은정-
숭고한 동지적사랑과 도덕의리의 위대한 힘으로 개척되고 승리해가는 우리 혁명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영광의 삶을 빛내인 참다운 애국자, 혁명가들을 성스러운 력사의 갈피마다에 무수히 기록하고있다.
그가운데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자신의 가장 가까운 혁명전우로 믿어주고 내세워주시면서 한량없는 은정을 베풀어주신 당중앙위원회 비서(당시)였던 김양건동지도 있다.
때로는 화창한 봄날처럼 따뜻한 정과 열을 나누시던 모습으로, 때로는 만사람의 심장을 울리고 하늘도 머리숙이게 하는 고결한 도덕의리의 정화로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깊이 새겨주신 김양건동지!
절세의 위인의 마음속에서 오늘도 뜨겁게 살아숨쉬는 그의 고귀한 삶은 위대한 동지애의 력사가 장엄히 흐르는 이 땅에서 혁명가의 영생은 불멸의 진리라는것을 힘있게 구가하고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운데서 그 일부를 우리는 세상에 전한다.그것은 그대로 김양건동지가 소리높이 터치고싶었던 심장의 고백이고 또 한분의 위대한 혁명의 태양을 높이 모시여 긍지높은 이 시대의 뜨거운 메아리이다.
나는 비서동무를 믿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인 주체106(2017)년 3월 27일이였다.그날 개건확장된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새로 꾸려진 《위대한 수령님들과 전우관》도 돌아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슬하에서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자라나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고귀한 한생을 바친 일군들의 자료를 하나하나 일별하시며 뜨거운 추억의 세계에 잠겨계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문득 누군가의 모습을 찾으시더니 《위대한 수령님들과 전우관》에 김양건동무의 자료가 전시되지 않았는데 그가 최근에 사망하였으므로 아직 전시하지 못한것 같다고 서운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온몸에 쩌릿이 차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김양건동지가 세상을 떠난지도 어느덧 두해가 되여오지만 우리 원수님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전사가 금시라도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아서였다.
우리 당의 조국통일방침과 자주적인 대외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사업하던 충직한 일군, 당이 준 과업을 최상의 수준에서 집행하기 위해 칠순나이에도 밤낮없이 뛰여다니던 전사의 자욱을 하나하나 더듬으시는듯 그이께서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러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한없는 은정을 담아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속에서 능력있는 일군으로 자라났습니다.앞으로 김양건동무의 자료도 다 전시해놓아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성스러운 혁명력사와 더불어 사랑하는 전사의 한생을 빛내여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김양건동지가 걸어온 남다른 인생행로를 감회깊이 돌이켜보았다.
해방전 품팔이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극빈한 가정에서 출생한 김양건동지는 6살 나던 해에 아버지를 잃고 일찍부터 고생많은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 나어린 《세대주》구실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려운 집안살림때문에 그는 학교갔다 돌아올 때면 여러가지 나물과 송기를 채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호주머니에 메싹이며 갖가지 열매를 넣고 와서 어린 동생과 할머니에게 주군 하던 그 시절에야 김양건동지에게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있는지 누가 알수 있었으랴.
그러던 그에게 보람찬 새 삶의 길을 열어주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가렬한 전화의 나날에도 배움의 종소리를 랑랑히 울려준 위대한 어버이의 품은 중학교를 졸업한 김양건동지를 1211고지가 바라보이는 지혜산에서 혁명군인의 견실한 사상정신과 고상한 풍모를 지니도록 해주었고 군사복무를 마친 다음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의 넓은 교정으로 불러 희망을 한껏 꽃피워주었다.대학졸업후 중요기관들에서 일하던 김양건동지는 우리 당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던 때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영광스럽게도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게 되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