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악랄한 신사참배강요책동

주체108(2019)년 7월 4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에서 용납 못할 또 하나의 죄악은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깡그리 말살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한것이다.

신사참배라는것은 일본의 토착종교인 신도의 절간신사에 찾아가 일본의 하늘과 땅, 사람을 창조한 건국신이라고 하는 《아마데라스 오미까미》(천조대신)와 그의 적자로서 《현인신》이라고 하는 《천황》에게 절을 하고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허황하기 그지없는것이였다.

식민지통치시기 일제의 신사참배는 조선인민을 《황국신민화》 즉 《천황》에게 절대복종하는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강행되였다.

일제는 우선 조선에도 일본에서와 같이 각이한 급의 신사들을 대대적으로 건설하여 신사체계를 확립하는데 달라붙었다.

1915년에 《신사규칙》이라는것을 발표하고 1918년부터 1925년 10월까지 공사비를 투자하여 경성 남산에 조선신궁이라는것을 세워놓았다.이 신궁은 앞으로 일제가 우리 나라 도처에 세울 모든 신사들의 총본산격이였다.

일제가 조선신궁을 세운 목적에 대하여 이 신궁의 궁사로 있던자는 《신사를 통해 내선일체와 태고의 환원을 성취하는것》, 《반도대중의 정신생활의 중추를 밝히고 그 실행할바를 명시하는것》이라고 줴치였다.

조선신궁을 설립한 일제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신사를 확대하기 위하여 전국도처에서 신사건설놀음을 벌려놓았다.

일제의 신사체계확립책동으로 조선에는 1931년말에 1개의 신궁, 50개의 신사, 186개의 작은 신사가 있었으며 1942년말에 와서는 관페대사급 신궁 2개, 국페소사급 신사 6개, 신사는 55개, 작은 신사는 828개에 이르렀다.

일제는 또한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황국신민화》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민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조선인민에 대한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은 9.18사변을 조작하여 만주를 강점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중일전쟁도발이후 조선총독 미나미는 직접 조선신궁을 찾아가 《황군》의 《무운장구》를 빌어 참배하고는 즉시 각 도청에 명령하여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신사참배를 단행할것을 지시하였다.

미나미의 명령에 따라 일제는 우리 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을 신사참배에 강제로 끌어내였다.

일제는 이 시기 일본이 생겨났다는것을 기념한다는 《기원절》, 조선침략의 원흉인 무쯔히도가 출생하였다는 《명치절》, 살아서 일본을 통치하는 쇼와《천황》이 난 날을 《축하》한다는 《천장절》 등 이른바 국가명절들과 《흥아봉공일》, 《애국일》, 《대조봉대일》에 각종 《기념행사》놀음을 벌려놓고 우리 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을 강제로 끌어내여 신사에 절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각급 학교의 학생들에 대하여 1주일에 한번씩 의무적인 집단참배를 강요하였으며 일반주민들이 신사앞을 지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절을 하도록 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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