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의 새벽길에 새겨진 불멸의 자욱 -봉화혁명사적지를 찾아서-

주체108(2019)년 7월 10일 로동신문

 

소나무며 전나무, 참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봉화산, 갖가지 꽃들이 활짝 피여난 산기슭을 따라 옛 모습그대로 보존되여있는 사적건물들…

유서깊은 봉화혁명사적지의 전경을 바라보느라니 한평생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존귀하신 영상이 어려와 가슴이 뜨거워졌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의 아버지는 우리 나라 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의 한사람으로서 1894년 7월 10일에 만경대에서 탄생하여 1926년 6월 5일 망국의 심야에 한을 품고 돌아갈 때까지 일생을 혁명에 바친분이였다.》

우리가 참관자들과 함께 먼저 찾은 곳은 봉화산기슭에 정중히 모셔져있는 김형직선생님의 동상이였다.

수수한 두루마기차림으로 교탁을 짚으시고 책을 펼쳐드신 김형직선생님!

마치도 김형직선생님께서 우리를 반겨맞아주시며 시련과 난관이 겹쌓여도 혁명의 길을 끝까지 가라고 말씀하시는것만 같았다.

강사는 일찌기 지원의 큰뜻을 품으시고 고향 만경대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김형직선생님께서 보다 적극적인 투쟁을 위해 주체5(1916)년 3월 봉화리로 투쟁무대를 옮기신데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참관자들을 명신학교로 이끌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이전에 《개량사숙》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글방을 학교로 새로 꾸리시고 그 이름도 조국해방의 밝은 새날을 앞당겨올 후대들을 키운다는 뜻에서 명신학교라고 지으시였다.

교실안에 있는 교탁과 종, 벽시계와 조선지도를 비롯한 여러 사적물에서는 후대들에게 애국의 넋을 심어주시던 김형직선생님의 손길이 뜨겁게 느껴졌다.

눈길을 류달리 끄는것은 교실앞벽면에 씌여진 《지원》이라는 글발이였다.

나라의 독립과 번영,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서는 그 어떤 난관과 시련이 앞을 가로막아나서도 조금도 굴함없이 끝까지 싸워야 하며 조국해방을 위한 혁명위업은 당대에 다하지 못하면 대를 이어서라도 기어코 완수해야 한다는 사상이 담긴 글발을 가슴에 새겨안을수록 민족수난의 세월 갈길 몰라 헤매이는 인민들에게 지원의 뜻을 심어주시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새 력사를 창조하신 김형직선생님의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절감하게 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6(1917)년 11월 여기서 수업도중 갑자기 달려든 일제경찰놈들에게 체포되시였습니다.일제교형리들은 야수적방법으로 선생님의 혁명적절개를 꺾어보려고 미쳐날뛰였지만 그 무엇으로써도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적신념과 의지는 꺾을수 없었습니다.》

강사의 해설을 듣느라니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 담으시였던 김형직선생님의 신념의 맹세가 심금을 세차게 울리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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