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 한몸이 그대로 방탄벽이 되여 -혁명투사 김산호동지의 한생에서-
항일혁명투사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따르는 길에서 사랑에는 사랑으로, 믿음에는 믿음으로, 은혜에는 은혜로 보답하는 숭고한 의리의 력사, 충실성의 력사를 창조하였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 이것이 투사들이 지니고있던 혁명적의리의 핵이였다.
항일혁명투사 김산호동지의 빛나는 생애를 통해서도 그것을 잘 알수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우리는 보통사람들이 혁명을 통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하는가를 말할 때마다 그 전형적인 실례로 김산호를 들군 하였다.그리하여 〈머슴군으로부터 련대정치위원으로!〉라는 말은 혁명이 보통사람들의 발전과정을 얼마나 강력하게 추동하며 로동자, 농민출신의 평범한 근로청년들이 혁명의 와중에서 정치사상적으로나 군사기술적으로나 문화도덕적으로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도표와도 같이 되여왔었다.》
머슴군으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 련대정치위원으로 성장한 김산호동지,
그는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나 오가자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잔뼈를 굳혔다.
그러한 김산호동지가 어엿한 혁명가로 자라나고 중대정치지도원, 련대정치위원으로 성장할수 있은것은 남다른 재간이나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였다.바로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때문이다.
하기에 그의 가슴속에 항상 불타고있은것은 어제날 머슴으로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던 자기를 따뜻한 품에 안아 친부모의 정을 초월하는 열화같은 사랑을 부어주시고 무장대오에 받아들여 어엿한 혁명전사로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은덕에 보답할 굳은 맹세뿐이였다.
김산호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모시고 그이의 전사로 살며 싸우는것을 최대의 영예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수령님을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모시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행군하면서도, 숙영지에서도 언제나 조선혁명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고 싸우시는 어버이수령님의 건강과 안녕을 먼저 생각하였으며 대원들을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로 키우기 위해 애썼다.
혁명가로서의 김산호동지의 충실성은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지시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집행정신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였다.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집행하는데서 맹세나 약속을 번지르르하게 하지 않았지만 일단 받은 과업은 어김없이 수행하였다.
오늘도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귀중히 간수해오신 돈 20원으로 마안산의 아동단원들에게 새 옷을 해입히신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잊지 못하고있다.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반석어머님의 체취가 그대로 어려있는 돈 20원을 내놓으시며 련대정치위원이였던 김산호동지에게 무송시내에 내려가서 천을 사다가 아이들에게 옷을 해입힐데 대한 명령을 주시였다.
김산호동지는 선뜻 그 돈을 받을수 없었다.거기에 깃든 사연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재삼 재촉하시여서야 김산호동지는 마지못해 돈을 받으며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의 령이니 집행은 하겠습니다만 어쩐지 손이 떨립니다.그 돈이 어떤 돈입니까.》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새기며 그이의 명령대로 무송시내에 들어가 천을 사가지고 돌아섰다.그러나 20원으로 사온 천으로는 아동단원들에게 옷을 다 해입힐수 없었다.천이 모자랐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금 그에게 무송에 갔다올데 대한 명령을 주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이라면 오직 《알았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밖에 모르는 그는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임무를 끝끝내 수행하고 마안산밀영으로 돌아왔다.(전문 보기)